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고려왕조실록 -상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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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 이전의 고대사와 조선 이후의 근세사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아온 듯하다. 최근 들어 이 시대의 이야기들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조금씩 세인들의 관심이 느는 것 같다. 이 같은 때에 고려 왕조 이야기가 책으로 엮여 출판한 것은 참으로 시의 적절하고 다행이라는 감이 있다.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왕가를 중심으로 하여 핵심적인 내용을 추려서 엮은 책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왕명에 의해 <고려왕조실록>을 재편집하여 만들어진 역사서인데, 아쉽게도 <고려왕조실록>은 임진왜란(조일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은 고려 왕조에 대해 역성혁명을 통해 세워진 왕조인데, 우리 역사 상 중화에 대해서 가장 심하게 사대주의를 표방했던 왕조였다. 조선에 비한다면 고려는 국제 정세에 맞춰 송이나 요, 금에 사대를 하긴 했지만 태조 왕건이나 광종 때에는 독자적인 연호를 세우고, 왕에게 ‘폐하’라는 칭호를 붙이고, 왕자에게 ‘태자’라는 칭호를 붙이는 등 황제국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했다.

아마도 사대주의에 경도된 조선의 선비들은 이 같은 고려의 태도에 대해 참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엮을 때 많은 부분을 첨삭하거나 왜곡하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에서 원본의 <고려왕조실록>이 사라진 것이 또 아쉽다.




왕건은 태봉국 궁예의 휘하에 있다가 폐정을 일삼는 궁예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통해 고려를 건국하였는데, 이때가 918년이었다. 당시에 상황을 보면 신라 말 혼란기를 맞아 신라는 경주 부근을 제외하고는 통치력이 거의 미치지 못하고, 각지에서 호족들이 발호하여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당시 고려의 라이벌은 견훤의 후백제였다. 충청, 호남, 경상북부 등을 지배하고 있던 견훤은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호족들을 굴복시키는 것에 반하여 왕건은 혼인정책을 바탕으로 한 유화정책을 위주로 하였다. 결국 신라가 자발적으로 복속해오고, 후백제는 견훤의 장자 신검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멸망하고야 만다. 이로써 왕건은 명실공이 전국을 통일하여 단일 왕조를 세우게 된다. 이때가 936년이다.




왕건은 혼인 정책으로 많은 왕비와 왕자를 갖게 되고, 이것이 사후에 궁중 내에서 피비린내 나는 왕권 싸움의 원인이 된다.

4대 광종 때에 이르러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면서 고려 왕조의 기틀을 비로소 다지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 상 최초로 과거제를 실시하여 관료를 양성하게 된다. 과거제는 정권에서 제시한 일정한 과목을 공부하고, 정권에서 그것을 시행, 평가하므로 중앙집권화를 촉진시키고, 이를 통해 양성된 관료는 호적이나 공신들의 대항마로서 작용하므로 상대적으로 왕권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려 초기의 국제 정세를 보면 거란족이 발해를 무너뜨리고 요를 건국하였고, 요는 남쪽으로 송을 압박하고 있었다. 고려는 왕건 때부터 거란과 대립하고 있었는데, 결국 거란이 대규모로 침략하게 된다.

3차까지 침략하는 동안 수도 개경이 함락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수난을 당하는데, 3차 침입 때 강감찬은 구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한다(구주대첩). 거란이 고려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국력이 고갈되는데, 이것은 여진족이 만주에서 발호하여 금을 세우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고려는 문반과 무반 양반 체제로 구성되었으나 정치, 경제적 특권과 군사지휘권까지 문신이 장악하였다. 이 때문에 무신들은 박탈감과 소외감에 시달렸는데, 이런 모순이 폭발한 것이 바로 ‘무신의 난’(1170년, 의종24년)이다. 이후 몽골 침략과 몽골 속국이 될 때까지 무신들이 고려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세계적인 대제국을 세운 몽골은 고려를 가만두지 않는다. 몽고와의 전쟁 중에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장기적인 대항에 돌입한다. 당시 무적 군대인 몽골군에 대항하여 30년 가까이 버틴 나라는 아마 고려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이 와중에 전 국토는 몽골군의 군마에 짓밟혔지만.

