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치료 이야기 -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전현수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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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직 정신과 의사로 활동 중인 저자가 불교수행 중에 경험한 것을 정신치료에 응용하여 실제적으로 효과를 본 것을 썼기 때문에 내용이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목차를 보면 마음열기, 마음알기, 마음다루기, 마음나누기라는 제목을 달고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정신 수양에 직접 도움이 되는 불교 교리를 현실적인 언어로 풀어놨고, 저자 자신이 수행 중에 느낀 점이나 경험한 것들을 실제 환자들에게 적용한 내용을 임상 예를 들어서 서술하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특히 ‘세상의 이치’와 ‘생각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설명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세상의 만물은 생명을 가진 것과 생명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생명을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은 오직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는데 비해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는 자연 법칙 외에 생명체들 간에 적용되는 법칙이 따로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것인데,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개별적 생명체들은 모두 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나’를 갖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각각 이 우주의 중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는 엄청난 ‘내’가 존재한다. 내 자신이 다른 생명체 앞에 겸손하고 다른 생명체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까닭이다.

또 나의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무생물과 생명들과의 끊임없는 ‘상호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특히 나와 다른 사람과의 상호관계는 더 중요하다. 저자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와 남 둘다 이로운 것을 선(善), 나는 이롭지만 남에게는 해가 되는 것을 악(惡), 순조로운 것을 낙(樂)이라고 하고, 저항이 있는 것을 고(苦)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선인락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입니다. 이것이 법칙입니다. 이 법칙을 사회법칙 또는 윤리법칙이라고 합니다.’(p.51)

우리는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 편견을 버리고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평화와 공존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불안과 걱정, 우울과 두려움, 분노 등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왜 이러한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는 것일까?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모두 마음이 과거와 미래에 묶여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현재에 살고 있다. 누구도 과거와 미래에 살 수 없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과거의 일에 상심하고 후회하며 분노하고, 미래의 일에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만일 마음이 현재에 머무를 수 있다면 누구나 불행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다. 저자는 죽음조차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살아있는 그 순간까지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하든 현재에 집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느낄 때 항상 100퍼센트 그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하다보면 점차 현재에 집중하는 능력이 향상되어 과거나 미래에 끌려다니지 않게 될 것이다.

저자는 특히 그 방법으로 명상을 권하고 있다. 명상은 그 자체가 현재에 집중하는 훈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상의 이로운 점 11가지를 설명하는 내용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경험하는 자아’와 ‘관찰적 자아’에 대한 것이다. 경험하는 자아는 우리가 행동할 때 작용하는 자아이고, 관찰적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를 보는 자아이다. 즉 관찰적 자아가 더 상위의 자아로서 자신을 반성하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도덕적 인간 형성에 중요하게 관여하는 자아라고 할 수 있다. 명상을 하면 관찰적 자아가 강화된다고 한다. 이 안에는 명상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으므로 이것을 따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 외에 부부 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이성에 대한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 불면증을 극복하는 방법,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불가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두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뜻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말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절실한 말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독자들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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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철학, 답하는 종교
하카리 요시하루 지음, 김청균 옮김 / 어문학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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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데는 인간 존재로서 살아간다고 하는 그 자체가 바로 종교행위라고 하였다. 종교란 인간의 존재 규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호기심을 가진 존재이며, 이 호기심을 학문으로 승화한 것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존재하는 학문 모두 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내용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요약해 본다.


 

