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고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은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음과 소란을 그렇게나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감옥행은그렇게나 무시무시한 형벌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독의기쁨이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 P39

세계적 재앙이 북반구의 겁쟁이들과 남반구의 빈민들을 강타했다.  - P41

될 것이다. 잠금장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위해 푸는 것인 동시에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거는것이라는 이중의 역할을 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한없이확장된 만큼 공적 장소는 위축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유 야망 이동을 제한해야만 하리라 - P42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이제는 가능한 한 삶을 축소한다는 뜻이 되었다. 아무리 지금 시대가 서로 대립하는경향들의 전쟁터라지만 지평을 아예 차단하고 동굴에틀어박혀 사는 혈거인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아졌다. 소박함을 숭상하는 것과 이동의 의욕을 꺾고 자동차를 죄악시하는 것은 별개다. 수많은 환경운동가가 땅에 바짝 붙어 있으라고 기도하면서 자동차, 비행기, 트럭,
여객선, 유조선을 문제 삼는다.  - P44

인류학적으로 새로운 인간상이 나타났다. 웅크리고 있지만 고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 세계도 타인들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상이다. 현대 기술은 개방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감금 상태를 장려한다.  - P51

어쩌다 파트너가 필요하면 데이트 앱을 이용하면 된다. 파트너가 멀리 있다면 섹스 토이를 이용한 "안전한 섹스"도 고려해 볼 만하다. 핵심은 "거의"에 있다.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건가, 중요한건 다 있다는건가? - P52

스마트폰은 세상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든다. 스마트폰은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예상 범위를 언제나 뛰어넘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인 광장에서, 우리는 이동을 하지 않고도 다른 대륙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마치 <성경>을 참고하듯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고 메일을 확인하는 이유는, 거기서 무슨 조언이나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 P59

나의 스마트폰에서는 늘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다. 흥미로운 정보, 충격적인 뉴스,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가득 품은 스마트폰 한 대만 있으면 밋밋한 일상에 특별한 양념이 더해지는 것 같다. 아니, 스마트폰은 양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영원한 잡념이다. 이 작고 요란한 짐승은 자꾸만 움찔대면서 나를 불러세우고 사사건건 옭아매는 전자 올가미나 다름없다. 우리는 이 작은 상자에 모든 것을 기대한다. 진짜 삶을 포기한 채 우리의 의욕과 열정을 어긋나게 몰아가는 도구에 의지하는 셈이다.  - P60

진부한 삶은 우리를 지겹게 할 뿐 아니라 기력을 쏙 빼놓는다. 삶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한없이 고단하다. 알맹이도 없는 주제에 기운을 빨아먹는다는 것이 이 현상의 미스터리다.  - P74

규칙성은 긴 호흡의 프로젝트와 생산적인 작업에 필요한 조건이지만 우리를 헤매게 하는 안개이기도 하다. 이 공격은 차분하고평화로운 모양새를 취하기 때문에 더욱더 강력하다. 우리 삶은 언뜻 지극히 평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숨 돌릴틈도 없는 전투다. 간간이 들리는 소음, 자질구레한 불안.
가벼운 충돌 등 사소해 보이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버겁다. 여기에 자기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피로가 추가된다."
- P75

무엇보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속도를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우리도 제자리에 있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 P77

 스트레스와 싸우는 데 필요한 것은 차분함이 아니라 진짜 사건,
자신을 벗어나는 경험이다.  - P79

방이라는 공간의 장악은 오랫동안 페미니즘의 주제였다.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선언문이기도 하다. "소설을 쓰고 싶은 여성이라면 돈과 자기만의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12) 울프는 이 신랄하고도 냉소적인 소책자에서 여성이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으려면 재정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 P92

남편이나 아이도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의 방이다. 이방에 자신을 유폐한 여성은 세상에 자신의 예술로 빛을밝힐 수 있다. 스스로 고립되어 창작에 힘쓰고자 하는이에게 상아탑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기보다는 고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 예술가,
장인의 일은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어 작업과명상에 몰두하는 것이다. - P93

인류는 빛과 어둠속에서 살아가는데, 오직 철학만이 광명의 세계로 인류를 인도할 수 있다. - P99

"집은 허무, 어둠, 모호한 근원의 공포를 막아주는 유일한 방벽이다. 집은 인류가 수백 년 동안 끈기 있게 수집한 모든 것을 벽으로보호해 준다. (・・・) 인류의 자유는 안정과 내향을 통해 활짝 피어나며 개방과 무한을 통해서는 결코 그리되지 못한다. 집에 머문다는 것은 삶의 느긋함과 고요한 명상의기쁨을 안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인간의 정체성은 주거에 있다.  - P100

