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록 / 언행록 / 성학십도 동서문화사 월드북 29
이황 지음, 고산 고정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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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선생의 스승, 퇴계 이황. 그 학문의 깊이와 품성의 방정함과 임금에 대한 존경심과 애민 정신 무엇 하나 빠뜨릴 게 없는 학자 중에 학자, 실천적 학자이다. 이이와 더불어 한국에 내노라 하는 학자인 것이다. 중국, 일본 등에서는 이미 그의 학문의 깊이를 이해하고 인정하였지만 정작 우리는 명성만 알지 배움이 짧았다. 마침 기회가 되어 너무나 기쁘다. 중국에서는 1920년즈음 상덕여자대학에서 <성학집도>를 간행할 때 그 끝에 붙였다. 높디 높으신 우리 이 선생님/예를 잇고 후세 열어 고금을 꿰뚫으셨습니다./열 폭 그림으로 이학요결 전하시어/백세에 길이 길이 성인 마음 펴시었습니다./학문과 예술은 주자를 따르시었고/우주관과 깨끗하심은 주렴계에 비기겠습니다./높은 성덕 넓은 교화가 삼백 년 뒤 오늘까지 미쳤으니/ 온 세상 인류들이 뉘 아니 공경하오리까! 하였다. 특히 성학집도는 가히 그림에 모든 학문과 삶은 다 담아내는 엄청난 학문의 깊이와 익히기 좋게 요약하는 지혜와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응용능력을 두루 갖춘 천재 중에 천재라고 볼 수 있다.

 

이황에 아쉬운 것은 조선의 혼란기에 살았다는 것이다. 학문과 실천적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손해인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가 정치에 깊이 관여 했다면 그의 작품들은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황의 가난 속에서도 물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기개를 당당하게 지켜 왔으며 혼란기에 뇌화부동하지 않고, 정치에 휩싸이지도 않고 자신만의 길을 곳곳이 갔다. 학문 사랑, 친구 사랑, 약자 사랑, 미련한이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학자였다. 논어에 미련한 자를 친구로 하지 말라는 말에 이황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달리 해석하면서 악한 자를 멀리할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으라고 하고 있다. 배척하고, 외면하는 외골수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모든 사람과 관계하며 변화시켜 보려는 학자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정도의 학문의 깊이 있으면 교만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이 있을만도 한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참으로 기이하다.

 

5세에 천자문을 익히고 배운 것을 자랑하며 크게 떠드는 모습을 보고 그의 어머니가 후실 자식이 배우지 못하여 무시당하니 더욱 학문에 정진하고 조금 배운 것으로 자랑이나 하는 소인배가 되지 말라는 따금한 충고가 평생을 겸손하게 만들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자연 사랑의 성품이 있어 자연 속에서 살기를 좋아 했고, 수많은 시들이 거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감성이 풍부하여 많은 시를 남겼다. 그 중에서 소나무를 읊는다. 돌 위에 자란 천년 묵은 불로송/검푸른 비늘처럼 쭈굴쭈굴한 껍질이 마치 날아 오르는 용의 기세로다/까마득한 절벽 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높은 하늘 쓸어낼 듯 험준한 산봉우리 찍어 누를 듯/본성이 본디 울긋불긋한 사치를 싫어하니/복숭아꽃 자두꽃 저절로 아양떨게 내버려두며/뿌리 깊이 현무신의 기골을 키웠으니/한겨울 누 서리에도 까딱 없어라

 

나의 작품 

 

거송(巨松)

 

거송(巨松)/너는 대장부/너 뭐 그리 잘났다고 높이 서있노/너 뭐 그리 많이 안다고 손들고 있노/너 뭐 그리 잘한다고 얼굴 내미노/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네/내 먼저 알았기에 바람 맞고/내 먼저 체험했기에 때양 볕 쬐고/내 먼저 받았기에 나눠주러 가는 중이라오

 

남 몰라줘도 나는 일어서리/남 흉보아도 나 말하리/남 비난해도 나 전하리

 

거송(巨松)/너는 대장부/나도 너처럼/장부(丈夫)되리!

 

(바로 이황 같은 분이 아닐까? 이황 선생을 생각하며 지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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