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늘 눈치를 보는 걸까
박근영 지음 / 소울메이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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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전 아내와 진지하게 고민 이야기를 했다. 다른 친구들이 자기에게 차량운전을 부탁을 하는데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못하겠다고 하면 그들의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나 때문에 일정에 차질은 없을까? 나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나를 미워하지는 않을까 등등의 고민이 많다. 그야말로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휴게소에 들러 차를 마시고 싶으면 나는 내가 먹고 싶은 차가 있으면 가서 마신다. 그래서 차를 들고 차에 들어오면 아내가 난리가 난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 것만 들고 들어올 수 있느냐고, 이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차를 다 사든지, 아니면 당신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을 다 눈치를 보고 살 수 있느냐고 하며 입씨름을 한다. 나는 너무 눈치를 안 봐서 가끔 친구들에게 눈치가 보일 때도 있다. 어디까지 봐야하는 게 눈치의 적당함일까 늘 궁금하다.

 

원래 눈치는 좋은 것이 었다. 원시인 때는 눈치가 없으면 사냥도 못하고, 사냥하는데 끼워주지도 않고, 나중에는 먹을 것도 분배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이처럼 눈치는 인류가 발전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눈치는 대상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대상에 접근해 상황을 살펴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기 때문에 눈치를 보는 사람은 주의가 각성되어 있고 긴장이 지속된다. 만약 아무 이유도 없이 늘 눈치를 보고 있다면 눈치도 병이 된다. 문제는 불안이 필요한 상황과 눈치가 필요한 상황을 마음대로 분리하거나 조절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불안과 눈치가 동시에 활성화되면 쉽게 혼란에 빠진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에서는 불안과 눈치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없다. 도망가고 싶은 불안 속에서 원하지 않는 눈치를 보면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회가 조직화되고 복잡해질수록 눈치와 불안이 얽혀서 만드는 스트레스가 더욱 높아져서 무기력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불안과 눈치는 적응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불안과 눈치가 오작동하거나 과잉작동하면 심리적 이상이나 부적응을 일으킨다. 물론 작동이 정지되어도 문제가 된다.

 

친해씨(눈치를 잘 못보고 순수한 마음에 친해지고 싶은 마음만 있는 사람)는 눈치없이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가지만 그의 눈치없음에 사람들은 당황한다. 친해씨는 친해지고 싶어 다가가지만 정작 친해지지 못한다. 둔감씨(자기 자신만 알고, 공부는 잘하는데 남들 눈치를 안보는 로봇 같은 사람)는 공부는 잘해서 좋은 대학도 나오고 자격증도 많은데 정작 직장에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기계 같은 사람, 로봇 같은 사람이라 핀잔을 듣는다. IQ는 발달했는데 EQ는 발달되지 않은 사람이다. 대인지능지수가 낮은 사람이다. 나이론씨(이론에는 밝지만 정작 실전에는 젬벵이다. 지식은 많으나 실전에 적용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는 “배운 사람이 그것도 모르나”는 말을 듣는다. 똑똑한 것으로는 부족하다. 눈치를 지혜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수동씨(지나치게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 수동적인 사람, 의존적인 사람)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의견을 말씀해보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자기 의견을 물을 때 걱정이 되고, 상대가 어떤 의도로 물었는지 몰라서 눈치가 보인다. 눈치를 물고 태어났다. 수동씨는 “뜻대로 하세요. 전 따르지요”라고 말한다. 변덕스러운 부모 밑에 아이들은 눈치만 보게 된다. 이런 양육을 받은 아이들은 의존과 애착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 사람한테 목매지 마”라는 소리를 늘 듣는다. 변덕스러운 부모는 잘못된 눈치를 심어주는 불완전한 양육자인 것이다. 순응씨(무슨 말을 하면 “네 알겠습니다.”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순응씨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눈치를 잘 봐서 오래 직장생활을 잘하고, 직장 상사의 마음을 잘 알아 척척 일을 해결한다. 그러나 또 다른 반응은 늘 청개구리처럼 엉뚱한 일을 벌인다. 긴장을 해서 잘 못 이해하는 사람, 노력을 하지만 그런 기능이 떨어져 적응하지 못한다. 또한 눈치를 너무나 잘 보지만 그 속에 다른 마음을 품는다. 순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고 한다. 즉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의 그림자 속에는 자기에게 막강한 힘이 있어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눈치를 보도록 하고 싶은 욕구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독재자, 불량배 두목, 사이비 교주는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의 가장 미성숙한 그림자다.

 

부적응적 눈치의 7가지 특징은 첫째, 폐쇠적 눈치는 부적응적이다. 둘째, 변덕스러운 눈치는 부적응적이다. 셋째, 자기소진적 눈치는 부적응적이다. 넷째, 자기부재의 눈치는 부적응적이다. 다섯째, 불균형적 눈치는 부적응적이다. 여섯째, 착취적 눈치는 부적응적이다. 일곱째, 집착적 눈치는 부적응적이다. 반대로 적응적 눈치의 특징은 첫째, 일을 하는 경우라면 눈치를 멈춰야할 순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관계를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려면 융통성을 발휘해서 눈치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을 힘들게 하는 눈치증후군은 8가지가 있다. 첫째,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보는 눈치, 둘째, 남과 비교하느라고 보는 눈치, 셋째, 의존심 때문에 보는 눈치, 넷째, 관심을 끌려고 보는 눈치, 다섯째, 어느 편인지 알려고 보는 눈치, 여섯째, 세상이 험해서 보는 눈치, 일곱째, 남을 이용하려고 보는 눈치, 여덟째, 눈치 과잉으로 인한 불면증, 신체화, 핑계 등이 있다. 이 모두 눈치로 인한 부정적 결과이다. 눈치는 좋은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된 눈치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잘못된 눈치에서 풀려나는 7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마음을 열고 현재와 마주하기: 둘째, 비교를 멈추고 휴식하기, 셋째, 자기 찾기 와 주장하기, 넷째, 피하지 말고 감정에 머무르기: 관심과 애정을 왜 자꾸 확인하고 싶을까? 그러면 안 된다. 남이 주는 애정에 내 행복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모든 행복의 기준이 남에게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만 뒤틀린 환경이 되어도 나는 불안하고, 불행하다. 나의 행복을 남들이 좌우하게 둬서는 안 된다. 다섯째, 중간지대를 만들어서 균형 잡기: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은 옳지 않다. 내편이라고 생각하면 언제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반면 적이라 생각되면 나를 해칠까 두려워 진다. 중간지대를 둬서 늘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나를 믿고 나를 지켜야 한다. 여섯째, 인생의 불확실성 수용하기, 일곱째, 삶의 가치에 따라 행동하기

 

나는 눈치를 너무 안보는 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눈치 없다는 핀잔을 듣는다. 너무 많이 보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너무 안 보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적당히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인간관계에 윤활유와 같다. 눈치란 인간이 밀접하게 다가올 때 나타나는 것들인데 인간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해야 할 내가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죄악인 것 같다. 이제부터 적당한 눈치, 남을 의식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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