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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크게 보였지만, 볼 수 없었다 그 눈부심 때문에..

해가 질 때 태양이 가장 크게 보인다. 해가 질 무렵에야 그날의 해가 떠오르던 순간에도 해가 질 무렵 못지 않게 큰 것이었음을 새롭게 깨닫게 한다. 로마 제국은 어떻게 멸망했다는 조목조목 짚어가는 이 책을 잡으면서 그리고 읽으면서 자꾸만 생각하는 일종의 화두 같은 것이다. 로마의 황제들이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가 훌륭한 건물을 아낌없이 지어, 어떤 역사책보다도 그들의 위용을 후세에게 전한 점, 부엇보다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그 건축물들처럼 남아 있듯이 이들은 최초의 고속도로를 발명 혹은 발견한 셈인데, 그 실행력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으로 기록해주고 싶을 정도이다. 그렇게 그들은 제압한 속국을 관리할 수 있었다. 보다 넓은 영토를 위한 전쟁이 끊임없었지만 교통을 말 그대로 통하게 하고, 그를 기반으로 파발을 잘 조직하여, 통신을 원활하게 한 점, 그들은 원활한 통치를 위해 그리고 다민족을 흡수하는 인구(가 많아야 전사들도 많다) 유입정책에 성공했다. 로마가 제국으로서의 위용은 갖춘 데에는 무엇보다도 시민이 되고자 했고, 시민이 된 많은 주변국들의 백성들을 로마의 시민으로 유인하는데 성공한 데에 있다.

1995년 9월에 최초 발행된 <로마인 이야기1>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는 가정할 수 없다는 얘기를 거급하면서도,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가 '달마'(는 언제 사람이지?)다 아님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간 까닭에 의문을 품는다.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혼전을 거듭하던 유년기를 막 벗어난 로마로, 알렉산드로스가 서쪽으로 갔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도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니 그러한 가정을 다시 옮기고 싶지는 않다. 바로 다음 책,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 영웅 25명, 로마의 영웅 25명을 선정하여, 위인적을 썼는데, 이른바 '비교열전'이라 불리는 이 책은 로마와 그리스의 유사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행적을 두 편을 앞세우고, 논평을 한다. 위에서 소개한 시오노 나나미의 논지 전개와도 같은 것이다. 물론 가정을 하기보다는 국적이 다른 두 영웅의 다른 점과 닮은 점들을 보게 하는데, 로마 영웅 5인 그리스 영웅 5인을 선정하여, 천병희 교수가 원전번역으로 옮긴 이 책은, 그 누구보다도 '알렉산드로스 전'에 공을 많이 들였다. 50인 전체를 다룬 영역본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주석이 없어 읽는 속도는 내지만, 그 묘미를 알 수 없는 번역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친절함이 있다. 나무 몇 그루의 생태를 봐도 그 숲의 대충을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대충이라, 적당히가 아니라 그 어원을 따지면 심오하다는 것을(검색해보시라).. 역시 가정할 수 없는 역사를 가정해보자면, 알렉산드로스가 동쪽으로 절반쯤만 가고, 그야말로 대부대를 이끈 정복에서 끝내지 않고 통치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동서양을 아우르는 그야말로 대제국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는 좀 특별한 전쟁여행을 한 셈이다.

 

 지는 해가 아름답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바로 이 책은 이러한 앞서 얘기한 지는 해가 상징하는 왕국의 멸망사를 다룬 특별한 책이다. 마지막 황제를 보필했던 외국인 선교사(?)가 직접 쓴 청나라가 멸망하던 때, 마지막 황제가 잠시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들러리 황제가 되는 반짝 빛남이 오히려 슬프다.

 

 

 

 

 

 

 

긴 얘기가 필요없다. 병적인 집착으로 여겨질 만큼 기록에 집착하는 일본인들다운, 가장 일본적인 책의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난 과거를 이처럼 처절하게 분석한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제대로 되짚고 있는가, 그들은 왜 '실패'했는냐고 질문을 던진다, 실패의 대립에는 성공이다  왜 성공하지 못했나 묻고 있는 것이다. 그 성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그들은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보여주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시라, 과거는 역사다. 그 역사는 어디로 달아나지 않는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를 제대로 평가하고 살피는 것만큼 제대로 길을 걷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또 있겠는가, 막연하게 경제민주화 왜치지 말라, 역사를 똑똑히 아로새겨야 산다.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든다. 성공하지 못해서 아픈가? 왜 그랬는지 아프지만 그 아픔과 거리를 두면서 제대로 살피면 길이 보인다.

 

해가 지는 서해의 섬들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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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만남, 그것은 진정한 사랑은 물론이고 진정한 사랑에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대중가요 중에 "무조건 무조건이야!"라는 가사가 단적으로 역설하는, 역설적으로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우정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로 들린다.

