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갖춘마디 사계절 1318 문고 150
채기성 지음 / 사계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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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채기성

출판사 : 사계절

출간 연도 : 2025년 10월 30일 1판 1쇄

페이지 : 총 223쪽

주제 분류 : 청소년 문학>청소년 소설

◆ 표지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소녀가 그려져있다. 처음 책을 꺼내보았을 때 단발머리에 깨끗한 이미지인데 눈이 슬퍼보인다고 생각했다. 노래하고 있는데다 옆모습인데 왜 그렇게 느꼈을까? 해가 지는 시간-노을이 배경이라서 그런가? 해가 점점 물러나고 파란하늘이 주홍색이다가 어두워지면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쓸쓸함이 온다. 그래서 슬퍼보인건가 생각했었다.

소이는 피할 수도 있었던 화염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겠다고 다시 들어갔다가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아빠를 받아들이고 못하고 있다. 아빠 대신 살아난 아이는 아빠 대신 살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서 그 아이 주위를 맴돈다.

표지의 소녀는 아마 소이일 것이다. "흥겨워서 리듬을 타는 건 아니다. 슬픔도 몸을 들썩이게 한다. 몸속에 가득한 것들을 흘려 내보내려면 내개는 음악이 필요하다." 소이가 하는 음악은 랩이다. 랩 가사를 쓰기 위해 시도 쓴다.

표지의 주홍색은 화염일까.

◆ 인물

장소이 : 아이돌 연습생은 포기. 랩 가사를 쓰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한다. 처음으로 들려준 사람은 시 수업을 진행했던 김시은 선생님이다. 시를 통해 속마음을 전달하고 슬픔을 흘려보내기 시작하는 부분을 유심히 봤다. 아픔은 치유가 되어야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입 밖으로 꺼내면서 옅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제목 '못갖춘 마디'처럼.

장소이 엄마 :

"그래도 소이야."

"완벽하게 준비되는 때는 안 오는 거 같아."

"음악은 네가 더 잘 알겠지. 근데 학교 다닐 때 엄마도 배운 적 있어. 왜, 4분의 4박자 노래인데 4박자가 아닌데도 시작하는 마디 있거든. 불완전마디인가."

"불완전하게 시작해도, 음악은 어쨌든 이어지잖아. 그래서 기억해. 불완전하게 시작해도 괜찮다니, 재미있다고 생각했거든. 다들 헷갈려서 맨날 시험에 나오기도 했고."

: 185 페이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페이지이다. 예상대로 흐르는 이야기라고 해도, 알고 있는 문장이라고 해도 또 다시 감동을 받는다. 청소년 독자가 아니라도 위로받는 느낌이다. 소이는 실패해도 엄마한테 말하고 털어버리라는 엄마에게 힘을 얻었겠지만, 나는 '콩나물국만 20년째 끓이는데도 가끔 바닷물을 만든다며 완벽하길 바라는 것은 잘난 척'이라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원시현(진지) : 소이에게 시 수업을 같이 듣자고 한 친구. 누구라도 이런 인연이 있다면 참 든든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진지같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인가 돌아보기도 했다.

차우제 : 소이가 우제를 왜 이리 챙기는지 의아했었다.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단순하고 납작한 생각이었는지.

남유주 : 소이가 시현이와는 끈끈하게 지내면서 유주하고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 머리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와닿지는 않아서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해 본다면 소이와 유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김시은 선생님 :

"감정은 시선을 따라가. 슬픈 마음이 몰려올 때, 눈에 담기는 것들을 천천히 바라봐. 슬픈 감정은 묽어지고 넓어지려는 경향이 있거든.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여. 하지만 좋은 감정은 생생해. 평범한 사물에도 의미와 색을 덧칠하지. 그런 순간을 쓰려고 노력해 보렴."

소이의 아픔을 공유하는 어른이다. 나도 이런 어른이 있었다면. 나는 이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했다. 또, 김시은 선생님의 말들이 어른이 나에게도 힘이 되었다.

