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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ㅣ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1
조승연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결혼식 주례를 일 년에 몇 차례 하는 편이다. 결혼의 의미를 신랑의 호칭, 신랑 신부 위치, 신부의 의상 등에서 찾아 설명하여준다. 신랑 신부 혹은 하객들도 아주 좋아 한다. 그 의미를 몇 가지 설명해보자.
결혼식에서 신랑의 상징은 백마와 칼이다. 칼을 차고 말을 탄 신랑은 용감하게 신부를 지키라는 의미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성경에 주님이 성도를 사랑하듯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 죽도록 사랑해야 한다. 흔히들 남자를 백마 탄 기사라고 한다. 왜 하필이면 백마 탄 기사인가? 멋있어서인가? 아니다. 부자라서 그런가? 아니다. 빠른 말을 타고 와서 아내를 구해주는 기사라는 의미에서 백마 탄 기사다.
왜 신랑이 결혼식 때 왼쪽에 서는가? 신부를 빼앗아 가려고 할 때 왼 쪽에 찬칼을 빼서 아내를 목숨을 걸고 지키기 위해서다.
옛 어른들은 남편의 호칭으로 “우리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남존여비에 의해, 혹은 잘못된 전통에 의해 나온 호칭이 아니다. 존경해서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분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남편을 위해 불러주는 게 아니라 아내를 위해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런데 아내들이 스스로 아내들을 위한 ‘주인’이란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남편들이 아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결혼식에 신부가 면사포를 안 쓰는 경우는 없다. 다른 것은 생략해도 면사포는 절대로 생략하지 않는다. 머리 위에 쓰는 모자나, 수건 등의 것들은 모두 자신 보다 높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표시다. 신부가 면사포를 머리 위에 쓰는 것은 나는 남편 아래 있어 순종하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순종하며 살 것이라는 약속의 표시다. 신부는 이미 면사포를 썼기 때문에 약속한 것이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 성경에 아내는 남편에게 성도가 주님께 하듯하라고 한다.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 자신과 가정을 위해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남편을 존경하고, 힘들 때 위로하고, 그 뜻을 잘 따르는 아내가 될 때 그 남편은 더욱 기가 살아 출세할 것이고, 가정은 평안해 질 것이다.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오직 흰색이다. 웨딩드레스를 칼라로 하는 경우는 없다. 칼라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이 아니다. 신부가 아니다. 흰 색은 정결과 기쁨이다. 신부는 정결이 생명이다. 결혼은 앞으로 정결하겠다는 약속이다.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겠소하는 약속이다. 흰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하고 다른 남자를 품는 것은 결혼을 깬 것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을 하고 장동건을 더 좋아 하면 불법이다. 외도다.
흰 색은 기쁨이다. 아내는 남편의 기쁨조가 되어야 한다. 아내가 기쁨이 되지 못하면 아내가 아니다. 음식으로, 웃음으로, 몸매로, 말로, 사랑으로, 섬김으로, 깨끗한 옷으로 기쁨조가 되어야 한다. 이게 흰 옷을 입고 결혼하는 의미이다.
이 책에도 보면 ‘사랑과 전쟁’이란 말이 있다. 지금의 의미와 조금은 다르지만 과거는 사랑은 곧 전쟁이었다. ‘약혼’을 뜻하는 단어 ‘engagement'는 전쟁의 ’교전‘을 뜻하기도 한다. 중세의 유럽은 결혼이란 살벌한 비즈니스였다. 혼기가 찬 아들을 준 집안이 딸이 있는 집안과 혼사를 맺고 싶으면 남자쪽 집안 친인척의 남자들이 모여 도끼와 방패로 무장하고 여자 집으로 가서 모조건 딸을 달라고 횡포를 부리는데 이것은 그냥 ’협상하자‘는 뜻이다. 합의가 이루어지면 결혼 지참금(여자는 딸에게 물려줄 유산에 대한 선금, 남자는 여자를 키우는데 들어간 돈 권리금, 며느리를 통해 태어날 아기 낳는 임대료, 아이들의 양육비 등을 선금으로 내야 했는데 이 액수가 합의가 이루어지면 결혼이 성사된다. 계약금이 프랑스어로 ’gage'였기 때문에 ‘서로 계약금을 지불했으니 약속된 사이다’라고 해서 약혼, 즉 약속된 사이를 ‘engaged'라 했다. 이 계약이 서로 지켜지지 않으면 비극으로 결말나는 경우도 많았다. 전쟁도 한 번 칼을 뽑거나 총이 발사되면 사람의 의지와 상관 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engage'는 ‘전쟁이나 전투에 임한다’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또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도 임금, 즉 ‘wage'를 주는 대신 그 사람에게 계속 일을 시키겠다고 약속을 한다는 의미에서 ’고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약혼을 하는 것과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과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모두 같은 단어라니, 기혼자들은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뭔가 큰 수수께끼가 풀리는 기분일 것이다. 남편을 뜻하는 단어 ’husband'를 보자 ‘house'는 잘 알다시피 ’집‘을 뜻하고, ’band'는 ‘묶는다’는 뜻이다. 영국에서 집이 없는 남자에게는 결혼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말이 남편이란 뜻이 되었다. 로마인들은 노예에게 발찌를 채웠는데, 이는 밤에 몰래 도망가지 못하도록 쇠사슬을 걸기 우함이었다. 결혼반지도 같은 원리였다. 로마인들은 네 번째 손에 가락에 ‘마음의 핏줄’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다가 조그마한 무쇠로 된 일종의 반지를 채워 놓으면 여자의 마음을 평생 구속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결혼반지에 열쇠로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족쇄였다. ‘결혼반지’란 뜻의 ‘wedding band'의 ’band'가 ‘집에 묶였다’라는 뜻의 ‘husband'의 ’band'와 같다는 것을 눈여겨보기를 바란다. 더 심한 것은 ‘wife'가 독일어로 그냥 ’여자‘를 뜻하는 ’Weib'과 같은 어원이라는 것이다. 즉 ‘wife'란 뜻은 ’내 소유의 여자‘라는 뜻이다.
기타 수많은 단어들의 유래들이 아주 흥미진진하다. 그 의미를 찾아보니 씁쓸한 것들도 너무 많다. ‘슬로바키아’인들이 야만적이어서 노예로 잡아다 쓰다보니 ‘노예’라는 단어가 슬라브인들의 의미하는 단어인 'slave'가 되었다니 슬라부인들의 수치이기도 하다. 하기사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조센진’이라 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 또한 일본인들을 ‘쪽바리’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국력이 강한 나라들의 언어가 남는다는 의미에서 ‘slave'가 남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도 ’조센진‘이 남지 않고 ’쪽발이‘가 남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우리가 더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