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처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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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단요
출판사 : 창비
출간 연도 : 2025년 8월 29일
페이지 : 총 166쪽
주제 분류 : 청소년>청소년 문학>청소년 소설

[표지]
노랑-갈색 계통의 색으로 된 표지는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 그림이 있다. 소설만큼 작가의 말도 참 좋았는데, 표지가 이를 표현하는 것 같다. Third Culture Kid들도 한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대상화되는 일이 많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있는 그대로 소중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가 잘못된 거야.' 같은 말은 순식간에 힘을 잃어버리고, TCK는 여러 장의 캐리커처를 갈아 끼우는 일의 전문가가 된다. 어딘가에서는 한없이 불쌍해지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놀라울 만큼 자신만만해진다. 떄와 장소에 따라 어떤 부분은 생략하고 어떤 부분은 과장한다. (중략) "정반대의 가면을 번갈아 쓰는 것 자체는 비열한 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라는 개념을 과하게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 주는 이야기가 더 많았더라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감정들의 존재에 대해 말해야만 '네 분노를 부당한 곳에 쏟아부으면 안된다'는 설득이 힘을 얻는다고도 믿는다. 이건 내가 일종의 교육자로서, 소외 계층 청소년들과 대화하며 얻은 믿음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TCK의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꿰뚫고 있을까 감탄했다. 한국어로 쓴 소설의 심리 묘사가 너무나 구체적이고 절묘해서 작가가 TCK일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TCK가 아니라면 어쩌면 이리 잘 알지? 작가들은 역시 다른 걸까? 라고 생각했다.
TCK라면 한국어로 된 한국 소설을 잘 쓸 수 없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TCK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교육을 받았다면 한국 소설을 쓰지 못할 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내가 먼저 상대를 규정하고, 그 상대는 내 규정에 맞는 가면을 써 주는 상황. 일방향적인 (내가 아닌 네가 한)배려를 소통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좋았던 문장 중 하나] 스포가 될 수도!
중간 중간 섬세한 심리 묘사도 좋았지만 (특히, 주현) 그래도 역시 난 마지막이 좋았다.

얼빠진 것처럼, 놀라운 것처럼, 혹은 반가운 것처럼 중얼거리던 승윤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리고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면 수능 잘 쳐라."
"형도 수능 잘 쳐라."
우리 둘 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면 서로 모른 척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킨다면 사무적인 말 한두 마디쯤은 나누겠지만, 예전처럼 친하게 어울리지는 못할 거였다.

사실 이 장면 뒤도 너무 좋지만, 이 글을 보고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서 더 발췌하지는 않았다. 서로 간의 앙금이라는 것은 팥앙금처럼 짓이겨져서 내 팥, 네 팥 할 것 없이 섞여버린다. 초등학교 때 내가 저지른 잘못은 당장 깨닫지 못할 수도 있거니와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는 깨달아도 말을 꺼내기 애매하게 되어버린다. 잘잘못 이전 이후에도 챙겨줄 것은 챙겨주고 오고갈 것은 오고가서 사람 관계가 간단하지 않게 된다.
말을 꺼내기 애매하게 된 것은 당했던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말을 꺼내지는 않지만 현재의 말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기억하고 있지만,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과 그 여파로 하는 말과 행동이 있다는 것은, 말을 꺼내기 어렵게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잘 털어내지지 않는 것. 털지도 못하고 해결도 못한 그런 것들이 나이가 먹을수록 쌓인다.
주현과 승윤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앙금을 풀었다고 해서 꼭 다시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자연스럽게 흘러보내는 마지막 장면이 참 위로가 되고 좋았다. 서로 안 맞으면 안 맞는대로, 각자 갈 길을 응원하며 서로를 졸업하는 사이