"기분은 마음의 샘 같은 건 아닐까? 일정량이 채워져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가득 차 넘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메말라 건조해지는 샘 말이야. 우리 마음이 그렇잖아. 평온했다가 갑자기 비바람이 불고 또 어떨 떄는 따뜻해졌다가."

"삶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꾸 기우니까 이렇게 평형을 이루기 위해 시를 쓰는 것 같아."

맥퀸 : 힙합 크루 리더. 맥퀸에게 반발하는 소이도 대단했지만 자기 잘못을 바로 사과하는 맥퀸도 괜찮아보였다. 긴장감이 빨리 생각보다 빨리 풀려서 비현실적인 느낌도 있었지만 시원한 느낌도 있었다.

◆ 한줄평 : 시작하기 전까지 준비는 끝나지 않는다. 시작해야 준비가 끝난 것. 시작하면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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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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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창비청소년 #청소년소설 #캐리커처 #수능해킹 #다이브 #인버스 #마녀가되는주문 #개의설계사 #세계는이렇게바뀐다 #목소리의증명 #피와기름 #트윈 #케이크손 #담장너머버베나 #한개의머리가있는방 #단요 #문윤성SF문학상 #박지리문학상 #문학동네신인상평론

지은이 : 단요
출판사 : 창비
출간 연도 : 2025년 8월 29일
페이지 : 총 166쪽
주제 분류 : 청소년>청소년 문학>청소년 소설

[표지]
노랑-갈색 계통의 색으로 된 표지는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 그림이 있다. 소설만큼 작가의 말도 참 좋았는데, 표지가 이를 표현하는 것 같다. Third Culture Kid들도 한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대상화되는 일이 많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있는 그대로 소중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가 잘못된 거야.' 같은 말은 순식간에 힘을 잃어버리고, TCK는 여러 장의 캐리커처를 갈아 끼우는 일의 전문가가 된다. 어딘가에서는 한없이 불쌍해지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놀라울 만큼 자신만만해진다. 떄와 장소에 따라 어떤 부분은 생략하고 어떤 부분은 과장한다. (중략) "정반대의 가면을 번갈아 쓰는 것 자체는 비열한 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라는 개념을 과하게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 주는 이야기가 더 많았더라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감정들의 존재에 대해 말해야만 '네 분노를 부당한 곳에 쏟아부으면 안된다'는 설득이 힘을 얻는다고도 믿는다. 이건 내가 일종의 교육자로서, 소외 계층 청소년들과 대화하며 얻은 믿음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TCK의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꿰뚫고 있을까 감탄했다. 한국어로 쓴 소설의 심리 묘사가 너무나 구체적이고 절묘해서 작가가 TCK일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TCK가 아니라면 어쩌면 이리 잘 알지? 작가들은 역시 다른 걸까? 라고 생각했다.
TCK라면 한국어로 된 한국 소설을 잘 쓸 수 없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TCK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교육을 받았다면 한국 소설을 쓰지 못할 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내가 먼저 상대를 규정하고, 그 상대는 내 규정에 맞는 가면을 써 주는 상황. 일방향적인 (내가 아닌 네가 한)배려를 소통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좋았던 문장 중 하나] 스포가 될 수도!
중간 중간 섬세한 심리 묘사도 좋았지만 (특히, 주현) 그래도 역시 난 마지막이 좋았다.

얼빠진 것처럼, 놀라운 것처럼, 혹은 반가운 것처럼 중얼거리던 승윤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리고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면 수능 잘 쳐라."
"형도 수능 잘 쳐라."
우리 둘 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면 서로 모른 척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킨다면 사무적인 말 한두 마디쯤은 나누겠지만, 예전처럼 친하게 어울리지는 못할 거였다.

