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암흑기에 논쟁의 중심에 있다는 이유로 그가 괴로움을 겪고 있을 때, 나는 그에게 마음만 먹으면 외국의 대학에서 그를 환영할테니외국에 나가서 살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대답했습니다. ‘제길,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야."  - P25

사실 그는 대단히 인간적이었다. 그는 다면적이었던 것만큼 유능했고,
순진했던 것만큼 명석했다. 사회 정의를 위한 열정적인 운동가이면서 고삐풀린 핵무기 경쟁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막강한 정적을얻게 된 정부의 자문역이었다. 그의 친구 라비가 말했듯이 그는 "대단히현명하지만 그보다 더 멍청할 수 없었다. - P26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진보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학풍을 잃지 않았다. 윤리문화 협회의 비교적 부유한 후원자들의 자녀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들이 세상을 개혁하리라는 것을, 또 지극히 현대적인 윤리 복음의 전도사라는 것을 배웠다. 오펜하이머는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학생이었다. - P45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오펜하이머 같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그들의 멋진 사랑과 위대한 지적인 업적은 우리 같은 범인에게 적어도 이상적인 척도가 될 수는 있다."라고 썼다. - P74

간단히 말해 양자 물리는 분자와 원자 크기의 매우 작은 규모에서일어나는 현상들에 적용되는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양자 이론은 곧수소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 같은, 원자보다 작은 규모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고전 물리학을 대체하게 될 것이었다. - P85

번하임은 "어떤 면에서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의 강렬한 성정은 나를 언제나 약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번하임은 오펜하이머와 있으면 그에게 기를 빼앗기는 것 같았다. 오펜하이머는 그들의 우정을 회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번하임은 참다못해 그에게 자신은 결혼할 것이고 "우리는 하버드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 P87

1925년 늦가을에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나머지 너무나 멍청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블래킷으로부터인정을 받지 못한 불만이 쌓이자, 그것은 곧 강한 질투심으로 이어졌다. 오펜하이머는 실험실에서 구한 화학 약품을 이용해 만든 "독"을 사과에 발라 블래킷의 책상에 올려 두었다. 와이먼은 나중에 "그것이 상상의 사과였든 진짜 사과였든, 그의 행동은 질투심의 발로였다."라고 말했다. - P91

 그는 이제 더이상 스스로를 혐오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식인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 없이 독서를 통해서 우울증이라는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자기 위안을 받을수 있었을 것이다. - P102

하지만 오펜하이머의 건방진 태도는 다른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는 한순간 매력적이고 친절하다가도, 곧태도를 바꿔 무례하게 남의 말을 끊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그는 극단적으로 정중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진부한 것에는 인내심이 없어 보였다.  - P118

으로는 놀라운 성과였다. 볼프강 파울리는 양자 역학을 ‘소년의 물리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많은 논문의 저자들이 매우 젊었기때문이다. 1926년에 하이젠베르크와 디랙은 24세, 파울리는 26세, 그리고요르단은 23세였다. - P122

1927년에 아인슈타인은 보른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우리가 기다리던 야곱(Jacob)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론이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의 비밀에 더 가깝게 갈수 있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나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 P123

양자 물리학은 확실히 젊은이들의 과학이었다. 젊은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새로운 물리학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을 그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몇 년 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난 오펜하이머는 실망한 채로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만방자하게도 "아인슈타인은 완전히 맛이 갔어."라고 썼다.  - P123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의 대변에서 참가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증인에 가까왔지만, 자신이 물리학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만한 지적인 능력과 의지를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젊은 9개월 동안 그는 학문적 성과와 성격의 변화를 이루었고, 그 결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단지 1년 전만 해도 그의 생존까지 위협했던 불안한 감정 상태는 이제 상당한 학문적 업적과 그에 따르는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세상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 P128

도하(渡河)
우리가 강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었지.
사막 위에는 달이 낮게 떠 있었고우리는 산 속에서 길을 잃어젖은 땀이 식어 추위에 떨며하늘을 가로막은 산맥을 바라보았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다시 찾았을 때강가의 마른 언덕에서

