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더욱 밀착된 취재원을 먼저 찾아내는 일에도 경쟁이 불는다. 예시로 들기조차 조심스러운 뼈아픈 ‘보도 참사‘ 사례지만, 4.16 세월호 참사 당시에 나를 포함한 기자들은 꽤 주저하면서도결국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유족 앞으로 모여들었다. - P15
당시 CNN은 유족들의 표정을 보여주는 것을 최소화하며, 시신이옮겨질 때 경찰들이 고개를 숙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보여주는 식으로 방송화면을 편집했다. 적어도 이 태도는 덜 착취적으로 보였고, 한국의 쓰레기 언론들과 달리 윤리적인 보도를 했다는 여론의 평가를 받았다. - P16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영상을 유포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일부 방송사가 이 현장 영상들을 뉴스에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는 단지 영상에 찍힌 모습의 참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지가 끔찍해 보인다는 것이 늘 그 장면을 볼 수 없는, 보면 안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영상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에는 피해자들의 초상권과 더불어 촬영자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구조 인력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이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는 이들을 괴롭혔다. - P25
소방청 119 대응국장은 참사 열흘 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현장에서 많은 사람이 사망자들의 사진을 촬영하는 등 현장 지휘와 질서 유지에 방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 P25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카메라‘에 관한 오랜 공포가 있다. 찍고 있지만 상황을 냉담하게 기록할 뿐,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카메라. 이 공포는 카메라를 꺼내들어 남의 절박한 고통을 보고 듣고 기록하고 생중계하는 순간부터 시작돼 편집하고 재구성한 뒤 널리 퍼뜨린 이후까지 이어진다. 공포의 근원은 이걸 찍어서 보여준 뒤에도 내가 이걸 본 뒤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못할 수도있다는 데 있다. - P28
한 가지 확실한 건 고통의 중개인이 미디어든 개인이든, 남의고통을 궁금해하고 알아내는 일은 도움을 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타인의고통을 소비했다는 죄의식은 대개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다. - P32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처럼 뉴스를 휙휙 넘기며 눈길을 끄는 뉴스에만 반응하는 것 역시 인터넷이 새로 발명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남의 고통을 전시하고 구경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통을 포르노처럼 소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래된 윤리적 고민에 대한답은 어느 정도는 오래전부터 ‘그렇다‘는 것 하나뿐 아니었나 디지털 환경이 ‘정말‘ 바꿔놓은 게 무엇인지를 가려내려면 조금 더들어가야 한다. - P47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의 눈에 들고자 노력하는 뉴스 콘텐츠역시, 저널리즘이 그다지도 피하고 싶어 했던 극단적 주관의 세계안에서만 소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기자들이 이토록 양극화된 세계에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기능해야 할지, 양극단에서 횡행하는 가짜뉴스를 어떻게 배격할지 오늘도 고민하고 토론하고 있다. - P54
그러나 거기서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무엇이 있다. 대중은 벌을 주고 싶어 한다. 얼굴을 보고, 이름을 알고, 망신을 주고, 그에게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고 싶어 한다. 얼굴과 이름을 광장에 매달아 놓는 방식으로라도 사법 테두리 밖에서 한 번 더 징벌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얼굴을 까는 일은 단죄다. 대중은 앞으로 일어날 재판에서 정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기엔 좋지 못한 전례를 지나치게 많이 안다. - P61
얼굴을 응시하다가, 나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신상 공개의 패턴에 다다르기까지 필요충분조건처럼 거기에 있는 건 피해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다. 그 피해에는 이유가 없다. 피해자의 탓인 부분이 없다. 그런데도 돌이킬 수 없다. 없던 일로 돌이킬 수가 없다. - P68
범죄가 일어나도록 방조하는 사회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얼굴 공개라도 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법 시스템을 가리켜야 한다. 믿지 못하는 대중보다도 범죄의 무게에 걸맞지않게 가벼운 처벌을 일삼는 사법부가 더 큰 문제여서다. - P69
날씨가 간편히 뉴스가 되는 데는 암묵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날씨는 스펙터클의 좋은 재료라는 것이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여주기 쉽고, ‘그림이 될 만한‘ 재난의 가능성도 도사린다. - P77