키케로는 <우정에 관하여>에서 1)'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한다. 그것은 사랑한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애(自愛)는 자연(自然)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감정을 우정에 적용하지 않으면 진정한 친구를 결코 구할 수 없다."(80절)고 못 박는다. 결국 진정한 친구는 제2의 자아라는 등식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애는 본능이며, 본능인 자애는 자연임을, 곧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독자들을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로 안내한다. 곧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이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임 동물들-정확히 짐승들-의 생태를 예로 든다.

"이 점은 하늘에 사는 것이든 물속에 사는 것이든 뭍에 사는 것이든, 또 길들여진 것이든 야생의 것이든 짐승들도 마찬가지라네. 우선 짐승들은 모두 자신을 사랑하네. 이런 감정은 모든 생물이 똑같이 타고났기 때문이네."(81절 전반부) 

인간도 동물에 속하는 것을 어찌 부인하겠는가.

"그다음 짐승들은 자신과 하나로 엮일 수 있는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들을 끊임없이 찼는다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짐승들을 부추기는 충동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사랑과 닮았다네. 사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지. 인간들도 자신을 사랑하고, 인간들도 둘이 거의 하나가 될 만큼 정신적으로 서로 완전히 결합될 수 있는 짝을 찾기 때문일세"(81절 후반부)

그러나 인간은 동물에 속하면서도 동물들과 다른 방식으로 우정을 찾고 사랑을 찾는다. 물론 동물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하고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닐 것이나 그들은 본능에 충실하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데서 행위 하는데, 그 행위는 짝을 맺기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웅전>의 저자로 잘 알려진 플루타르코스는 에세이 <동물들도 이성이 있는지에 관하여>(단행본

수다에 관하여에 수록)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우화(寓話)에서, 동물들은 몸뿐만이 아니라 본성상 미덕을 생산하기에 인간보다 더 완전하며, '절제'에서도 뛰어남을 변론하고 있다. <동물들도 이성이..>는 분량은 그리 많지 않으나,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24권 가운데 10권의 내용, 곧 오뒷세우스가 키르케와 만나 주술에 걸려 돼지로 변해버린 동료들을 구하는 대목을 전제로 진행되므로, 오뒷세이아독서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맥락과 풍자를 제대로 맛보기 쉽지 않다.

 

<동물등도 이성이..>에는 오뒷세우스와 키르케, 그리고 키르케의 마술에 걸려 돼지로 변신된 동료들을 대변하는 그륄로스가 등장하여 대화를 나눈다. 키르케틑 초반에 잠시 등장할 뿐이고, 결국은 동물들을 대표하는 그륄로스와, 돼지로 변해버린 동료들 중 한 명(한 마리)이라도 데려가려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나선 인간들을 대표하는 오뒷세우스가 주고받은 논쟁이다. 

이렇듯 고전읽기는 저자가 집필 당시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소재로 차용한 이전의 저작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주제는 건질지라도 책을 읽는 디테일한 재미는 추수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고전 읽기에 흥미를 잃게 된다. 논리에서 밀린 오뒷세우스는 이제 비아냥거리는데, 네거티브 공세를 펼친다.

오뒷세우스: 맙소사! 전에 아주 영특한 소피스트였던 모양이요. 그륄로스, 돼지가 된 지금도 그토록 정열적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니 말이오.

가만히 듣고만 있을 그륄로스가 아니다.

그륄로스: ..그대는 절제에 관해 듣고 싶어하는 군요. 하긴 그대는 가장 절제 있는 여인의 남편이고, 또 키르케의 구애를 거절함으로써 절제 있는 인간임을 입증했다고 믿으니까요.

그리고는 오뒷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까지 끌어들여 그의 아픈 데를 무참히 찌른다.

그륄로스: ..페넬로페의 정절에 관해 말하면 수많은 까마귀들이 까옥까옥 울며 비웃을 것이오. 수까마귀가 죽으면 암까마귀는 몇 년 동안이 아니라 인간으로 치면 아홉 세대를 과부로 살아가니까요. 그러나 그대의 아리따운 페넬로페는 정절에서 그 어떤 까마귀보다 아홉 배나 열등한 편이오.

최후의 변론을 마친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마침내 사형이 집행되는 날 아침 친구와 제자들에게 결코 슬퍼하지 마라 죽음은 몸으로부터 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기뻐해야 하지 않느냐, 특유의 대화로 설복시키는 책이 <파이돈>으로 제자 플라톤에 의해 책으로 묶인 내용이다. 인용은 삼가하거니와 여기에서도 영혼(혼)의 불멸을 강조하는데, 동물들의 혼에 관해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시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로 돌아가서, 키케로는 진정 우정의 조건을 아주 까다롭게 제시한다. 당연한 말씀 같지만 실제 삶에 적용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조건이다.