반쯤 시들어, 우리는불어오는 열풍을 견디느라고.
당도한 곳에는 종려나무 두 그루
유카꽃이 피어 있었네.
강변 저 멀리는 불빛과 미루나무가우리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 기다렸네.
그리고 노젓는 소리가 들려오고나중에, 나는 기억하네.
뱃사공이 우리를 불렀지.
우리는 산을 돌아보지 않았네.
ㅡ오펜하이머 작 - P133

그가 버클리를 선택한 것은 이곳 물리학과의 이론 부문이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버클리는 그런 의미에서 "사막"이었고, 그는 그곳이 무언가를새로 시작하기에 좋을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P138

도착한 지 6주밖에 되지 않았을 때, 오펜하이머는 독학으로 배운 네덜란드어로 강의를 해서 동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네덜란드 인 친구들은 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를 ‘오피 Opie)‘라는 애칭으로 부르기시작했다. 그는 이 별명을 평생 쓰게 된다.  - P140

"오펜하이머는 유태인이었지만, 자신이 유태인이 아니기를 바랐고 스스로 아닌 듯 꾸미려고 했습니다. 유태교 전통은 너무도 강해서 그것을 부인하려고 하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정통파 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더라도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일단 유태인으로태어난 사람이 유태교에 등을 돌리면 외면당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산스크리트어와 불문학에 조예가 깊던 오펜하이머는 불쌍하게도……… " - P144

 그는 모든 것을 원했습니다. 그를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한 친구가 생각납니다. 그 친구는 변호사였는데, 그에 대해 누군가가 ‘그는 컬럼버스 기사회(Knights of Columbus)와 브나이 브리스(B‘nai Brith, 시온주의 단체)의 회장이 되고 싶어 해.‘라고 말하고는 했지요. 나도 그리 단순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오펜하이머에 비하면 아주 단순한 편입니다." - P144

블로흐는 "오펜하이머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펜하이머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힌두 고전들과 잘알려지지 않은 서구 작가들에 관심이 많았다. 파울리는 라비에게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은 취미고 정신 분석이 본업인 것 같아."라고 농담하고는했다. - P147

"그는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친절하고 배려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자신과 동급인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사람들을 화나게 했고 그들을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 P155

그의 표현을 빌면, 원자핵은 "커다란성당 속을 날아다니는 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는 매우 작고 포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쿨롱 장벽(Coulomb barrier)이라는 껍질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물리학자들은 그 장벽을 뚫기 위해서는 100만볼트 정도의 에너지로 가속된 수소 이온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1929년에는 그와같은 고에너지 상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로런스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2만 5000 볼트 정도의 비교적 작은 전압이 걸린 교류 전기장 안에서 양성자를 왔다갔다 하게 만들면서 가속시키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진공관과 전자석을 이용하면, 이온 입자들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지나면서나선형 궤도를 따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가속될 것이었다. 그는 원자핵을파고들기 위해서 얼마나 큰 가속기가 필요한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웬만한 크기의 자석과 원형 상자만 있으면 100만볼트 정도는 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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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를 보면 기분이 으스스해져요."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사람들이 즐겨 보는 공포영화를 볼 때 훨씬 기분이 나쁘다. 한 가지더 덧붙이자면,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산을 깎아 만든 신축 주택단지가 훨씬 기분이 나쁘다.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줄줄이 늘어서 있으면 나는 왠지 소름이 끼친다. - P119

공포영화는 충격적인 영상을 그저 일방적으로 보여 줄 뿐이고, 인공적인 주택단지를 향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느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사체의 경우에도 자주 접하지 않았던 것에는 긴장하게 된다. - P119

졸업하여 간호학교에 입학한 료코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너구리나 두더지 사체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 못해 친근감마저 갖고있는 나도 사람의 사체를 보면 역시나 긴장한다. 접할 기회가 적기때문이다. - P121

사체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체는 그저 기분 나쁘고 무서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 P121

벌과 노린재가 ‘인기 벌레‘인 것은 역시 우리들과 ‘접점‘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바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에 대해 알고 싶게 만든다. - P138

벌 중에서 날개가 없는 대표적인 곤충은 개미다. 개미가 벌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미의몸을 잘 관찰해 보면 벌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걸 알 수 있다. 여왕개미는 평생에 딱 한 번 혼인비행을 하는데, 이것도 개미의 조상이 벌이었음을 나타내는 흔적이라 볼 수 있다.
- P149