종교와 철학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종교는 이미 진리를 갖고 있으며 그 진리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데 반하여 철학은 진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진리를 하는 것이 그 본분이다. 따라서 묻는 것은 철학이고, 답하는 것은 종교이다. 종교는 믿음을 요구하는 그 진리에 대한 근거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철학은 반드시 근거를 갖고 있어야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종교철학은 어떤가? 종교철학은 종교에 깊이 관련하며, 인간적 생의 구제와 관계하고, 인간적 실존과 관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종교를 비판하며 무신론을 주장하거나 신의 죽음을 천명한 철학자인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 니체 등의 주장을 싣고 있고, 곧 그것을 비판하고 있는데, 하타노 세이치는 ‘종교철학은 어디까지나 종교적 체험의 이론적 회고이고 그것을 반성적 자기 이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종교철학자는 반드시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종교철학자는 종교에 있어서 구제, 절대자, 신앙과 행위에 관한 문제를 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구제는 삶의 고통(苦)으로부터의 구제이다. 고통은 단지 관념이 아닌 현실이며, 구제 역시 관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다. 즉 이 구제는 ‘현실에 있는 나의 구제’인 것이며, 그것은 리얼리티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며, 이 자연과 우주와 교감하며 생존한다. 따라서 이 구제는 한 사람의 구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 인류, 자연, 우주의 구제까지 포함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종교에 있어서 신이나 절대자는 나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 곁에, 내 속에 있는 존재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신을 대상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신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절대적 존재가 반드시 유적(有的)인 존재는 아니다. 불교의 절대적 존재라 할 수 있는 공(空)은 무적(無的) 존재이며, 이슬람의 알라는 유적(有的) 존재이며,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신은 유무적(有無的) 존재이다. 대개 무신론을 주장하는 경우에 신의 관념은 모두 유적 존재로써 파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절대자는 즉비(卽非)논리를 빌려 말하자면 절대적 무이기도 하고 절대적 유이기도 하다. 절대적 무이며 절대적 유이기 때문에 전지전능할 수 있는 것이다.

 

신은 반드시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구제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에 의한 구제를 받아들이는 경우에 한하여 구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의 구제의 수용 여부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절대자에 대한 신앙과 그 신앙행위에 의한다.

인간과 신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상즉(相卽)한다. 곧 인간관계 없이 신관계는 없고, 신관계 없이 인간관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불일불이(不一不二)하다. <요한1서>에서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나니라’라고 하였다.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신을 믿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이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드러난다. 이러한 신앙행위가 없는 신앙은 단순히 관념적이며 진실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웃에 대한 사랑이 곧 구제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각 종교는 자신들만이 진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기가 파악한 진리는 자기가 진리에 의해 파악됨으로써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결코 개인이나 어떤 특정 단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종교는 자기의 절대성을 주장하되 자기의 무성(無性)을 자각하여 이 절대성을 유화(有化)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종교 간 토론과 상호이해, 상호인정이 가능해진다.

 