[총평]
0장(7쪽-17쪽)까지 읽고 나는 단요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제와 표현이 둘 다 너무나 섬세하다. 다문화 청소년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가 내 안에도 있었구나(대중 매체는 Third Culture Kid의 유소년기가 불쌍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스리랑카인이 사장님이고 고용인이 한국인인 경우가 뭔지 모르게 어색과 불편함을 느꼈다)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고, 다문화를 넘어 10대 친구들끼리의 오묘한 힘의 관계가 섬세하게 잘 서술되어있어서 학생들이 공감하며 읽기도 좋고, 어른이 읽기에도 좋다. 그동안 청소년 문학은 교육 방송와 같은 부분이 있어서 현실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 투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편견을 깨준 첫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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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말은 독고독락
낸시 풀다 지음, 백초윤 그림, 정소연 옮김 / 사계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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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졀 #사계절출판사 #사뿐사뿐 #사뿐사뿐교사북클럽 #낸시 풀다#청소년 #청소년소설#정소연옮김#백초윤그림

지은이 : 낸시 풀다
출판사 : 사계절
출간 연도 : 2025년 9월 25일 1판 1쇄
페이지 : 총 89쪽
주제 분류 : 청소년 문학>청소년 소설

[표지]
손바닥 크기만한 작고 얇은 책인데, 여러 색감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앞에서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새끼 손가락보다도 작은) 발레하는 사람의 하얀 실루엣이 그려져있다. 창문을 앞에는 커튼이 표현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무광이고 커튼만 유광이라서 까만 배경인데도 은은하게 화려하다. 어떤 의미일까?
'내가 하려는 말은' 말로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니 나의 춤을 보라는 걸까?
이 책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시간적 자폐를 앓는 인물에게 재능보다 정상적인(평균적인) 삶을 선택하라는 이야기와 치매를 앓는 인물에게 기억하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처음 이야기를 읽고 아이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두번째 이야기는 읽고 부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서평에서는 두번째 이야기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 소설을 이루는 3요소 : 1구성(인물, 사건, 배경), 2주제,3 문체

[1-1구성-인물]
엘리엇은 더 이상 치매 환자는 아니지만, 치매로 인해 이미 잃어버린 기억들은 영영 되찾을 수 없는 상태이다. 그레이스는 엘리엇은 아내로 엘리엇과 평생을 함께 했다. 엘리엇이 잃어버린 기억들을 심어주기 위해 (기억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으므로) 애쓴다.

[1-2구성-사건]
엘리엇은 평생을 함께 한 그레이스를 어느 정도는 기억한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당신은 이걸 잘했어. 당신은 이랬어. 이 아이는 누구야.'를 말해줄수록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고 입력을 하는 것처럼 느낀다. 혼란을 느끼고 급기야 자신을 도와주는 그레이스에게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게 된다. 그레이스에게 '사랑한 기억이 없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그레이스의 차후 행동이 매우 의미심장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치매에 걸리면 돌봄을 받는 입장이 되고, 돌봄을 받으니 수용을 강요받게 된다. ('착한 치매'라는 말이 누구에게 착하게 간다는 뜻인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이)
만약(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훗날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나와 함께한 기억을 잃어버렸고, 나는 부모님을 걱정하고 사랑한다면?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이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임을 하나씩 알아가듯이 부모님에게도 그런 태도로 다가가고 싶다, 그렇게 다가가야지 생각했다.

[1-3구성-배경]
주인공의 이름은 엘리엇과 그레이스지만, 지구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라 이질감이 없다. 소설적 상상력이 들어간 부분이라면, 치매를 멈추는 치료를 첫번째로 받은 환자라는 것. 그레이스는 다른 사람들은 치매 진단을 받자마자 신경 세포들이 망가지기 전에 치료를 시작하니 더 수월할 거라고 말하며 누군가는 첫번째가 되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2주제]
인간이 오래살면서 치매는 흔한 병이 되었다. 수명이 짧았을 때는 치매가 오기 전에 운명했을테니.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를 안고 가야 한다면 (노화, 치매는 현대 의학으로는 늦을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으니) 치매를 정상이 아닌 상태로 간주하고, 죽을 때까지 보살피는 존재로 대해야 할까? 치매로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 중 아니라면 우리는 기억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정체성의 대부분은 기억일까? 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3문체]
이 이야기 '다시, 기억' 의 처음 부분은 따라가기가 좀 어려웠다. 배경과 인물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꿈의 비유를 읽으니 무슨 소린가. 치매 환자처럼 머릿 속이 뒤죽박죽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그레이스의 정돈된 인사가 나오는데, 안정감이 들었다. 엘리엇도 그렇지 않았을까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덧. 서정적이고 파스텔 색감의 삽화가 이야기를 더 어여쁘게 만들어진다.

