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너인지 모르겠다."
너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내 위안이었는데, 너는 나를 좋아했다고 했지.
장담컨대 네가 나를 좋아한 만큼이나 나도 네게 마음을 쏟았을 것이다. 어쩌면 너보다도 더.
"내가 너를 어쩌면 좋을까."
- P215

제국은 미친 짓을 했다. 그들은 갓 비행기를 몰기 시작한 생도들을 전터의 하늘로 내던졌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리오리튼 비행대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그들이 오래 살아남자 정부와 군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안 커너를 선전용으로 이용하기까지 한 것이다.
적어도 헨리 리빌을 본 순간에는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왜 몰랐을까.
10년의 전쟁을 치르기에, 그게 말도 안 되는 나이라는 것을 나는 그가를숙인 채 뒤늦은 사과를 했다.
- P230

"그야 나는 당신을 좋아하니까. 당신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어. 좋아하는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나는 아파도 너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가능하다면 네어깨의 짐을 나눠 지고, 가시밭길에서 너를 업어 주고 싶다고 말하는 것.
네가 내게 상처를 주어도, 끝내는 너를 용서하게 되는 것 - P231

긴 전쟁의 끝, 너무 많은 것들이 망가졌다. 그러니 망가지지 않은 것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안 커너는 망가지지 않아야 한다. 사실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순간 나는 그게 좀 잔인한 명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안 커너는 내 앞에 멀쩡히 서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 그가 헨리처럼 아팠더라면, 하지만 주변 모두가 그가 괜찮다고 믿고 있다면, 그는 아프다는 티조차 내지 못한 채 썩어 가야 할 텐데.
- P267

이안 커너가 아픈 게 말이 돼? 그러면 제국에 남는 게 뭐가 있겠어? 우리가 승리한 보람이 없어진다고.」그리고 나는 갑판 위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한 명의 상이군인을 보며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은 파일럿도 영웅도 아닌 이안 커너에게쏟아지고 있는 그 믿음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었는지.
- P312

그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그리워하던 고향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불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붙잡을 것 하나 정도는 필요했다. 망망대해에 추락해 살과 뼈가 물결에 흩어진 후에 운 좋게 누군가에게 유해가 건져지게 되었을때, 차가운 군번줄 말고도 발견될 무언가가. 마지막 순간 그를 군인이 아니라 인간으로 만들어 줄 누군가가.
- P332

돌이켜 보면 그는 로젠이 달아나는 뒷모습을 내내 지켜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항상 닿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끌어안는 건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는 더 깊게 맞닿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미친 생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지겹도록 괴롭고 길기만 한 인생, 하루쯤은 마법 같은 날이 있어야지, 생각해 봐, 그동안 당신한테 그런 날이 있었어?」이안 커너는 잠시 망설이다 차마 하지 못한 말들과 함께 로젠의 입술을삼켰다.
- P336

발부르그여, 내게 힘을 주세요. 사랑은 더 이상 필요 없어요. 내 모든 고난을 심판할 수 있는 힘을, 안락함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이 험한 세상에서 홀로 설 수 있는 의지를 주세요. 꺾이지 않는 나를 가지고 싶어요 - P346

나는 그 병아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도 이 작은 오두막집을부수고 나올 만큼 크고 강한 어른이 되어서 단단한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설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 P349

굳이 따질 필요는 없잖아. 고립된 배라는 환경이 만들어 낸 한순간의 착각인지, 연민과 속죄인지, 그저 안도를 구하고자 하는 매딜림인지, 아니면 단지 욕망이나 정복욕의 발현일 뿐인지, 그 모든것들이 뒤섞인 마음인지. - P381

"좋아하는 거 맞죠? 씨발! 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지 모르겠네! 내가 어제 갑판에서 경이 쟤한테 입술 들이대는 거 다 봤어요. 생각해 보니까 죄수를 무슨 손안의 보석치럼 싸고돌면서 염병 떠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시끄럽다."
"지금 거울 좀 보세요. 거울! 로젠 워커 쳐다보고 있는 본인 눈빛을 직접보고도 한번 부정해 보라고요."
- P384

"씨발, 여기 뭐가 이렇게 어두워. 워커, 감옥은 원래 이래?"
"감옥이 그러면 환하고 따뜻하겠니?"
여기서 어떻게 살았냐?"
살다 보면 익숙해져, 나중에는 쥐 새끼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걸?"
- P393

"로젠 워커, 잘 들어. 착한 년이 되면 천국에 가겠지. 근데 되먹지 못해서절대로 착한 년이 못 되는 우리 같은 나쁜 년들은…… 어디든 가는 거야."
- P442

