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1928년 미국 버몬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농장에서 보낸 로버트 뉴턴 펙의 첫 작품이자 자전적 소설이다. 책 표지를 넘기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우리 아버지 헤븐 펙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돼지 잡는 일을 하시던아버지는 참 다정다감하셨습니다. " 소설이지만 작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현실감이 느껴진다. 로버트는 친구에게 놀림 받고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다가 이웃의 젖소가 출산하는 것을 돕게 된다. 이 일로 크게 다치지만 대신 돼지를 선물로 받는다. 가정 형편이 넉넉치 못하여 갖고 싶은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로버트는 돼지에게 '핑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무척 아낀다. 로버트 가족은 가난하지만 검소함을 지키는 셰이커 교도로서 품위를 잃지 않는다. 로버트는 사치품이 아닌 것도 살 수 없는 가정 형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슬픔을 속으로 삭일 줄 아는 어른 아이다. 책 한 권이 끝나가도록 로버트가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놀았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학교 끝나고 놀았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로버트가 이야기하는 대상은 주로 어른들과 돼지 핑키다. 그 외에는 학교 가기 전에 일찍 일어나서 집안일을 돕고, 학교가 끝나면 집안일을 돕는다. 1. 로버트네 가까운 이웃으로는 태너씨가 있다. 로버트 아버지와 태너씨는 서로 좋은 이웃이다. 태너씨는 로버트에게 아버지의 돼지 잡는 실력이 얼마나 최고인지 이야기해 준다. "태너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니?""그럼요, 아빠. 돼지 반쪽만 봐도 물에 끓여서 털을 긁어 낸 사람이 아버지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대요. 아빠가 돼지를 잡으면 뭔가 다르대요. 머리에서 궁둥이까지 정확히 자르는 솜씨는 아빠를 쫓아올 사람이 없대요. 심지어 꼬리까지 정확히 반쪽으로 잘린다고요. 러틀랜드에 갔다 올 때 태너 아저씨가 다 말해 줬어요." 소설은 로버트의 말만 전달하고 지나가지만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태너씨의 말을 듣고 로버트의 마음과 로버트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지를. 2.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날은 어떤 날일까? 이 날은 로버트에게 로버트가 키우던 '핑키'와 돼지 잡는 일을 하셨던 '아버지' 모두와 관련이 있는 날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자기 인생에서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날'을 꼽는다면 어떤 날일까?"아빠."나는 딱 한 번만 아빠를 불렀다. 처음 읽을 때는 안 보이는 것들이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읽어볼 때 보인다. 이 소설은 슬픔이 클수록 더 담담하게 장면을 그린다. 이 슬픔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옅어지는 슬픔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과 감동으로 채워질 슬픔이다. 다시 읽을수록 보이는 감정선이 늘어난다.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도 지금과 다른 소설이지만 왜 오랜 시간 읽히는지 알겠다. 3.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슬프기도 아름답기도 한 주인공 남자 아이의 시절을 포근한 장면으로 그려서 보여주는 페이지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파이를 구우면서 로버트에게 다람쥐 한 마리를 잡아오라고 하는 장면에서 '왜 다람쥐를 잡아오라고 하는 걸까?' 궁금했다. 누구보다 빨리 어른의 짐을 나누어져야 하는 로버트가 빨리 철이 드는 과정을 보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소설을 읽는 중간 중간 조금씩 성장해가는 로버트와 내 아이를 마음 속에 나란히 세워본다. 같은 환경은 아닐지라도 상처와 성장의 지점을 거칠 것이라는 점은 같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