결국 고려 왕조는 몽골(원)에 투항하고, 근 100년간 속국으로서 기형적인 왕조가 된다. 이때 왕들은 모두 ‘충’으로 시작하는 시호를 가지고 있고, 아버지와 아들이 왕권 다툼을 하여 서로 번갈아 왕을 하는 지금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반복된다.

원명 교체기 때 ‘충’자로 시작하는 왕들이 끝나고 공민왕이 등극한다. 공민왕은 모순으로 가득하고 피폐해진 고려를 일신하기 위해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노국공주가 출산 중 사망하자 실의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게 되고, 결국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대부들의 역성혁명을 불러오게 되어 고려 왕조는 끝난다. 이때가 1392년이다.

 

이 책은 왕을 중심으로 하여 서술하고 있고, 비록 두 권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분량은 많지 않아서 고려 전반의 사회, 경제, 국제 정세 등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고려에 대해서, 특히 고려 왕조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기에는 역사 지식이 깊지 않더라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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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 - 무애도인 삶의 이야기
김광식 지음 / 새싹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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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올바로 기르면 천지 사이를 꽉 채울 수 있는데, 그 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도(道)와 의(義)가 항상 수반되어야 하며, 도(道)와 의(義)가 없으면 그 기가 점점 줄어든다고 하였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호연지기를 쉬운 말로 풀이하자면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때 저절로 발하는 당당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애행(無碍行)이란 행동이 규율에 제약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든 행하지 않을 것이 없고, 무엇이든 먹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의 막행막식(莫行莫食)으로 표현되는 무애행은 불가(佛家)의 계율에 따르면 행하거나 먹어서는 안 되는 것까지 구애받지 않는 것을 뜻한다.

무애행은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여 세속(世俗)에서 부여하는 가치가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조차 초개처럼 여기며, 표리(表裏)가 여일(如一)할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당당함’이다. 유가에서는 시종 예의(禮義)를 버리지 않으나, 불가의 무애행은 예의조차도 구애받지 않는다.




무애행으로 이름이 알려진 분은 구한말의 경허 스님인데, 경허의 제자가 만공이고, 춘성이 만공을 스승삼아 수행했으니, 춘성의 무애행은 연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춘성은 13세에 강원도 백담사에서 출가하여 만해 한용운의 상좌승이 되어 받들다가 3.1운동 후 만해가 형무소에 갇히게 되자 옥바라지를 하였다. 이때 스승인 만해가 차가운 감옥 마루에서 누워있을 것을 생각해서 자신도 불도 때지 않은 방에서 이불도 없이 생활했다고 한다.

이후 학승(學僧)으로서 불경을 연구하여 한때는 화엄경(華嚴經)을 거꾸로 암송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전에도 수행을 위해 물독에 들어가 잠을 쫓기도 하고 한겨울 바위 위에서 몸이 얼도록 좌선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선(禪) 수행을 하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 이후 만공을 만나면서부터이다.

춘성이 만공을 처음 만났을 때 만공은 춘성이 너무 많은 지식이 있다고 해서 화두(話頭)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선(禪) 수행의 핵심은 한 조각의 말을 화두로 삼아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많은 지식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춘성은 스스로 ‘달마가 왜 서쪽에서 왔는가?’라는 화두를 붙잡고 참선수행을 했는데, 그 후에 만공이 그에게 ‘별전일구(別傳一句)는 재기처(在其處)요’라고 묻는 것을 화두로 삼고 수행하였다. 어느 날 꿈에 만공이 그에게 연꽃을 들어 보이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달음을 얻으니, 그때 나이 50세였다.