“성격이 나무랄 데 없는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을 경우에는 예외 없이 매사에 의견과 뜻을 같이해야 하네.”(61절) 쉽지 않다. “우리가 친구를 잘못 선택했을 경우 이를 참고 견뎌야지 적대관계로 바꿀 기회를 노려서는 안 된다”, 59-60절) 그리고 상당한 기간을 신중한 선택을 위해 상대방을 '평가'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펼치는데, 어찌 그것이 쉽겠는가. <우정에 관하여>의 초반부에서 두 사람이 서로 필(feel)을 통하는 대목은 순간적이고 즉물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치 말굽자석의 공명처럼. 바로 이런 점에서 진정한 우정, 또 다른 나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나를 사랑하듯이 사랑할 수 있는 친구를 갖기가 쉽지 않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도 그러하다.

최근에 구입해서 읽은 김진송의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에는

저자가 깎은 움직이는 인형 작품들,

그 작품들을 촬영한 사진들과 궁극으로

그가 빚어낸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우정과 사랑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이 사람이야, 싶을 때

붙잡아야 하나 아니면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짝을 맺기까지

기다려야 하나. 관련된 작품 하나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제목은 <똑같다>로

작품사진 아래에 카피를 수록했다.

 

 그런 적 없나요./ 길을 가다가 나랑 똑같이 생긴/ 벌레를 만난 적 없나요./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언젠간 틀림없이 만나게 될 거예요./ 그땐 놀라지 말아요./ 벌레가 더 깜짝 놀라 달아나기 전에,/ 얼른 먼저 인사를 해요./그러면 금방 친구가 될 테니...... 158~159면,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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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역설적인 제목을 붙여보았어요. 고전을 읽는다고 하면 딱딱할 것이라는 느낌에서 그것이 선입관이라도 벗어날 수가 없잖아요. 오늘 문득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다가, 다음 대목을 보았어요.

[그렇지만 카토만큼 자화자찬이 심한 사람도 없었다. 카토가 한 말에 따르면, 품행이 좋지 못해 비난을 듣게 되면 사람들은 "우리를 나무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카토가 아니니까요."라고 말하곤 했고, 그의 업적을 모방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왼손잡이 카토들'이라고 불렸으며, 원로원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마치 항해 중인 승객들이 키잡이를 쳐다보듯 자기를 쳐다보았으며 가끔은 자기가 출석하지 않으면 중차대한 업무조차 연기하곤 했다는 것이다. 카토의 이러한 자화자찬은 다른 증언들에 의해 입증되고 있는데, 카토는 실제로 품행과 웅변과 고령에 힘입어 로마인들 사이에서 큰 권위를 누렸다.](19장 후반부 <마르쿠스 카토 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펴냄)

팟캐스트를 유행시킨 나는꼼수다에서 '깔대기'란 말도 유행시켰는데, 마르쿠스 카토는 참 대단하지요. 지금 수감중인 정봉주 전 의원이 이 카토에게서 자랑질(?)을 배우지 않았을까? 하긴 정말이지 영웅전에 나오는 10명 가운데서도 이런저런 할 얘기가 많은 사람이니 자랑할만도 하지요. 됨됨이가 안 되는 사람이 자랑하는 것은 그렇지만 자랑할만한 사람이 적당히 자기과시를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 있어요. 그것도 칭찬의 힘은 아닌가 해요. 그런데 사실은 바로 이 대목에 천병희 선생의 주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요. 위에 인용문 중에서 색을 지정한 부분이요. 원전번역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로마의 언어와 역사, 그 배경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분의 번역이므로, 이 대목은 이런 의미가 있다는 안내가 주석에 들어있어서 논문을 읽는 듯 딱딱해 보이지만 실제로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면 풍부한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이지요.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의 주 내용은 바로 마르쿠스 카토가 하는 얘기들이잖아요. 바로 유명한 다음 대목과 연관이 있기에

 

"노년에는 활동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는 셈일세. 그들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은 더러는 돛대에 오르고 더러는 배 안의 통로를 돌아다니고 또 더러는 용골에 괸 더러운 물을 퍼내는데 키잡이는 고물에 가만히 앉아 키만 잡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같네. 젊은 선원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지만, 키잡이가 하는 일은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네. 큰 일은 체력이나 민첩성이나 신체의 기민성이 아니라, 계획과 판단력에 따라 이루어지지. 그러고 이러한 여러 자질은 노년이 되면 대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늘어난다네."(그리스로마에세이, 408~409면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중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을 쓰면서,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를 통해 마르쿠스 카토가 하는 얘기를 첫 인용의 색깔부분처럼 인용을 한 것이지요. 마치 카토가 직접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노년>에서 키잡이 비유를 하고 있으니까요. 대담이 진행되던 84세의 카토는 로마의 가장 훌륭한 키잡이였을 테고요. 그럴듯한 연출을 엿보고, 천병희 선생은 <영웅전> 해당 대목에 <노년에 관하여>에 대한 언급을 주석으로 달았을까 궁금했는데, 따로 언급하지는 않으셨네요. 당시로서는 유명한 얘기겠지만, 관련된 것들을 읽다보니 이런 즐거움도 있네요.

