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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철학, 답하는 종교
하카리 요시하루 지음, 김청균 옮김 / 어문학사 / 2009년 9월
평점 :
엘리아데는 인간 존재로서 살아간다고 하는 그 자체가 바로 종교행위라고 하였다. 종교란 인간의 존재 규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호기심을 가진 존재이며, 이 호기심을 학문으로 승화한 것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존재하는 학문 모두 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내용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요약해 본다.
종교와 철학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종교는 이미 진리를 갖고 있으며 그 진리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데 반하여 철학은 진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진리를 하는 것이 그 본분이다. 따라서 묻는 것은 철학이고, 답하는 것은 종교이다. 종교는 믿음을 요구하는 그 진리에 대한 근거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철학은 반드시 근거를 갖고 있어야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종교철학은 어떤가? 종교철학은 종교에 깊이 관련하며, 인간적 생의 구제와 관계하고, 인간적 실존과 관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종교를 비판하며 무신론을 주장하거나 신의 죽음을 천명한 철학자인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 니체 등의 주장을 싣고 있고, 곧 그것을 비판하고 있는데, 하타노 세이치는 ‘종교철학은 어디까지나 종교적 체험의 이론적 회고이고 그것을 반성적 자기 이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종교철학자는 반드시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종교철학자는 종교에 있어서 구제, 절대자, 신앙과 행위에 관한 문제를 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구제는 삶의 고통(苦)으로부터의 구제이다. 고통은 단지 관념이 아닌 현실이며, 구제 역시 관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다. 즉 이 구제는 ‘현실에 있는 나의 구제’인 것이며, 그것은 리얼리티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며, 이 자연과 우주와 교감하며 생존한다. 따라서 이 구제는 한 사람의 구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 인류, 자연, 우주의 구제까지 포함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종교에 있어서 신이나 절대자는 나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 곁에, 내 속에 있는 존재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신을 대상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신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절대적 존재가 반드시 유적(有的)인 존재는 아니다. 불교의 절대적 존재라 할 수 있는 공(空)은 무적(無的) 존재이며, 이슬람의 알라는 유적(有的) 존재이며,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신은 유무적(有無的) 존재이다. 대개 무신론을 주장하는 경우에 신의 관념은 모두 유적 존재로써 파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절대자는 즉비(卽非)논리를 빌려 말하자면 절대적 무이기도 하고 절대적 유이기도 하다. 절대적 무이며 절대적 유이기 때문에 전지전능할 수 있는 것이다.
신은 반드시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구제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에 의한 구제를 받아들이는 경우에 한하여 구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의 구제의 수용 여부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절대자에 대한 신앙과 그 신앙행위에 의한다.
인간과 신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상즉(相卽)한다. 곧 인간관계 없이 신관계는 없고, 신관계 없이 인간관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불일불이(不一不二)하다. <요한1서>에서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나니라’라고 하였다.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신을 믿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이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드러난다. 이러한 신앙행위가 없는 신앙은 단순히 관념적이며 진실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웃에 대한 사랑이 곧 구제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각 종교는 자신들만이 진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기가 파악한 진리는 자기가 진리에 의해 파악됨으로써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결코 개인이나 어떤 특정 단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종교는 자기의 절대성을 주장하되 자기의 무성(無性)을 자각하여 이 절대성을 유화(有化)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종교 간 토론과 상호이해, 상호인정이 가능해진다.
현대는 불안과 권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근원을 찾아보면 거기에는 허무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현대는 일체의 도덕을 부정하는 무도덕(無道德)의 시대인데, 이것은 곧 허무주의로 나타나며, 이 허무주의가 곧 무신론이다. 허무주의는 존재와 가치에 대한 확실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며, 무신론은 반드시 절망과 무관심을 나타낸다. 따라서 현대의 종교철학의 중요한 과제는 바로 현대의 근본적 특징인 무신론의 관점에서 종교적 신앙을 반성하고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신에 대한 사랑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불교의 자비는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것, 즉 공감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세계 3대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한 간단한 기원과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결국 종교적인 신앙과 행위, 구제를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보며, 이웃에 대한 사랑과 자비야 말로 진정한 신앙이며 구제의 길임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천박한 지식을 가진 자의 편협한 판단이라고 해도 가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