사실 이 장면 뒤도 너무 좋지만, 이 글을 보고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서 더 발췌하지는 않았다. 서로 간의 앙금이라는 것은 팥앙금처럼 짓이겨져서 내 팥, 네 팥 할 것 없이 섞여버린다. 초등학교 때 내가 저지른 잘못은 당장 깨닫지 못할 수도 있거니와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는 깨달아도 말을 꺼내기 애매하게 되어버린다. 잘잘못 이전 이후에도 챙겨줄 것은 챙겨주고 오고갈 것은 오고가서 사람 관계가 간단하지 않게 된다.
말을 꺼내기 애매하게 된 것은 당했던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말을 꺼내지는 않지만 현재의 말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기억하고 있지만,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과 그 여파로 하는 말과 행동이 있다는 것은, 말을 꺼내기 어렵게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잘 털어내지지 않는 것. 털지도 못하고 해결도 못한 그런 것들이 나이가 먹을수록 쌓인다.
주현과 승윤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앙금을 풀었다고 해서 꼭 다시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자연스럽게 흘러보내는 마지막 장면이 참 위로가 되고 좋았다. 서로 안 맞으면 안 맞는대로, 각자 갈 길을 응원하며 서로를 졸업하는 사이

[총평]
0장(7쪽-17쪽)까지 읽고 나는 단요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제와 표현이 둘 다 너무나 섬세하다. 다문화 청소년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가 내 안에도 있었구나(대중 매체는 Third Culture Kid의 유소년기가 불쌍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스리랑카인이 사장님이고 고용인이 한국인인 경우가 뭔지 모르게 어색과 불편함을 느꼈다)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고, 다문화를 넘어 10대 친구들끼리의 오묘한 힘의 관계가 섬세하게 잘 서술되어있어서 학생들이 공감하며 읽기도 좋고, 어른이 읽기에도 좋다. 그동안 청소년 문학은 교육 방송와 같은 부분이 있어서 현실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 투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편견을 깨준 첫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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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말은 독고독락
낸시 풀다 지음, 백초윤 그림, 정소연 옮김 / 사계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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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졀 #사계절출판사 #사뿐사뿐 #사뿐사뿐교사북클럽 #낸시 풀다#청소년 #청소년소설#정소연옮김#백초윤그림

지은이 : 낸시 풀다
출판사 : 사계절
출간 연도 : 2025년 9월 25일 1판 1쇄
페이지 : 총 89쪽
주제 분류 : 청소년 문학>청소년 소설

[표지]
손바닥 크기만한 작고 얇은 책인데, 여러 색감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앞에서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새끼 손가락보다도 작은) 발레하는 사람의 하얀 실루엣이 그려져있다. 창문을 앞에는 커튼이 표현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무광이고 커튼만 유광이라서 까만 배경인데도 은은하게 화려하다. 어떤 의미일까?
'내가 하려는 말은' 말로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니 나의 춤을 보라는 걸까?
이 책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시간적 자폐를 앓는 인물에게 재능보다 정상적인(평균적인) 삶을 선택하라는 이야기와 치매를 앓는 인물에게 기억하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처음 이야기를 읽고 아이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두번째 이야기는 읽고 부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서평에서는 두번째 이야기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 소설을 이루는 3요소 : 1구성(인물, 사건, 배경), 2주제,3 문체

[1-1구성-인물]
엘리엇은 더 이상 치매 환자는 아니지만, 치매로 인해 이미 잃어버린 기억들은 영영 되찾을 수 없는 상태이다. 그레이스는 엘리엇은 아내로 엘리엇과 평생을 함께 했다. 엘리엇이 잃어버린 기억들을 심어주기 위해 (기억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으므로) 애쓴다.

[1-2구성-사건]
엘리엇은 평생을 함께 한 그레이스를 어느 정도는 기억한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당신은 이걸 잘했어. 당신은 이랬어. 이 아이는 누구야.'를 말해줄수록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고 입력을 하는 것처럼 느낀다. 혼란을 느끼고 급기야 자신을 도와주는 그레이스에게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게 된다. 그레이스에게 '사랑한 기억이 없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그레이스의 차후 행동이 매우 의미심장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치매에 걸리면 돌봄을 받는 입장이 되고, 돌봄을 받으니 수용을 강요받게 된다. ('착한 치매'라는 말이 누구에게 착하게 간다는 뜻인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이)
만약(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훗날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나와 함께한 기억을 잃어버렸고, 나는 부모님을 걱정하고 사랑한다면?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이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임을 하나씩 알아가듯이 부모님에게도 그런 태도로 다가가고 싶다, 그렇게 다가가야지 생각했다.

