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 / 예옥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은 최고봉은 나에게는 “한국의 미” 이다. 한국의 예술 특히 그림을 통한 한국인의 위대성을 읽으면서 너무나 감탄을 했다. 그 외에도 여러 책을 통해 한국의 위대성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왔지만 20대의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확신하고 외국인들이 써 놓은 자료를 토대로 한민족의 당당함을 써내려간 탁월함과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저자의 외국인들이 써 놓은 자료를 통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알아보자.

 

첫째, 저자는 당시의 조선에 대한 자료 자체가 왜곡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서구적인 관점, 일본의 식민지로서 조선, 일본인의 눈으로 본 조선 등의 관점을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구인들의 조선에 대한 자료를 새롭게 발굴하고, 재해석함으로 조선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 줬다. 우리 스스로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왜곡된 교육정책이 그대로 학교에 남아 그것이 대물림됨으로 현재 이른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다시 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은 기독교가 자발적으로 뿌리내린 유일한 나라다. 이승훈은 1783년 아버지가 북경의 사신으로 주재하고 있을 때 함께 따라가 그곳의 선교사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고 한국인 최초의 영세자가 되었다. 그 후 이벽, 이가환, 정약전, 정약종 등 많은 학자들이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한국의 기독교는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1790년경에는 신자들의 수가 4천여 명에 달했으며, 이들은 북경의 가톨릭 주교에게 한국인이 스스로 뽑은 사제와 주교를 인정해 줄 것을 청원하기되 했다. 기독교는 한국의 제1종교가 되었다. 어떻게 기독교가 한국에서 ‘주류 종교’가 되었는가? 한국에는 왜 이리 교회가 많은가? 미국보다 기독교인의 수가 적은 한국이 어떻게 미국보다 더 많은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는가? 이런 면들을 볼 때 한국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민족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스웨덴 기자가 목격한 놀라운 현장이 있었다. 스웨덴의 그렙스트라는 기자는 서울에 있는 동안 윤산갈이라는 한국인 청년이 통역을 해주며 그렙스트의 여정을 도와주고 있었다. 윤산갈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서구 교육을 받고 있었다. 윤산갈과 그렙스트 사이에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보이지 않았다. ‘고용인-피고용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친구’로 대하는 것 같았다. 그렙스트가 기생을 보고 싶다고 하자 윤산갈은 반대하였고, 보수를 두둑이 주겠다고 했지만 자신은 기독교인이라면서 거절했다. 그렙스트의 책에 등장하는 한국인 안내자는 감정과 판단력이 있고 고집을 피우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여행하는 내내 윤산갈은 제2의 주인공이었고, 그렙스트가 이 주인공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장님이 코끼리의 어디를 만졌느냐에 따라 묘사가 다르듯 한국의 누구를 보았느냐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어쨌든 천민출신 윤산갈 같은 이가 당당하게 민족애를 가지고 안내하는 모습은 분명 우리 한국의 모습이다.

 

19세기 말까지 한국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단지 몇 권의 책에서이다. 하멜 표류기, 한국교회사 서론(한국에서 비밀리에 선교하면서 겪은 내용들은 다블레 주교가 프랑스로 보낸 편지를 모아 엮은 것)이 두 권 외에는 몇 권의 단행본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한국은 주로 ‘미개하고, 더럽고, 풍속이 부패했고, 거짓말과 도둑질을 하며, 완고하고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한국인, 잔인한 고문이 자행되는 나라’와 같은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었다. 이런 선지식이 편견을 낳고 편견 속에 방문한 한국 방문자는 또 다른 편견을 기록했을 것이다. 이것이 19세기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 시대의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주변국에 전해졌고 결국 왜곡된 한국에 대한 지식을 해소하기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이런 지식을 우리가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껏 이어지는 영호남, 동서지역, 진보 보수가 조선 시대의 당파싸움에서 이어졌다고 한다. 물론 좋은 면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토론의 문화, 언론의 자유 등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잘 발전만 시킨다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긍정적인 성향이라 할 것이다. 너무 억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 한국에 대한 좋은 관점이 나쁜 것 조차도 좋은 면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일본을 넘어 중국과 나란히 하여 러시아와 미국을 능가하는 위대한 민족이 될 것을 확신한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우리 젊은이들이 그것도 외국에서 공부한 청년이 생각했다는 것은 나의 생각에 확신을 심어주는 근거가 된다. 위대한 대한민국이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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