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성주괴공을 반복한다 하였습니다. 별이 탄생하고, 별을 유지하다가 소멸하고 사라집니다. 모래바람이 아니어도지구도, 태양도, 우주의 모든 행성과 별도 이 순환을 반복하며탄생하고 유지되고 소멸할 것입니다. 항상 존재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제행무상인 것을, 티끌만큼 짧은 인간의 삶에 내일을 바란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 P282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효원에게 해준 것은 아마도 효종 스님이 너를 각별하고 예쁘게 여기는 것에는 슬픈 운명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함이었을 거고, 누군가의 한없는 다정함과 친절함은가라앉은 슬픔 위에 떠 있는 돛배와 같아서 그 안에 타 있는 이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주려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P284
그곳이 이 행성을 말하는 건 아니라는 걸 적어도 이 행성에서 저어새가 살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렇지만 대기권을뚫고 우주를 가로질러 다른 행성으로 날아가지 않는 한 다른행성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생각이 이런 단계를 거쳐 저어새가멸종했다는 최종 사실에 온 건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나서였다. - P287
홈페이지 주인은 정말로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암초 섬인 각시암에 둥지를 틀어 살아남은 새들처럼 자신의 가족도 황무지행성에서 살아남길 바란다는 대목을 읽을 때 확신했다. 사랑하지 않는 대상으로 사랑하는 대상의 건투를 빌지는 않을 테니까. - P294
우주는 공(空)이다. 존재에는 실재가 없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실재하지 않기에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고, 깨닫지못한 이들이 그것을 기적이라 부를 뿐이다. - P296
"꼭 한번만 다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확답은 못 드렸는데, 오늘 새벽에 새 한 마리가 이 염주 목걸이를물고 왔습니다." 군인이 염주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 "이걸 보자마자 스님이 생각나서………. 마음에 걸려서 왔습니다. 주지 스님 일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와서 다행입니다." "어떤・・・・・・ 새였습니까?" "무슨 새였지?" 효원과 대화하던 군인이 다른 군인에게 물었다. 상대방도고개를 저었다. "종류는 모르겠고 부리가 검은색이었어요." - P301
병마가 효종 스님의 삶을 앗아갈 걸 알고 있었으나, 더없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건 먼 이야기였다. 오늘은 아니고, 내일도 아닌 언젠가반드시 오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닌. - P298
효원아, 너는 미련을 두지 마라. 나직한 목소리가 풍경소리에 흩어진다. 부처님 곁으로 왜그리 성급하게 가시느냐고, 당신만 보며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신은 보이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소리치고 싶었지만 효원은 눈을 떴다. 태양은 어느새 정오를지나 하늘 높게 떠 있었고 세상은 적막했다. - P299
"일어나십시오. 그만......" 효원의 고개가 꺾인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에 이마가 닿았다. 바닥의 찬 기운을 느끼며, 몸을 감싸는 서늘함의 기운이 그것 때문이길 바라며, 지금이라도 기척을 내며 몸을 일으키길 바라며, 효원은 아침이 다 가도록 그렇게 있었다. - P298
결국 어떤 질문을 하는지는 각자의 세계에서 도출되는 거잖아. - P317
그냥 나는 이 행성에 잘못 태어난 거 같아. 그 애가 그렇게 말했을 때, 유라는 문득 이유 없이 차오른눈물을 삼켜내고 물었다. 그럼 너는 어디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 애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글쎄, 모르겠어. 여기 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알 수 없지 않을까?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나는 너무 살고 싶어, 유라야유라는 묻고 싶었다. 그 밖은 어떻게 나가는 것이냐고 우주선을 타고 나가 끝이 없는 우주를 떠돌다 네가 태어났어야할 행성을 만나는 것이냐고.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그 밖은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고・・・・・・ . - P334
하지만 유라의 생각은 달랐다. 심장이 멈춰서 생각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다. 아마 그때가 그 애가시도했던 첫 번째 자살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알지 않았을까. 이곳은 자신이 원했던 행성이 아님을. - P339
선생님들은 그 애를 겉돈다고 표현했지만 유라의 생각은 달랐다. 그 애는 겉도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겉에 있는 것이다. 맴돌지 않고, 꾸준히 더 멀리 벗어나기 위해몸부림쳤다. 무언가에 칭칭 감겨 있는 사람 같았다. - P340
유라야, 가끔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그러면 몸은 살아 있지만영혼은 죽게 되는거야. 현실에 있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으로 떠나버리는. 나는 그 사람들이 가는 곳이 궁금해, 유라야. - P347
유라야, 나는 너한테 모든 걸 말하고 싶지 않아. 네가 나를억지로 이해하려는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폭력이니까. 그러니까 나에 대해 다 안다는 식으로 떠들지 마. - P351
적외선 카메라로 사물을파악하는 정도였죠. 하지만 여기가 전장이고, 우리가 싸우는상대가 지구 바깥에서 온 존재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둘에게는 어떤 연대 의식 같은 게 있었죠. 페카도 그랬을 거예요. 적어도 내 옆에 앉은 게 인간이기는 하니까. - P369
서울과 인천, 경기도는 사시사철 최악의 발암물질과 함께했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어디를 가든 숨쉬기 버거웠던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떤 의미로든요. - P372
우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주를 떠올릴 때마다 고요한 그곳에 홀로 시끄럽게 돌고 있는 지구가 좋았다. 밖은 저토록 조용한데 이 안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지나치게 피곤하고, 지나치게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평생 좋아하는 노래만 듣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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