 

최근에 읽은 황광우 선생의 <철학콘서트3>은 10명의 철학자를 다루고 있는데, 그 세번째가 키케로이더군요. <노년에 관하여>에서 발제한 내용으로 3장을 구성하고 있는데 제목이 <늙은 키잡이는 바람을 읽는다>이더군요. 별도 인용은 없고 위의 노년 인용분을 본문처리하면서, 황 선생이 뽑아낸 키워드는 "오랜 경험이 주는 통찰력이라는 선물" 곧 노년의 키잡이가 가진 것은 <통찰력>이라는 것이더군요.(황광우, 철학콘서트3, 웅진지식하우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찾아보았어요. 홍사중 선생이 옮긴 동서문화사의 플루타르크 영웅전1에 실린 마르쿠스 카토의 숲의 책 인용부분에 해당되는 제목이요. '원전번역'에 무게를 두고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숲의 것은 개념어랄까 한자어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간결함을 추구하고, 동서문화사의 것은 의역이랄까 우리말로 풀어서 술술 읽히게 하는데 주안점을 둔 듯 참고로 살펴보기시바라요..

[하지만 카토만큼 자기 자신을 예찬했던 사람도 드물 것이다. 카토는 자기자랑을 많이 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과오를 범한 사람들은 '우리는 카토가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카토의 행실을 서툴게 흉내낸 사람을 '왼손잡이 카토'라고 불렀다.
배에 탄 사람들이 풍랑을 만나면 키잡이에게 모든 것을 맡기듯, 원로원 또한 위기에 처했을 때 카토가 출석하지 않으면 중요한 문제 해결을 연기하곤 했다. 이런 일은 다른 사람들의 기록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개인 생활에서만 훌륭했던 것이 아니라 연설이나,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다.](
플루타르크영웅전1, 600면에서 <마르쿠스 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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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는 가라앉은 노여움이다."
로마의 철학자이면서 정치가, 그리고 법률가,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의 저자인 마르쿠스 키케로가 한 말이다. '가라앉은'이라는 말 때문에 잠시 샛길로 빠진 얘기를 덧붙이자면, 근래에 들어 발효식품인 김치 못지 않게 한국의 막걸리가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으며, 수출실적까지 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막걸리야 말로 흔들어서 마셔야 한다. 뭐 어느 소주(처음처럼)처럼 흔들어 마시거나 그렇지 않거나 내게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효리가 흔드니 술꾼들로 흔들어 먹어야 하는 것으로, 까짓꺼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흔들어서 마시는 모양이다. 그러나 막걸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섹시퀸이라는 광고모델이 가르쳐주지 않아도-최근에 국순당 막거리 광고모델은 시트콤 이후 상종가인 황정음이긴 하던데- 으레 흔들어 마실 줄을 안다. 그런데, 이 막걸리를 흔들지 않고 건더기가 가라앉은 상태에서 위에 맑은 부분만 마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맑은 부분을 '윗물'이라고도 부르는데, 사실, 청주(淸酒)가 바로 막거리의 윗물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말이 나온 김에 뜬물이라는 말도 적절치는 않다. 건더기가 가라앉았을 뿐이지, 맑은 부분이 뜬 것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막거리의 '가라앉은' 바로 이 부분이 발효를 일으키는 누룩의 주성분이며, 과도하게 흔들면 폭발(?)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물질이다.  

가라앉은 노여움, 왜 이 문장에서 막걸리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느낌 자체는 상당히 차가운, 때만 되면 부글부글 끓어오를 분노를 이 가라앉은 것들-노여움-에, 그 인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장 처절한 복수극을 펼치는 두 자매, 판디온 왕의 딸들인 프로크네와 필로멜레가 펼치는 복수야 말로 차갑고 냉정하며 잔혹한데, 나는 이들 자매가 펼치는 복수의 과정에서   "증오는 가라앉은 노여움."이라는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형부를 사랑하는 처제의 이야기인지 처제를 사랑하는 형부의 이야기인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영화 <파주>는 두 자매와 그 사이에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주 다른 이야기지만 프로크네와 필로멜레 자매의 이야기도 등장인물의 구성만 놓고 보면, 두 자매의 아버지인 판디온의 원군으로 화려하게 등장하는 그리고 그 공로로 큰 딸 프로크네를 아내로 얻게 되는 테레우스, 그리고 그의 처제인 필로멜레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영화 <파주>는 뭐랄까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고 할 수 있는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라는 그런 메시지에 충실했다기보다는 몇몇 아쉬움을 민감한 소재였던 만큼 어쩔수없이(?) 남기고 있는데, 이들 자매의 경우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내의 여동생을 강제로 추행한 형부 테레우스를 두 자매는 서로 힘을 합쳐(아니 죽을 힘을 다해) 잔인하게 복수를 하는 이 야기는, 아폴로도로스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일명 '도서관')에 거의 영화의 시놉시스 수준으로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는 피비린내가 느껴질 정도로 드라마하게 그려지고 있다.  