[1-3구성-배경]
주인공의 이름은 엘리엇과 그레이스지만, 지구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라 이질감이 없다. 소설적 상상력이 들어간 부분이라면, 치매를 멈추는 치료를 첫번째로 받은 환자라는 것. 그레이스는 다른 사람들은 치매 진단을 받자마자 신경 세포들이 망가지기 전에 치료를 시작하니 더 수월할 거라고 말하며 누군가는 첫번째가 되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2주제]
인간이 오래살면서 치매는 흔한 병이 되었다. 수명이 짧았을 때는 치매가 오기 전에 운명했을테니.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를 안고 가야 한다면 (노화, 치매는 현대 의학으로는 늦을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으니) 치매를 정상이 아닌 상태로 간주하고, 죽을 때까지 보살피는 존재로 대해야 할까? 치매로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 중 아니라면 우리는 기억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정체성의 대부분은 기억일까? 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3문체]
이 이야기 '다시, 기억' 의 처음 부분은 따라가기가 좀 어려웠다. 배경과 인물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꿈의 비유를 읽으니 무슨 소린가. 치매 환자처럼 머릿 속이 뒤죽박죽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그레이스의 정돈된 인사가 나오는데, 안정감이 들었다. 엘리엇도 그렇지 않았을까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덧. 서정적이고 파스텔 색감의 삽화가 이야기를 더 어여쁘게 만들어진다.

추가. 시집보다 얇고 작은 소설집의 출현.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해석이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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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보이즈 창비청소년문학 138
정보훈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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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정보훈
출판사 : 창비
출간 연도 : 2025년 7월 25일
페이지 : 총 161쪽
주제 분류 : 청소년>청소년 문학>청소년 소설

[표지]
운동장 계단이 그려진 배경은 도시의 대표색인 회색이다. 운동을 막 끝냈는지 땀을 흘리며 쉬고 있는 셋이 보인다. 바탕은 회색이지만 땀을 흘리고 있는 셋은 색을 가지고 있고 빛이 나도록 코팅 처리가 되어있어서 책 표지가 무척 입체적으로 보인다. 만화 속 한 장면 같은데, 인물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 귀를 가까이 가져다대면 이들이 하는 이야기도 들릴 것 같다. 도시 소년들, 무슨 이야기일까?

[좋았던 문장 중 하나]

달리기의 설렘은 달리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매일 같은 코스는 있어도 매일 같은 달리기는 없다. 턱까지 숨이 차오르고, 땀으로 운동복이 흠뻑 젖을수록 달리는 사람의 머릿속은 단순해지는 것을 넘어 명확해지고,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 걱정거리는 바람에 날아가고 즐거움은 배가된다. 신체 기능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마침내는 최대치로 끌어올려 결승선을 향하는 일. 그 자체로도 충분한 매력이 있다. 달리기, 육상, 러닝 뭐라고 불러도 좋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모여서 자신만의 달리기가 되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39쪽)

◆ 소설을 이루는 3요소 : 1구성(인물, 사건, 배경), 2주제,3 문체

[1구성 : 인물, 사건, 배경]
책을 다 읽고 나서 여운이 남는 인물은 '희재'와 '진주'이다. 희재는 아빠의 '육상은 단체 종목'이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육상 선수를 꿈꾼다. 미래가 불투명한 육상부 선수들은 하나둘 육상을 그만두고, 코치도 육상부를 해채하려고 한다. 육상을 연습할 수 있는 운동장도 학교 일진들이 차지한 상태. 악조건들을 하나하나 이겨나가는 희재를 응원하게 된다. 최근에 본 농구 영화 '리바운드'도 비슷한 플롯이었다. 하지만 익숙해도 재미있다. 진주는 육상을 개인 종목으로 봤을 때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일등 선수이다. 여전히 일등이지만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춘 진주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이것'이었다는 결말도 참 마음에 들었다.

