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용인시이다. 우리 동네는 도로 계획을 세우고, 토지 보상을 해 놓고도 도로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경전철이다. 경전철에 투입되는 비용 때문에 용인시가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용인시는 경전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철로는 지상으로 도로마다 묵직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운행은 해도 손실, 하지 않아도 더 손실이라는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되었다. 경전철의 시행을 결정했던 시장들과 그 실무자들이 연신 법정에 서고 있다. 수 조원을 들여 놓고도 돈을 계속 쏟아 부어야 하는 돈 먹는 하마가 된 원인이 무엇인가? 역사에서, 고전에서 지혜를 얻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누군가가 [한비자]의 <팔경>을 읽고 적용만 했었더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중지를 모으고, 공청회를 열고, 많은 사람의 의견들이 모아만 졌다면, 수 십 년이 지나 지상 고가도로를 철거한 청계 고가도로를 수 십 년이 지나 새로 건설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기업들의 경영이념은 대부분 고전에서 온다. 기업하면 돈을 버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기업이념은 고전의 깊은 통찰과 사고에서 비롯된다. 삼성이 1993년 ‘신경영 선언’ 직후 용인연수원에서 가진 ‘21세기 CEO 과정’ 포럼에서 나온 말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다수의 힘을 이길 수 없다. 한 사람의 지혜로는 만물의 모든 이치를 알기 어렵다. 한 사람의 지혜와 힘보다는 많은 사람의 지혜와 힘을 쓰는게 낫다.” 한비자의 <팔경>의 내용을 살짝 돌려 표현한 것이다. [한비자]의 해당 대목을 읽고 커다란 감명을 받았음에 들림 없다. 고금을 막론하고 독력은 중력만 못하고, 독지는 중지만 못하다. 한비자는 하군은 ‘독력’과 ‘독지’, 중군은 ‘중력’, 상군은 ‘중지’를 쓴다고 언급했다. 동양에서 기원전부터 ‘중지’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양웅이 항우의 패망 원인을 ‘독지’와 ‘독력’에서 찾은 것은 적절했다. 항우의 지나친 자부심이 결국 화근이었다. 역사는 이처럼 기업이나, 개인에게 아주 유용하다. 개인이 큰 인물이 되지 못하고, 기업이 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역사에서 지혜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 신동준님의 <삶의 한 가운데서 초한지를 읽다>는 군웅할거와 같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지혜를 주는 책이라 하겠다.

 

패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개인의 강력한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사장이 전부다’라는 책이 나왔다. 그만큼 사장의 역할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대기업, 패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가 지나면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로 안되는 것이다. 중지를 모으는 능력과 모았을 때 과감히 결단하고 추진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한비자]의 <팔경>을 다시 한 번 보면 “군주 한 사람의 지혜로 무리를 이길 수 없고, 계략이 가끔 적중할지라도 군주 홀로 고단하고, 만일 들어맞지 않게 되면 그 허물은 온통 군주 홀로 뒤집어 쓰게 된다. 명군에 일이 생기면 개개인의 의견을 들은 뒤 곧바로 공청회를 열어 이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게 한다. 공개토론을 생략하면 군주는 머뭇거리며 결단을 못하게 된다. 결단하지 못하면 이내 일이 지체돼 위기를 키운다.”고 되어 있다.

 