 

 

 

 

 

 

 

또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는 이 신화에서 차용한 것이 확실한 방식으로 복수를 하고 있다. 그런데, 1)에우리피데스는 기원전 497/6년에 태어났고, 2)오비디우스의 생몰연대는 기원전 43년~기원후 17년 또는 18년이며, 아폴로도로스는 기원전 2세기 알렉산드레이아에서 활동한 아테네 출신의 학자이다. 시놉시스가 있고(3아폴로도로스), 그것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끈적끈적한 이야기가 나온 다음(2오비디우스), 비극의 중요한 소스로 활용(1에우리피데스)다면 그럴듯할 것인데, 실제로 작가들이 살았고, 작품들이 발표된 시기는 그 역순인 것이 흥미롭다.  

그러니까 여기 두 자매의 이야기를 하려먼, 비극 <메데이아>, <변신이야기>, <그리스신화> 순으로 해야 하는데, 실제로 이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는 그 역순으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에서 '요약'편 <아테나이 왕들2>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에릭토니오스(1)는 물의 요정 프락시테아(~1)와 결혼하여 아들 판디온(2)을 낳았고, 에릭토니오스가 죽자 판디온이 왕위를 물려받는다. 그런데 판디온(2)은 이모-이모와 결혼하는 이 자체도 흥미롭고, 이후의 비극의 원인이 되는 느낌-인 제욱십페(~2)와 결혼하여 두 딸인 프로크네(2-1)와 필로멜레(2-2)를 낳고, 쌍둥이 아들인 에렉테우스(2-3)와 부테스(2-4)를 낳는다.  

국경문제로 전쟁이 발생하자 판디온(2)은 트라케로부터 테레우스(아레스의 아들)를 원군으로 불러 물리치고, 그 공으로 테레우스에게 딸 프로크네(2-1)를 아내로 준다. 그리고 테레우스는 프로크네에게서 아들 이튀스(3)를 얻는다. 그러나 테레우스는 처제인 필로멜레(2-2)에게 반해 그녀를 겁탈한다. 그리고 테레우스는 프로크네(2-1)에게 동생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반항하는  필로멜레(2-2)의 혀를 잘라버리며 이후에도 몇차례나 유린한다. 갇힌 신세가 되어 베를 짜는 필로멜레(2-2)는 천에다 글자들을 넣어 자신의 불행을 언니 프로크네(2-1)에게 알린다. 그렇게 두 자매의 복수가 시작되는데..  

3년마다 한 차례씩 열리는 디오뉘소스 축제를 틈타 프로크네(2-1)는 동생을 찾아내 집으로 돌아오며, 두 자매는 테레우스의 아들-프로크네의 아들이기도 한- 이튀스를 죽이여 요리해서 영문도 모르는 테레우스에게 식사로 내놓는다. 그리고 아들을 찾는 아버에게 아들은 당신이 찾는 사람은 (당신) 안에 있다고, 상황을 알림으로써 복수한다. 그리고 두 자매는 도망친다. 사태를 파악한 테레우스는 도끼를 집어들고 그녀들을 뒤쫓고, 포기스의 다울리스에서 따라잡히자 두 자매는 자기들을 새로 변하게 해달라고 신들에게 기도한다. 그래서 프로크네(2-1) 나이팅게일이 되고, 필로멜레(2-2)는 제비가 되었으며-혀가 잘려 제비처럼 짹짹거릴수밖에 없어- 테레우스도 새로 변하여 오디새(혹은 후투티-변신이야기)가 되었다는, 이상이 아폴로도로스의 <그리스 신화>가 정리하는 이야기다.
<변신 이야기>는 결정적인 장면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칼을 쓰거나/ 칼보다 더 강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쓸 때란다./ 아우야, 나는 어떤 범행이든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어. ...간악한 테레우스를 불속에 던져 넣거나, 칼로 그자의 혀를 자르고/ 눈을 뽑고 너에게 치욕을 안긴 사지를 절단하거나.."

