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지만 자유롭고, 진지하고도 사랑스러우며, 상냥하면서도 대담한 옛 왕녀였다. 그 얼굴이 누군가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곧 보리스는 기억을 더듬어냈다. 엔디미온이었다.
과거가 지금의 보리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미래의 그를바꾸는 것은 새로 겪을 일들뿐이다. 만약 그가 몇 년 전의일 때문에 당시와 마찬가지로 생생한 고통을 느낀다면 그건 마음이 그 시절에 멈추어 있듯, 성장 역시 그 시점에서정지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갚아야 할마음의 빚, 다하지 못한 책임, 한번 품은 애정에 대한 신실함은 여전히 마음속 중심에 새겨져 있었다. 그런 채로도웃을 줄 알게 된 것이 차이일 뿐.
그는 어떤 사람이든 쉽게 사랑하지 않았지만, 반대로 한번 마음을 준 상대에 대한 집착은 놀랄 만큼 강했다. 어린시절을 함께 한 예프넨의 존재가 아직까지도 그의삶을 지배하듯, 이솔렛의 그림자는 이성을 느낄 줄 아는소년이 된 그를 휘어잡고 있었다. 비록 가까이하지 못한다해도 마음 깊이 하나뿐인 연인으로 느껴온 이솔렛의 모습에 손톱 끝만 한 흠집도 내기를 원치 않았다.
네 상상에 맡길게, 먼 땅에서도 언제나 행복하길. 난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어. 자신만의 힘으로도 . - P299
달아나면, 새로운 곳에는 행복이나 희망이 있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희망은 내버리고 새로 쥔 것이 아니라, 끝내 버리지 않은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그러나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소용없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죽은 자처럼 쓰러져 쉬고싶을 정도로, -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