추가. 시집보다 얇고 작은 소설집의 출현.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해석이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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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보이즈 창비청소년문학 138
정보훈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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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창비청소년 #청소년소설 #시티보이즈 #응답하라1994작가 #응답하라1998작가 #슬기로운감빵생활 #라켓소년단 #정보훈 #정보훈드라마작가

지은이 : 정보훈
출판사 : 창비
출간 연도 : 2025년 7월 25일
페이지 : 총 161쪽
주제 분류 : 청소년>청소년 문학>청소년 소설

[표지]
운동장 계단이 그려진 배경은 도시의 대표색인 회색이다. 운동을 막 끝냈는지 땀을 흘리며 쉬고 있는 셋이 보인다. 바탕은 회색이지만 땀을 흘리고 있는 셋은 색을 가지고 있고 빛이 나도록 코팅 처리가 되어있어서 책 표지가 무척 입체적으로 보인다. 만화 속 한 장면 같은데, 인물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 귀를 가까이 가져다대면 이들이 하는 이야기도 들릴 것 같다. 도시 소년들, 무슨 이야기일까?

[좋았던 문장 중 하나]

달리기의 설렘은 달리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매일 같은 코스는 있어도 매일 같은 달리기는 없다. 턱까지 숨이 차오르고, 땀으로 운동복이 흠뻑 젖을수록 달리는 사람의 머릿속은 단순해지는 것을 넘어 명확해지고,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 걱정거리는 바람에 날아가고 즐거움은 배가된다. 신체 기능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마침내는 최대치로 끌어올려 결승선을 향하는 일. 그 자체로도 충분한 매력이 있다. 달리기, 육상, 러닝 뭐라고 불러도 좋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모여서 자신만의 달리기가 되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39쪽)

◆ 소설을 이루는 3요소 : 1구성(인물, 사건, 배경), 2주제,3 문체

[1구성 : 인물, 사건, 배경]
책을 다 읽고 나서 여운이 남는 인물은 '희재'와 '진주'이다. 희재는 아빠의 '육상은 단체 종목'이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육상 선수를 꿈꾼다. 미래가 불투명한 육상부 선수들은 하나둘 육상을 그만두고, 코치도 육상부를 해채하려고 한다. 육상을 연습할 수 있는 운동장도 학교 일진들이 차지한 상태. 악조건들을 하나하나 이겨나가는 희재를 응원하게 된다. 최근에 본 농구 영화 '리바운드'도 비슷한 플롯이었다. 하지만 익숙해도 재미있다. 진주는 육상을 개인 종목으로 봤을 때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일등 선수이다. 여전히 일등이지만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춘 진주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이것'이었다는 결말도 참 마음에 들었다.

[2주제]
보통 농구, 축구, 야구는 에이스 선수만으로는 좋은 경기 결과를 얻을 수 없는 단체 경기라고 본다. 육상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육상을 단체 종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육상에서는 선수 개인의 기록이 중요하고, 여러 선수가 바통을 터치하며 달리는 계주도 선수 개인의 뛰어난 기량으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생각을 뒤집는 이야기의 서사가 흥미롭다. 일등보다 더 소중한, 함께 한다는 것, 열정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 보면 경쟁자도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존재, 한 팀이 아닐까?

[3문체]
이 소설에서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소설'과 '시나리오'라는 두 양식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현재 이야기는 '소설'로, 과거 이야기는 '시나리오'로. 소설 중간에 시나리오가 섞인 것이 절묘하다. 과거와 현재를 깔끔하게 구분하면서도 드라마를 많이 썼던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몰라도 시나리오로 표현된 현재 속 과거 회상 장면이 참 생생하다. 소설 속 읽는 시나리오라는 새로운 시도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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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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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눈 내린 자작나무 숲길을 한 소녀가 걷고 있다. 앞쪽에는 은색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눈 덮인 산이 보인다. 노란 댕기로 땋아내린 머리에 노란 저고리와 회색 치마를 입고 고무신을 신은 소녀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책을 끼고 걷다가 뒤돌아본 순간.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 소녀가 들고 있는 저 초록색 책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슬픔의 틈새'가 아닐까 생각한다.

