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을 주로 자기통제의 문제로 본다. 이런 식이다. 내 안에는 말해지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나는 그것의 수단이다. 내가 나 자신, 나라는 자아, 나의 소망과 의견, 나의 정신적인 쓰레기를 치우고 그 이야기에 집중해 따라갈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이야기가 스스로 말할 것이다."  - P48

대부분의 예술가보다 더 스스로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출간은 만만찮은 장벽이죠. 시작할 때 저는어쩌다 한 번씩 시를 발표할 수 있었어요. 독자가 여덟 명, 아홉 명쯤 되는 아주 작은 시 잡지였지만, 그래도 인쇄가 되긴했죠. 하지만 소설은 하나도 팔지 못했어요.  - P50

6년인가, 7년 동안 꾸준히 단편과 장편을 써서 세상에 내놓으려고 했지만 아무 데도 싣지 못했죠. 친절한 거절 쪽지는 잔뜩 받았고요. - P50

물론 그러고 나서도 에이전트를 얻기 전까지는 계속 제 글을투고했는데, 그건 힘든 일이에요. - P51

나와 아내는 그 ‘타오르는 정적‘과 ‘끝없는 빛의 심연‘ 아래 나란히 앉아서, 세상과 우주 속의 우리 자리를 생각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이 어두운 하늘과 그 하늘이 밝혀주는 사람들을 통해 이슐리에대해 배우고 있었다. 어슐러와 내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 한참 전에말이다. - P54

오직 침묵 속에 말이.
오직 어둠 속에 빛이,
오직 죽어감 속에 삶이 있네.
텅 빈 하늘을 나는매의 비행은 찬란하여라.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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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 귄은 말한다. "아이들은 유니콘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훌륭하기만 하다면 유니콘에 관한 책이 진실한 책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알지요."
성장기에 어스시의 이야기들을 읽던 내 경험이 바로 그랬다. 어스시에서는 마법이 흔했다. 마법사들이 지상을 걷고 용들이 하늘을 날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 나를 ‘현실‘에서 멀리 데려갈수록 나는 진짜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 P15

그리고 그에게 상상이란 남는 시간에만 하는 무의미한 활동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이게 만드는 권능이다.
"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용에게 잡아먹힐 때가 많지요. 속에서부터요"라고 경고할 정도다. - P15

바보들을 봐주지 못하는 사람. 오랫동안 잘 살면서 풍부한 경험을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이 모여서 살아 숨 쉬는 지혜같은 것으로 변화한 사람. 그리고 이런 지혜를 갖췄기에 가식이나 허세를 참아주지 않을 듯한 사람. 대화를 해나가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기에 그런 첫인상은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 P16

 예술의 경우에는 모방하는 사람이 모방을 배움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에요.  - P17

몸 안에서 글이 울리면, 스스로가 쓰는 글을 들으면올바른 리듬을 들을 수 있고,
그러면 문장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됩니다. - P18

스타일은 리듬이라고, ‘마음속의 파도‘라고요. 그 파도그 리듬이 말보다 먼저 존재하고, 단어들을 거기에 맞게 짜맞춘다고요. - P19

하지만 작가는결국 이 모든 인물을 만든 저자이고, 창조자죠. 사실 솔직하게 파고든다면 모든 인물이 곧 작가예요.  - P38

 어떻게 보면 1인칭시점과 제한적 3인칭시점은 제일 쉬운 시점이고, 그만큼 제일 흥미롭지 않은 선택이에요. - P38

이야기는 갈등을 다룬다고,
플롯은 갈등에 바탕을 둬야만 한다고 말하면세상을 보는 관점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거예요. - P41

단지 갈등이 이야기의 유일한 생명줄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야기는 다른 많은 것을 다루니까요. - P41

