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대지의 꿈 - 장 지글러, 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를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아프리카 대륙과 남미 대륙이 대표하는 지구의 남반구는 유럽과 미국이 대표하는 북반구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다. 역사적으로 남반구의 대부분의 나라는 북반구의 나라들에 의해 수백 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대부분 2차 세계 대전 후에 그 지배를 벗어나 독립하였다. 하지만 남반구의 나라와 그 국민들이 진정으로 식민지 지배를 벗어났는가 하고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 책에서 남반구 국가에 대한 서구의 끔찍했던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남반구 국가의 부패한 지배층과 결탁하여 그 나라의 부를 수탈하고, 자기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환경 파괴와 간접적으로 국민들을 학살하는 현재진행형의 식민지 지배를 읽을 수 있다.



14,5세기에 유럽에서는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17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유럽은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산업 혁명과 함께 한 자본주의의 발흥은 자본의 집중과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고, 이로 인해 원료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의 부족, 새로운 시장 개척의 필요 등에 의해 적극적으로 남반구와 아시아에 식민지 지배를 확대하게 된다. 식민지 지배의 내면에는 인종차별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당시에 다윈의 진화론이 새로운 학문으로 대중에게 수용되면서 문화진화론, 인류진화론 등으로 변용되었는데, 서구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편리하게 진화론을 해석하면서 백인만이 최상의 인간으로 진화되었으며 백인 이외의 인종은 참다운 인간으로 진화를 하지 못한 하등의 인간, 어쩌면 동물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라고 보고, 문화 역시 서구문화만이 진정한 인간의 문화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고는 백인들이 다른 인종을 용이하게 노예로 부리고 학대하고 학살하며 토지를 침탈하고 살육할 수 있도록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만일 현 시점에서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주의를 주장하는 정치가나 학자가 있다면 즉각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현 서구인들의 가슴 속에 인종차별주의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대륙과 남미 대륙의 대부분의 나라는 여전히 절대 빈곤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 노예제도는 없어졌지만, 남반구 국민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교묘하게 서구인들이 노예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것에 대해 노예 상인들은 주식투기꾼으로 변모했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개발지원금으로 멱살을 잡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서구인들의 자세에 대해 저자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서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권’을 중시하고 강요하지만 막상 자신들은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은 매우 신랄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남반구의 절망과 희망을 두 나라를 예로 들고 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여전히 절망적이다. 세계 8위의 석유 생산국이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석유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이고, 1억 4천만 인구의 거대한 나라이다. 이 인구 가운데 70% 이상이 하루 생활비가 2달러 미만이 극빈층이고, 이중 54%는 만성 영양실조이며, 10명 중 1명은 10세 이전에 사망한다고 한다. 왜 어마어마한 석유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나라가 이처럼 비참할까? 그 이유는 수십 년 간 계속된 군부독재와 소수지배층의 부패와 민주주의의 부재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이들 군부는 서구의 거대기업과 몇몇의 서양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 없이는 3개월 이상 권력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하다. 즉, 이 나라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서양 때문에 비참한 가난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서양의 더러움은 ‘비아프라 전쟁’에서 적나라하게 노정된다. 나이지리아가 독립하는 60년대 무렵, 프랑스의 엘프아키텐 석유회사가 나이지리아에서 철수할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졌는데, 그때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의 비밀정보부대에 ‘프랑스의 전략적 이익’을 수호하라는 명령을 내려 보낸다. 프랑스 정보부는 나이지리아 오주쿠 장군을 충동질하여 분리독립하게 만들어 전쟁이 일어나는데, 30개월 전쟁 동안 사망자 200만 명, 사자를 절단당하거나 부상당한 사람이 수백만 명이었고 재산상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엘프아키텐이 경쟁 회사와 화해하고 사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되자 전쟁은 끝났다는 것이다.

서양이 남반구를 지배할 수 있는 끝은 그 나라의 부패이다. 부패가 심할수록 그 나라를 지배하기 쉽다. 그러므로 서양은 남반구의 지배층이 더 부패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만일 어떤 나라의 지배자가 부패를 용납하지 않고 서양에 저항할 때는 테러도 서슴지 않고, 쿠데타도 조종한다. 이것이 바로 서양의 정체이다. 남반구에 부패와 이를 이용하는 서양의 음모가 존재하는 한 남반구에 희망은 더 멀어진다.


 

이에 비해서 남미의 볼리비아는 희망을 보여준다. 2006년 1월에 볼리비아에서 최초의 인디언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가 취임했다. 에보 모랄레스는 비로소 식민지 지배를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에보 모랄레스는 취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에너지 주권 회복 작전’을 시행했다. 취임 후 약 6개월 동안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이 작전을 준비한 후 전격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서양 회사가 점유하고 있는 석유와 가스 생산 시설, 정유 공장이나 광산 등을 볼리비아 국가 소유로 규정하고 외국 기업과는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어 이익을 분배하도록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로 인해 국가의 석유 관련 수입은 이전에 비해 몇 배 상승하여 국민에 대한 복지 정책을 시행할 재원을 마련했다.

볼리비아도 다른 남미의 국가처럼 인종 문제, 빈부의 차별 등이 매우 심각하다. 특히 이 가운데 가장 문제점은 역시 가난이다. 볼리비아 어린이 네 명 중 한 명이 심각한 만성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또한 의료서비스는 빈곤층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극악한 노동 환경 역시 시급히 개선해야 될 문제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저항이 있지만 이 용기 있는 인디언 대통령은 전혀 멈출 의향이 없다. 우리는 볼리비아에서 남반구의 희망과 미래를 엿본다.


 

지구에서 생산할 수 있는 식량은 대략 200억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다이어트가 어마어마한 거대 산업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10억에 가까운 인구는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다. 우리도 역시 이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내 자신은 잘못을 알 수 없지만 가슴 속에서는 떳떳하지 못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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