◆ 소설을 이루는 3요소 : 1구성(인물, 사건, 배경), 2주제,3 문체

[1-1구성 : 인물] 단옥 / 단옥과 유키에

59 단옥은 그동안 쌓여 있던 서운한까지 더해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고마워하기는커녕 계집애가 공연히 분란을 만든다고 오히려 단옥을 야단쳤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며 다시는 엄마 편을 들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게 기억났다.

위 상황은 할머니가 입덧하는 엄마에게 유난스럽다고 하며 엄마를 타박해서 일어난 일이다. 서술자가 모든 것을 알고 서술해주는 이야기지만 당차고, 할 말은 하는 단옥의 캐릭터를 보며 표지의 주인공이구나, 할머니, 엄마(덕춘)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 이 이야기의 초점이 되는 인물이구나, 단옥의 성장 서사가 그려지는구나 짐작해보았다.

139 브론테 자매의 소설 중 단옥은 '제인 에어'를 좋아했고, 유키에는 '폭풍의 언덕'을 좋아했다. (...)

'나는 새가 아니니 그물로 가둘 수 없어요.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며,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어요.'

열흘이 걸려 도착한 사할린섬에서 단옥은 유키에를 만난다. 광산에는 징용 온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일하고 있었는데-경제 상황이 특별히 더 낫지도 않은데다-유키에는 아버지와 사별한 어머니 '치요'가 징용 온 한국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일본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못했다. 사할린이 일본의 항복으로 러시아령이 된 후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단옥과 유키에의 우정은 이어졌다. 단옥과 유키에의 생활이 비록 고단했어도 일을 끝낸 뒤 같이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은 참 행복해보였다. 단옥은 제인에어를 좋아하고, 유키에는 폭풍의 언덕을 좋아하는데 독서 취향에도 둘의 성격이 잘 묻어나는 듯했다. 제인에어는 읽어봤는데, 폭풍의 언덕은 안 읽어봐서 감이 잘 안 온다. 읽어봐야지. 난 어느 쪽이 마음에 들까.

213 궁금했지만 단옥은 묻지 않았다. 유키에가 예전과 달리 자기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자신이라면 무너져 내렸을 것 같은 일들을 담담하게 견디는 유키에한테 그저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단옥은 유키에를 존중하며 스스로 말해주길 기다리고 싶었다.

사회가 불안정하니 개인도 안정적일 수가 없는데, 그럴수록 여자들의 삶은 더 흔들린다. 앞으로 함께할 것이라 믿었던 상대가 사라져버리는 경우, 뒷감당을 오롯이 여자가 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 자신은 물론 아이도 손가락질을 받는 것. 목소리가 큰 단옥과 달리 조용한 유키에지만 버티고 견딘다. 살다보면 나를 주저앉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휩쓸리지 않고 버티는 힘을 보여준 유키에에게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조용하게 버티며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어차피 모르니까. 유키에에게는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스스로 말해주길 기다리는 단옥이 있다. 위로를 꼭 말로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1-2구성 : 사건과 배경]

1943년-2025년, 공주 다래울에 사는 단옥은 아버지의 징용으로 사할린(화태)에서 살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징용을 가게 되어서 다시 떨어져 살게 된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과도 헤어지고, 돈 벌어 오겠다는 오빠와도 헤어지고, 아버지와도 헤어진다. 광복이 된 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한국(남한)에서는 부르지 않고 (일본은 항복한 이후, 사할린에 귀환선을 보내 일본 사람들을 데려간다. 자신들이 징용 보낸 한국 사람들은 나몰라라 한다), 러시아에서는 못 나가게 하고, 북한에서는 북한 국적을 받을 것을 종용한다. 그 세월이 오래되어 1세대는 무국적, 2,3세대는 각자 취업과 공부를 위해 북한이나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다. 사할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108 나중에 돈 주고도 쌀을 구하기 어렵게 됐을 때 싸게 판 걸 아까워하는 단옥에게 덕춘이 말했다.

