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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홀로서기 - 나는 정말 한국 사람일까?
조월호 지음 / 매직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책 앞에 있는 추천사만으로도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도 전에 글쓴이의 성격과 말투가 눈에 그려졌다. 자존심 강하고 툭툭 던지는 멋없는 말투를 가졌지만, 본인이 어려워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조월호씨의 미국사는 이야기이다.
어려서부터 가난한데다, 몸이 아파 한국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자 병을 고치기 위해 미군과 결혼했고, 병약해서 버려진 생후 3일 된 한국인 여아를 입양한 후, 도미해서 살아온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냈다.
미국교회에서 예배 후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식사대접을 하도 해서 미국사람들이 김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한국사람 없는 소도시에 살면서,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아칸소주 주지사 시절, 올해의 여성상을 받은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입양딸 '진주'의 이야기 등 평범하면서도 당찬 한 이민자의 삶이 한 권에 담겨 있다.
가볍게, 막히는 곳없이 술술 읽히지만, 정작 글쓴이가 책을 통해 진정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책표지나 홍보문구를 봤을때 나는 이 책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한 이민자가 미국에서 홀로서는 과정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고, 역경을 헤쳤다는 그녀의 스토리는 때때로 단지 자존심강한 글쓴이의 성격만 부각시킬 뿐이었고, 본인이 당한 억울한 일을 마치 친구에게 하소연하는 듯한 어투, 사건의 설명도 그냥 설명에서 끝날 뿐, 글쓴이가 어떤 감정이나 교훈을 얻었는지 등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 이야기의 시점도 뒤죽박죽이고, 같은 주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던지, 내용의 전개가 뜬금없이 시작해서 정말 '뜬금없이' 끝나기도 한다.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싶은 지점에서 한 이야기가 끝나버릴 때면, so what???? 이라고 되묻고 싶어지게 만들어버렸다.
공감할 수 없는 일방적인 자랑이라던가, 어떤 사건에 대한 설명이,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초고를 읽는 기분이었고, 이 책을 통해 어떤 위안과 도전을 받아야하는지...나는 글쓴이과 교감한다거나 그의 이야기에 마냥 공감만 할 수는 없었다.
아마 그녀는 책속에서 이미 이야기한 대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삶을 후손을 위해 기록하고 싶었던것이고, 실제 그대로 썼지만, 책으로 나오기에는 뭔가 2%가 아니라 20%쯤 부족하다. 글쓴이도 편집자도 좀 더 공을 들여야하지 않았을까?
물론 책에 대한 감상은 읽는 이마다 다를것이다.또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의 마음상태, 상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감상평이 달라질 수 있으니. 이 책에 대한 나의 실망이 모든이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훗날 다시 읽게 된다면 지금 느끼지 못한 감동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분의 강인한 정신력과 삶이, 지쳐있는 내게 위안과 도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만큼 위안보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그녀의 삶은 분명 존경스럽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은 분명 배워야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담으려 한것 같다. 일정한 주제가 없이 뒤죽박죽된,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기듯이 쓴 이 글들은....분명 그녀의 후손과 친구들에게 그녀의 삶을 얘기하고 추억하는 좋은 기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정식으로 출판해서 그녀를 모르는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싶었다면, 자화자찬에서 끝날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은 고민과 그것을 헤쳐나온 과정을 심도있게 이야기해줬어야하고, 좀 더 다듬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모든 책이 심오한 철학적 사색과 깊이를 담아야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이런 에세이를 더 즐기고, 억지감동을 주려한다던지, 심하게 부풀리는 얘기나 성공 스토리류보다는 이렇게 잔잔하게 삶을 나누는 이야기를 더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완성도는 심각하게 의문의 여지가 있다. 글쓴이의 삶과 사람에 대한 사랑은 분명 여운이 남는 좋은 책이 될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었는데 말이다. 편집자의 역량이 이래서 중요한건가.
위 도서는 책관련 카페의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기증받은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