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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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 남들이 하지 않는 모험은 천재들만이 하는 짓이다. 천재가 뭐 다를 게 있는가? 남들이 하지 않는 짓을 하는 이들이 천재가 아닌가? 몇 년 전 작가 신경숙씨가 <엄마를 부탁해>에서 어렵게 느껴졌지만 새로운 시도로 더 텍스트를 빛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냥 잘 쓰는 글과 새로운 것을 가미한 글을 음식으로 하면 데코레이션을 멋들어지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역사소설, 쉽지 않은 장르인 것 같다. 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고, 그 시대의 언어를 구사하며, 그 당신의 분위기에 젖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역사 소설과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잘 엮는다는 것은 대단한 아이디어와 탁월한 위트가 필요한 것 같다. 역사적 인물을 현대로 가져와 등장 시킨다는 발상을 어떻게 했을까? 몇몇 시간 여행을 해 현대의 인물이 과거로 가는 경우는 있지만 현대로 오고, 과거의 한 인물이 아닌 여러 인물임을 가상한다는 것은 정말로 탁월함이 엿보인다.

 

제목부터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홍도’ 섬을 말하나, ‘홍도야 우지마라’의 홍도를 말하나, 아니면 붉은 복숭아 홍도를 말하나, 먼저 궁금증을 유발하는 효과를 본 것 같다. 그러나 정작 홍도의 의미가 당나라 시인 설도의 자인 홍로를 따서 시도 잘 짓고 도가의 도인이 되어 세상을 두루 살피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으면 좋다는 생각에 지었다는 이름 ‘홍도’ 그러니 제목이 더욱 빛난다. ‘홍도’ 자칫 기구한 운명으로 전락한 주인공을 가시덤불 속의 장미로 만들어내고 있다. 홍도가 겪는 아픔들이 곳곳에 등장하나 아픔 보다는 그 아픔을 이겨내는 당당함, 주변의 지인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 늘 행복 모드로 살아간 인생이란 느낌이 든다. 현대의 각가지 어려움 속에 사는 우리네 모습의 단상 속에서 ‘홍도’같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아니 내가 마치 홍도가 된 기분으로 들뜨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 과거의 인물 묘사는 물론, 현대의 동현과 대화하는 중에 ‘홍도’는 실제 인물로 만나고 싶을 충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홍도가 아버지의 역적으로 몰려 태형에 처하고, ‘홍도’란 이름을 지어준 죽도 할아버지 또한 능지처참을 당하고 만다. 당시 광해군의 폭정에 간신배들의 마녀사냥에 몰려 몰사하지만 정여립이란 인물을 통해 그가 목숨을 버려 희생함으로 나라를 진정 구할 수 있었음을 말한다. 즉 대동회를 구성해 활동하다 박해가 오자 ‘필생금대동’(必生琴大同), 즉 대동을 반드시 해체하라. 구국을 위해 모인 대동을 왜 해체하란 말인가?

 

“자치기가 들고 나타났다던 편지는 죽음을 각오하고 대동계를 지키라는 반어법이 아니라 뜻 그대로였다. 반드시 대동계를 금하고 탄압하라! 이중플레이였다. 한쪽에서는 대동을 널리 가르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대동을 탄압하지만 그들은 결국 모두가 같은 대동계원들! 본래 백성이란 하지 말라하면 할수록 기를 쓰며 하겠다고 덤벼드는 게 백성들이니까! 대동계의 해산과 정여립이 내린 편지는, 백성들로 하여금 들불처럼 일어나게 만드는, 반란과 반역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혁명을 꿈꾸던 정여립의 카운터펀치였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민중의 기저로부터의 변화, 그래서 모든 민중이 다 대동계원이 될 때까지 민중 속에서 혁명을 일으키라는 것이다. 전 민중이 대동계원이 되게 하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사실 대동계원들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들 민초들의 변화 없이는 혁명을 없다. 결국 기득 세력들의 저항과 깨우쳐지지 않은 민중들의 부화뇌동이 뒤범벅이 되면 떼어낼 수도 없는 새로운 문제거리만 만들 뿐인 것이다. 그래서 정여립 등의 생각이 깬 대동계원들은 민초로부터의 변화, 혁명을 꿈꾸며, 더디지만 확실한 신세계를 추구했던 것이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모양새로는 확실히 성취되지 않았는가? 정여립, 자신의 대에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지면 아래 에너지를 모으고 모아 메가톤급 지진을 일으키듯 확실한 민중의 시대를 연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방안, 처신의 큰 틀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어도 죽지 않는 정신, 살아도 살지 않은 사상, 죽어서 살아난 신념이지 않을까? 이것을 작가는 예수님의 희생과 제자들이 배출로 이어가고 있다. 그런 개념들이 결국 홍도라는 인물이 한 인물로 끝나지 않고, 홍도-미가륵-정주-이영과 김한빈-백다록-얀 얀센 꼬르버-김동현(자치기)로 이어지는 계보가 두 사람을 이어 지금의 민초들의 신세계를 만들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 소설은 남녀의 사랑과 관심의 감정, 역사의 아픔과 고통을 돌아보는 계기, 민주화를 통하 신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 등을 모두 담고 있다. 구구절절마다 긴장감도 있고, 현대의 홍도와 동현의 대화 속의 유머까지 멀티 감각을 엿보게 되었다. 혼불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라 인정된다. 김대현 작가의 대성이 기대된다. 좋은 작품을 읽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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