라고 프로크네가 얘기하는 동안 이튀스가 다가온다. 아들이 다가오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생각난 그녀는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아아, 너는 아버지를 얼마나 닮았는가!'라고 말한다.  아들을 잃은 아픔을 아비에게 선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극한의 복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니 프로크네는 아들을 칼로 치고, 동생인 필로멜라는 조카의 목을 자르고, 사지를 해체하며, 청동솥에서 부글부글 끓여 요리를 만들어, 테레우스가 먹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라앉은 노여움'은 냉정한 행위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만일 당신이 한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 속에 있는 자신의 일부를 미워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들이
우리를 거슬리게 하지는 않는다."  

헤르만 헤세(<데미안>)의 얘기다. 프로크네의 자신의 일부이기도 한 아들을 희생하면서까지 분노를 표출한다. 가장 소중한 아들에게서 가장 증오하는 남자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 자신 안에서 자신의 일부로 꿈틀거리는 연민까지도 잘라내는 냉혹한 선택을 한다.  

"사랑, 우정, 존경 같은 감정은
어떤 대상에 대한 공통의 증오만큼
인간을 똘똘 뭉치게 하지는 못한다."

안톤 체홉(1860~1904, <<NOTEBOOKS>>)은 복수의 화신이 된 두 자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를 보고서 이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변신 이야기>는 세 인물이 새로 변한 이후에도 뒷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지중지하던 노년의 보람인 딸(필로멜라), 든든한 또 다른 딸 프로크네와 외손자, 한때 원군으로 자신의 왕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사위로부터의 배신 등으로, 판다온은 오래 살지 못하고, 아들 에렉테우스(2-3)에게로 왕권을 이어진다.  

에렉테우스(2-3)는 아들 넷과 그만큼의 딸을 낳았는데, 딸 프로크리스(3-1)은 아이울로스의 자손인 케팔루스의 아내가 되고, 다른 딸 오리튀이아(3-2)는 북풍의 신인 보레아스에게 납치되어 차디찬 폭군의 아내로 살아가며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칼라이스(3-2-1)와 제테스(3-2-2)가 그들이다. 이 두 소년은 성년이 되었을 때 아르고 호에 승선하여 황금양모피를 찾아가는 아이손과 동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아손을 사랑한 <메데이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프로크리스(3-1)와 오리튀이아(3-2) 자매는, 프로크네와 필로멜라 자매의 조카들로, 이들 자매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살펴볼 필요성이 있으나, 일단 줄이기로 하자.  프로크네와 필로멜라, 특히 어미인 프로크네가 아들을 죽여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음으로써 남편에게 복수하는 이야기가, <메데이아>에서 이아손과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죽이면서까지 복수하는 수법(?)이 비슷한다. 이버지를 배신하고 오빠를 살해하여 토막내어 버림으로써 추격하는 아버지의 배를 따올렸을 뿐만 아니라. 이올코스로 돌아와 황금 양모피를 바쳐도 펠리아스가 왕권을 돌려주지 않자, 메데이아는 남편을 위해 잔혹한 살인을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펠리아스의 딸들이 보는 앞에서 늙은 숫양 한 마리를 토막 내어 마법의 약초를 넣고 삶아서 도로 젊게 하고 나서는 그들의 아버지도 그렇게 해 주겠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그들이 아버지를 토막 내어 삶자 마법의 약초를 주지 않아 그를 죽게 만든다. 그 뒤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이올코스에서 추방되어 코린토스로 도망쳐 와서는 두 아이까지 낳고 10년 동안 행복하게 산다. 이상이 드라마 <데메이아>가 시작되기 이전의 상황이다.   

 

 

 

 

 

 

 