그 후 87세에 열반에 들 때까지 한 점 거리낌이 없는 무애행을 행했다고 한다.




우리 같은 범속(凡俗)한 사람들이 무애행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당시 불가에서도 그랬던 듯 싶다. 춘성과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 중들이 춘성의 기상천외한 행동을 보고 비난했으며, 반대로 춘성의 무애행의 본질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겉모양만 흉내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춘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업망(業網)에서 허우적이면서 인연(因緣)의 끈도 끊지 못해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자들이 그저 춘성의 겉모양만 흉내 내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이를 두고 광망(狂妄)하고 허탄(虛誕)하다고 하는 것이다.




육신(肉身)을 갖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오욕칠정(五慾七情)에 노정(露呈)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각고의 노력 후에 오도송(悟道頌)을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수행의 시작임을 알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그만둘 수 없다. 춘성이 평생 이불을 덮지 않고 단벌의 옷으로 무소유를 실천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머리털만 깎고 가사만 걸쳤지 단 한 번도 용맹한 수행을 해보지 않은 땡중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깨달았다고 자인한 후에는 수행을 던져버리고 경허나 춘성의 막행막식을 흉내내는 중들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고려 시대에도 깨달았다고 하면서 그 뒤로 수행은 하지 않고 허탄한 짓만 일삼는 중들이 많이 있었는가 보다. 당시 대각국사 지눌은 돈오점수(頓悟漸修), 즉 한순간의 깨달음에 빠지지 말고 꾸준히 수행할 것을 주창했다. 

 

철두철미(徹頭徹尾)한 무소유와 표리통철(表裏洞徹)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떳떳함과 인민(人民)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심이 없이 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진짜 무애행이 될 수 없다.




이 책에서 보이는 춘성은 진실로 무애행을 행한 것 같다. 위로 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업을 지니고 사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그의 무애행을 본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무(無)자를 화두로 삼아 수행하라는 가르침을 새기고 사는 것은 좋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성내는 것 모두가 소유욕, 집착에서 온다. 이 모든 것의 실상은 연기나 안개처럼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머리로, 가슴으로 알고만 있어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춘성 자신이 워낙 명리(名利)를 돌아보지 않았고, 자신의 법어(法語)를 글로 옮기는 것도 싫어하고, 죽은 후에도 자신을 기리지 말라고 해서, 그 동안 춘성에 대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혹 그의 이름을 안다는 사람도 그의 본 모습을 안다고 하기 보다는 기이한 행동만을 기억하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 이 책이 나와서 춘성이라는 큰 스님, 큰 스승이 이 땅을 다녀갔으며, 여전히 가르침의 울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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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프란츠 M. 부케티츠 지음, 원석영 옮김 / 열음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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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자면 가장 큰 차이는 ‘정신’ 혹은 ‘의식’에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며, 시간과 공간을 의식하고 구별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의식과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면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찰해보면 많은 부분에서 변화와 발전을 해왔지만, 그 가운데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고 확대해 왔던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적어도 문명화된 사회의 현대인 대부분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의 사유 대상이었고, 심리학의 주제였다.




