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하차 - 잘 나가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기타무라 모리 지음, 이영빈 옮김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제 작년 불면증으로 힘들었다. 폐쇄된 공간에 대한 압박감도 많이 느꼈다. 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예전애 비해 더욱 무겁게 전해졌다. 미용실 이발에도 눌림이 있어 머리를 깍으러 조차도 자주 가지 않았다. 한 번은 머리를 자르려고 준비하는데 몸에 열이 확 올라 미용사에게 이야기 하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잠시 진정을 하고 겨우 일을 마쳤다. 책을 읽다가도 부정적인 내용이 나오면 고통의 상황이 상상이 되면서 책을 덮곤 하였다. 말로만 듣던 갱년기, 이 책을 보니까 생각나는데 공황장애 증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주변에 이야기를 하고 3주 휴가를 얻어 아무것도 안하기 작전에 돌입했다.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정말로 한적한 곳에서 산책과 책 읽기, 천천히 걷기, 묵상하기, 잠자기, 글쓰기, 기도하기 등으로만 보냈다. 3주 동안 외롭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아직 불안한 것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잘 지냈다. 조금 회복되어서 다시 업무로 복귀하였다. 그런대로 지내면서 일을 해 나갔다. 사실 복귀는 최소 한 달 혹은 두 달 후에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휴가 중 지인의 배려로 호주에 휴식할 기회를 마련해 놓았으니 년 말에 오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래서 몇 달 후면 갈 수 있으니 일찍 내려 오기로 결정하고 내려 온 것이다. 조금 회복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힘들었고 해결할 방법이 쉽지 않았다. 일단 몇 개월을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잘 참아 내었고, 연말에 호주에 3주를 모든 일을 떠나서, 그것도 아주 멀리 가게 되었다. 특별한 일은 하지 않았고 지인의 안내로 여행과 지인이 아는 분들의 배려로 식사 접대와 여행을 하며 보냈다. 3주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정을 보내고 복귀하였다. 그리고 약 2년이 지난 지금 큰 어려움 없이 모든 일을 수월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쉼, 안식을 가져라. 쉬는게 일하는 거다.”는 말을 건네고 있다. 그 후 쉼과 안식에 대한 내용의 책들은 가능하면 찾아 읽으면서 내 경험을 더욱 곤고히 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공감하며 읽었다. 일본의 중년 세대들의 현재도 읽게 되었다. 아니 지금 우리나라의 중년들의 현실의 아픔을 느끼며 읽었다. 많은 남자들, 가장들이 직장, 일, 책임, 급박히 돌아가는 현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황장애란 보이지 않는 감옥에 스스로 갖히는 것 같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 감옥에 있지 않지만 감옥에 있는 압박감에 눌려 살고 있다. 그것을 본인도 모르고, 가족도 모르고, 사회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사회의 이상 현상들, 비 정상적인 행태들은 바로 이런 심리적인 분출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으로 우리의 돌파구를 찾아 보자.

 

표지가 재밌다. 아니 의미가 느껴진다. 읽기 전에는 그냥 도중하차 했구나 했는데, 도중하ⅴ차다. 도중 하차된 낙오자가 아니라 가는 길에 하차 하여 쉬고, 둘러보고, 재충전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졌다. 그런 면에서 도중 하차는 꼭 있어야 할 과정인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파김치가 된 주인공을 조건 없이 받아준 곳은 바로 집, 가정, 가족 밖에는 없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주인공을 쉬면서 바로 가장 소중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말없이 남편을 배려하고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지하철에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지긋이 손을 잡아준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아프면서 아내의 들레지 않는 사랑을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게 된 부부가 하는 말, 자신도 워커홀릭에서 벗어나 과감히 쉼을 단행하고 나서 그 쉼이 어떤 유익이 있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루소가 말했던가 ‘목적없는 합목적성’ 그냥 쉬었는데 회복이 되고, 회복이 되니 의욕이 솟아나고, 의욕이 생기니 회사를 설립한 것을 나중에야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의 쉼의 위력이다. 아프리카 원숭이가 사냥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주머니 속의 먹이감을 놓고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그는 경험했고, 주인공을 그것을 경험하는 도중이라는 것이다. 도중 하차는 도태가 아니라 자신이 사는 ‘도중’을 알게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쉼을 통해 회사까지 설립하게 된 경험자는 말한다. “무직일 때가 찬스다. 아무것도 없다는게 때로는 강한 것이다. 무직의 시간을 보내니 배짱이 생긴다.” 즉 쉼이 충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의 뼈저린 경험 중의 경험이다.

 

남편이 운동을 나갔을 때 아내가 따라 나섰다. 혹시나 잘못된 생각을 하지나 않을까하는 염려에서 였다. 남편을 살리는 것을 아내 밖에 없다. 부부 밖에 서로 의지할 사람이 없다. 열심히 살자. 서로 의지하며 살자. 배려하며 살자.

 

일본의 현실을 말해 주고 있다. 주인공은 안 것이다. 무한경쟁의 전쟁터에서 공포에 떠는 현대인들의 현주소다. 스위치를 시도 때도 없이 눌러 누르지 말아야 할 때 누르다가 결국 신간센 문을 열어 제친 것이다. 내 마음의 문을 때를 따라 적절하게 잘 누르는 안정된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의 패턴을 익혀야 달리는 신간센 문을 열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내 마음을 알아주라.

 

아들과 여러 차례 여행과 정해진 시간 안에 원고를 넘겨야 하는 편집장의 일을 내려 놓고 나서야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인공은 서서히 신간센 준급행열차(조금 오랜 시간 타야하는 열차) 타기를 시도했고 이상하리만치 싱겁게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쉼의 기적’이라 일컫는다.

 

아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주인공을 많이 회복되었다. 아들이 놀리는데도 여유롭게 농담까지 하면서 받아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이다. 제자리를 찾은 주인공을 축복한다.

 

아내의 말없는 배려, 남편이 알지 못하게 한 깊은 사랑을 주인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탓에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아직 표현하지 못한 감사의 고백을 이젠 해야 할 때이다.

 

무소속의 시간에서 살다. 어디와도 관계가 없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 인간으로서의 시간이 인간을 부활시키고, 보다 더 크게 성장 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 무소속을 두려워 한다. 소속감만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벗어나보자.

 

서리가 내린 것을 본다. 처음 보았을까. 아닐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았지만 본 것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가지고 사색하고, 나에게 의미를 부여해야 본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냥 본다. 수도 없이 많은 것을 본다. 의미 없는 사진을 휴대폰에 찍어 저장하듯이 세상을 본다. 쉼은 제대로 보게 만든다.

 

주인공은 쉼을 통해 아이를 도울 수 있었다. 된장국을 싫어하는 아이를 도와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게 해 주었다. 쉼의 능력이다. 자신도 추스를 수 없는 중년아이에서 아끼는 자녀를 도움을 있었다.

 

천만원의 여행비를 투자해서 돈으로는 계수불능이 가치를 만들어 냈다. 그 돈이 쉼 없이 사용되었다면 어떠했을까? 더 큰 수렁으로 밀어 넣는 막대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쉼이라는 통로로 들어간 돈이었기에 그만한 가치를 한 것이다. 아버지의 자리, 남편이라는 능력, 한 인간으로서의 자리 매김을 쉼이 준 것이다. 당신은 쉼의 능력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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