에우리피데스는 남편 테레우스(Tereus)가 처제 필로멜레(Philomele)를 범한 것에 격분하여 둘 사이에서 태어난 제 아들 이튀스(Itys)를 손수 죽인 프로크네(Prokne)의 이야기를 모델로 삼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치 아폴로도로스의 <그리스신화>를 시솝시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 풍부해진 소스를 취한 다음, 오늘날 영화쯤에 해당하는 비극 <메데이아>를 쓰고 무대에서 상연하지는 않았을까 착각이 들 만큼, 세 곳에서 펼쳐지는 한(같은) 이야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다. 토막난 사체를 부검했는데, 알고 보니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딸이었던 영화 <용서는 없다>나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올드보이>에서 사랑을 나눴던 여자가 사실은 15년 전에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만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딸이라는.. 이렇게 우리 영화속에서의 복수극의 원 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남편이 새장가를 들려고 하는 크레우사 공주와 그 아버지 크레온(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크레온은 아님)을 제거하는 화려한 의상을 아들들을 시켜 갖다 바치게 한다. 그리고 잠시 뒤에 그 아이들이 돌아오자 죽음의 선물을 전달해 준 아이들이 살아남을 길이 없음을 알고는 당초 계획했던 대로 제 자식들을 제 손으로 죽인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 두 자매의 캐릭터는 안티고네와 이스메네 자매 중에서 안티고네가 운명을 주도하는 입장이듯이 더 강렬하여, 캐릭터로는 프로크네와 메데이아가 오버랩된다. 또한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 등장하는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중에서도 주어진 운명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언니 엘렉트라-소심한 동생 크리소테미스에 비해-의 모습이 프로크네(메데이아)-안티고네와 일맥을 이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예나 지금이나 '자비로운 여신들'-사실은 전혀 '자비롭지' 않은 복수의 여신들을 달래기 위한 말이 '자비로운'이라는 역설-만 바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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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오라버니를 존중하는 내 행동이/ 옳다고 할 거예요. 내가 아이들의 어머니였거나/ 내 남편이 죽어 썩어갔더라면, 나는 결코 시민들의 뜻을 거슬러/ 이런 노고의 짐을 짊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어떤 법에 근거하여 내가 이런 말을 하느냐고요?/ 남편이 죽으면 다른 남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며,/ 아이가 죽으면 다른 남자에게서 또 태어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하데스에 가 계시니,/내게 오라비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겠지요. "
 -<<그리스비극걸작선>>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의 후반부, 안티고네가 자신의 무덤이 될 석굴(무덤이여, 신방新房이여, 석굴 속 영원한 감옥이여!)로 향하면서 던지는 대사이다. 오라버니인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렀기에-국법을 어긴- 처벌을 받는 것, 안티고네는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크레온(국왕, 그녀의 외삼촌)의 처분을 당당하게 받아들인 다. 그런데, 인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왜 그가 목숨을 걸고 그것도 이미 죽은 오라버니의 명복을 빌어주었느냐, 그 이유를 밝히는 대목이다.  

1)남편이 죽으면 다른 남편을 구할 수 있다. 2)아이가 죽으면 다른 남자에게서 또 태어나게 할 수 있다. 3)그러나 어머니(이오카스테)와 아버지(오이디푸스 왕)가 모두 돌아가신 지금, 4)나 안티고네에게는, 오라비를 다시 태어나게 할 수는 없다. 오라비라는 존재는 그 무엇으로 대체(대신)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 때문에 자신은 목숨을 걸었다는 얘기다.
세상에 이처럼 견고한 우애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쌍둥이라면 같은 기간에 한 어미의 뱃속에서 자라 생명을 얻었을 것이고, 형제나 자매, 오누이 사이는 그 기간은 다를지라도 한 아버지의 씨를 받아, 한 어미의 밭(자궁)에서 자라고 태어난 사이다. 그러니 안티고네의 말처럼 세월을 거슬러 죽은 부모를 다시 살리고, 그것도 생산이 가능할 나이대로 환생시키지 않고서는 그런 형제를 다시 얻을 수는 없다.  

그토록 소중한 존재이건만 과연 형제간 혹은 자매간의 우애가 늘 돈독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세상살이가 복잡해지고 혼미해지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더 차지하기 위한 경쟁관계이기도 하며, 왕권(경영권)이나 유산(돈) 등을 두고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경쟁하게 되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것이 또한 형제 관계이다. 그래서,

우정의 신성한 열정은 아주 달콤하고, 견고하고,
충실하고, 영속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평생 지속될 수 있다.
단, 돈만 빌려달라고 하지 않으면.(
마크 트웨인, 미국작가)

과 같은 말이 친구사이만이 아니라 형제사이에도 딱 들어맞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리라. 이와 달리, 부모가 당한 억울한 일이나 죽음과도 같은 일을 만나, '복수'를 해야 할 때 이들의 공동의 적을 제거함으로써 원수를 갚기 위한 눈부신 협동을 하는 이들이 또한 형제 자매라는 친족들이다.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동생 이스메네에서 오빠의 장례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이스메네는 소극적이다. 국법을 거스르면서까지 이미 죽은 이를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있느냐고, 이제 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언니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피력한다. 이후에 이스메네마저 공범으로 몰리는 과정에서 안티고네는 동생은 이 일과 무관함을 역설함으로써 어떻게든 자신과 같은 처지-죽음에 이르는-에 이르지 않도록 배려한다. 동성인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 그런데, 앞서 인용하였던 오빠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각별하여, 안티고네가 폴뤼네이케스 오라버니를 사랑하는 그것이 동기간의 사랑 이상의 것으로 해석하는 평론들이 나름의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

한편, 소포클레스의 선배이며 그리스 비극의 창시자인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부적절한 관계인 정부와 작당하여 남편 아가멤논을 죽인 클뤼타임네스트라(<아가멤논>), 이들의 자녀들은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그 정부를 죽임으로써 복수를 하고(<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오레스테스는 그 죄를 씻김을 받기 위해  아테나이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팔라스 아테나의 신전을 찾는다.  