현대는 불안과 권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근원을 찾아보면 거기에는 허무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현대는 일체의 도덕을 부정하는 무도덕(無道德)의 시대인데, 이것은 곧 허무주의로 나타나며, 이 허무주의가 곧 무신론이다. 허무주의는 존재와 가치에 대한 확실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며, 무신론은 반드시 절망과 무관심을 나타낸다. 따라서 현대의 종교철학의 중요한 과제는 바로 현대의 근본적 특징인 무신론의 관점에서 종교적 신앙을 반성하고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신에 대한 사랑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불교의 자비는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것, 즉 공감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세계 3대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한 간단한 기원과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결국 종교적인 신앙과 행위, 구제를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보며, 이웃에 대한 사랑과 자비야 말로 진정한 신앙이며 구제의 길임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천박한 지식을 가진 자의 편협한 판단이라고 해도 가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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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감 - 동물과 식물의 모든 것
사토우치 아이 지음, 김창원 옮김, 마츠오카 다츠히데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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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구성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왼쪽 페이지에는 설명이 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매우 정확하고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차례는 곤충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조류, 포유류, 파충류․양서류, 어류․조개류, 식물 순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매우 친절하다는 것이다. 관찰과 채집을 떠나기 전에 갖추어야 할 준비물을 자세한 그림과 함께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관찰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도 매우 꼼꼼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자연 관찰을 처음 하더라도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또 채집통이나 채집도구를 만드는 방법, 구체적인 채집 방법이나 관찰 방법, 관찰 대상을 그림으로 그리는 방법 등도 매우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에도 자연 관찰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또 하나의 큰 특징이라면, 화려하고 희귀한 동식물을 싣기보다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쉽게 볼 수 있어서 지나치기 쉬운 동식물이나 파리나 쥐와 같이 혐오스런 동식물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계의 모든 것들이 우리 인간과 함께 같은 울타리 안에서 서로 의존하면서 생존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무엇이건 그 대상을 잘 알게 되면 더 사랑하게 되고, 더 사랑하면 더 많이 알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의 자연환경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 더 그것들을 사랑하게 되고, 더 사랑하면 더욱 알고 싶어질 것이다. 또 알면 알수록 더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 책이 우리의 자연환경과 그 안에 살고 있는 많은 생명체에 대해 알게 되는 데 첫 번째의 길잡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본래 일본에서 출판된 것을 옮긴이가 우리나라의 사정에 맞게 어느 정도 수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나라의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아바타의 놀라운 세계가 사실은 우리 주위에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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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플랑크 평전 - 근대인의 세상을 종식시키고 양자도약의 시대를 연 천재 물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미선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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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양자역학은 상대성이론과 더불어 현대물리학을 구성하고 있다. 상대성이론이 우주의 별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면, 양자역학은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에서 그 가치를 발한다. 현대물리학의 큰 과제는 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여 통일된 이론을 도출해내는 것인데, 아직까지 이 과제를 해결했다는 소식은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인 막스 플랑크는 ‘플랑크 상수’를 발견한 물리학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양자역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플랑크는 확실한 인과율이 적용되는 물리학에 매력을 느꼈고, 19세기 유행하던 계몽주의에 따라 합리주의자였던 그는 물리학을 통하여 궁극의 실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특히 에너지는 결코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은 어떤 절대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여 그에게 매력적인 주제였다. 결국 에너지에 대한 연구가 양자역학을 여는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플랑크는 흑체의 열복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복사 법칙을 발견하고, 이 법칙을 해석하기 위해서 ‘양자도약’을 도입한다. 이 양자도약을 설명하는 것이 유명한 프랑크 상수이다. 프랑크가 도입한 양자도약에 의해 에너지가 미끄럼틀처럼 매끈하게 증감하는 것이 아니라 플랑크상수 단위의 계단을 우둘투둘하게 증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에너지는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최소의 다발, 혹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발전한 학문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이 책에서 보이는 플랑크는 스스로 자신을 현대물리학자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양자이론이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무용하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 양자이론을 뉴턴식의 고전물리학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이르게 되고, 원자 이하의 세계는 확실한 인과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 계산에 의해서만 예측할 수 있고, 인간의 관찰 방식에 따라,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의식에 따라 관찰 대상이 그 모습을 바꾼다는 것이 알려졌다. 다시 말하면 확실한 인과율이 지배하는 세상은 끝났다는 것이다. 플랑크에게 확실한 인과율의 종말은 분명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고전물리학의 바탕 하에서 세계에 대한 완결된 이해, 궁극의 해법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플랑크는 1858년에 태어나 1947년에 사망하여 거의 90세를 살았다. 플랑크가 살았던 시대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세기는 이전의 산업혁명을 계기로 물질문명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시대였고, 서구의 제국주의는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인류문명에 대한 낙관주의가 유행하던 시대였다. 특히 유럽의 변방이자 후진국이었던 독일은 프로이센에 의해 제국이 확립되고, 철혈재상이라고 불리는 비스 마르크가 재상에 취임하여 제국의 기반을 확고하게 하던 시기이다.


 

막스 플랑크의 생애에 독일이 관련된 전쟁이 크게 3번 발발한다. 먼저 1870년에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이때 플랑크의 형이 전사했다. 그리고 플랑크가 베를린 대학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1914에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 전쟁에서 플랑크의 장남이 전사했다. 마지막으로 1939년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 전쟁 중에 플랑크의 차남이 히틀러 암살 음모와 관련하여 처형당했다. 이렇게 전쟁과 관련하여 개인사적인 아픔을 갖고 있는 플랑크에게 그 생애가 결코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하던 아내는 일찍 병으로 사망하고 쌍둥이 두 딸은 모두 출산 중에 사망했다.

