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폴로도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4년 6월
평점 :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푸스의 신들이 지금은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이 신들의 본부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프랑스나 독일 심지어 영국으로 옮긴 적이 있으며, 지금은 미국 뉴욕의 한 빌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그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 <아바타>에서 하늘에 떠 있는 산들의 풍경 쯤으로 신들의 본부를 그려내고 있는.. 아이가 열심히 읽는 퍼시잭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들춰보며 일요일 한 나절을 할애했다. 그리고 그 책에 반신인 주인공이 만나서 싸우기도 하고 또 그를 돕는 여러 신들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과연 이렇게 이해되어도 좋은 것인가, 그리고 나는 내가 내 아이만했을 때 요약된 것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읽었던 출판사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 번역자가 누구였다기보다는 편집부에서 짜깁기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리스신화 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아빠에 비하면 그리스 신들이 현재에도 살아있다는 설정으로 진행되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한 소설이, 또 그것이 영화로도 만들어져 곧 개봉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모처럼 서점나들이, 기왕 캐릭터소설처럼 읽었던 책 속의 신화는 실제로 어떤 내용인지 아느냐, 이 책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를 구입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인 동생이 구입한 책을 먼저 날름(?) 읽어버린 중학생인 녀석에게 이 책이 어려울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일요일밤부터 조금 전까지 녀석이 그리스신화 읽기에 몰두하는 것을 지켜본 바로는 기성세대인 나와는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다. 마치 어린시절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이 인쇄된 보물딱지 모으기에 열심이던 것처럼 신들의 이름을 그리고 그들이 활동하는 이야기를 참 열심히 읽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영어단어 외우듯이 신들을 이름을 외워야 할 필요까지 있겠느냐, 하는 데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나의 꽃이 되었다, 라는 시구절이 의미하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M아줌마가 메듀사로, N이 뒤오니소스로 현대의 소설인물로 등장하는 앞의 소설책에서의 인물들의 계보를 파악하고, 또 그들의 출생과 관련된, 그들이 담당하는 영역,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신과 사람들의 이야기들.. 우선은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정도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고 생각했던 나의 바람은, <원전으로..그리스신화>를 읽어가는 아들의 열심인 모습에서 충족되고 남음이 있다. 신들이 지금은 지구에서 가장 힘센 나라 미국에 머물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머물기에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가 되었다 식의 소설 속의 설정은 역겹지만, 달리 말하면 서양사에서 그리스의 신화와 그리스신들의 입지와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식의 해석을 해야 하리라. 그리고 점차 이런저런 서양의 문화와 관련된 책들, 영화 등등을 접하면서도 나름대로 지금 읽은 것들을 잘 기억하여, 그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주리라.
사실은.. 소설에 나오는 누구는 누구로, 실제로는 이러이러한 내용이 본래의 이야기인데, 그것을 이렇게 바꾸어놓았구나, 곧 개봉한다는 영화를 보면 또 달라지겠지만(영화는 소설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영화 장르 나름의 특성에 맞춰 재해석을 주저없이 했다고 하니), 그래도 원전으로 그리스신화 읽기에 아들 녀석이 도전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나는 녀석이 기특하다. 문득 대학시절 당시는 '5.18광주사태'쯤으로 얘기되던 광주민주항쟁(민주화운동)의 책임을 미국에 묻는 반미의 움직임이 컸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그들, 미국을 필두로한 서양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제대로 그들이 가진 것의 장점을 제대로 보고 또 그 한계도 짚어내는 진지함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도 우월하다고 믿는 자부심의 출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숱한 역사의 시간들을 겪으면서 그때그때 융성하고 또 소멸하는 세력들이 생멸했지만, 그들 서양정신의 뿌리를 찾아올라가면 서기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성격보다도 훨씬 이전의 세계를 글로 담은 어쩌면 글이라는 매체로 담기에 버거운 그리스신화의 세계가 있다.
포세이돈과 사람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신의 반쪽피 인간 퍼시잭슨은 과연 숱한 포세이돈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 중에서 누구와 가장 가까운 것일까? 딱 꼬집어 누구라고 할 수 없고, 그래야 소설속 캐릭터는 살아있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아들녀석이 이 책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에서 그 소설 속 캐릭터와 신들의 행적을 탐색하는 일이, 사실은 순서가 바뀌었음을 짐작하게 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사실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를 읽고 혹은 읽으면서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오비디우스)를 읽는 것만으로도 신화를 소재로한 문학작품의 최고를 맛보는 것일텐데.. 어쩌면 중학생인 녀석에게는 그리스신화 세계에 나오는 내용만도 소화하는데 무리가 따르리라 여겨지는 내용들도 없지 않아 난감한 질문을 받아야 할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뭔가를 알려면 제대로 그 진국의 세계를 탐색해야 한다고 한 아비의 몫이겠지.. 어쩌면 나도 따로 구입해서 길고 긴 출퇴근시간을 이용해서 한 차례 더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