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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한국 베스트 단편소설
김동인 외 지음 / 책만드는집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오래 전 읽었던 감동의 한국 단편들이 다시 내 손에 쥐어졌다. 감자, 배따라기, 메밀 꽃 필 무렵, 백치 아다다, 날개 등등 주옥같은 단편들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 되어 줄거리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읽어 내려가면서 옛날의 감동이 되살아나 참 좋았다. 요즘 소설의 팍팍함이 없이 저미어 오는 아픔과 잔잔한 미소를 띠게 하는 감동이 있다. 그냥 막 지나가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기대가 되는 그런 작품들이다. 아마 이런 쓰린 아픔 속에 오는 감동이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속에 그 원인을 찾게 된다. 옛날 배경이라 그런지, 아니면 작가가 그런 배경에서 살아서 그런지 왜 그렇게 고생들이 많고, 몹쓸 모습들이 많은가? 왜 그렇게 아내들을 때렸으며, 욕지거리로 아내를 대했는가? 왜들 그렇게 급했으며, 극단적인 생각과 결단을 했는가? 그 시대의 작품들은 모두 자연의 묘사들이 너무 아름답고 싱그럽다. 아마 자연 속에서 산 작가들이 저절로 만들어진 감성일 것이다. 사계절을 보고, 봄의 새싹 돋는 신비로움을 보고, 여름 날의 뜨거운 열기를 몸에 듬북 받아 넣었으며, 가을의 높은 하늘의 청명함을 눈에 기록했으니 어찌 이런 표현들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겨울의 추위, 추위 속에서도 방안의 온돌의 맘까지 누그러뜨리는 따스함, 그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한 가족의 사랑의 온기는 결코 잊을래 잊을 수 없는 작가들 속에 내재된 DNA였을 것이다.
한국 근대 소설의 흡사 비슷한 주제의 모습을 보게 된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 아내가 죽는다. 이상의 ‘날개’에서도 아내가 죽는다. 김동인의 ‘감자’에서도, ‘배따라기’도 왜 그리 아내들이 죽는가? 사실 그 당시의 아내들은 이렇게 맞으며, 죽으며 피가 솟는 그런 삶을 살았다. 남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쌍욕을 하고, 짐승 다루듯 몸에 손지검을 해댔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내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시대였지 않았나 생각된다. 남성들의 반성적 소설이기도 한 것 같다. 같은 의미로 아내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내들의 말없는 헌신과 억울해도 참는 인내를 당연시 여기던 남자들이 정신을 차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아내의 소중함이 알려진 때가 수십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전쟁은 진행중이다. 여성의 지위가 올라갔다 하지만 그 정서는 여전한 것은 한국의 남존여비의 DNA는 피에 녹아 전해지고 있는 듯 싶다.
베스트 소설들에서 또한 알 수 있는 것은 압제 당하는 계층들의 질곡 같은 삶이다.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속에서 등장하는 일력거 꾼의 비애, 장돌뱅이의 고단한 삶, 남의 집 머슴의 매맞고 사는 인생, 지능이 모자라 사람 대접 받지 못하는 절절한 삶 등이 그것이다. 당시는 아내들만 고통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장애인, 머슴, 빈민 계층의 장돌뱅이나 인력거 꾼의 삶은 너무나 가난에 찌든 삶이었다. 이들의 인권이나 찌든 삶을 누구도 대변하지 못하던 시대를 벗어나 작가들은 감동의 스토리 속에 이들의 아픔을 전하고픈 애정이 보여진다. 당시 지식층인 작가들의 사회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감동의 시선을 느껴보게 되어 기쁘다.
한국 초기의 소설들은 왜 그렇게 애잔한 감동이 넘치는가? 침을 꼴딱 삼키게 하는 그 순간이 있다. 진부하지 않고, 질질 끌지 않고,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지 않고 그냥 그 한 순간이 감동이다. 뭐라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영상으로 잔뜩 보여주지 않아도 깊고 오랜 감동은 두고두고 이어지게 되는 그런 작품들이다. 가난하고, 아프고, 짓눌리는 삶 속에서도 그들이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바로 이런 감동이었을 것이다.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애정일 것이다. 파헤쳐지지 않은 땅에서 사는 당시의 사람들 속에서 나오는 사람냄새 일 것이다. 인위적인 회색 빛의 콘크리트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인간미일 것이다. 나는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를 찾은 느낌이다. 내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이런 이야기들에 아직은 감동을 받는 가슴을 가진 인간이었구나 하며 감사했다.
좋은 책을 다시 한 번 지어주셔서 감사한다. 읽은 책이라 다시 손에 쥐기는 쉽지 않았는데 이런 편집을 단행해 줌으로 옛추억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의 글감, 시감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시골 산 길의 야생초 같은 책을 선사해준 출판사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