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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힘 -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레이먼드 조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9월
평점 :
<바보 빅터>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바보 빅터>의 저자 레이먼드 조의 최신작 <관계의 힘>을 읽게되어 기쁘다. 레이먼드 조는 ‘관계’라는 주제를 택했다. 시의적절한 주제라 생각된다. 현대인들이 ‘나’에 집중하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환경 속에 사는 살아가면서 ‘나’만 위해 살면 살수록 ‘나’가 행복하지 못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나’가 성공해야 하기에 나의 발전을 위해, 나의 성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 집중하면 할수록 더 외로워지고, 힘들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레이먼드 조는 바로 이런 현대인들의 깊은 속을 꿰뚫어본 느낌이다.
현대인들이 대화를 하면 모두 자기 말을 하기에 바쁘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혹 생각한다 해도 건성으로 듣는다. 들으려 노력은 해 보지만 금방 포기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돈을 주고 상담사를 찾아가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할 만큼 각박한 세상에서 산다. 이런 현상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작 남의 이야기를 듣기 힘들어하면서 내 이야기는 너무나 하고 싶어 한다.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이 모든 것이 관계를 소홀히 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너무나도 자신의 성공, 지나친 큰 목표, 과대 포장된 자신의 미래 등이 이렇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기저에는 성공하면 행복해 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럴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NO.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요즘 회자되는 말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이다. 너도 나도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 방향으로 속도를 내서 가속도를 붙이고 있지만 결과는 허망일 것이다. 이젠 진정한 행복의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신팀장,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들의 아버지 회사를 빼앗고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상처를 안고 관계를 싫어하고, 멀리하는데 익숙한 주인공을 내세운다. 오직 믿을 사람은 자신 밖에는 없다는 확신에 절대로 마음을 열지 않는 신팀장에게 회사의 복잡한 줄잡기 중에 조이사란 한 노인의 접근을 통해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세상은 자신이 보는 안경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직장을 보는, 사회를 보는 좋은 안경을 씌워주는 것 같아 참 좋았다. 관계의 힘이 왜 필요한지 몇몇 문장을 통해 감동을 받는다.
회사는 갈등을 가장 무서워하네, 그래서 실패한 직원은 용서해도 분란을 일으키는 직원은 절대 용서하지 않아. 아무리 훌륭한 조직이라도 미꾸라지 한두 마리만 풀어놓으면 엉망이 되니까. 결론적으로 회사는 관계지향적 인간을 좋아하네. 코카콜라에서는 아예 대활할 때 ‘나’ 대신 ‘우리’라는 말을 쓰도록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있지.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늘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쓰게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얼마나 좋은 표현인가?
관계를 잘 하려면 다섯 가지를 잘 해야 한다. 관심, 먼저 다가가기, 공감, 진실한 칭찬, 웃음이다.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푸시킨- 사람이 답이다. 누구와도 친구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의 친구도 될 수 없다. -부레퍼- 맞다. 신팀장은 회사에서, 거래처 등에서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친구는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한 사람도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지 못한다. 한 사람과 진실된 관계를 가지지 못하니 모든 사람과 아무 관계도 아닌 것이다. 인맥의 과부하로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인맥을 양이 아닌 질로 측정하라. 만 명의 인맥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한 명의 친구가 더 가치 있다. 성공을 위한 인맥보다는 행복을 위한 친구를 만들어라. 참 행복의 비법인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영란씨 같은 사람이다. 때론 문제아, 푼수,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의 소중함을 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최고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천성적으로 관계 중심적인 사람, 그래서 아픈 일도 자주 있지만 행복한 일도 그만큼 많은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프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 삶이다. 그러니 늘 무덤덤한 긴장도 기대도, 갈등도 놀람도 없는 그저 그런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것을 어찌 삶이라고 하겠는가? 살아 있음이란 비바람이치고, 눈보라를 맞고, 봄이 되면 따스한 햇빛과 봄바람을 맞는 기쁨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나는 요즘 관계가 얼마나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지 절실하게 느낀다. 나란 존재를 생각해 보니 정말 나는 누구와 연관이 되지 않은 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제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넌 누구냐?”라고 물어 보았다.
넌 누구냐?
이재선
넌 누구냐?
엄마의 아들
아내의 남편
애들의 아버지
넌 누구냐?
직장의 직원
동창생의 일원
친목회의 회원
넌 누구냐?
시민
도민
국민
넌 누구냐?
이름 석 자일 뿐
나를 살찌우려
양분도, 지식도, 돈도 채웠건만
남은 건
살찐 빈곤 뿐
군중 속 허무
존재감은 오직 관계의 망
타인을 풍요케 함이 ‘나’
낮아지면 올라가는 ‘너’
넌 누구냐?
‘~의’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