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건가 봐요. 고작 몇 시간 같이 있었는데도며칠은 함께한 것처럼 기억이 커지고.."
그러나 쉽게 질문을 유추한 룬이 고저 없이 답했다.
"별거 아닌 거에 의미를 두고, 신경 쓰이고, 딱히 만난횟수에 비례하는 감정은 아니더라고요."
물 흐르듯 말한 룬이 휙휙 손을 내저었다. 저런 말을한 것치곤 놀라울 만큼 무료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보내 줄 때 빨리 가는 게 좋을걸요."
비비가 그랬잖아요, 맹수들은 다 변덕이 심하다고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몰라요.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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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반의 기다림이면 충분하지 않나.
이제는 찾아야만 했다. 찾아서 사랑이든 연민이든, 발밑을 기든 뭐든 이 불안을 해소해야만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야 고장 난 아힌의 시계가흘러갈 수 있었다.
- P366

‘비비 특유의 향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멍하니 생각하던 아힌이 이내 바람 새는 웃음을 흘렸다. 기어이 비비를 그리다 미쳐가는 모양이었다.
- P390

- 내가 점점 미쳐 가나 봐."
한참 후, 아힌은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를 내며 검지로내 코를 톡 눌렀다.
"흰 토끼를 볼 때마다 비비인지 아닌지 확인하게 되고" - P413

"죽일 뻔한 걸 어떻게 용서해 달라고 하겠어."
억눌린 듯 말하는 저음 속에 많은 감정이 묻어났다. 엎드린 몸을 뒹굴 굴린 나는 앞발로 머리를 쓰다듬던 아힌의 검지를 잡았다.
내가 무서웠던 만큼 너도 무서웠을 걸 알아. 떠나는 사람보다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이 더욱 불안하고 무서운 것을 아니까.

툭, 붉은 눈에서 넘친 눈물이 아힌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매끄러운 뺨 위로 물줄기가 지나간 흔적이 그려졌다.
2"
눈을 비빈 후에 다시 확인했으나, 그의 턱 끝에 매달린물방울은 허상 따위가 아니었다.
이불로 가슴팍을 가린 내가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앉았다.
- P418

...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요."
목을 뻣뻣하게 세운 나는 턱으로 이불을 가리켰다. 그를 따라 이불을 내려다본 후, 다시 나를 마주한 아힌이 눈가를 야살스럽게 접었다.
"굳이 입을 필요도 없잖아."
"하긴이 아니지.
하마터면 자연스레 수긍할 뻔한 내가 이불을 꽁꽁 싸맸다.
"안 그래?"
- P432

비비설명을 이으려 했으나, 아힌이 한 박자 더 빠르게 말문더 이상 그런 일 없을 거야. 설령 그런 순간이 오게 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
그러니까 다시는 사라지지 마."
그때는 네 말대로 진짜 빌어먹을 맹수가 돼 버릴지도몰라, 잠긴 저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 P440

여기서도 비비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는데."
눈가를 반달로 접은 아힌이 나른한 음성으로 이어 말했다.
"필요하면 교수진보다 뛰어난 강사도, 원하는 서적도구해 줄게."
그러니까 여기 있어, 실제로 아힌이 말하진 않았지만목소리가 되어 귀에 꽂히는 듯했다.
- P453

사실 꽃은 관심도 없고, 비비가 주는 선물이기에 웃었을 뿐인데,
굳이 정정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한 아힌은 점점 걸음을 빨리했다. 걸음 끝에 비비가 있을 거란 생각이 발걸음에 조급함을 더했다.
- P589

이제는 사라진 불안을 오랜만에 상기한 내가 입술을여닫았다.
"그건 갑자기 왜..?"
"나도 그래."
"주워 온 토끼가 은혜는 다 갚았다며 떠나 버릴까 봐."
은혜 갚는 토끼도 아니고 그게 뭐야.
"일 년 반 전처럼, 눈을 떴는데 네가 사라져 버릴까봐"
"그건.....
"이제는 덩치가 너무 불어나서 주머니에 가둬 둘 수도없는데, 그래서 하루하루가 무서워."
- P614

스륵, 아힌은 내 머리에 제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작게말했다.
"버리지 마."
일순 심장이 튀어나오다 못해 궁 아래로 떨어졌다.
다 가진 주제에 뭐가 부족해서 나 하나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명치에 몽글몽글 얽혀 있던 마음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다.
살며시 아힌 쪽으로 머리를 기울인 나는 그에게 마음을 완전히 내주는 계기가 되었던 말을 되돌려줬다.
"..내가 아힌을 어떻게 버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말이 당시의 내게는 얼마나 큰위안이었는지 알기나 할까.
- P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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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관점과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깊이 읽기 과정에서 얻을 수있는 가장 심오한 혜택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프루스트는 읽기의 경험 속에서 일어나는 친밀한 감정을 고독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우리가자신의 개인적인 세계에서 미동도 않은 채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할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은둔의 작가 에밀리 디킨슨도 읽기를 통해이런 능력(즉 자기 공간을 떠나면서도 떠나지 않는 능력)을 얻었지요. - P79

단지 기술만으로 소설을 죽이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소설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
면….…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나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잃어버리게되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야만적이고 거칠어질 겁니다. 이 말은 모두를 위해 깨어 있는 민주 사회를 구현하는 데 읽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웁니다. - P92

지식이 진화하려면 계속 배경 지식이추가되어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실 정보는 증명될 수도 없고 확증될 수도 없는 외부 원천에서 옵니다. 이런 정보를 우리가 어떻게 분석하고 활용할 것인지, 새로운 정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계속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가 우리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배경 지식과 분석적 사고를 통한 견제와 균형이사라진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질이나 우선순위가 정확한지, 혹시 외부의 동기와 선입견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정보를 받아들이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 P97

인간이 자연의 선물로 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으로 창조한 수많은세계들 중에 책의 세계가 가장 위대하다.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의첫 글자를 석판에 휘갈기고 처음으로 글을 읽으면서 인공적이고 가장 복잡한 세계로 진입한다. 이 세계의 법과 규칙을 완전히 알고 완벽하게 실행할 만큼 충분히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어가 없다면, 쓰기가 없다면, 책이 없다면 역사도 없을 것이고 인간성도 없을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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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유전자들이 스스로 읽기 능력을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우선 인간이 읽기를 배워이만 하지요. 이 말은 모든 아이의 뇌가 자신만의 새로운 읽기 회로를만들어가도록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기본적인 과정과 기본적이지 않은 과정을 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계발 · 연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거지요.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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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자가 되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독자가 되도록이끌어주고 유지해주는 삶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사회에는 세 가지 삶이 있다고 썼지요. 하나는 지식과 생산의 삶, 다른 한나는 그리스인 특유의 이해 속에서 나오는 즐기는 삶, 마지막은 관조의 삶입니다. 좋은독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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