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쁨 - 기쁨의 주권자와 동행하라
존 파이퍼 지음, 이상준 옮김 / 두란노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현재 미국에 부는 바람은 상당히 고무적인 것 같다. 번영의 신학이 잦아들고, 복음의 신학이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복음 중심의 신학의 원동력이 바로 존 파이퍼 목사님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현재 미국의 영성을 주도하는 목사님으로 알고 있는 존경받는 목사님의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 파이퍼 목사님의 주제는 기쁨이다.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을 기뻐함, 하나님 안에서 기뻐함 등이다. 특히 미국이나, 한국 등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나라에서는 그렇게 누리면서도 번영해야 한다는 신학이 여전한 흥미를 끄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끝이 없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인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번영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영적 갈급함이 결국 복음으로 돌아오게 된 것 같다. 너무나 감사하고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파이퍼 목사님의 하나님의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저자는 먼저 선포한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최고의 영광을 받으시는 순간은 당신이 하나님으로 인해 최고의 만족을 누릴 때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에 대한 만족이 무한대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에 대해 무한한 기쁨을 갖고 계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하나님으로 만족하기 보다는 세상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아니 둘 다 만족할 수 있지만 순서가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면 모든 환경과 조건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서를 바꾸면 결국 어떤 조건에서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헨리 스카우걸 목사님의 “인간 영혼 안에 숨 쉬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주제를 시작하고 있다. 그 내용에는 “인간의 영혼은 ... 그 안에 꺼질 줄 모르고 불타오르는 갈증을 안고 산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그것을 자신을 지으신 분에게 내어 드리지 않고서는 어떤 영혼도 진정한 기쁨과 본질적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나의 경험도 내 속에 알 수 없는 너무나 큰 갈망이 있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산기도, 금식기도, 작정기도 등 수도 없이 기도했다. 산에 올라가 원숭이처럼 나무에 매달려 은혜를 달라고 부르짖기도 했다. 그 갈망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갈증, 오직 하나님만이 해소 할 수 있는 갈급함이었다. 내 안에 그 갈급함이 있으니 너무나 감사하다.

 

하나님의 기쁨은 아들이신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기쁨이 되시기에 합당한 것은 유다 지파의 사자로서만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다양한 탁월성의 놀라운 조화’를 이루신 분이시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특성들이 참으로 놀라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한 높이와 무한한 겸손이 만나고, 정의와 은혜가 만나고, 위엄과 온유가 만나고, 선의 극치와 악으로 고통당하는 중에도 보이신 인내가 만나고, 순종의 위대한 정신과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최고 통치권이 만나고, 절대적인 주권과 완벽한 포기가 만나는 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잠10:1절에 보면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라고 한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듯 우리도 자녀들을 보고 기뻐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잘 따를 때 기뻐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아버지의 무한한 행복은 그 아들의 기쁨 안에 존재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최초의 위대한 기쁨은 그 아들을 기뻐하시는 기쁨이다.

 

하나님은 아들 뿐 아니라 선하신 기쁨으로 모든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넘치는 만족으로 창조 세계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성이 알려지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찬양할 민족을 기쁨으로 선택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아들에게 지우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이런 기쁨으로 모든 것을 보시고, 이루시고,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전 종족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데 디모데형 선교사는 많지만 바울형 선교사는 적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즉 교회가 있는 곳에 있는 성도들을 관리하는 데는 열중하는데 바울처럼 미전도 종족에게 가거나 불신자를 전도하는 목회자가 드물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잘 지적해 주고 있다. 이사야53:9절에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고 하고 있다. 예수님은 끝까지 죄인들과 함께 하셨다. 지도자는 내려갈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못 박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주변에는 목회하다가, 선교 하다가, 어려운 이웃을 돕다가 파산의 지경에 이른 목사님이 많으시다.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신 분들이다. 진정한 사랑의 목자다. 누가 그들을 실패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성공자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사신 분들이다. 내가 잘 아는 목사님도 그런분이 계신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듯이 좋은 길로 인도함 받을 것을 믿는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문단이 어딘가요? 롬3:23-26절이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화목제물 삼으셨다.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 하나님이 아들을 버리셨으니 비난받아 마땅한가? 이 방법을 택한 것은 불경건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방법이었다. 삼위 하나님이 고통을 감수하시면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내주는 고통을 당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는 고통을 당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죄인이 죄악 속에 있는 것을 바라보시고, 죄의 수렁에서 이끄시는 일을 감당하시는 고통을 당하셨다. 삼위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감당하심이 우리를 살리게 된 것이다. 우리를 기뻐하시기 위해 성부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내어 던지는 아픈 기쁨을 택하신 것이다. 마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수술실에 들여보내는 아버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기뻐하신다. 우리가 정직하게 기도할 때 기뻐하신다. 또한 우리가 순종과 정의를 실천할 때 기뻐하신다. 이 책의 요점은 스바냐 3장 12절에 나오는 하나님은 만물보다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시고 그분 자신의 완전함이라는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끝없이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특별식을 만들 때 주방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신다. 하나님이 특별히 만족스런 음식을 찾으실 때는, 응답할 기도를 찾으신다. 우리의 기도는 부엌에서 왕의 침실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하나님이 시장하셔서 식사를 하고 싶으시게 만든다. 향기를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먹고 싶은 마음처럼 응답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식사를 즐기시는 것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그분의 영화로운 일이다. 즉, 하나님의 음식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기쁨에 대한 그분의 식성을 만족시키는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하나님 안에는 채워야 하는 결핍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의 결핍을 채우심으로 자신의 영광의 부요함을 높이시고, 그렇게 자신의 만족을 얻으신다. 하나님이 누리시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대접하고` 싶은가? 기도라는 빈 잔을 들고 나아가, 하나님이 그것을 채우심으로 그분의 영광의 부요하심을 보일 수 있도록 하라. 얼마나 멋진 분이신가? 이렇게 주기를 좋아 하시는 분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하나님! 지금 이 시간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나도 하나님을 닮아 누구든지, 뭘 원하든지, 바라는 것을 마음껏 주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줄 수 있는 복을 주옵소서!

 

은혜는 용서가 아니라 능력이다. 은혜는 단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베풀어지는 관용이 아니다. 은혜는 죄를 짓지 않도록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은혜는 단순한 용서가 아니라 능력이다. 성경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여기서 은혜를 자신의 사역을 감당케 한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은혜 받고 그 때부터 순종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아니라 은혜의 지속, 계속되는 은혜 아래 거하면 순종이 나타나고, 순종이 이뤄지면 능력은 저절로 나타난다. 은혜를 용서 받은 것만으로 축소시키고 은혜 받은 이후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은혜는 떠나고 은혜가 능력이 되지 못한다. 은혜는 용서와 순종과 능력으로 죽 이어가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성공이 무엇일까? 소요리문답 1조 1항에는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인간의 성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답이 나왔을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최고의 영광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시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승리의 삶과 행복의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있고, 하나님 또한 의지함을 기뻐하신다. 우리는 모든 상황과 사건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로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결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건강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께서 치료하신다. 치료하심을 선포하며 기도의 향기를 올려드린다. 흠향하시고, 고치시고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내가 간증하겠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