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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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님의 별세, 그 후 그동안 써서 남기신 작품이 있다는 것에 흥분되었다. 어떤 작품들이 남아 있을까? 따님이 모아둔 것을 책으로 펴냈다. 이전의 책들도 좋지만 돌아가신 후 남긴 작품을 읽는다 생각하니 더 설레었다. 그 자품들의 세계는 노년을 넘어 만년, 격동을 넘어 잔잔함, 깊이를 넘어 심연의 세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목이 노란집이다. 아파트를 떠나 산에 가까운 자연에 드리운 노란색 집에서 남은 생애를 보내면서 적어간 글들이다. 내가 어떤 평을 하거나, 느낌을 적는 것보다 글 자체를 적고, 그냥 느껴보는 것이 더 좋으리라 생각된다. 몇 문장을 옮겨보고, 나의 감동을 적어보자.

 

<그들의 추수> “결국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주는 대신 공부시키기를 택함으로써 땅을 배반했다. 그러나 땅은 그들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들이 땅을 판게 아니라 땅이 알아서 그들 나이에 근력에 부치지 않을 만큼만 남고 떠나는 것처럼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사람이 땅을 지배한게 아니라, 땅이 노부부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죽지만 자연은 남는 것처럼, 사람은 땅에서 떠나지만 땅은 지금도 유구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도 우리를 가르치면서...

 

<꿈은 사라지고> “영감님이 화가 나는 건 자식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다. 자식들보다도 자기가 더 땅값이 치솟아 농사 안 짓고도 떵떵거리며 살게 되길 바라고 있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 떵떵거리며 살려무나, 이런 한심한 늙은이, 아침저녁으로 양철통이라도 두들겨 패야 이 울화가 달래지려나나?”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준 땅에 마음으로 배신한 자신을 반성하는 솔직함이 존경스럽다. 이것을 땅에서, 땅과 함께, 땅을 의지하고, 땅을 벗삼아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솔함이다. 땅에서 배운 거짓 없는 삶을 드러내주는 글이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내 다리를 나하고 분리시켜 아주 친한 남처럼 여기면서 칠십 년 동안 실어 나르고도 아직도 정정하게 내가 가고 싶은 데 데려다주고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땅과 나를 연경시켜주는 다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늘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러나 산이 나를 방아주지 않으면 이런 복을 어찌 누릴가. 눈 온 산이 아니더라도 산에는 평지와 다른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 노구를 받아주소서, 산에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도 울렁거림과 함께 차분한 경건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다.” 늘 나하고 붙어 있는 다리에 감사한다. 내 다리를 내것이라 생각하고, 나라고 생각하지 나를 위해 붙어서 수고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어찌 다리뿐이랴. 모든 자연이 나를 위해 존재해주고, 나를 받아줌에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답고 짠하다. 이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으며, 어찌 글이 나오지 않겠는가? 글은 아무나 쓰나.

 

<치매와 왕따> “치매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에는 노망을 죽기 전에 정신이 서서히 몽롱해지는 상태 정도로 여겨 그다지 겁을 내지 않았다. 병이 먼저 생기고 나서 병명이 생긴 게 아니라, 병명이 생겼기 때문에 덩달아서 병이 생겨난 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우리 나이 또래들이 하도 치래를 두려워하는 걸 보니까 치매 공포증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만들어보고 싶은 짓궂은 생각도 해 본다. ...... 왕따라는 말이 있기 전에도 동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는 있어왔다. 그러나 끝끝내 외톨이로 남는 아이는 별로 없었다. 비슷한 외톨이를 만나 어울리기도 하고, 고고한척 특별하게 보여서 도리어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야 말로 초등학교 5학년까지 외톨이였다. 시골뜨기라고 이지메도 적지 않이 당했으니 요새로 치면 갈 데 없는 왕따였다. - 중략 - 따돌리는 친구들을 두려워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의 집단적인 소심증을 여유 있게 경멸할 수 있는 늠름한 태도도 왕따를 면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글쎄 .....요새 세상에도 그런 고전적인 방법이 통할는지는 잘 모르겠다.” 노망, 노인이 되어 점점 잊어버리는 병, 그래 노인이 되면 원한도, 미움도, 상처도, 욕심도, 점점 잊어버리고, 단순하고 멍하게 사는 것이 노년을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요양원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데 치매 혹은 연로하신 어른들을 보면서 참 감사하다. ‘노망’ 점점 자신을 잊으면서, 이 땅의 것들을 잊으면서 하늘의 것들을 바라보는 새 세상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는 분들이라 생각한다. 곤충이 애벌레를 벗어 던지고 나비로, 새로운 성충으로 변신하듯 말이다. 너무 이 땅의 기준으로, 현세적인 생각으로만 볼 것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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