그러므로 집은 사색의 토대가 되는 곳이다. 하늘과 땅,
높은 곳과 낮은 곳의 대립은 내 공간과 남들의 공간의 대으로 바뀌었다.  - P109

"지나치게 광대한 공간은 충분하지 못한 공간보다 우리를 더 숨 막히게 한다." 그러니까 감옥은 망망대해 "변화없는 지평의 광막한 초원지대가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한한 공간은 감옥만큼 압박감을줄 수 있다." - P120

잠에서 깨면 다시 세상과 수천 가닥의 끈으로 연결된다. 기운차게 일어나고 식욕을 느끼면서 경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의 세계에도 기강이 필요하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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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박받는 삶의 공포와 희열이라는 역설의 승리가 앞당겨졌다. 팬데믹과 더불어 자발적으로든강제적으로든 칩거는 사람들의 선택지, 연약한 영혼들의도피처가 되었다.  - P24

문화 면에서나 여행 면에서나 20세기는 개방의 시대였다. 이제 그 시대는 끝났다. 정신과 공간에 빗장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억만장자들을 위한 우주여행이 가능해졌다지만 평범한 사람이 국경을 넘거나 집밖으로 나서는 것은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 P26

기술적 장비만 갖춰져 있다면 각자의 집이나 방도 그 자체로 충분한 소우주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강제 봉쇄보다 더욱 우려해야 하는 건위험한 세상에 맞선 자발적 자기 봉쇄이다. 스스로 선택한 독방에는 벽도, 족쇄도, 경비원도 없다. 간수는 우리머릿속에 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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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더욱 밀착된 취재원을 먼저 찾아내는 일에도 경쟁이 불는다. 예시로 들기조차 조심스러운 뼈아픈 ‘보도 참사‘ 사례지만,
4.16 세월호 참사 당시에 나를 포함한 기자들은 꽤 주저하면서도결국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유족 앞으로 모여들었다.  - P15

당시 CNN은 유족들의 표정을 보여주는 것을 최소화하며, 시신이옮겨질 때 경찰들이 고개를 숙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보여주는 식으로 방송화면을 편집했다. 적어도 이 태도는 덜 착취적으로 보였고, 한국의 쓰레기 언론들과 달리 윤리적인 보도를 했다는 여론의 평가를 받았다. - P16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영상을 유포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일부 방송사가 이 현장 영상들을 뉴스에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는 단지 영상에 찍힌 모습의 참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지가 끔찍해 보인다는 것이 늘 그 장면을 볼 수 없는, 보면 안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영상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에는 피해자들의 초상권과 더불어 촬영자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구조 인력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이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는 이들을 괴롭혔다. - P25

소방청 119 대응국장은 참사 열흘 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현장에서 많은 사람이 사망자들의 사진을 촬영하는 등 현장 지휘와 질서 유지에 방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 P25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카메라‘에 관한 오랜 공포가 있다. 찍고 있지만 상황을 냉담하게 기록할 뿐,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카메라.
이 공포는 카메라를 꺼내들어 남의 절박한 고통을 보고 듣고 기록하고 생중계하는 순간부터 시작돼 편집하고 재구성한 뒤 널리 퍼뜨린 이후까지 이어진다. 공포의 근원은 이걸 찍어서 보여준 뒤에도 내가 이걸 본 뒤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못할 수도있다는 데 있다. - P28

한 가지 확실한 건 고통의 중개인이 미디어든 개인이든, 남의고통을 궁금해하고 알아내는 일은 도움을 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타인의고통을 소비했다는 죄의식은 대개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다. - P32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처럼 뉴스를 휙휙 넘기며 눈길을 끄는 뉴스에만 반응하는 것 역시 인터넷이 새로 발명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남의 고통을 전시하고 구경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통을 포르노처럼 소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래된 윤리적 고민에 대한답은 어느 정도는 오래전부터 ‘그렇다‘는 것 하나뿐 아니었나 디지털 환경이 ‘정말‘ 바꿔놓은 게 무엇인지를 가려내려면 조금 더들어가야 한다. - P47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의 눈에 들고자 노력하는 뉴스 콘텐츠역시, 저널리즘이 그다지도 피하고 싶어 했던 극단적 주관의 세계안에서만 소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기자들이 이토록 양극화된 세계에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기능해야 할지, 양극단에서 횡행하는 가짜뉴스를 어떻게 배격할지 오늘도 고민하고 토론하고 있다. - P54

그러나 거기서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무엇이 있다.
대중은 벌을 주고 싶어 한다. 얼굴을 보고, 이름을 알고, 망신을 주고, 그에게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고 싶어 한다. 얼굴과 이름을 광장에 매달아 놓는 방식으로라도 사법 테두리 밖에서 한 번 더 징벌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얼굴을 까는 일은 단죄다. 대중은 앞으로 일어날 재판에서 정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기엔 좋지 못한 전례를 지나치게 많이 안다. - P61