플랑크는 참으로 의지가 굳건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개인사적인 아픔이 그의 학문에의 열정과 조국에 대한 사랑과 과학에 대한 헌신을 방해하지 못했다. 양자가설이 물리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베를린 대학의 총장이 되면서 플랑크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제

그는 독일 물리학의 대명사가 되었다.


 

양자학설 이외에 그의 또 다른 공적은 바로 아인슈타인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무명의 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의 논문의 가치를 가장 일찍 알아본 사람이 바로 플랑크였고, 아인슈타인을 베를린으로 불러 교수직을 주고 연구를 계속하도록 했던 사람도 바로 플랑크였다.

히틀러가 수상이 된 후에 반유대주의는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정책적으로 확장시켰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플랑크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주었을 것이다. 플랑크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독일을 떠난 유대인인 아인슈타인을 드러내고 칭송하였다는 것은 그가 히틀러와 나치스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는 행위였다.


 

양자역학에서 하나의 비극은 원자폭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자의 핵분열은 플랑크의 여제자인 리제 마이트너의 연구에 의해서 밝혀졌다. 마이트너는 핵분열 현상을 발견하고 여기에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인 E=mc²을 대입해서 핵분열을 밝혀냈다. 평화주의자인 플랑크는 일찍이 핵분열 결과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우리 인류는 그것을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을 통하여 실제로 경험해야 했다.


이 책에서 보이는 막스 플랑크는 매사에 신중하고 책임감이 뚜렷하고, 자제력과 의지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근세와 현대가 교차하는 격동의 세월을 감내하며 누구보다도 올바르고 현명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플랑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플랑크의 삶은 카이저 빌헬름 시대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던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시기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위적이고 민주적인 실험과 결합했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플랑크의 이론은 고전역학의 객관적 확정성을 양자세계의 창조적 불확정성과 연결했다. 수사학적으로는, 플랑크는 일상의 체험세계와 표상세계를 과학의 세계상 안에 있는 개념의 엄밀성과 결합했다. 그리고 철학적으로는 사실의 인과적 질서에 관한 계몽적 사상을 스스로 선택한 삶의 태도를 위해 자유롭게 결정하는 낭만주의적 관점과 결합했다. 그는 이때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모순을 의연하게 감내했다. 이것이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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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대지의 꿈 - 장 지글러, 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를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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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과 남미 대륙이 대표하는 지구의 남반구는 유럽과 미국이 대표하는 북반구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다. 역사적으로 남반구의 대부분의 나라는 북반구의 나라들에 의해 수백 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대부분 2차 세계 대전 후에 그 지배를 벗어나 독립하였다. 하지만 남반구의 나라와 그 국민들이 진정으로 식민지 지배를 벗어났는가 하고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 책에서 남반구 국가에 대한 서구의 끔찍했던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남반구 국가의 부패한 지배층과 결탁하여 그 나라의 부를 수탈하고, 자기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환경 파괴와 간접적으로 국민들을 학살하는 현재진행형의 식민지 지배를 읽을 수 있다.



