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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 ㅣ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3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최지향 옮김 / 부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한 벌의 청바지라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찾기는 힘들 것이다. 청바지는 세계인의 패션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하지만 청바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과연 너무도 흔해서 전혀 귀해 보이지 않는 청바지에 어떤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밭에서 수확한 목화솜을 조면공장으로 가져가 씨와 잡물을 제거하여 실을 뽑기에 적당한 솜을 만들고, 그 솜을 방적공장으로 옮겨 실을 만든 후, 그 실에 청색의 인디고 염색을 가하여 청색의 실을 만들고, 방직공장에서는 이 실을 가지고 데님이라고 하는 베를 만들고, 이 베를 가지고 디자인에 따라 옷으로 만들면 하나의 청바지가 태어난다.
하지만 이 과정이 다가 아니다. 이 과정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물론 수백만 원 이상 가는 고가의 청바지도 있지만, 우리는 보통 단 돈 몇 만 원만 지불하면 마음에 드는 청바지를 살 수 있다. 과연 그 청바지는 정말 그 정도의 가치만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뙤약볕과 먼지 속에서 몇 달러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허리도 펴지 못하고 목화솜을 따는 여인이 있다. 또 솜털 먼지 날리는 공장 안에서 땀을 흘리며 솜을 가공하는 노동자가 있고, 5~60달러의 월급을 벌기 위해 하루 14시간 이상 청바지를 만들고 있는 노동자가 있다. 우리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의 임금 수준은 그야말로 형편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질 좋은 청바지를 값싸게 사 입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정당한 몫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임금에 노동력을 팔고 있는 노동자의 실상을 느끼게 된다.
목화를 기르기 위해서 맹독성의 제초제, 살충제를 사용하고 있고, 수확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고엽제를 사용한다. 그 결과 청바지 한 벌에는 평균 0.73파운드의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p.89)고 한다. 물론 이 화학물질은 모두 농약에서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염색과정에서 역시 수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농민과 노동자는 그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심각한 질병의 가능성을 안고 살고 있다.
지금은 지구촌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있는 세계화 시대이다. 또한 자유무역 시대이며, 무한한 소비가 미덕인 상업주의 시대이기도 하다. 다른 모든 소비재가 그렇듯 청바지 역시 이러한 무슨 무슨 시대라는 그물에 걸려 있다.
한 벌의 청바지의 출생을 쫓아가면 얼마나 많은 나라들을 거쳐 왔는지 모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캄보디아에서 청바지를 만들고 있는 두 여성 노동자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캄보디아에서 만들어지는 청바지는 홍콩, 싱가포르, 또는 미국 등지에서 OEM 주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들 두 여성의 삶을 보면 마치 우리나라가 6,70년 대 초기산업 시대에 시골에서 수많은 젊은(또는 어린) 여성들이 도시의 공장으로 가 일하던 모습과 그대로 겹친다. 가난한 시골에서는 도시로 나간 큰딸이 보내온 돈으로 소도 사고, 논도 사고, 집도 고치고 했었다. 이런 모습이 캄보디아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만 16세 이하는 공장에서 노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만이 능사일까? 가난한 집에서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어린이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면 과연 이 어린이를 해고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이 옳을까?
이 부분에서 전에 인도 등지에서 아디다스 축구공을 바느질하고 있는 어린 노동자가 생각났다. 그때 일반적으로 아디다스를 향해 어린이를 학대하고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디다스가 그들에게 주었을 임금이 우리 기준에서는 아주 적은 돈이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돈은 아니었을까?
여하튼 세계 경제와 세계 각지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판단한다는 것은 너무 섣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는 청바지 한 벌을 200달러에 팔고 있는 ‘에던’이라는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에던은 유기농으로 길러진 목화를 사용해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한 공법을 사용하여 실을 짜고, 데님을 만들며, 안전 장비가 갖추어지고 최대한 쾌적한 공장에서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여 만든 청바지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던에서 200달러 하는 청바지 한 벌의 도매가는 84달러라고 한다. 우리가 20달러 안팎으로 살 수 있는 청바지가 어떤 이력을 지니고 있을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던의 그리핀은 ‘우리가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지 않다면 생산-소비 사슬의 저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대신 부담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p.355)라고 말하고 있다. 또 에던의 스콧은 ‘옷의 본질은 원단이나 바느질이 아닙니다. 그 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p.365)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바로 ‘책임 있는 소비’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한 벌의 청바지를 살 때, 또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환경오염을 최대한 줄인 청바지를 사려는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에던은 하나의 실험이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좌절할 것인가?
끝으로 가슴에 와 닿는 글귀를 소개한다.
“생산자를 괴롭히는 가장 끔찍한 악마는 소비자인데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면서 가격 인하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p.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