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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밑의 책 -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
윤성근 지음 / 마카롱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나에게 책은 수면제였다. 왜 그리 책만 손에 들면 잠이 쏟아지는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고, 시를 쓰고 있다. 물론 나 혼자, 아직은 누가 알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기적이다. 50평생에 나의 독서 경력은 8년이다. 왜?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열면서 일주일에 한 권 읽고 독후감을 그 때부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때는 친구들과 마음이 맞아 무작정 아무 책이나 읽기로 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인문학, 소설, 과학, 경제, 음악, 미술, 건축, 심지어 만화, 동화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물론 일주일에 한 권이니 참으로 빈약한 독서였다. 그러던 중 책 중에 책은 수 백년에 걸쳐 공인된 인문학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가능하면 영양가 있는 책, 인문학을 읽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뜬금없는 제목 <침대 밑의 책>이란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제목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게 하는 그런 책인줄 알았다. 다소나마 편안안 자세로 이 책을 집어 들고 처음 장을 읽어내려 가는 순간 혼란에 빠졌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주제, 논지, 전개 방법은 나를 당혹하게 했다. 서바이벌 게임에 암호 이야기까지 애들 SF소설을 읽는 느낌도 들기도 했다. 그래서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나의 습성상 어떤 것이든 설렁설렁이라도 끝까지 읽는 습관 덕택에 다음 장, 다음 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이 작가의 개성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작가의 글의 내용과 장르에서 그의 하는 직업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헌 책방을 운영하고 책읽기를 신처럼 여겼다는 말에서 그의 책읽기 편력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 직업상, 특성상 이런 주제들이 나올 수 있었구나 하는 공감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 대한 느낌, 작가에 대한 기분을 적어보면서 내 속을 보이고자 한다.
먼저, 기발한 인쇄를 보고 놀라고 즐거웠다. 우리 어렸을 때 해보던 책에 그림을 그려 손끝으로 책을 넘기면서 그림이 동영상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실제로 책에 실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삽화가 그려졌구나. 그림의 변화도 별로 없길래 그냥 똑같은 삽화가 곁들여진 정도로 생각했는데 많은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많이 달라진 삽화에 의아해하며 책을 넘겨보니 내가 침대 밑의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았음을 알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저자의 유머스러움, 재미있게 하는 사람으로 충분했고, 신선함이 성공적이라 생각했다. 또한 저자가 언급한 책들의 대부분은 내가 접해보지 못한 책들, 아니 듣도 보도 못한 책들이 많았다. 과연 헌 책방 장사가 맞구나, 아니 중고서점 사장님의 어드벤테이지를 충분히 이용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일반 독자가 이런 책들을 쉽게 손에 들고 섭렵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저자의 책읽기 편력은 다양성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저자를 독서의 이단아, 책 읽기의 외인구단이라 명명하고 싶다. 어쩌면 이렇게 독특한 책에 취미가 있으며, 그런 책들에서 그런 좋은 면들을 발견해낸단 말인가. 이 책과 저자를 보면서 외계에서 온 책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책의 별천지에 온 느낌이었다. 저자의 책읽기의 다양성을 보면서 식습관으로 말하면 잡식성이라 할 수 있다. 인용문들이 듣도 보도 못한 책들임을 보면서 온갖 공구들이 가득찬 작업실에 들어온 느낌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제목이 <침대 밑의 책> 보다는 <작업실의 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책이라 생각된다. 이 주제의 느낌 또한 잠자리에서 읽다가 잠들기에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책은 그야말로 좋은 것, 좋은 말을 해주고, 깊은 의미를 주고, 감동을 주는 것만으로 생각했는데, 기상천외한 삶과 기록, 사상과 관점들을 통해서 일반적이면서도, 일상적인 행복, 사는 즐거움을 주는 책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저자가 그런 삶을 추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운영하는 중고서점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중고서점이 청계천에 있었는데, 옛날 청계천 8가에 가면 중고품 만물상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참 재미있고, 신기하고, 내가 꼭 찾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중고서점과 중고품 만물상이 불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까?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중고 만물상에서 보물을 수도 없이 찾아낸 느낌이었다. 의외로 중고책에는 보물이 이렇게도 많았었구나 하는 생각에 많이 놀랐다. 그 보물들 중 몇 가지만 적어보도록 하자.
사진 하나 없는 4년간의 피크닉,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도보 4년 여행 중 사진기를 가져갔고 사진도 찍었건만 책에는 사진 한 장 실지 않고 오직 1,500장의 글로만 채운, 이 책일 과연 팔릴까 했지만 그냥 발로 밟으면서 느낀 그 느낌 그대로가 독자들을 움직이게 했다는 것이다. 뛰어가는 사람에겐 행복이 보이지 않는다. 베르나르에겐 여행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연금생활자가 새로운 삶을 발견한 자기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걷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듣기’라는 것도 깨달았다. 올리비아의 경우 3개월 동안 걷기 여행의 경비가 400달러 밖에는 안되었다는 말에 경제성도 있는 최고의 여행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승리자는 없다. 어떤 의미의 성공도 결국은 들에 핀 꽃처럼 허무하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이 바로 좀비다. 우리에겐 피 튀기는 경쟁만 남았다. 그럼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를 거부하고 이 사회와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어딘가에서 오래 전부터 활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진정 바로 ‘전설’이 될 것이다. 흐르는 물에서 수영하기가 쉽기는 하지만 재미는 없듯이, 거스르는 수영이 힘들기는 하지만 느낌과 즐거움이 있는 것처럼 세상을 좀 거꾸로 볼 필요도 있고, 그 곳에 재미도 솔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한 책들의 ‘리스트’ 우리 모두의 로망이다. 해외에 다녀온 나라의 숫자를 꼽들이 읽은 책들이 몇권 무슨 책에 집착하시 쉽다. 저자는 “이렇게 환상적인 리스트는 아직 없었다”고 한다. 나는 “리스트에 환상은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카피처럼, 읽은 책의 리스트는 리스트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걷고, 느끼고, 새기는 것처럼, 담고, 쓰고, 나누고, 그렇게 사는 것만이 남는 것이다. 군대에서 자주 쓰는 말 “먹는게 남는 거다”, “느끼고, 그렇게 사는 게 남는 거다”
저자의 책 읽고 싶은 간절함은 “왜 신은 잠을 만들어서 책을 읽을 수 없게 하느냐”는 푸념이 말해주고 있다. 다빈치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4시간마다 15분씩 잠을 잦다고 한다. 인간이 빛을 만들면서 세상에는 24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생겼고,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저자는 이 글을 쓰는 시간이 새벽 3시라고 한다. 책이 이렇게도 좋을까. 책읽기의 기인으로, 아니 달인으로 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