전 그저 문학에서 제일 오래된 형태가 환상성을 갖고 있었다고 짚었을 뿐이에요. 문학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오디세이‘
처럼 신화화된 영웅담에서 시작하죠. 장르소설이 문학이 아니라고 여기던 시절은 이제 과거라고 생각해요.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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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에 굴복하고, 우울증depression을 받아들이고 ‘숲‘으로들어가려는 유혹은 ‘약속‘과 마주하게 된다. 약속은 항상 의무와 관련된다. 무언가를 약속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이해하고 있다. 반면 죽음에의 소원은 자기중심적ego-centric이다.
‘자아‘ego (죽음)와 ‘약속‘(의무) 사이에서 동요할 때, 결국 잠(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는 다짐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 P42

 모든 면에서 자족적이고 외롭고멜랑콜리한 호퍼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 P59

책을 읽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세계,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않는 세계에 있다. 호퍼의 작품 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러한보이지 않는 차원 → 무의식을 재현한 데 있다. 보이지 않는 차원을설명하는 것은 관객의 일로 남는다. - P76

호퍼가 리얼리스트인 것은 바로 이런이유인데, 리얼리즘은 영화 속 현실처럼 과장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 P104

 그는 그늘진 곳(또는 덜 밝은 부분)과의 대비, 때로 과장된 대비를 통해 빛을 그린다. 그가 표현하는 빛과 그늘의 상호작용은 그가 빈방을 그릴 때 독특한 역동성을 낳는다.
그는 본질적으로 정적인 그림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이경우에는 햇빛과 그늘의 상호작용)을 표현하는 역설에 성공한 듯하다. - P107

196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마지막 대규모 회고전을 돌아보며 진행한 브라이언 오도허티 Brian O‘Dohery 와의대화에서 호퍼는 이렇게 말했다. "내 작품은 모두 시간의 흐름속 포착된 극도의 강렬함으로 재현된 하나의 순간들이다. " - P112

호퍼에게 불가해한 숲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수단이다. 마치 숲의 이미지가 우리 안의 무의식을 건드릴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호퍼는 그가 그토록 존경했던 괴테나 프로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숲처럼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숲을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들만 그림에 담으려고 한 것 같다. - P128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말로 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회화는 일종의 언어적 영점zero point에서,
아무 할 말이 없을 때 시작된다는 유명한 말을 한 적이 있다. 25 - P144

호퍼의 동년배들이 프랑스에서 ‘구상‘figuration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인 ‘추상‘abstraction 으로의 길을 개척했다면 호퍼는 미국이라는 ‘거칠고‘ 텅 빈 나라에서 다른 길을 모색했다. 보이는 것에상대적인 ‘보이지 않는 것‘, 인간의 ‘내면‘, ‘형이상학적 감각‘에천착한 것이다. 그는 그의 그림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고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 P146

호퍼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집 한쪽 벽에 드리운 햇빛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한 시인은 문명은 벽에 드리운 햇빛에서 시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말을 미학에 관한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 햇빛이 벽에 드리울때, 호퍼의 「빈방의 빛」이나 바다 옆의 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자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햇빛이 인간이 만든 벽을 만나 음영shadow 을 만들 때 인간은 미학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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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성주괴공을 반복한다 하였습니다. 별이 탄생하고,
별을 유지하다가 소멸하고 사라집니다. 모래바람이 아니어도지구도, 태양도, 우주의 모든 행성과 별도 이 순환을 반복하며탄생하고 유지되고 소멸할 것입니다. 항상 존재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제행무상인 것을, 티끌만큼 짧은 인간의 삶에 내일을 바란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 P282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효원에게 해준 것은 아마도 효종 스님이 너를 각별하고 예쁘게 여기는 것에는 슬픈 운명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함이었을 거고, 누군가의 한없는 다정함과 친절함은가라앉은 슬픔 위에 떠 있는 돛배와 같아서 그 안에 타 있는 이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주려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P284

그곳이 이 행성을 말하는 건 아니라는 걸 적어도 이 행성에서 저어새가 살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렇지만 대기권을뚫고 우주를 가로질러 다른 행성으로 날아가지 않는 한 다른행성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생각이 이런 단계를 거쳐 저어새가멸종했다는 최종 사실에 온 건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나서였다. - P287

