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 P15

일 수 있다.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 P17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 P21

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 P22

장미꽃을 주고받는 식의, 삶의 화려한 포즈는 우리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었다. - P28

그것에 대해 어머니가 알게될까 봐 나는 두려웠다. 어머니가 받을 상처를 염려했다기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내지 못해서였다. 잘못했다고, 내가 정말 나빴다고, 흑흑 흐느껴 울면서,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이 부끄러웠다고 비수 같은 진실을 토로하는 어리석음은 결코 범하고 싶지 않았다. - P37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누군가 내게 그런 실례의 발언을 하는 것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상처받은 내 자존심이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 P51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 P75

그래도 굳이 써본다면 아버지의 그 망나니짓에는 일종의 ‘품위‘가 있었다.
그랬다.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아버지에게 있었다. 아버지는 상스러운 욕설을 하더라도 입술을 깨물며, 이마에 푸른 힘줄을 돋우면서, 온 힘을 다해 자신도 지금 죽을 듯이 괴롭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주었다. 오죽했으면 나와 진모는 물론이고 맞고있던 어머니까지도 저토록 괴로운 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에 대해순간순간 동정심을 품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을까. 어쩌면 어머니가 순순히 당하고만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어머니에게 직접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 P90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에 심한 모독을 느끼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에 심한 모욕을 느꼈다. 어머니가 입을 꾹 다문 채 아버지가 적당히 어렵게 찾아낼 장소에 적당한 돈을 숨겨놓고 시장으로 나가버리면, 아버지는 그 돈을 찾아내 집을 나가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모든 되풀이되는 일에는 내성이 생기는 법이었다. 나와 진모는,
모욕감을 느낀 어머니조차도 아버지 없는 생활에 하등의 불편을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는 차라리 더욱 씩씩해지고 점차 이모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다를까닭이 없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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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 성취감 같은 건 고용인이 만들어낸 사탕발림이다. 어차피 나는 계약직이다. 이 년 후면 바꿔치기당할 소모품. 그뿐이다. - P166

 기업들이 단합이라도 한 건지 근로 조건은 대부분 비슷했다. 어차피 내가 찾는 조건도 적게 일하고 월급 이백만원 이하인 자리였다. 월급 이백이 넘으면 장애인 연금이 깎이거나 중단된다. 어른들은 고작 몇십만원나오는 장애 연금에 목숨 걸지 말라 하지만 내게는 그 돈이 정말절실했다.  - P172

"나는 슬프지 않으려 애써요. 프로 직장러니까."
내일은 내가 타마리바 커피를 쏴야 할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소설 쓸 힘도 없이 퇴근 지하철에 끼여 있는데 수명이 줄어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탈조선해서 얻으려 했던 또다른 삶은 이게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 P204

이런 일이 세상에 어떤 쓰임이 있는 걸까.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하게 됐다. 사실, 손 사용이나 인지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들에게는 그렇게까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니 업무의 강도나 전문성을 문제삼고 싶지는 않았다.  - P240

이런 고민을 똥을 싸서 뭉개고 앉은 채 하고 있다니, 현실을인식할 때마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혼자 있는데도 수치심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인간으로서 갖는 마지막존엄마저 무너져버린 것 같았다. 긴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엎드렸다. - P248

꾸르륵꾸르륵, 또다시 설사가 밀려나왔다. 그와 동시에 다시 알람이 울렸다. 열한시 사십오분. 휴게시간 십오분 전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부엌으로 나가 누룽지탕을 안칠 시간이었다. 후드득,
끝내 눈물이 쏟아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목구멍에서 기어이 울음이 새어나왔다. 이번에는 알람을 끄지도, 치받는 감정을 애써 눌러 삼키지도 않았다. 나는 요란스럽게 울리는 알람처럼, 화면 속아궁이에서 너울대는 불길처럼, 울컥울컥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않고 토해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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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 넥타이가 기관장이 선물한것이기 때문이었다. 근무하면서 언제 기관장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혹시라도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넥타이를 맨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선미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웃을 수가 없었다. 언제 마주칠지 모르는 기관장에게 한 번이라도잘 보이기 위해 매일 똑같은 넥타이를 하고 다닌다는 게 한편으로는 가엽게 느껴졌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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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평생 셰어하우스에서 살 생각이었어? 밤마다 파티하는애들이랑 같이? 너도 시끄럽다고 했잖아. 새로 들어온 애들 열여덟 살이더라. 우리보다 열네 살이 어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어린애들이나 이렇게 산다는 거야. 미래 없이."
"미래가 왜 없어? 나는 이렇게 쭉 살건데? 그게 내 미래야." - P69

속상하고 화도 나지만 노인네들 앞에서는 입을 다물게 되기 마련이었다. 사는 방식이 그거 하나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이니까. 어지간한 일은 참고 견뎠고 애써 모른 척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완전히 잊히진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한편에 - P94

켜켜이 쌓인 부정적인 감정이 일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선뜻다정해지는 것이 어려웠고 가볍게 웃어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돌보는 할머니들을 사랑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그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이 일을 지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 P95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스스로를 들쑤시고 자책했는지.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수영씨가 알아야 될건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이상한 기분, 모멸감 같은 것들은 도대체 어떤 회로를 거쳐야 다스릴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모든 일에 진심을 다했지만 그럼으로써 깎이는 마음을 도로 채우는법은 도무지 몰랐던 것 같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취약한 부분을 너무도 쉽게 들키고야 말았다. 누구도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도록 나를 지키는 건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는데. - P101

문득 내가 지키고자 했던 그 최소한의 것들이 내가 가진 전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 오롯이 그러기 위해, 온 힘을다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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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대기업이 쌀먹 따위를 고용하는 만화 같은 일, 소설 같은 일,
그런 일은 현실에 일어나지 않는다.
김남우는 비로소 기다리던 대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에접속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 또 실직했다. 그에게 하나 남은쌀먹이라는 형편없는 직업마저 실직해버렸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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