현재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수 십 억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물이다. 이 점에 있어서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체의 한 부분인 ‘뇌’ 역시 진화를 통해서 발달한 것이며, 뇌의 현상인 ‘정신’ 역시 진화로 인해 나타난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란 온전히 뇌 활동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며, (저자가 직접 언명하지는 않지만) 인간 정신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도 ‘실재적 존재’가 아니라 ‘이념’이며 ‘환상’일 뿐이다. 따라서 육체와 구별되는, 육체보다 상위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불생불멸의 정신적 실체인 ‘영혼’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종교 역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일 뿐이지 실제로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진화를 통해 생긴 능력에서 기인한 것이다. ‘문화’는 인간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모든 행위가 진화의 결과로 생긴 본성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문화 역시 본성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문화는 인간 ‘본성적’ 능력의 표현이며, 그 능력은 인간이 수백만 년에 걸쳐 유전자와 환경 요소의 상호 작용을 통해 획득한 것’(p.47)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자유의지’가 문화적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불리는 것의 실체는 없으며, 이것은 하나의 이념,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과학적으로 이미 다 밝혀졌으며, 단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물학은 정신 현상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물임을 설득력 있게 밝혀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정신’과학이 되었다.’(p.114)고 말한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선택’한다. 그리고 그 결정과 선택은 오직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랐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존엄성과 가치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그렇게 ‘자유롭게’ 결정, 선택했다고 하는 것도 결코 자유롭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내면의 본성과 외부의 환경의 상호 영향과 조율에 의해 그렇게 ‘결정되고’, ‘선택되었다’고 말한다. 다만 이미 결정되고 선택되어진 후에 스스로 자신이 자유 의지로 했다고 의식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형법이 자유의지에 대한 이념에 의거해 있다는 사실’(p.27)을 보자.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으므로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에 근거해서 ‘형법’이 존재한다.

현재 법 체계에서는 자신의 행위를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어린이나 정신이상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만일 ‘정상적’인 정신의 소유자가 강간이나 살인을 저질렀다면 현 법 체계에서는 그에게 그것에 합당한 책임을 묻고 형벌을 가한다.




그런데 만일 자유의지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자신의 범법행위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과연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저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비록 그것이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중대한 범죄행위라도 예외는 없다.

그러한 범죄행위도 내적 충동과 외적 상황의 결과일 뿐이지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른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책임을 사람들에게 묻는 것은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다.’(p.197) 또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문제들을 법률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은 위험을 초래한다.’(p.197)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런 범죄자들을 방치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우리의 ‘사회성’은 도덕과 부도덕의 기본 조건을 제공해준다. 오직 사회적 존재로서만 우리는 책임을 질수 있다.’(p.184)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강간범이나 살인범(도둑 등)에게 어떤 책임도 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들로부터 괴로움당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p.191) 이 부분에서 저자의 논리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사회성’에 근거한 ‘도덕규범’이나 ‘법체계’에서 제제를 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범죄행위에 대한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묻기 이전에 '그를 압박한 ‘사회적 상황’을 고발해야'(p.199)고 말하는 데 이르며, ‘사형제도’가 왜 부조리한지 설명한다.




그렇다면 ‘자유의지’가 전혀 불필요한 것인가? 자유의지 역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진화를 통해서 발달한다는 것은 그것이 생존에 도움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도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자유의지의 효용성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어떤 사회적 문제를 그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시스템이나 상황을 살펴 따져보려고 하지 않고 손쉬운 방법으로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그 근거로 ‘자유의지’를 핑계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의 의지가 자유롭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결코 모든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우리는 도덕적 행동과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p.209) 또 ‘비록 자유의지가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주관적으로 어떤 감독관청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에 있게 할 것이’(p.212)라고 말하면서 전적으로 자유의지의 효용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범죄행위자’로부터 어떤 ‘형식’을 통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주장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인간의 결정과 선택이 행위 이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위 후에 그 행위를 합리화하고 변명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선택했다고 말한다는 결론을 이끈 ‘리벳의 실험’은 다른 책에서 익히 읽었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가지만, 과연 그 실험에서와 같은 단순한 행위를 가지고 인간의 모든 행위에 확대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혹을 버릴 수가 없다.

또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범죄 행위가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충동과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끌려 벌어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것을 우발적 범죄에 적용하는 것에는 긍정하지만, 과연 수년, 수개월 동안 범죄를 계획하고 결국 실행한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역시 의혹을 버릴 수가 없다.