 홈페이지 주인은 정말로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암초 섬인 각시암에 둥지를 틀어 살아남은 새들처럼 자신의 가족도 황무지행성에서 살아남길 바란다는 대목을 읽을 때 확신했다. 사랑하지 않는 대상으로 사랑하는 대상의 건투를 빌지는 않을 테니까. - P294

우주는 공(空)이다. 존재에는 실재가 없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실재하지 않기에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고, 깨닫지못한 이들이 그것을 기적이라 부를 뿐이다. - P296

"꼭 한번만 다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확답은 못 드렸는데, 오늘 새벽에 새 한 마리가 이 염주 목걸이를물고 왔습니다."
군인이 염주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
"이걸 보자마자 스님이 생각나서………. 마음에 걸려서 왔습니다. 주지 스님 일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와서 다행입니다."
"어떤・・・・・・ 새였습니까?"
"무슨 새였지?"
효원과 대화하던 군인이 다른 군인에게 물었다. 상대방도고개를 저었다.
"종류는 모르겠고 부리가 검은색이었어요."
- P301

병마가 효종 스님의 삶을 앗아갈 걸 알고 있었으나, 더없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건 먼 이야기였다. 오늘은 아니고, 내일도 아닌 언젠가반드시 오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닌. - P298

효원아, 너는 미련을 두지 마라.
나직한 목소리가 풍경소리에 흩어진다. 부처님 곁으로 왜그리 성급하게 가시느냐고, 당신만 보며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신은 보이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소리치고 싶었지만 효원은 눈을 떴다. 태양은 어느새 정오를지나 하늘 높게 떠 있었고 세상은 적막했다. - P299

"일어나십시오. 그만......"
효원의 고개가 꺾인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에 이마가 닿았다. 바닥의 찬 기운을 느끼며, 몸을 감싸는 서늘함의 기운이 그것 때문이길 바라며, 지금이라도 기척을 내며 몸을 일으키길 바라며, 효원은 아침이 다 가도록 그렇게 있었다. - P298

결국 어떤 질문을 하는지는 각자의 세계에서 도출되는 거잖아. - P317

그냥 나는 이 행성에 잘못 태어난 거 같아.
그 애가 그렇게 말했을 때, 유라는 문득 이유 없이 차오른눈물을 삼켜내고 물었다. 그럼 너는 어디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 애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글쎄, 모르겠어. 여기 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알 수 없지 않을까?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나는 너무 살고 싶어, 유라야유라는 묻고 싶었다. 그 밖은 어떻게 나가는 것이냐고 우주선을 타고 나가 끝이 없는 우주를 떠돌다 네가 태어났어야할 행성을 만나는 것이냐고.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그 밖은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고・・・・・・ .  - P334

하지만 유라의 생각은 달랐다. 심장이 멈춰서 생각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다. 아마 그때가 그 애가시도했던 첫 번째 자살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알지 않았을까. 이곳은 자신이 원했던 행성이 아님을. - P339

 선생님들은 그 애를 겉돈다고 표현했지만 유라의 생각은 달랐다. 그 애는 겉도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겉에 있는 것이다. 맴돌지 않고, 꾸준히 더 멀리 벗어나기 위해몸부림쳤다. 무언가에 칭칭 감겨 있는 사람 같았다. - P340

유라야, 가끔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그러면 몸은 살아 있지만영혼은 죽게 되는거야. 현실에 있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으로 떠나버리는.
나는 그 사람들이 가는 곳이 궁금해, 유라야. - P347

유라야, 나는 너한테 모든 걸 말하고 싶지 않아. 네가 나를억지로 이해하려는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폭력이니까. 그러니까 나에 대해 다 안다는 식으로 떠들지 마. - P351

적외선 카메라로 사물을파악하는 정도였죠. 하지만 여기가 전장이고, 우리가 싸우는상대가 지구 바깥에서 온 존재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둘에게는 어떤 연대 의식 같은 게 있었죠. 페카도 그랬을 거예요.
적어도 내 옆에 앉은 게 인간이기는 하니까. - P369