[2주제]
보통 농구, 축구, 야구는 에이스 선수만으로는 좋은 경기 결과를 얻을 수 없는 단체 경기라고 본다. 육상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육상을 단체 종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육상에서는 선수 개인의 기록이 중요하고, 여러 선수가 바통을 터치하며 달리는 계주도 선수 개인의 뛰어난 기량으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생각을 뒤집는 이야기의 서사가 흥미롭다. 일등보다 더 소중한, 함께 한다는 것, 열정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 보면 경쟁자도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존재, 한 팀이 아닐까?

[3문체]
이 소설에서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소설'과 '시나리오'라는 두 양식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현재 이야기는 '소설'로, 과거 이야기는 '시나리오'로. 소설 중간에 시나리오가 섞인 것이 절묘하다. 과거와 현재를 깔끔하게 구분하면서도 드라마를 많이 썼던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몰라도 시나리오로 표현된 현재 속 과거 회상 장면이 참 생생하다. 소설 속 읽는 시나리오라는 새로운 시도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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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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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눈 내린 자작나무 숲길을 한 소녀가 걷고 있다. 앞쪽에는 은색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눈 덮인 산이 보인다. 노란 댕기로 땋아내린 머리에 노란 저고리와 회색 치마를 입고 고무신을 신은 소녀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책을 끼고 걷다가 뒤돌아본 순간.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 소녀가 들고 있는 저 초록색 책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슬픔의 틈새'가 아닐까 생각한다.

◆ 소설을 이루는 3요소 : 1구성(인물, 사건, 배경), 2주제,3 문체

[1-1구성 : 인물] 단옥 / 단옥과 유키에

59 단옥은 그동안 쌓여 있던 서운한까지 더해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고마워하기는커녕 계집애가 공연히 분란을 만든다고 오히려 단옥을 야단쳤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며 다시는 엄마 편을 들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게 기억났다.

위 상황은 할머니가 입덧하는 엄마에게 유난스럽다고 하며 엄마를 타박해서 일어난 일이다. 서술자가 모든 것을 알고 서술해주는 이야기지만 당차고, 할 말은 하는 단옥의 캐릭터를 보며 표지의 주인공이구나, 할머니, 엄마(덕춘)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 이 이야기의 초점이 되는 인물이구나, 단옥의 성장 서사가 그려지는구나 짐작해보았다.

139 브론테 자매의 소설 중 단옥은 '제인 에어'를 좋아했고, 유키에는 '폭풍의 언덕'을 좋아했다. (...)

'나는 새가 아니니 그물로 가둘 수 없어요.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며,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어요.'

열흘이 걸려 도착한 사할린섬에서 단옥은 유키에를 만난다. 광산에는 징용 온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일하고 있었는데-경제 상황이 특별히 더 낫지도 않은데다-유키에는 아버지와 사별한 어머니 '치요'가 징용 온 한국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일본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못했다. 사할린이 일본의 항복으로 러시아령이 된 후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단옥과 유키에의 우정은 이어졌다. 단옥과 유키에의 생활이 비록 고단했어도 일을 끝낸 뒤 같이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은 참 행복해보였다. 단옥은 제인에어를 좋아하고, 유키에는 폭풍의 언덕을 좋아하는데 독서 취향에도 둘의 성격이 잘 묻어나는 듯했다. 제인에어는 읽어봤는데, 폭풍의 언덕은 안 읽어봐서 감이 잘 안 온다. 읽어봐야지. 난 어느 쪽이 마음에 들까.

213 궁금했지만 단옥은 묻지 않았다. 유키에가 예전과 달리 자기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자신이라면 무너져 내렸을 것 같은 일들을 담담하게 견디는 유키에한테 그저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단옥은 유키에를 존중하며 스스로 말해주길 기다리고 싶었다.