얼굴을 응시하다가, 나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신상 공개의 패턴에 다다르기까지 필요충분조건처럼 거기에 있는 건 피해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다. 그 피해에는 이유가 없다. 피해자의 탓인 부분이 없다. 그런데도 돌이킬 수 없다. 없던 일로 돌이킬 수가 없다. - P68

범죄가 일어나도록 방조하는 사회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얼굴 공개라도 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법 시스템을 가리켜야 한다. 믿지 못하는 대중보다도 범죄의 무게에 걸맞지않게 가벼운 처벌을 일삼는 사법부가 더 큰 문제여서다. - P69

날씨가 간편히 뉴스가 되는 데는 암묵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날씨는 스펙터클의 좋은 재료라는 것이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여주기 쉽고, ‘그림이 될 만한‘ 재난의 가능성도 도사린다.  - P77

 그런데 궂은 날씨의 스펙터클이 선하고 아름다운 의도를 꽤 이상하게 오염시키거나, 비틀어버릴 때가 있다.
약자의 고난은 구경거리로 보여지고, 재난 현장은 대상화되어 정치적 포토월로 전락한다. - P80

죽음이나 부상 따위의 불운한 일이 지나갔다는 걸 모두가 잘아는 채로 입을 닫아버린 착 가라앉은 고요함이다. 한마디를 들으려고 해도 쉽지 않고 관계자들은 이리저리 내빼거나 입을 다물기 일쑤다. - P92

사고 당사자와 그의 가정에는 측량할 수 없는 고통이고 비극할 것인데, 사회적으로는 사고의 과정에서 특이점이 크지 않으니 기사의 가치가 높지 않다고 잘라 말해야 하는 기우뚱한 불균형에서 오는 갸웃함이었다. - P94

그러나 뉴스는 자주 이색적인 구석이 있는 죽음에 더 크게 반응하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고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산업재해가 침묵의 고통이 되는 두 번째 이유다. 2022년하반기에 SPC의 계열사인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숨진 뒤 초기에 미디어가 크게 반응하지 않자 오히려 대중이 나서서 이슈가 되었던 다른 죽음들과 비교하며 분노했던 현상 역시 미디어의 관성에 대한 공분이다. - P95

장 씨는 50대에 급성백혈병으로 죽었고, 죽음과 함께 소멸되어 버린 질병은 서류 몇 장 위에만 남아있다. 25년 이상 2만2900 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기선에서 작업하며 유해한 자기장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렸다고 쓰인 채로. - P98

산업재해가 흔하게 퍼져있는 일이다 보니 시청자들이 이 뉴스를 그저 지나쳐 버리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어린 걱정 역시 훼손된 신체를 빠짐없이 묘사하도록 한다. 다양한 감수성의 정도를 지닌 개개인으로 구성된 집단을 향해 이쪽을 바라봐 달라고 던지는, 수류탄과도 같은 묘사들다. 무엇이 효과적인 반응을 이끌어낼지 모르니 최대한 쓸 수 있는 장비는 다 꺼내서 쓰는 식이다. - P99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고치다 숨진 김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하루에6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 P100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나를 틀로 쓰자는 뉴스의 제안은 얼마만큼 유효한 기획일까? 실제로 ‘나‘의 고통은 뼈저리게 생생하다.
남의 고통보다 훨씬 더. 이따금 끔찍한 사건을 취재하고 난 뒤에나나 가족이 피해자가 되어 같은 사건을 겪는 악몽을 꾸곤 했다.
그럴 때면 식은땀이 범벅이 된 채로 깨어나 몸서리를 쳤다. 취재를 하며 피해자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던 순간보다 꿈에서 스스로피해자가 된 순간이 훨씬 고통스럽게 여겨졌다는 점이 끔찍했다.
가짜 고통, 가짜 겪음일지라도 내 몸을 통과하니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여겨진다는 게 괴물 같았다. - P147

더구나 개인의 프로필을 중심으로 한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뉴스의 소비가 극도로 개인화되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폐쇄된 환경에서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며 기존의 신념을 증폭하거나 강화하는 현상)에 갇히게 된 시대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와닿지 않는 뉴스는 점차 존재하지 않는 뉴스나 마찬가지가 되어가고 있다. - P148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나의 타임라인 밖으로 빠져나와 다른삶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 모든 연민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을 매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대로를 아는것. ‘나‘를 중심으로 뉴스를 떠먹이려는 뉴스의 매개자들이 의도치 않게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 P154