이 책은 200여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 의식뿐 아니라 관계된 철학, 종교, 진화론 등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서술 형식이 압축적이고 때로는 뛰어넘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독자는 필히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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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은 말한다 -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구본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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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학(筆跡學)이란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글씨 쓸 때의 기분, 의도, 지능지수, 나이 등을 알아내는 학문이다’(p47)




이 책은 필적학에 대한 소개와 선인들의 글씨를 수집하게 된 내력, 수집하는 과정에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 많은 글씨를 수집하게 된 결과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비교, 분석하게 된 계기,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 차이, 수집 취미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쓰고 있다.




저자의 직업은 검사로서 20년 동안 주로 강력부에서 강력범죄를 다루면서 단편적인 단서를 수집하고 종합, 분석하여 범인을 색출하는 업무를 주로 해왔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지나쳐버렸을 아주 미세한 흔적도 예리한 시각으로 찾아내어 단서로 삼을 수 있는 감각을 익혀왔는데, 이러한 경험이 글씨를 보고서 그 사람을 짐작할 수 있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십 수 년 동안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수집하면서 이 둘 사이에 글씨의 모양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분석해서 내놓은 것이 이 책이다.




‘글씨를 보면 성격이 보인다’ 편에 보면, 글씨의 크기, 형태, 굽고 곧은 정도, 글자 간격, 행 간격, 규칙성 여부, 글씨 속도, 정돈성 등을 분석, 판단하여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런 여러 요소를 종합, 분석하여 소개한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전형적인 글씨를 보자.




“항일운동가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작고, 정사각형 형태로 반듯하며, 유연하지 못하고, 각지고 힘찬 것이 많다. 글자 간격이 좁고, 행 간격은 넓으며, 규칙성이 두드러진다. 반면 친일파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크고, 좁고, 길며, 유연하고, 아래로 길게 뻗치는 경우가 많다. 글자 간격이 넓고, 행 간격이 좁으며, 규칙성이 떨어진다. 일부 친일파는 극도로 불안정한 필치를 보인다.”(p.93)




예를 들어 김구와 이완용의 글씨를 보면, 김구의 글씨는 투박하고 꾸밈이 없는 졸박(拙朴)한 형태로서 강직하고 호랑이 같은 웅혼한 기상이 느껴지는 반면, 이완용의 글씨는 당시에 명필로 칭송되던 글씨지만 실상은 꾸밈이 많고 가벼움만 쫓는 요사(妖邪)스런 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운형과 여운홍 형제의 글씨, 이승만과 박영효의 글씨 등을 소개하고 분석하여 항일운동가와 친일로 길을 달리 갈 수밖에 없었는가를 글씨를 통해 그 사람의 성정을 파악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필적학의 대강을 과거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 다만 내 경우 필적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하기 때문에 저자가 글씨를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지만 선뜻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는 그간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독립운동가의 글씨와 그분들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나라를 잃고 자결로써 그 울분과 통한을 나타내고 우리 민족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던 분들과 항일운동하기 위해 국경을 벗어나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던 분들과 일제에 검거되어 차가운 감옥에서 일편단심을 버리지 않고 지켜냈던 많은 우리 선혈들의 글씨와 그 글씨를 통해서 그분들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무엇을 수집하려는 취미를 갖고 그것을 살리려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저자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친절한 조언을 해주고 있어서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이나 새로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끝으로 부록 ‘성공하는 사람은 글씨체가 다르다’에서는 글씨로 성격을 개선할 수 있고, 글씨체를 바꾸어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꼭 피해야 할 글씨체를 소개하고 있는데, 즉, ‘불규칙한 글씨체’,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 ‘행 간격이 지나치게 좁은 글씨체’, ‘오른쪽 아래로 기울어지는 글씨체’ 등은 피해야 할 글씨체이다.




