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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여류 소설가를 대표하는 작가 공지영이 새 작품을 냈다. 이번엔 천주교 사제 이야기다. 아니 신앙이야기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깊이를 쓰고 있다. 사랑의 종류,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성간의 사랑은 어떻게 맺어져야 하는가?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간의 간극은 어떻게 매울 것인가? 매우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 후기에도 말했듯이 한국의 성인, 한국에서 성자로서 한국을 사랑한 사제들의 사랑을 실고 있다. 깊이 있는 삶, 희생적인 삶을 향해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요즘들어 가볍고, 혼란스럽고, 자극적인 글이 쏟아지는 이 때에 참 된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심연의 세계를 여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수사 요한, 정요한이 겪는 일들로 엮어 가고 있다.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니고, 수도원에 입교하여 수련을 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 동료 수사 미카엘과 안젤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미카엘은 무단으로 정의 구현을 위해 시위 현장에 뛰어드는 현실 세계의 정의를 부르짖다 경찰에 연행되어 무단 이탈이 발각되어 아빠스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징계 중에도 가난하고 억압받는 아이들을 야학에서 가르쳤다. 이 일을 돕기 위해 차량 운전을 해 준 안젤로와 새벽에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 트럭에 의해 사고를 당함으로 둘이 꼭 껴안고 불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사건을 당한 정요한 수사는 아빠스님의 조카인 소희와 사랑에 빠져 사제의 길과 한 여인을 사랑하는 길 둘 중에 갈등하던 중 그래도 용기를 내어 소희를 사랑하기로 한다. 그러나 소희는 나이 많은 미국에 사는 약혼자와 떠나게 되고 결국 어쩔 수 없이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주님으로부터 “그녀를 사랑하라, 그녀에게로 가라”는 음성을 분명 들었는데 왜 그녀를 떠나게 하시는지 주님께 불만을 토로 한다. 그러나 결국 떠나는 소희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그녀를 떠나 보내고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사제의 길을 무기력하게 걷게 된다.
정요한 수사의 할머니, 자신을 어려서부터 키워준 할머니로부터 6.25의 아픔을 겪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할머니가 사랑한 남자는 공산주의자, 그러나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중공군의 침략으로 후퇴를 하던 중 배에 올라야 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들을 배에 올리고 결국 자신은 배를 타지 못한다. 그 후 그는 죽고 배는 기적적으로 정원을 엄청난 숫자로 초과하고서도 안전하게 항구에 도착하게 된다. 나중에 그 배의 선장이 과학적으로 아무 대책이 없음에도 무조건 다 태우라는 명령에 차고 넘칠 정도로 싣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항구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 희생의 마음 속에 임신 중인 할머니로부터 정요한 수사의 아버지가 태어나고, 그 희생 정신을 통해 정요한이 살아 갈 수있게 된다. 결국 할머니는 사랑하는 남편을 희생시켜 자신이 생명을 얻고, 배의 선장 또한 배가 다 침몰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릎쓰고 희생함으로 정요한이 살아나게 된 것이다. 이런 희생으로 자신이 생명을 얻고 지금껏 살아 왔다는 사실을 몰랐던 정요한 수사는 결국 소희를 떠나보내고 사랑의 희생의 길을 걷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일은 정요한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명을 얻는 사람으로서 보답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면서 소희의 삼촌인 아빠스님의 설득으로 소희를 미국으로 떠나보내게 된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소희를 사랑한 것이 당시에는 최선이고, 최고의 길이라 생각했지만 더 나은 길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지상에서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에서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살아 있었으면 그저 그렇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을 평범하고 시시한 한 사람의 생이 죽어서야 모든 이의 삶 속에 선명해지는 것. 아마 대표적인 이가 예수였겠지.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이 아닌까”
“당신의 남편은 그 아이 둘을 사다리로 올려 보내려 했습니다. 안 된다고 내가 소리쳤죠. 나는 거칠게 사다리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 때 나는 보았죠. 어린 계집아이 둘이 사다리 끝에 대롱거리면서 매달려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을요. 그리고 당신의 남편이 그 두 계집아이 대신 부두에 남겨져 서 있는 것을요. 배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후였어요.”
“사랑이란 .... 요한, .....사랑이란 모든 보답 없는 것에 대한 사람이다!”
“그녀를 통해 나는 지옥은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독재자들이 왜 마지막에 착란으로 가는지 얼핏 알 것도 같았다. 아아, 선악과는 그래서 반드시 낙원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만일 선악과가 없었다면, 신성한 금기가 없었다면 그건 이미 지옥이리라. 그래서 그 금기가 범해진 이후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 살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내쫓으신 게 아니었다. 그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성스러운 금기가 없어진 그곳은 순식간에 낙원이 아니었을 테니까.”
정요한은 꿈을 미카엘 꿈을 꾸었다. 미카엘이 갑판 아래로 떨어졌다. 정요한은 줄을 던졌다. 그런데 줄을 잡고 올라오는 대신 칼을 하나 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칼로 밧줄을 끊고 떨어져 내려. 떨어져 내린 사람만이 배로 올라올 수 있어”
현실의 사랑, 사람을 사랑함, 하나님을 사랑함의 각기 다른 것 같은 문제들을 한 곳으로 엮어주는 것 같다. 이것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랑이라고, 내려가는 사람, 갖지 않고 주는 사랑, 소유하지 않고 던지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임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높고 푸른 사다리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사다리는 내려가기 위한 사다리라고 하는 듯싶다. 나는 하나님께 가는 길이 늘 올라가는 것, 즉 사다리란 올라가는 것만으로 생각했는데, 내려가야 올라갈 수 있고, 내려 가는 길이 올라가는 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내려가는 사랑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닐 게다. 할머니의 남편처럼, 미카엘과 안젤로처럼, 배의 선장처럼, 아빠스님처럼, 모두 모두 내려가는 사랑을 하신 성인들이다. 내려갈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