그리고 아테나 여신을 판관으로 오레스테스에게 죄를 묻을 것이냐, 사면해줄 것이냐를 두고 재판을 하게 된다. 아폴론은 피고인 오레스테스의 변호인, 그리고 복수의 여신들(코로스)이 원고측의 입장을 대변한다. 원고측과 피고측 대리인 사이에서 논쟁이다.  

 

코로스장: 우리는 모친 살해범을 집에서 내쫓고 있는 것이오.
아폴론: 그렇다면 남편을 죽인 여인은 어떻게 하고?
코로스장: 그것은 같은 혈족에 의한 살인이라고 할 수 없지요.
아폴론: 사실 남자와 여인의 혼인은 운명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고/ 맹세보다 더 위대한 것이기에 정의의 보호를 받는 것 아니겠소./ 부부가 서로 죽여도 그대가 우유부단하게 그들을/ 벌주지 않거나 화를 내며 지켜보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가/ 오레스테스를 집에서 내쫓는 것을 옳다고 인정할 수 없소. (<자비로운 여신들>)

남편을 죽인 부인의 죄(클뤼타임네스트라, <아가멤논>에서)와 어머니를 죽인 아들의 죄(오레스테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무거운가를 두고 첨예하고 의견이 맞서고 있다. 복수의 여신들(코로스)는 혈족간의 살해를 더 위중한 죄로 보고 있고, 아폴론은 비록 피가 섞인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맹세로 맺어진 부부의 연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며, 부부간의 살육을 더 위중한 죄로 보고 있다. 사실, 흔히 '가족이라고 할 때와 '친족'이라고 할 때의 그 의미는 다른데, 가령, 부부는 무촌(無寸) 간이라 촌수를 따질 필요가 없을 만큼 가까지만 헤어지면 남남이 된다(님이라라는 글자에 점 하나 붙으면 남이 되는). 이런 입장에서라면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고는 하지만 혈연관계인 어머니인 죽인 오레스테스의 죄가 더 무거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폴론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면서 사랑하자던 맹세의 순수성과 그것을 어긴 죄가 더 무거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극심한, 그리고 가장 치유하기 어려운 증오는
깊은 사랑이 증오로 바뀐 경우다
.(에우리피데스, 비극 <메데이아>에서)

지극한 사랑이 지독한 분노로 바뀌고 더 이상 잔혹할 수 없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복수를 하는 메데이아를 생각해보라. 분명, 에우리피데스도 아폴론의 의견에 찬성표 하나를 던질 것이 분명해보이지 않는가. 에우리피데스를 인터뷰를 한다면 그는 분명 오레스테스(나 엘렉트라에 대한 에루리피데스의 호/불호는 별도로 살필 문제)보다,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죄가 더 위중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위 인용은 코로스가 하는 말로, "친구끼리 사이가 나빠져 서로 미워하게 되면/ 치유할 길 없는 사나운 분노가 날뛰는 법이지요."(<메데이아> 520~521행)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은 어떠할까? <자비로운 여신들>의 재판을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참관했다면, 그리고 한 말씀 부탁드리면 안티고네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녀의 심경이 무척이나 복잡할 것이므로, 딱히 정답이라고 할만한 대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목숨을 걸고 죽은 오빠의 명복을 빌어주고, 자신은 죽겠지만 살아있는 동생(이스메네)은 살아갈 수 있도록 우애를 발휘하는 그녀로서는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어줄 것 같다. 엘렉트라 못지 않게 아버지(오이디푸스 왕)을 사랑하고 챙기는 효녀 심청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런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의 죄가 더 무겁다는 판단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형제사이, 그리고 자매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때론 협력하여 공동의 적에게 복수를 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형제나 형제의 가족들의 목숨까지도 솜털처럼 가볍게 생각하는(아가멤논의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는 그녀의 작은아버지 아이기토스) 이기심을 제어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스 비극이나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다룬 저작들, 혹은 그 시대의 작가들이 쓴 저작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모습의 형제들과 여러 모습의 자매들, 혹은 오누이 사이와 누나와 남동생들에 이르기까지 사례별로 살펴보려 한다.  

-또는 배 다른 형제들(어미가 다른), 때론 아버지가 다른(헤라클레스와 이피클레스처럼) 형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배제하지 않고 다룰 것이며, 작품을 쓴 작가의 삶(<일과 날>은 오비디우스가 그와 형제간인 동생에게 충고를 하는 목적을 가진 글이기도 하다)에서도 해당 부분이 있다면 역시 배제하지 않고 살펴볼 생각이다.  

-가끔은 지금 혹은 이미 방영되었던 드라마. 혹은 영화 속 형제간 자매간의 얘기도 곁들여서. 사실 대부분의 드라마라는 것이 사극이건 현대 혹은 현재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건 가족들 사이에서, 특히, 왕권이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의 싸움이라는 것, 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의 이 기획이 고전읽기에 나름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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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0-08-24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 주제입니다. 기대가 되고, 찾아서 읽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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