그런데 그러기 싫어.
우리는 죄가 없는데, 처음부터 그랬는데, 힌들리 하워스는 정말로 죽어마땅한 새끼였는데,
내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냥 바보가 되는 거잖아. 나는 그렇게 두기않아. 절대로 나와 에밀리를 그런 존재로 만들지 않을 거야.
"살인자!"
사람들이 맞다. 나는 살인자다. 칼로 힌들리를 서른여섯 차례 찔러 죽였고, 거짓말을 반복하며 뻔뻔하게 제국을 기만하며 두 번의 탈옥을 성공시킨알 카페즈의 마녀다. 그게 세상이 말하는 진실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끝까지 거짓말쟁이가 되겠다. 어차피 저들에게 모든 여자는 전부 다 마녀고, 모든 마녀는 다 거짓말쟁이니까.
- P478

"사랑해, 로젠 워커."
"......"
"네가 믿든, 믿지 않든......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 P485

삶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거짓말이다. 진창에 박힌 사람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잔혹한 현실이 아니라 무지개처럼 아득하지만 아름다운 거짓말이니까. 선전물 사진을 찍을 때,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것이다. 그래서 입꼬리를 올리고, 눈매를 휘며, 그답지 않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비행기에 올랐던 거겠지.
- P486

"헛소리하지 마."
"아, 제가 뭐 틀린 말을 했습니까? 그동안 어떻게 숨겼대? 로젠 워커가 탈옥 기념으로 팬 사인회라도 열면 체면이고 뭐고 내던지고 제일 먼저 달려갈 인간이."
시그럽다."
"하늘이 무너져도 감정에 안 휘둘릴 것 같던 사람이 그놈의 사랑에 돌아버리니까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단 말입니다."
"잘못했습니다. 입 닥칠 테니까 총 꺼내지 마세요!"
- P502

".....그럼 왜 나를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그러니까 이안 커너는 나를 따라와서 굳이 말로나까지 함께 갈 필요도우리 짐을 기차 찬장까지 실어 줄 필요도, 내 목에 머플러를 감아 줄 필요도 없었다.
"대답해요. 왜 굳이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내 물음에 그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회색 머플러에 고개를 깊이 묻더니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먼저 물은 건 나인데 말이다.
"...… 왜라고 생각합니까?"
- P534

그들은 내뱉은 말을 지켰다. 그들은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다. 말로나 인근 해역에서 적기를 격추한 후 하늘에서 제대했다. 한 번도 그들을 지켜 준적 없었던 국가를 지키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가장 먼저 일레리아 레브, 그 다음은 루시 왓킨스가 죽었다. 편대는 더 어리고 더 서툰 생도들로 빠르게 채워졌다. 출격 당일에 죽은 생도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몇 개월을 버렸고, 좀 더 운이 좋은 사람들은 몇 년을 버텼다.
수없이 죽어 간 편대원들 중에서도 이안 커너는 그의 첫 편대원들을 유독 잊지 못했다. 말 그대로 처음이어서, 그리고 그가 더 어리고 서툴 때 이끌던 대원들이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그들의 말을 잊을수가 없었다.
「우리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 P551

모든 추모는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추모가 아무 의미 없는 짓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었다. 산 자가죽은 자를 기억하기 위한 의식,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은 기억될 수 있을 테니까.
- P554

나는 이안이 이런 소소한 일상을 지루해할까 봐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뭐 백 퍼센트 내 책임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가 탄탄대로를 버리고 이 섬에 오게 된 건 내 탓이 컸으니까. 그래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본토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오히려 그는 되물었다.
「왜 그런 걸 묻지? 내가 널 화나게 했나? 그러면 말해 줘. 나는 말 안 하면 잘 모른다.」 - P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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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왜 이러는지 카서스는 잘 알았다.
‘욕심이 나는 거지.‘
그녀가 보여 준 그 애정이 탐나는 거다.
그 상냥하고 다정한, 경박한 자신과는 전혀 다른 기사님을 향한 애정 말이다.
‘어쩔 수 없잖아.‘
카서스는 자신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 P157

자신이 애정에 굶주려 있다는 건 사실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부스러기만 맛보여 주고 눈앞에서 흔들어 대면 탐이 나지.
하지만 안 돼,
좋은 사람과는 얽히면 안 돼.
- P158

