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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그녀의 행복
김보라 지음 / 한솜미디어(띠앗) / 2013년 6월
평점 :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쓰고 나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여주며 평을 듣고 있다. 그리고 또 수정하고, 보완하고 있다. 솔직히 자신의 글을 세상에 알린다는 것은 세상 앞에 벌거벗는 것처럼 두려운 일이다. 작가의 대부분이 자신의 이야기가 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용기가 필요한 직업이다. 얼마 전 읽은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읽으면서도 트루먼 커포티의 생이 그대로 녹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작품 역시 자신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네 삶의 시절들이 왜 그리 관계의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이다. 그 때문에 받은 상처들은 너무나 깊이 패여 흉터로 남아 지울 수도 없는 지경이다. 그 흉터들이 지금 우리 마음 깊이 자리 잡아 시대 때도 없이 튀어나와 우리를 긁고 가고 있다. 어떻게든 이 흉터를 현대의 탁월한 성형술로 흔적도 없이 지워내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물리적 성형술로는 지울 수 없는 것이기에 너도 나도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김보라 작가의 용기, 마음의 성형으로 새 살을 돋게 하는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비단 이런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 간의, 형제 간의, 사제 간의 풀지 못한 상처들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의사에게 병명을 말하고 진단을 받아야 병을 고치듯 우리의 빨.파.노 삼색이 뿌려져 검은 색이 되듯 암울한 이야기들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김보라 작가는 바로 이런 용기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우리네 소시민들이 겪는 생활 깊숙한 이야기라 공감이 간다. 재벌들의 이야기도, 특별한 자들의 선망의 스토리도 아닌 그야말로 아줌마, 아저씨들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 공감이 간다. 옆집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보통 가정에서 선남선녀들이 이런 아픔들을 겪고 사는구나 수 있었다. 그 아픔들을 어떻게 견뎌내고, 풀어내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 풀래야 절대로 풀수 없을 것같은 일들을 풀어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래 진실이다. 그래 정직이다. 그래 글로, 말로 푸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추억으로 묻고 사는 것이다. 흑백 사진이 사진첩에 빛바랜채로 눌려 있듯이 그저 그런 이야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희미한 기억을 꺼내 사실화 하고 다시 실제화 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로의 아픈 시간여행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여행을 6.25의 전쟁의 상흔으로, 6-70년대의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야 아름답다. 추억이 사실로 기억되는 순간 추잡이 된다. 그럴 때 추억은 고통이 된다. 그땐 참 가난했었지 하면서 지금의 풍요를 누리며 상대적 행복을 누리듯이 그렇게 승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잘 하고 있다. 잘 할 수 있다.
사실 주인공 남녀가 왜 용기를 내서 고모나, 부모들의 반대를 이겨내지 못했을까 읽는 내내 답답했었다. 그러나 어찌 사람 사는 일들이 그렇게 단칼에 잘려지던가. 이런 고민과 갈등은 누구나 길든 짧든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공감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갈등의 표현이 지금의 나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선택인 것 같다. 그러나 더 깊고 아픈 사랑은 후회인 것 같다. 만약 주인공이 결단과 용기로 남자 주인공을 선택했더라면 이런 글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후회하니 아름다워지는 것인가 보다. 후회하는 사랑은 아름답게 간직하고, 현실의 삶은 살아내는 의지력으로 이겨내야 할 것 같다. 더 깊은 고뇌와 사랑에 근본에 대한 사색이 아쉽기는 하지만 진솔한 감정 표현과 용기 있는 글의 표현이 이 작품을 작품답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