글씨가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말이다. 선인들은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말하여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분들은 앞으로 글씨를 저절로 신중하게 쓰게 될 것이다. 글씨를 신중하게 씀으로써 성격도 신중해지고, 행동거지도 신중해져서, 인품도 저절로 훌륭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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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양장본)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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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나름대로 잘나가는 영화평론가이며 안정된 중산층의 중년남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미디어 사회’를 살면서 “그 모든 것의 지극한 분주함, 끊임없는 움직임,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동성과 온몸이 차악 가라앉는 듯한 권태, 그리고 욕구 충족의 나지막한 흥얼거림으로 가득 찬 그림자의 골짜기에서, 그 열광적이면서도 음침한, 사는 것 같지 않은 삶 속에서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p.25)고 고백하고 있다. 이 고백은 비단 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본다.

저자가 느낀 이런 위태로운 삶을 극복하는 방안으로써 ‘위대한 책’, 즉 ‘고전 읽기’를 실천하고 그 과정을 기술하여 결과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중간 중간에 고전의 선택이 ‘중산층의 백인 남성’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서양 이외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책도 선정하고, 여성 작가의 책도 더 많이 다루어줄 것을 요구하는 좌파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반박하는 하나의 이유 중에는 고전이라고 해서 단일한 방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다른 주장을 싣고 있어서 서로 전혀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백인 남성’을 위한 책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산 체계, 사회구조, 문화 형태가 변천하며,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의식, 가치, 이데올로기 등도 역시 따라서 변해 왔다. 한 때 당시의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자신의 세계의 현재와 문제점을 인식하고, 미래에 비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위대한 책, 즉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고전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즉 시대의 흐름에 따른 각 시대의 정신을 읽는 것이 고전 읽기의 핵심이며, 이를 통해서 현재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나의 자아를 발견하고, 지성을 확장하는 것이 바로 고전읽기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백인 남성’ 운운하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고전에 대해서 “그러한 고전들은 결코 시들지 않는 진리를 담고 있으며, 분명 획인화된 방식이 아닌 급진적인 자기 성찰의 전통을 구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고전 읽기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더 크고 더 유력한 정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확장하려는 지난한 노력”(p.735)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적은 단순한 재미를 위한 것도 있을 것이고, 어떤 지식을 습득하기 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목적으로는 독서를 통하여 내 자신과 심도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것을 ‘사고 훈련’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실상 자신과의 대화야 말로 독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자아를 발견하고, 지성과 지혜를 확장시키며, 통찰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훈련’에 가장 좋은 책을 고르라면 단연코 고전이라고 할 것이다.




저자는 더불어 또 하나의 독서하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인간의 사고(思考)는 언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므로 언어의 울타리 안에서 작용한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구현되는 상투적 언어 속에서만 사고 한다면 그 사고 역시 상투적일 수밖에 없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으려면 그 만큼 다양한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데, 고전이야말고 다양하고 고급스런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보고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언어의 문제였다. 그 책들을 읽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의 상투적 어구의 감옥에 갇히고 말 것이다.”(p.138)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은 900여 페이지의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고전으로는 고대에 쓰여진 호머의 일리어드에서부터 20세기의 버지니아 울프에 이르기까지 세기가 벅찰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으로 돌아가 학부 과정에 있는 고전 읽기 커리큘럼에 참여하면서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고, 추억하는 여러 가지를 쓰고 있는데, 다분히 자신의 내면적인 흐름에 따라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마디고 고전이라는 멀고 넓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쓰는 기행문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겠다.

이런 탓에 어쩌면 조금은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고전에 대한 소개와 독법에 대해 쓴 책이라고 생각하고 접하면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내면으로 들어가 같이 그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고,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다만 내 개인적으로 저자의 사회적 위치, 정치적 입장인 유대인이자 보수적 백인 중산층의 미국 남성으로서의 시각이 가끔씩 드러나는 부분이 조금 불편했다. 정전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포함하지 못하고 백인 남성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비판에 대한 대응을 수긍하지만, 이슬람 문화에 대해 은연 중에 비치는 적대감이나, 현재 미국이 제3세계를 좌지우지한다는 비난에 대해서 전혀 그렇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잘라서 말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세계 정세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한쪽 눈을 감아버리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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