하지만 그녀는 관계를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겁내는 건 자신쪽이지,
관계를 겁내면서도 사랑받고 싶다, 라니.
‘좀 우습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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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는 경아에게 고개를 저었다. 형편없는 사람들은 많다.
재인은 아빠 덕분에 연애를 막 시작한 나이부터 형편없음에 대한 예민한 안테나가 발동하여 용케 피한 셈이었지만, 아무리 경계심 있는 여자라 해도 폭력적인 남자에게 걸리드는 건 순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형편없음은 다른 종류의 형편없음과언제나 일맥상통하므로 형편없음에 대한 예방주사는 일찍 맞을수록 좋으리라고 재인은 생각하곤 했다.
- P127

력이 되었던 것이다. 재인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여자아이가 대부분의 이야기에서처럼 누군가에게 구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여자아이가 다른 여자아이를 구하는 이야기. - P132

"게다가 어쩌면 구해지는 쪽은 구조자 쪽인지도 몰라."
재인과 재훈은 재욱이 덧붙인 말을 도움을 준 사람 쪽의 심리적인 보상을 뜻하는 것으로 알아들었지만, 사실 직접적인 의미였다. 재욱과 산제이가 수도에 가 있는 동안 플랜트에서 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용접 중에 감전 사고가 일어나 사람들이다쳤는데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일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구역은 휴가를 가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담당했을 구역이었다. 두 사람이 아이들을 구한 게 아니라 아이들의두 사람을 구한 걸지도 몰랐다. 어느 쪽 둘이었습니까. 재욱은가끔 궁금했다.
- P163

그간 일어난 일에 대한 제 나름의 납득도 다 달랐다. 재인은 먼 미래에서 경아의 후손이 일을 도모했을 거라고 믿었고, 재욱은 사막에서 잘보이는 별에 있는 다른 문명에서 온 신호라 여겼고, 재훈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바지락조개를 의심해서 해양과학 쪽으로 진학할까 고민 중이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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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게 생각이 나면 좋을 텐데, 그저 결혼이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경고로 떠오른다는 게 슬렸다. 더 솔직히는 슬프기보다 두려윘다. - P21

동생들의 어깨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문신으로 새길 기세로 재인은 잔소리를 자주 했는데, 어쩌면 그 잔소리는 밖이 아니라 안을 향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재인도 살면서 한두 번 실수를 해봤다. 친한 친구와 술김에 키스를 해보았고, 어느 한쪽과 사귀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과 동시에 데이트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초반에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건, 실수 쪽으로 계속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경계심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아주 더러운 기질이 있어, 평생 발정기인, 다른 사람을 해치고도 뻔뻔스러울 수 있는, 혀를 덜렁덜렁빼문 괴물이 있어. 고삐를 잡아야 해, 사슬을 채워야 해, 재인은매번 다짐했다. 나쁜 형질의 이미지를 늘 그로테스크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재인은 과학자답지 않았다.
- P22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착각한 모양이라고 여겼다. 어울리지 않게 열심히 했더니 뇌가 전자레인지에 돌린 스트링치즈 같았다.
- P26

재인은 물론 재훈에 비해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서른한 살이면 배스킨라빈스의 모든 맛을 한 번씩은 다 먹어본나이였다. 단종되고 교체되는 맛까지 합치면 생각보다 더 풍부한 맛을 말이다. 꽃잎 모양 브로치를 달고 마법 소녀가 되어달라는 요청 같은 걸 받아들이기에는 확실히 늦어 있었다.
- P29

대전은 해태를 닮은 아가씨가 살기에 쾌적한 곳이었다. 밤에는 멀리서 보이는 엑스포 아파트도 멋있고 유명한 야구선수들이 산다는 스마트 시티 불빛에도 종종 감탄하곤 했다. 사실 연구단지와 기숙사 쪽은 인적도 드물고 쓸쓸했으나 룸메이트인경아와 마음이 잘 맞아 함께 잘 돌아다녔다. 경아는 아버지 직장을 따라 전국을 옮겨다니며 자랐다는데, 대전에서는 고등학고 시절을 보내서 재인에게 구석구석 좋은 곳을 많이 안내해주었다. 재인 혼자서라면 몰랐을 곳들을 말이다.
- P40

"너 그러다가 평생 개랑 살겠다?"
엄마는 경아를 예뻐하면서도, 경아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불안해했다. 본인은 결혼에 처참하게 실패해놓고 어째서 재인은 성공할 거라 믿는지 알 수 없었다. 경아에게는 원거리 연애 중인남자친구가 있다고 이야기해주자 더더욱 불안해했다.
"개는 콩알만 한 게 실속 있네. 너는 퍼석하기가 그지없어, 실속 없는 년."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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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다‘는것은 약함을 아는것. 약하다는것은 겁을 내는것 - P253

겁을내는것은 소중한 것을가지고 있다는것. 소중한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강하다는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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