"니 오라비 굶을 때도 누가 그렇게 도와주겄지."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도움, 돌고 도는 도움.
'각자도생'이 어떤 삶인지 알 것 같다. 어려움에 외로움 추가.

141 "같이 갑시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요. 우리도 여기서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저나 치요는 농사를 잘 모르니까 형수님만 믿어요."

응답할 1988이 생각난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이런 마음을 내어 살았구나.

256 단옥과 유키에네 가족에는 북한, 소련, 무국적이 다 섞이게 됐다. 사할린에는 부부, 부모, 형제 간에도 국적이 다른 경우가 흔했으며 북한 국적은 6개월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했다.

불안정성의 크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비교, 상대성...

260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국립대학교 경제학부

러시아에 가본 적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7박 8일 일정이었다. 그 때 러시아 극동대학교에 한국어학과가 있다고 하여 견학을 갔었는데, 바다 옆에 있는 대학교이고 풍경이 무척 예뻤던 기억이 난다. 벤치에 앉아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모습을 보며 여기가 대학교인가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매일 이 경치를 보는거나 부럽다 등등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소설을 읽다가 이 학교가 갑자기 튀어나온 느낌을 받았는데 이 학교와 내가 연결점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고 설레기도 했다. 한나절 돌아본 것이 뭐라고 이런 마음인데...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정말 어떤 마음일까.

[2주제]

242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고생스러웠던 기억보다 치요가 꽂아놓았떤 들꽃, 부엌의 지저분한 창틀을 덮었던 수놓은 작은 보, 덕춘에게 내주던 차의 향기 같은 것들이 마음에 남았다. 전부, 먹고살기 바쁜데 쓸데없는 짓 한다고 못마땅해하던 일들이었다. 덕춘은 삼베처럼 거칠고 소나무 등걸처럼 갈라진 자신의 삶을 어루만져준 건 바로 그런 것들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누구에게서 그런 위로를 받을까.

284 단옥은 (...) 고생스럽긴 했어도 날마다 난생처음인 것들을 접하며 갇혀 있던 생각이 깨지고 부서지며 넓어졌다.

-인생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목적지까지 가는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다다른다는 것

사할린에서 일어난 일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루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존중과 경이감이 들기도 했다. 먹고살기 바쁠지라도 들꽃을 돌아보는 그 틈이 행복일까. 슬픔의 틈새일까. 슬픔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3문체]

446-447 많은 참고 자료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할린 섬이 이렇게 큰 섬인지 몰랐다. 홋카이도 위에 이렇게나 큰 섬이 있었다니. 이산 가족은 6.25 전쟁 배경으로만 생각했지 이렇게 기나긴 역사 속에 한 번의 선택이 평생 가족의 얼굴을 못보는 선택이 된 일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슬픈데 아름답기도 하고 이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이 책 '슬픔의 틈새'는 실존 인물 '단옥, 타마코, 올가'가 남긴 책 같다.

이금이 작가의 3부작에 포함된 다른 이야기들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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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는 인류학 수업 - 문화인류학으로 청소년 삶 읽기 사계절 1318 교양문고
함세정 지음 / 사계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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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졀#사계절출판사#사뿐사뿐#사뿐사뿐교사북클럽#함세정 #인류학 #문화인류학 #교육인류학 #나를발견하는인류학수업 #청소년삶 #청소년문화


[제목을 읽고 떠오른 생각]

20대부터 부터 20년 가까이 학교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요즘 부쩍 '지금 학생들은 신인류(?)인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SNS의 발달로 학생들과의 소통이 간단하고 편해졌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여기서 범위와 기준은 '나와 학생들과의 관계'. 특히 1:1 메시지에는 답을 잘하는 학생들이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온라인 소통방에서는 본인이 꼭 대답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면 묵묵부답이다. 읽었다는 이모티콘 표시조차 인색할 때가 많다. (물론 공지 목적의 방은 예외다) 그나마 친분이 있는 학생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내가 또래가 아닌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여럿이 있는 방에서의 의사 표현은 조심스럽다"고 말해주었다. 이 대화방은 학생자치활동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만들었고 의사결정과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지만 썩 기능적이지 않았다. 내 세대와 다른데? 라는 생각이 들었던 한 장면이다.