항우는 ‘패왕의 대업’이라고 말하면서 힘으로 정벌하여 천하를 경영하고자 했다. 5년뒤 끝내 나라를 망치고 자신은 동성에게 죽게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스스로를 전혀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이 나를 망친 것이지 내가 용병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라고 했다. 사마천은 항우의 패망을 힘으로 천하를 경영하려 한 데서 찾았다. 어떤 사람이 ‘초나라 항우가 해하에서 패해 바야흐로 죽게 되었는데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다고 했으니 이는 믿을 만한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사마천이 대답하기를 ‘한왕은 군신들의 책략을 다 썼고, 군신들의 책략은 군중들의 역량을 다 쓰게 했다. 그러나 초왕은 군신들의 책략을 꺼려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다 썼다. 다른 사람의 힘으로 다 쓰게 하는 사람은 승리하고,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다 쓰는 사람은 패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늘이 이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사람이 조금 성공하면 스스로 잘난 줄 알게 되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자연히 독단으로 결정하게 되고, 결국 그 수는 짧은 수가 될 것이다. 그 짧은 수로 다수의 큰 수를 대항하려 하면 당연히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방의 리더십이 항우에 비해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유방 역시 입에 욕설을 달고 살며, 사람을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거만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따지고 보면 그의 ‘득천하’는 항우가 ‘중지’를 활용하지 않고 ‘독지’로 일관하는 바람에 얻은 반사이익의 성격이 짙다. 결국 유방과 항우의 차이, 패자와 승자의 차이는 ‘독지’와 ‘중지’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초한지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자만과 자강이다. 즉 자만하는 교만과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겸손과 겸비함이다. 약 1년간 지속된 일본의 센고쿠 시대에 신출귀몰한 용병술로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병법의 대가 다케다 신켄은 승세와 패세의 상호 관계를 이같이 해석한 바 있다. “가장 좋은 승리는 5할의 승리인 신승이고, 그 다음은 7할의 승리인 낙승이다. 10할의 승리인 완승은 패배보다 못한 결과를 낳는다. 신승은 용기를 낳고 낙승은 게으름을 낳지만 완승은 교만을 낳기 때문이다. 10할의 승리에는 이후 10할의 패배가 반드시 뒤따르게 되지만 5할의 승리에는 패배할지라도 이후 5할선에서 능히 수습할 수 있다.”당대 최고의 병법가란 명성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에도 흐름을 타게 되는데, 승세와 패세가 교체돼 나타난다. 승세보다 패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긴장하고, 겸손하게 철저히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5할 승부, 승패를 거듭하다가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다. 경제전쟁에도 기업이 잘되기만 하면 현재에 안주하게 되고, 결국 변화되는 세상과 트랜드를 읽지 못하고,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여 결국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모바일 폰 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를 아이폰이 열었을 때 삼성은 부지런히 2들이라도 달렸지만 방만했던 엘지는 한참 뒤쳐졌다. 결국 잠자다 깬 토끼마냥 정신없이 달려와 엘지 옵티머스 G 프로로 조금 만회한 느낌이다. 그러나 최근 어떤 책에 서 읽으니 필란드의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린 것이 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노키아는 이미 하드웨어 격인 스마트 폰 기기 시장을 포기하고 콘텐츠, 소프트웨어인 앱에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우리나라가 우물안에 개구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승자의 덫에서 빠져 나오는 지혜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첫째, <손자병법>의 지피지기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적극 대처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임지응변이다. 둘째, <주역>에서 역설하는 자강불식의 자세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부단히 채찍질하며 정진해야만 한다. 셋째, <논어>에서 역설하는 온고지신의 정신이다. 기존의 가치와 관행에 얽매이지 않은 ‘파탈의 미학’을 실천한 조조와 21세기에 들어 기술과 예술을 결합시켜 ‘손 안의 세계“를 구현한 잡스의 지식창조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나는 요즘 책 읽는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남들이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보았다. 그런데 내가 취미란에 독서라고 당당히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이면 적어도 3-4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의 닉네임은 독서특기생이다. 이젠 독서가 나의 특기, 독서가 나의 생의 중요한 무기, 실사구시가 되게 해서 결과물을 내게 하는 것이다. 이미 나에게는 그런 면들이 드러나고 있다. 글을 쓰고,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을 얻고, 가르치는데도 많은 지혜를 얻는다. 역사를 통해, 책을 통해 얻는 지혜와 삶의 능력은 무궁무진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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