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네"
"음…… 제가 말을 잘하는 게 아닐까요?"
뭐야, 고개를 들었다. 창밖의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만 수화기에 남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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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같아요."
"맞아요."
내가 말을 덧붙였다. "어제 그 팬티 아거씨도 그렇고."
"그러니까요. 늘 자기가 하던 대로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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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만났던 여자들을 생각하면 지유씨는 사실 눈에 띄는 축도 아니었다. 경험적으로 예쁜 여자는 지루했다. 하지만 지유씨와는 그렇게 오래 알아왔는데도 단 한순간도 무료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와는 말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태껏 그어떤 관계에서도 감각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지유씨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녀가 내뱉는 말의 호흡과 나의 호흡이 잘 어우러져 특유의 리듬감 같은 게 생겼다. 우리는 존대와 반말, 유쾌와 재치, 다정함과 짓궂음을 카드 패처럼번갈아 내놓으며 놀았다. 그녀는 잘 웃었고 또 잘 놀렸다.
공수에 모두 강했다. 정말이지 지루할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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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급할 건 없었다. 호감을 잃기 싫어서 그렇게 반응하는 여자도 드물지만 간혹 있었다. 나는 노련하게기다렸다. 내 쪽이든 상대 쪽이든 절대 양다리 상황은 만들지 않는다는 게 나의 윤리였다. 여유있게 친분을 쌓아가면서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어필할까 은근히 벼르고 있었는데, 예기치 못하게 그녀가 청첩장을 내밀었다. 목에 리본을 맨 청둥오리 두마리가 그려진 카드였다.
"예쁘죠? 제가 그린 거예요."
나는 뜻밖의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짝사랑이란 걸 했다.
는 사실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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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가능성이란, 얼굴을 마주하고 한두마디만 나누어보면 금방 도드라져서 감지하기 쉬운 종류의 것이었다. 다만 나는 이십대가 아닌 삼십대였으므로,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줄 알았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에겐 남자친구가 있었고 나 역시 만나는 여자가 있는 상황이었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연애를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둘 사이에 은근한성적 긴장을 만들 수 있었고, 그쪽 남자친구의 흠결을 자 주 상기시킬 수도 있었다. 자주 사용하기도 하고, 또 곧잘 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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