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책에서 길을 묻다 - 참 믿음으로, 참 좋은 인생이 되는 길
김옥림 지음 / 북씽크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늦깍이 독서인으로서 “기독교인 책에서 길을 묻는다”하여 무척 기뻤다. 책에는 무한한 길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독서가 의무로 여겨져 늘 수면제 역할 밖에 하지 못하던 나에게 독서가 취미를 넘어 나의 인생을 열어주는 특기가 되어주었다. 나에게 두 가지 중독된 것이 있다. 하나는 운동(베드민턴)이고, 다른 하나는 독서다. 독서가 중독이 되어 아내의 드라마, 자녀의 게임과 같은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독서에 심취해 있다가 밥시간을 놓치거나 다른 일을 잊어버릴 때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독서에 심취하게 된 것이다. 독서를 통해 시도 쓰게 되고, 등단까지 하는 영광을 얻었다. 또한 너무 좋은 길을 수도 없이 찾아가게 되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말 궁금해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인이 책에서 길을 묻고 가면 반드시 신실한 크리스천, 참된 성도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저자 또한 독서를 통해 많은 책을 쓰게 되고, 강연을 하고, 훌륭한 인물이 된 산 증인이라 생각된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기탄잘리>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감동을 주고 있다. 기탄잘리가 지금 한국에 나왔다면 평단이나 시인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저자는 그의 평범한 글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 한다. 시는 어렵고, 심오하고, 난해해야 주목을 받는다는 편견에 문제점을 지적한다. 얼마 전 발표된 조선일보 신춘문예나, 중앙일보 신인작가상을 보면 조금 같은 느낌을 받았다. 중앙일보에 기고를 해 본 경험자로서 공감이 된다. 어쨌든 기탄잘리는 평범하면서도 깊은 찬양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타고르가 하나님을 그냥 글 그대로 평범하게만 써 나갔다면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직접 느끼는 하나님에 대해 가감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썼기 때문에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나도 기탄잘리에 도전을 받고 이제 내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하나님을 찬미해 보려고 한다. 시로 적어보려고 한다. 날자별로 시를 적어가고 있는데 찬미시만 별도로 적어보고자 한다. 하나님! 영감을 주시옵소서!

 

탈무드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담은 책이다. 탈무드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공기인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참 의미 있는 말이다. 공기처럼 거저주고, 보이지도 않고, 공치사도 안하는 공기 같은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참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말은 안 하지만 실제로 공기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즉각 공기의 부족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고, 언제든지, 돈도 안 주고 얻을 수 있는 공기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공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런데 늘 있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없으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그런 꼭 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공기 같은 사람! 멋진 말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한 말 중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무관심하다고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남의 마음을 읽으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읽어야할 것이다. 마음을 읽을 뿐 아니라 그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따라가는 자세가 중요할 것 같다. 마음의 소리에 솔직해 지자. 공자는 열다섯에 사람의 마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서른 살이 되어서는 방향이 겨우 보이기 시작했고, 마흔 살쯤에는 인생의 목표가 확고해 감에 따라 망설임이 사라졌고, 쉰 살에는 ‘내 인생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예순이 되니 나와 다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이런 삶의 방식도 있구나’라고 이해하며 반하지 않게 되었고, 일흔이 되자 나의 욕망이 타인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쉰이 넘은 나이에 생각해 보니 공감이 된다. 요즘 타인을 위해 살려고 애를 쓴다. 습관에 젖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몸부림쳐본다. 예순, 일흔 계속 잘 배워가야 할 텐데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몇 일 전 이어령 박사님의 <생명이 자본이다>를 읽었다. 참으로 깊은 사색에서 나온 현대인들에게 주는 결론 같았다. 그런데 이어령 박사님이 자료로 제시하는 책들 중에 내가 읽은 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니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책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보면서 침통했다. 나의 독서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정말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애들에게 책 읽으라고 늘 말해주는데 아직 말해줄 단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말에 아이들이 잘 안 들어주는 것을 보면 아직 말해줄 단계가 아님을 알고 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책에서 길을 묻고 답을 찾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더 깊이 우물을 파야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