"복제라면 다른 성질도 똑같겠지? 즉 그 얘기는 엄마가 어떤 병에약하면 아이들도 그 병에 똑같이 약하다는 것이고 만일 그 병이 유행하게 되면 멸종되어 버릴 수 있다는 뜻이지."
"그렇구나!"
"그러면 다시, 수컷이 있는 이유는 뭘까?"
"복제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요!" - P168

또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암컷 혼자 새끼를 낳는 동물들이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되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생물들은 ‘생각하고수컷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수컷이 있는 생물들이 살아남아 현재까지 진화의 역사를 이어 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 P176

새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는 건 새들이 이미 다른 무당벌레를 맛보고 그 붉은 바탕과 검은 점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새가 무당벌레 한 마리를 잡아먹으면 다른 무당벌레들은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자의 그늘에는 반드시 죽은 자가 있다. - P183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쥐도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한 먹이가된다는 걸 나는 실감했다. 바퀴도 맛이 없는 성분을 몸에 지니지 않는 한 새들에게 훌륭한 먹이일 뿐이다. - P186

역시 사체가 아무리 흥미롭다 해도 살아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것이 있다. 살아 있는 새가 손안에 있다는 이 경이로움은 사체를 아무리 많이 만져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역시 살아 있는 생물을 보는 것은 좋다. - P206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생각했던 ‘평범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든 알고 보면 모두 나름대로 이상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점을 깨닫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P218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한다." - P239

"사체를 통해 세계를 볼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학생들과의 관계였다.
나는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더 열심히 사체를 주울 생각이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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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건수가 계절에 따라 왜 이처럼 달라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너구리의 생활 패턴 때문이다. 가을은 어린너구리들이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아직 혼자서돌아다니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너구리들이 살 곳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다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면 일본뒤쥐가 주로 봄에 죽는 것도 같은 이유일까? 그렇다면 일본뒤쥐의 번식기는언제일까? - P58

일본뒤쥐의 번식기는 1년에 한 번으로 3~4월이다. 그러면 일본뒤쥐 역시 너구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막 태어난 어린 새끼들이 잘 죽는다는 얘기가 된다. 주운 사체만으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사체의 골격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봄에 발견되는 일본뒤쥐가 실제로 어리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 P59

일본뒤쥐는 털을 자주 핥았다. 아마 두더지도 그럴 것이다.
털이 더러워지면 그만큼 체온을 잃기 쉽고 앞에서 말했듯이 몸집이작은 동물은 체온이 잘 떨어지기 때문에 털을 핥는 것은 멋을 부리기위해서나 별난 성격 때문이 아니다. - P65

"진드기에게는 너구리가 우주라고 할 수 있어."
언제나 철학자 같은 말을 늘어놓는 사쿠마의 그 말에 나는 수긍이갔다. - P67

벼룩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에게는 사람벼룩이라는 종의 벼룩만 붙는다. 고양이에게는 이벼룩, 쥐에게는쥐벼룩, 이처럼 벼룩은 어떤 동물에 붙는가에 따라 이름과 특징이 달라진다. - P70

"이 하얀 게 지방이에요?"
"꽤 많은데."
너구리는 가을이 되면 지방층이 두꺼워진다.
"선생님, 지방은 기름이잖아요. 그런데 왜 살 속에 기름이 들어 있어요?"
아이들의 질문에 순간 당황한다. 지방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잘 살펴보면 지방은 몸 안에 기름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하얗고 끈적끈적한 상태로 몸속에 들어 있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면기름을 둘러싸고 있는 지방세포가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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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의 교미민달팽이는 달팽이와 같이 암수한몸이다.
단 교미를 하고 서로의 정자를 교환한다.
왼쪽 그림은 자 모양으로 얽혀 있는 상태.
이것을 풀면 오른쪽 그림처럼 머리를 맞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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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고래의 특징이기도 하다. 고래의 목뼈가 붙어 있는 이유는고래가 생활하는 데 목을 움직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목이 긴 것이 생활하는 데 불편하여 목이 짧은 고래만이 살아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 P99

동료 선생인 호시노와 엔도모가 대만에서 날다람쥐를 먹고 머리뼈를 선물로 갖다주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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