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 성취감 같은 건 고용인이 만들어낸 사탕발림이다. 어차피 나는 계약직이다. 이 년 후면 바꿔치기당할 소모품. 그뿐이다. - P166

 기업들이 단합이라도 한 건지 근로 조건은 대부분 비슷했다. 어차피 내가 찾는 조건도 적게 일하고 월급 이백만원 이하인 자리였다. 월급 이백이 넘으면 장애인 연금이 깎이거나 중단된다. 어른들은 고작 몇십만원나오는 장애 연금에 목숨 걸지 말라 하지만 내게는 그 돈이 정말절실했다.  - P172

"나는 슬프지 않으려 애써요. 프로 직장러니까."
내일은 내가 타마리바 커피를 쏴야 할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소설 쓸 힘도 없이 퇴근 지하철에 끼여 있는데 수명이 줄어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탈조선해서 얻으려 했던 또다른 삶은 이게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 P204

이런 일이 세상에 어떤 쓰임이 있는 걸까.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하게 됐다. 사실, 손 사용이나 인지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들에게는 그렇게까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니 업무의 강도나 전문성을 문제삼고 싶지는 않았다.  - P240

이런 고민을 똥을 싸서 뭉개고 앉은 채 하고 있다니, 현실을인식할 때마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혼자 있는데도 수치심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인간으로서 갖는 마지막존엄마저 무너져버린 것 같았다. 긴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엎드렸다. - P248

꾸르륵꾸르륵, 또다시 설사가 밀려나왔다. 그와 동시에 다시 알람이 울렸다. 열한시 사십오분. 휴게시간 십오분 전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부엌으로 나가 누룽지탕을 안칠 시간이었다. 후드득,
끝내 눈물이 쏟아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목구멍에서 기어이 울음이 새어나왔다. 이번에는 알람을 끄지도, 치받는 감정을 애써 눌러 삼키지도 않았다. 나는 요란스럽게 울리는 알람처럼, 화면 속아궁이에서 너울대는 불길처럼, 울컥울컥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않고 토해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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