걸려 넘어지는 부분은 늘 비슷한 지점이다. 우리는 사회 변화의 수단으로 고통을 전시하고, 그 전시를 위해 피해자를 설득할때가 있다. 어떤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 제대로 조명받지못했던 이슈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일 자체는 더 나은 사회를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이를 위해 개인인 피해자들이맡아야 하는 역할에 의심이 드는 것이다.  - P161

그날 수업에서 영상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지를 두고 달아올랐던 논쟁 끝에는 이런 질문들이 남았다.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고 언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보여주기의 윤리와 보여주지 않기의 윤리는 누구를 지키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향한것인가? - P167

했다. 2023년 8월, 여전히 성범죄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지 않음을 애써 입증해야 한다. 피의자가 밝힌 범행 동기는 ‘강간이 하고 싶어서‘였다. - P199

그렇다면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건 누구의 목소리인가, 젠더 갈등을 보도하는 기사는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가.
언론에 성별이 있다면 무엇인가.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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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면 남편이 금화 세례를 퍼부을 테고 그러면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 P10

원래 돌이었으니 당연히 맥이 느릴 수밖에 없지만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뉘우치는 동시에 귀담아 듣는 것처럼 으으으으음, 하기만 했다.  - P12

"좀 걸으면 한결 나을 것 같아요."
의사는 말했다.
"그러기에는 몸이 너무 약하세요. 그러다 다치기라도하면 제가 부군을 뵐 면목이 없지 않습니까?"
"나는 원래 돌이었어요. 그러니까 걷는 정도로다치진 않아요."
"그만하세요." - P12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내 덕분에 부자가 됐지만 남편은 내가 그렇게 얘기하면 싫어한다. 첫째로는 여신의능력, 다음은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자신이 대리석을 깎아서 나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내가 탄생된이후에 사실 탄생된 건 아니지만 달리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 P15

"살아나라, 살아나라, 내 생명, 내 사랑이여.
살아나라."
나는 바로 이 순간, 이슬을 머금은 새끼 사슴처럼눈을 떠 마치 태양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그를 보고 경외와 감사가 담긴 탄성을 조그맣게 터뜨려야 한다. 그러면 그가 나를 따먹는다. - P19

 그랬으니, 내가 살아 숨쉬기를 바랐을 때, 그는 따먹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해지기만을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니어리석지 않은가. 어떻게 내가 인간인 동시에 여전히석상일 수 있을까. 태어난 지 11년밖에 안 된 나도 그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데. - P26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군."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침대에 눕히고 횃불을 들어 내 목에 남은 벌건 자국과 팔과 가슴에 자주색으로남은 자신의 손자국을 비춰보았다. 멍이 아니라 얼룩이라도 되는 듯이 그걸 문질렀다.
"색이 완벽하네. 이것좀 봐."
그가 말하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신처럼 귀한 캔버스는 없어." - P33

"우리, 밖에 다녀올까?"
"아빠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나도 알아, 그러니까 얘기하지 말고 나가자."
우리는 옆 마을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다들 우리를알아봤다. 피부가 우유처럼 새하얀 한 쌍이니 눈에 띌수밖에 없었다. - P34

여신이 존재하는지모르겠지만, 존재한다면 저 조각달은 여신이 나를 내려다보며 짓는 미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P39

파도가 우리 입을 향해 출렁거렸다. 바로 지금이에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나는 기도했다. - P45

둘이서 물속으로 추락하듯 가라앉는 동안 나는게들이 어떤 식으로 하얀 내 어깨를 넘어 그를 먹으러올지를 상상했다. 해저는 모래가 깔려 있어서 베개처럼 푹신했다. 나는 거기에 몸을 눕히고 잠을 청했다. - P46

 피그말리온의 해피엔딩은 몇 가지 혐오스러운사실을 받아들인 다음에라야 해피엔딩이라는 평가를내릴 수 있다. 착한 여자는 남자를 만족시키는 것 말고는 존재 이유가 전혀 없다는 발상, 여성의 성적 순결에대한 집착, ‘새하얀‘ 상앗빛 피부가 완벽하다는 통념,
여성의 현실보다 우선시되는 남성의 환상.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갈라테이아에게 할애된 대사는없다. 심지어 이름도 부여되지 않고 그냥 ‘여자‘라고 불린다. 그저 순종적인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다른 자료를 통해서였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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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정은 세상과 닿는 단면이 놀랍도록 넓은 작가다. 그 면적이 광활하고 비옥한건 기자로서 살아온 시간과 관련이 깊다. 속고 싶지도 속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기자일 때 방황은 숙명이 된다. 고통을 측량하다가 자주 실패한 자, 취재의 핍진성과 폭력성을 곱씹어온 자가 옮긴 세계는 매끈하지도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는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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