[차례에 대해서]

이번 사뿐사뿐 북클럽에서 선택한 책은 '나를 발견하는 인류학 수업'이다.

차례를 살펴보니 인류학>문화인류학 중에서도 '청소년문화인류학'으로 구체적인 범위 안에서 청소년 문화의 여러 측면이 인상적인 문구와 함께 정리되어있었다. 차례만 보아도 청소년문화의 여러 측면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느낌을 받아서 얼른 읽고 싶어졌다.

1부 정체성

1 청소년은 만들어진 개념 2 입시 이야기 안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3 나는 비정상인가 4 나답게 살기 5 나를 편집하기 6 요즘 애들은 자기밖에 몰라 7 돈이 제일 좋아 8 나를 발견하는 덕질 9 K-유전자 대신에 10 사람은 깊어요

2부 사회와 문화

1. 내가 보는 세상 2 9등급 인간 3 교실 내 서열 4 너 혹시 페미야? 5 비즈니스 친구 6 혼자 있으면 편해 7 가족 밖에서도 8 가난과 함께 9 간식 챙기는 시민 10 대학 밖의 좋은 삶

입시나 9등급 같은 청소년 삶의 대표 단어는 차지하고라도, 나머지 단어들이 청소년 삶에만 관련있는 것일까? 청소년기를 지나온 많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화두가 되는 단어들이었다. '나는 비정상인가', '나답게 살기', '너 혹시 페미야?' . 그러니까 저자가 말한대로 '청소년-사춘기라서 그래'라는 어느 개인이나 집단을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사고와 표현을 그 동안 나도 해왔던 것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인상깊은 부분에 대해서]

각 소제목은 문화 인류학의 핵심 개념과 함께 소개되어있다.

구성주의, 문화, 문화상대주의, 본질주의, 자아 정체성, 타자화, 의미, 대중문화, 민족주의, 질적 연구, 위치성, 능력주의, 권력, 젠더, 사회적 관계, 외로움, 가족주의, 계급, 돌봄, 비가시화

청소년이나 성인이나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참 녹록치 않다. 처음부터 유리하지 않은 조건을 갖고 태어나기도 하고, 나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일로 삶의 동력이나 에너지를 빼앗기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하는 문화에 힐링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는 듯하다. 경험을 나누고 용기와 위로를 주는 힐링 에세이들도 많이 읽고.

의외로 이 책은 사회학 책이지만 위로와 힐링의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내 마음의 불편함이 무엇 때문인지 상황을 비추어주고 개념으로 정리를 해주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불안이 줄어든다. 상황 파악이 되니까. 또 생각의 틀을 벗어나게 해주고 사고의 반경을 넓혀준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포스트잇을 붙인 부분은 많지만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어른 집단에서는 쉽게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야. 자기 밖에 몰라'라는 말을 하곤 한다. (본인들은 덜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익명성이 강해지고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면서 예전보다 이기적일 수는 있겠다. 그런데 10대들만 그럴까? 10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관련한 굿즈를 비공식으로 만들고 무료로 나누는 집단 활동을 하기도 한다.

10대들이 어른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따라야한다는 생각이 전제다), '사춘기냐?'라는 말을 하는 것은 '너의 말은 사춘기라서이고 사춘기가 끝나면 내 말을 들을 것'이라는 뜻. , '난 네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네 말은 들을 가치가 없어.'가 전제된 것이었다. 상대를 존중해야 하고 상대에게 무례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상대'에 대한 고민은 깊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부분은 18나를 발견하는 덕질 (대중 문화)에 관해 글이었지만 21내가 보는 세상(위치성)과도 연결할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볼 때, 현재 위치를 자각하고 생각해야 편견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실천하다보면 통찰력을 갖게 될 수도.


[추천합니다]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무척 좋다.

독서토론하기에도 너무 좋은 책이다.

독자의 상황과 사례도 많이 덧붙을 수 있는 데다가, 개념을 잘 잡아주니 이야기한 내용이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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