그런데 궂은 날씨의 스펙터클이 선하고 아름다운 의도를 꽤 이상하게 오염시키거나, 비틀어버릴 때가 있다. 약자의 고난은 구경거리로 보여지고, 재난 현장은 대상화되어 정치적 포토월로 전락한다. - P80
죽음이나 부상 따위의 불운한 일이 지나갔다는 걸 모두가 잘아는 채로 입을 닫아버린 착 가라앉은 고요함이다. 한마디를 들으려고 해도 쉽지 않고 관계자들은 이리저리 내빼거나 입을 다물기 일쑤다. - P92
사고 당사자와 그의 가정에는 측량할 수 없는 고통이고 비극할 것인데, 사회적으로는 사고의 과정에서 특이점이 크지 않으니 기사의 가치가 높지 않다고 잘라 말해야 하는 기우뚱한 불균형에서 오는 갸웃함이었다. - P94
그러나 뉴스는 자주 이색적인 구석이 있는 죽음에 더 크게 반응하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고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산업재해가 침묵의 고통이 되는 두 번째 이유다. 2022년하반기에 SPC의 계열사인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숨진 뒤 초기에 미디어가 크게 반응하지 않자 오히려 대중이 나서서 이슈가 되었던 다른 죽음들과 비교하며 분노했던 현상 역시 미디어의 관성에 대한 공분이다. - P95
장 씨는 50대에 급성백혈병으로 죽었고, 죽음과 함께 소멸되어 버린 질병은 서류 몇 장 위에만 남아있다. 25년 이상 2만2900 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기선에서 작업하며 유해한 자기장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렸다고 쓰인 채로. - P98
산업재해가 흔하게 퍼져있는 일이다 보니 시청자들이 이 뉴스를 그저 지나쳐 버리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어린 걱정 역시 훼손된 신체를 빠짐없이 묘사하도록 한다. 다양한 감수성의 정도를 지닌 개개인으로 구성된 집단을 향해 이쪽을 바라봐 달라고 던지는, 수류탄과도 같은 묘사들다. 무엇이 효과적인 반응을 이끌어낼지 모르니 최대한 쓸 수 있는 장비는 다 꺼내서 쓰는 식이다. - P99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고치다 숨진 김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하루에6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 P100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나를 틀로 쓰자는 뉴스의 제안은 얼마만큼 유효한 기획일까? 실제로 ‘나‘의 고통은 뼈저리게 생생하다. 남의 고통보다 훨씬 더. 이따금 끔찍한 사건을 취재하고 난 뒤에나나 가족이 피해자가 되어 같은 사건을 겪는 악몽을 꾸곤 했다. 그럴 때면 식은땀이 범벅이 된 채로 깨어나 몸서리를 쳤다. 취재를 하며 피해자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던 순간보다 꿈에서 스스로피해자가 된 순간이 훨씬 고통스럽게 여겨졌다는 점이 끔찍했다. 가짜 고통, 가짜 겪음일지라도 내 몸을 통과하니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여겨진다는 게 괴물 같았다. - P147
더구나 개인의 프로필을 중심으로 한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뉴스의 소비가 극도로 개인화되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폐쇄된 환경에서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며 기존의 신념을 증폭하거나 강화하는 현상)에 갇히게 된 시대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와닿지 않는 뉴스는 점차 존재하지 않는 뉴스나 마찬가지가 되어가고 있다. - P148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나의 타임라인 밖으로 빠져나와 다른삶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 모든 연민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을 매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대로를 아는것. ‘나‘를 중심으로 뉴스를 떠먹이려는 뉴스의 매개자들이 의도치 않게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 P154
걸려 넘어지는 부분은 늘 비슷한 지점이다. 우리는 사회 변화의 수단으로 고통을 전시하고, 그 전시를 위해 피해자를 설득할때가 있다. 어떤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 제대로 조명받지못했던 이슈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일 자체는 더 나은 사회를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이를 위해 개인인 피해자들이맡아야 하는 역할에 의심이 드는 것이다. - P161
그날 수업에서 영상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지를 두고 달아올랐던 논쟁 끝에는 이런 질문들이 남았다.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고 언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보여주기의 윤리와 보여주지 않기의 윤리는 누구를 지키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향한것인가? - P167
했다. 2023년 8월, 여전히 성범죄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지 않음을 애써 입증해야 한다. 피의자가 밝힌 범행 동기는 ‘강간이 하고 싶어서‘였다. - P199
그렇다면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건 누구의 목소리인가, 젠더 갈등을 보도하는 기사는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가. 언론에 성별이 있다면 무엇인가.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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