서울과 인천, 경기도는 사시사철 최악의 발암물질과 함께했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어디를 가든 숨쉬기 버거웠던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떤 의미로든요.
- P372

우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주를 떠올릴 때마다 고요한 그곳에 홀로 시끄럽게 돌고 있는 지구가 좋았다. 밖은 저토록 조용한데 이 안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지나치게 피곤하고, 지나치게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평생 좋아하는 노래만 듣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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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에 [재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익숙한 필체였다. 물론이 필체가 나를 위해 쓰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재이다. 제는 없었다. 하나인줄 알고 하나의 이름만 붙였다. 그러니까 이 몸의 이름은 재이고 우리는 그런 의미로 둘 다재였지만 어느 순간 나는 제가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몸의 부속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제라는 걸 아는 사람은 나와 그 애,
그리고 동생 ‘선‘밖에 없다. 모든 편지는 재에게 온다. 재밖에없으니까 편지의 주인공이 나였던 적은 없다. 부모님조차도. - P150

하지만 선은 제에게만 웃었다. 그러니까 나 구분할 수 없는 재와 제 중에서 제를 알아보고, 나는 신이 우리 둘을 한 몸에 넣은 실수를 뒤늦게 깨닫고둘을 구분하는 판별자를 내려보냈다고 생각했다. - P153

‘그냥 재가 유별나게 빠르고 특별한 거지 네가 못한 게 아니야. 너는 억지로 재의 속도에 같이 얹혀살고 있으니까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지. 네가 재 속도에 맞춰주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버겁지. ‘
하나의 몸에 둘이 살고 있으니 하나가 맞출 수밖에 없다.
그저 그뿐이라고 했다. 선의 말은 그전까지 암울하기만 한 내삶을 조금 바꿔놓았다.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깨달은 것이 중요했다. 독립되었다면 어땠을까. 부질없지만 종종 고민했다. - P157

"재는 제가 아니야."
우리는 도무지 같지 않은가.
"제가 재의 부속도 아니고." - P162

"재가 천재인 것과 네가 사는 건 다른 거야. 재가 천재여서네가 죽어야 한다는 건 정말 다른 문제야." - P163

친해진다는 건 까발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보여지는 내 모습이 아니라 살가죽을 뒤집어 내 안에 있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수고로움을, 누군가와 친해져 내 안을 까발리고 상대방의 아들야들한 속살을 끌어안는 짓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이, 기어코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 P177

저런 세상이 있다고 믿어야만 이 세상을 덜 원망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드라마를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 세상이 가짜인 걸 알면서도 그런 세상이 어딘가 있을 거야, 하고 믿어야만 버틸 수 있어서. - P179

그러자 언니는 하나의 세계를 붕괴시키려면 하루빨리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야하고, 그 세계는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에 만들어지므로 네가 살아온 세계가 빨리 붕괴되기를 원해서 그런다고 대답했다. - P180

하지만 엄마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엄마에게는 엄마와꼭 닮은 여동생이 세 명이나 있었다. 그 동생들이 공부도 하고취업도 할 수 있도록 엄마는 결혼을 했다.  - P184

집은 살아 있는 생명처럼 여름이면 울고, 겨울이면 비명을 지르다가 주인을 따라 죽어버렸다. 집이 고요했다. 새까맣게 타 죽어버린 나무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바람 소리도 쥐가 넘나드는소리도,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했다. - P193

엄마도 나를 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엄마는 꼬박꼬박 내 이름을 불렀다. - P200

진짜 잔인한 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진짜 잔인한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게 분명했다. - P225

악했다면 너는 네 아비를 찔렀겠지만, 너는 강했기에 버텨서 살아남았다. 세상을 일부러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모든 상황을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가끔은 그게 미칠 듯이 억울했지만, 그래서 ‘차라리 네가 악했다면‘이라는 생각을 수도없이 많이 했지만 나는 네가 악하지 않아서 좋았다. 너는 정말이지 강해서, 멋있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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