사회가 불안정하니 개인도 안정적일 수가 없는데, 그럴수록 여자들의 삶은 더 흔들린다. 앞으로 함께할 것이라 믿었던 상대가 사라져버리는 경우, 뒷감당을 오롯이 여자가 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 자신은 물론 아이도 손가락질을 받는 것. 목소리가 큰 단옥과 달리 조용한 유키에지만 버티고 견딘다. 살다보면 나를 주저앉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휩쓸리지 않고 버티는 힘을 보여준 유키에에게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조용하게 버티며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어차피 모르니까. 유키에에게는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스스로 말해주길 기다리는 단옥이 있다. 위로를 꼭 말로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1-2구성 : 사건과 배경]

1943년-2025년, 공주 다래울에 사는 단옥은 아버지의 징용으로 사할린(화태)에서 살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징용을 가게 되어서 다시 떨어져 살게 된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과도 헤어지고, 돈 벌어 오겠다는 오빠와도 헤어지고, 아버지와도 헤어진다. 광복이 된 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한국(남한)에서는 부르지 않고 (일본은 항복한 이후, 사할린에 귀환선을 보내 일본 사람들을 데려간다. 자신들이 징용 보낸 한국 사람들은 나몰라라 한다), 러시아에서는 못 나가게 하고, 북한에서는 북한 국적을 받을 것을 종용한다. 그 세월이 오래되어 1세대는 무국적, 2,3세대는 각자 취업과 공부를 위해 북한이나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다. 사할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108 나중에 돈 주고도 쌀을 구하기 어렵게 됐을 때 싸게 판 걸 아까워하는 단옥에게 덕춘이 말했다.

"니 오라비 굶을 때도 누가 그렇게 도와주겄지."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도움, 돌고 도는 도움.
'각자도생'이 어떤 삶인지 알 것 같다. 어려움에 외로움 추가.

141 "같이 갑시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요. 우리도 여기서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저나 치요는 농사를 잘 모르니까 형수님만 믿어요."

응답할 1988이 생각난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이런 마음을 내어 살았구나.

256 단옥과 유키에네 가족에는 북한, 소련, 무국적이 다 섞이게 됐다. 사할린에는 부부, 부모, 형제 간에도 국적이 다른 경우가 흔했으며 북한 국적은 6개월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했다.

불안정성의 크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비교, 상대성...

260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국립대학교 경제학부

러시아에 가본 적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7박 8일 일정이었다. 그 때 러시아 극동대학교에 한국어학과가 있다고 하여 견학을 갔었는데, 바다 옆에 있는 대학교이고 풍경이 무척 예뻤던 기억이 난다. 벤치에 앉아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모습을 보며 여기가 대학교인가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매일 이 경치를 보는거나 부럽다 등등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소설을 읽다가 이 학교가 갑자기 튀어나온 느낌을 받았는데 이 학교와 내가 연결점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고 설레기도 했다. 한나절 돌아본 것이 뭐라고 이런 마음인데...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정말 어떤 마음일까.

[2주제]

242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고생스러웠던 기억보다 치요가 꽂아놓았떤 들꽃, 부엌의 지저분한 창틀을 덮었던 수놓은 작은 보, 덕춘에게 내주던 차의 향기 같은 것들이 마음에 남았다. 전부, 먹고살기 바쁜데 쓸데없는 짓 한다고 못마땅해하던 일들이었다. 덕춘은 삼베처럼 거칠고 소나무 등걸처럼 갈라진 자신의 삶을 어루만져준 건 바로 그런 것들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누구에게서 그런 위로를 받을까.

284 단옥은 (...) 고생스럽긴 했어도 날마다 난생처음인 것들을 접하며 갇혀 있던 생각이 깨지고 부서지며 넓어졌다.

-인생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목적지까지 가는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다다른다는 것

사할린에서 일어난 일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루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존중과 경이감이 들기도 했다. 먹고살기 바쁠지라도 들꽃을 돌아보는 그 틈이 행복일까. 슬픔의 틈새일까. 슬픔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3문체]

446-447 많은 참고 자료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할린 섬이 이렇게 큰 섬인지 몰랐다. 홋카이도 위에 이렇게나 큰 섬이 있었다니. 이산 가족은 6.25 전쟁 배경으로만 생각했지 이렇게 기나긴 역사 속에 한 번의 선택이 평생 가족의 얼굴을 못보는 선택이 된 일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슬픈데 아름답기도 하고 이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이 책 '슬픔의 틈새'는 실존 인물 '단옥, 타마코, 올가'가 남긴 책 같다.

이금이 작가의 3부작에 포함된 다른 이야기들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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