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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힘
에릭 M. 우슬러너 지음, 박수철 옮김 / 오늘의책 / 2013년 11월
평점 :
우리 집은 단독주택이다. 문을 열어두고 다닐 때가 많다. 지금은 문고리가 자동으로 잠기게 되어 있었지만 전에는 일부러 잠그지 않으면 잠기지 않기 때문에 거의 잠그지 않고 다녔다. 지금도 물론 창문을 일부러 잠근다든지 하지 않는다. 물론 훔쳐 갈 게 별로 없어서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처럼 삭막한 세상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게 편하고 익숙해져 있다. 아마 내가 의심과 불신의 마음이 가득차 있었다면 절대로 문을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이 안 잠기면 집이라도 이사를 갔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겉으로 굳이 말하지 않는 그런 신뢰가 있나보다. 너도 나도 모든 사람들이 서로 믿고 사는 세상만 된다면 조금 못 살아도, 덜 먹어도, 덜 누려도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신뢰로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신뢰와 세상은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를 알아보자.
과일 가게 주인이 무인 가판대를 만들어 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금 통에 돈을 알아서 넣고 과일을 사 간다. 물론 가끔 그냥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 두 사람 때문에 무인 가판대를 포기했다면 그 주인은 과일 가게의 문을 닫았을 것이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도 가끔 말도 안 되는 크레임을 걸어 반품을 요구한다. 몇 일씩 사용하다가 다시 가져와 교환해 달라고 한다. 아예 망가진 것들도 요구를 한다고 한다. 만약 심하게 말해서 백화점 사장이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면 백화점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우리 사회는 믿을만한, 신뢰의 사회라는 반증이다.
신뢰로 귀결되는 낙관론은 단기간의 기대에 좌우되지 않는다. 낙관론자는 단순히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매일매일이 전날보다 더 나아야 한다. 이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으로 보일 수 있다. 세상이 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쁜 날은 예외적인 날이어야 한다. 만일 신뢰가 단기간의 경제적 전망에 따라 변한다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등락을 거듭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안정적 가치가 아니다. 일반적 신뢰의 기반인 낙관론은 세상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낙관론자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으로 믿는 것은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낙관론자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다. 마틴 셀리그먼의 지적대로 “나쁜 상황에 직면할 경우 낙관론자들은 그것을 도전으로 인식하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념은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실 항로를 바굴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일반적 신뢰를 북돋을 수 있는 것 같다.
신뢰의 전략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누구를 믿거나 믿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신뢰는 우리의 경험을 반영한다. 신뢰하는 성향은 바뀔 수 있고, 우리는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을 전략적 신뢰라고 하는데 계속해서 증진시켜야 한다. 이 전략적 신뢰는 다름 사람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그들을 믿을 만한 근거도 없다. 신뢰는 부모의 영향이 크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신뢰관계가 형성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신뢰 관계가 잘 구축된다. 낙관론이 신뢰에 미치는 영향은 신뢰가 낙관론에 미치는 영향보다 2배 크다. 따라서 사회적 분위기를 낙관론으로 만드는 것이 신뢰사회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부모의 영향이 신뢰 형성에 영향을 준다고 했는데 어떤 면이 그렇게 나타나는가? 특히 자율권이 중요하다. 자율권양은 부모의 대인 신뢰가 아이들의 대인 신뢰를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요인이다. 자기 가족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들은 타인을 믿을 가능성이 12%나 높다. 친구를 스스로 선택하는 아이들은 타인을 믿을 가능성이 8% 높고, 자유롭게 부모의견에 반대하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믿을 가능성이 5%높다.
신뢰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개인적인 관계 형성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먼저 손을 내미는 사회가 되면 그 사회는 신뢰사회가 된다. 신뢰도 시민참여도 상호주의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다른 사람을 신뢰하기로 결정할 때 아는 사람들을 근거로 삼지 않는다면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에 관한 소문 또한 근거로 삼지 않을 것이다. 신뢰는 전염효과가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먼저 손 내미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믿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로부터 낯선 사람들에게로 이어지는 신뢰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변했다. 삶의 속도가 더 빨라졌고 다들 각자의 속도로 움직인다.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식 온상에서 살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연이 성공을 갈망한다. 이런 사회에서 신뢰를 강화하기는 그만큼 더 어렵다. 신뢰 관련 질문이 최초로 등장한 1960년대의 58%에서 1996년의 36% 수준으로 감소했다. 무엇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는가? 그 해결점은 무엇인가? 소득이 높아지면 신뢰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낮다고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 신뢰의 추진력은 소득이 아니라 낙관론이다. 불평등한 세상에서는 신뢰가 꽃피우지 못한다. 최상층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신뢰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신뢰구축의 가장 큰 요인은 국가가 얼마나 부요한가가 아니라 소득이 얼마나 공평하게 분배되는가이다.
물질적 번영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위험에는 타인에 대한 신뢰도 포함된다. 남을 믿는다는 것은 일단 의견이 다른 부분을 제쳐두고 서로의 공통점을 모색하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을 만하다는 추론적 도약은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해준다.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일수록 서로에게 호의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를 믿는 사회에서는 집단적인 결정에 도달하기가 쉽다. 낯선 사람들을 신뢰하는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을 믿는 사회일수록 그들과의 교역에 나설 가능성이 더 높다.
신뢰는 도덕에 기초하고 있다. 국민이 정부를 믿고, 노측이 사측을 믿고, 국민 서로서로 믿는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는 천국과 같은 사회일 것이다. 이런 사회는 누군가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즉 낯선 사람들에게도 먼저 손을 내미는 덕목이 필요하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제대로된 도덕을 배우는 사람들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따라서 학교, 사회, 가정에서 먼저 도덕이 가르쳐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집부터 아이들에게 남을 믿는, 아니 내가 아이들을 믿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결정권을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