14,5세기에 유럽에서는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17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유럽은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산업 혁명과 함께 한 자본주의의 발흥은 자본의 집중과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고, 이로 인해 원료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의 부족, 새로운 시장 개척의 필요 등에 의해 적극적으로 남반구와 아시아에 식민지 지배를 확대하게 된다. 식민지 지배의 내면에는 인종차별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당시에 다윈의 진화론이 새로운 학문으로 대중에게 수용되면서 문화진화론, 인류진화론 등으로 변용되었는데, 서구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편리하게 진화론을 해석하면서 백인만이 최상의 인간으로 진화되었으며 백인 이외의 인종은 참다운 인간으로 진화를 하지 못한 하등의 인간, 어쩌면 동물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라고 보고, 문화 역시 서구문화만이 진정한 인간의 문화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고는 백인들이 다른 인종을 용이하게 노예로 부리고 학대하고 학살하며 토지를 침탈하고 살육할 수 있도록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만일 현 시점에서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주의를 주장하는 정치가나 학자가 있다면 즉각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현 서구인들의 가슴 속에 인종차별주의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대륙과 남미 대륙의 대부분의 나라는 여전히 절대 빈곤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 노예제도는 없어졌지만, 남반구 국민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교묘하게 서구인들이 노예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것에 대해 노예 상인들은 주식투기꾼으로 변모했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개발지원금으로 멱살을 잡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서구인들의 자세에 대해 저자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서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권’을 중시하고 강요하지만 막상 자신들은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은 매우 신랄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남반구의 절망과 희망을 두 나라를 예로 들고 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여전히 절망적이다. 세계 8위의 석유 생산국이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석유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이고, 1억 4천만 인구의 거대한 나라이다. 이 인구 가운데 70% 이상이 하루 생활비가 2달러 미만이 극빈층이고, 이중 54%는 만성 영양실조이며, 10명 중 1명은 10세 이전에 사망한다고 한다. 왜 어마어마한 석유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나라가 이처럼 비참할까? 그 이유는 수십 년 간 계속된 군부독재와 소수지배층의 부패와 민주주의의 부재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이들 군부는 서구의 거대기업과 몇몇의 서양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 없이는 3개월 이상 권력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하다. 즉, 이 나라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서양 때문에 비참한 가난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서양의 더러움은 ‘비아프라 전쟁’에서 적나라하게 노정된다. 나이지리아가 독립하는 60년대 무렵, 프랑스의 엘프아키텐 석유회사가 나이지리아에서 철수할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졌는데, 그때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의 비밀정보부대에 ‘프랑스의 전략적 이익’을 수호하라는 명령을 내려 보낸다. 프랑스 정보부는 나이지리아 오주쿠 장군을 충동질하여 분리독립하게 만들어 전쟁이 일어나는데, 30개월 전쟁 동안 사망자 200만 명, 사자를 절단당하거나 부상당한 사람이 수백만 명이었고 재산상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엘프아키텐이 경쟁 회사와 화해하고 사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되자 전쟁은 끝났다는 것이다.

서양이 남반구를 지배할 수 있는 끝은 그 나라의 부패이다. 부패가 심할수록 그 나라를 지배하기 쉽다. 그러므로 서양은 남반구의 지배층이 더 부패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만일 어떤 나라의 지배자가 부패를 용납하지 않고 서양에 저항할 때는 테러도 서슴지 않고, 쿠데타도 조종한다. 이것이 바로 서양의 정체이다. 남반구에 부패와 이를 이용하는 서양의 음모가 존재하는 한 남반구에 희망은 더 멀어진다.


 

이에 비해서 남미의 볼리비아는 희망을 보여준다. 2006년 1월에 볼리비아에서 최초의 인디언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가 취임했다. 에보 모랄레스는 비로소 식민지 지배를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에보 모랄레스는 취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에너지 주권 회복 작전’을 시행했다. 취임 후 약 6개월 동안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이 작전을 준비한 후 전격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서양 회사가 점유하고 있는 석유와 가스 생산 시설, 정유 공장이나 광산 등을 볼리비아 국가 소유로 규정하고 외국 기업과는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어 이익을 분배하도록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로 인해 국가의 석유 관련 수입은 이전에 비해 몇 배 상승하여 국민에 대한 복지 정책을 시행할 재원을 마련했다.

볼리비아도 다른 남미의 국가처럼 인종 문제, 빈부의 차별 등이 매우 심각하다. 특히 이 가운데 가장 문제점은 역시 가난이다. 볼리비아 어린이 네 명 중 한 명이 심각한 만성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또한 의료서비스는 빈곤층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극악한 노동 환경 역시 시급히 개선해야 될 문제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저항이 있지만 이 용기 있는 인디언 대통령은 전혀 멈출 의향이 없다. 우리는 볼리비아에서 남반구의 희망과 미래를 엿본다.


 

지구에서 생산할 수 있는 식량은 대략 200억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다이어트가 어마어마한 거대 산업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10억에 가까운 인구는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다. 우리도 역시 이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내 자신은 잘못을 알 수 없지만 가슴 속에서는 떳떳하지 못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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