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계사는 독자의 입장이 아닌
회귀하여 그 당시 시대에 생존자의 입장으로 본 세계사에요.
시선이 달라짐에 따라 글의 몰입도는 더 높아진 기분이였어요.
흥미 위주의 세계사가 언급되어 있지만,
그 안에 울림도 존재합니다.
그 당시의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해 이전 사람들의 애씀이 있었기에
우리가 현 시대에 좋은 의료와 좋은 복지와 아동복지를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요.
책을 보면, 지금은 아무 문제없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산업혁명 시절엔 전혀 다른 문제였음을 보여줘요.
물이 귀해서 가족 순차적으로 돌아가면 한 대야의 목욕물을 사용했고,
그것도 정말 특별한 날에만 가능했던 목욕이였던 것이죠.
당시엔 손이나 얼굴처럼 노출되는 부위만 자주 씻었고 나머진 굳이 필요성을 못느꼈다고 해요.
즉, 청결에 대해 신경 쓸 형편도 아니였거니와 그런 기본 청결에 대한 인식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아마 많은 분들이 알텐데,
빅토리아 시대에 향수가 많이 발달한 것도
잘 씻지 못해서 뿜어나오는 체취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적극적으로 사용을 했어요.
향기가 교양과 위생의 상징이였을 정도로 선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웨딩드레스의 과거인 크리놀린 드레스라고 하죠.
풍성한 실루엣을 도와주는 드레스 안에 입는 와이어와 여러 겹의 천으로 된 드레스인데,
모든 여성이 이 우아한 드레스를 선호하고 열광했다고 해요.
하지만 굉장히 위험했죠.
작은 화로에서 튀어오른 불꽃이 치맛자락에 닿아 순식간에 불길에 사로잡힌거에요.
그런데 이게 금속 프레임이잖아요.
그래서 탈출이 어려웠다고 해요.
그래서 오히려 이 크리놀린 드레스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지금도 충격이지만
당시에도 큰 충격이였나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레스는 여전히 서구 사회 전역을 휩쓸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 하죠.
쭉 읽다가, 크롤러 라는 단어를 만났어요.
1800년대 런던에는 집도 없고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렵지만
구걸할 힘조차 없어 기어 다니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크롤러"라고 했어요.
주로 병들거나 장애가 있어나 나이가 많거나 어린 아이들이 대부분이였다고 하는데,
구걸도 하지 않으니 적선도 어려웠고
같은 처지의 다른 노숙자나 부량인들 또는 안면있던 극빈층 사람들이 이들에게
빵한조각이 나눠주면서 겨우 연명했다고 해요.
하지만 더 마음이 쓰였던 건,
이런 사람들 뿐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도 한순간에 크롤러가 될 수 있던 시대였어요.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집이 기울어 가족간의 싸움이 되고
이런 가족의 붕괴와 예기치 않은 건강문제, 기타 외부 문제로
사회로부터 도움받지 못한채 길거리로 나가게 된 거죠.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가 평범한 한 사람을 재기할 수 없을 무력함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게 안타깝습니다.
현재는 이런 사회적 안전망이 많이 이루어졌다해도 사각지대는 늘 존재하니
작은 도움 또는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잘 갖추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다음 의료쪽으로 넘어올까요.
지금은 필수적인 마취제 없이 수술했던 시대가 있었어요.
기본적인 위생이 없던 때라, 문제가 생기면 절단을 많이 했죠.
하지만 소독도 없이 하던 절단이라, 수술자체가 위험했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당시엔 무엇보다 중요한게 속도 였다고 해요.
마취도 없는데 맨정신에 다리나 팔을 절단하면 그 고통을 견디기가 당연 쉽지 않았겠죠.
그래서 당시 리스턴 이라는 의사가 엄청난 속도로 절단하는 걸로 유명했는데,
아마 이런 말 들어보셨을꺼에요.
"사망률 300% 수술" 이게 무슨 뜻일까요.
빠른 속도로 환자를 절단하다 보니, 수술은 2분 30분만에 끝났지만
환자는 감염으로 사망하고, 너무 빠른 절단과정에서 도와주던 조수의 손가락까지 함께 잘라
조수 역시 패혈증을 사망하고, 리스턴이 휘두른 칼에 당시 구경하던 관객 중 한 명의 코트 자락을
베고 지나갔는데, 자신이 칼에 찔렸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심장마비로 그자리에서 사망..
이렇게 한 수술로 사망률 300%를 보여, 의학 역사상 유명한; 수술로 알려지게 되었죠.
하지만 리스턴이 단순 속도만 빠른 의사가 아니라
남들이 포기한 환자도 받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적극적로 나선 의사였다고 해요.
노동자, 가난한 환자 가리지 않고 위험한 의뢰까지 받으며 애썼다고 해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 수술이 너무 황당하기 그지 없을지 몰라도
당시 기준으론 최선을 다한 것이라 볼 수 있겠죠.
서부 개척시대로 넘어와서,
당시 아이들은 축복을 넘어서 하나의 노동력으로 귀한 존재였고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였어요.
10명의 자식이 있다면 절반정도만 가까스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해요.
유아 사망률은 40%에 달했다고 하니까요.
보통 5살 무렵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해요. 교육은 사치고 감자를 수확하는 법을 배우는 게
더 현실적인 일이라고 보았으니까요.
갖은 노동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동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었을까요.
어려웠죠. 그래서 각종 질병, 추위, 전염병 뿐만 아니라
일하면서 사고로도 많이 사망을 했어요.
1900년도 미국도 다르지 않았어요.
석탄 광산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9살부터 12살 정도 였으니까요.
어리다고 봐주는 이 없이 끊임없이 하루 12시간을 노동했다니..
요즘같은 시대에 이게 가당키나 하겠어요.
20세기 초 산업화의 정점을 치닫던 미국에서
전 세계 석탄 생산량의 40%가 나왔고, 이 생산량은 바로 아이들 손에서 나온 것이죠.
아이들이라 인건비도 저렴하고 또 어리니 다루기도 쉽고 좁은 갱도에서 일하기도 딱이였던 거죠.
이 외에도 실을 감거나 잇는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아직 아이들이라
정식 근로자로 인정도 받지 못했어요.
"노동은 아이를 도덕적으로 성장시킨다. 노동은 게으름을 막는 최고의 학교다."
라며 당시 사회분위기는 아동 노동을 미화시키고 이용했어요.
하지만 1908년 교사 출신 사진가인 루이스 하인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출석부로 아이들을 찾아나셨다고 해요.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 공장, 거리의 가판 등에서 일을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현실을 고발하기 시작했고, 그 방법으로 사진을 선택했어요.
루이스 하인은 아동 노동 근절을 위해 전국아동노동위원회에 합류하였고,
찍은 사진들로 정치권을 압박하여 마침내 1912년 미국정부는 아동국을 설립했어요.
그리고 1938년 공정 노동 기준법이 제정되면서 아동 노동은 법적으로 종식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바로 미국 대공항 시기였어요.
많은 수의 어른들이 일자리를 잃은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아동 노동도 근절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당시엔 전혀 당연한게 아님을 알게되요.
그 사이에 많은 어른들이, 지식인들이 고심하고 개선한 결과겠죠.
환경, 인권, 위생, 의료, 생활 등 과거 세계사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초등고학년들도 충분히 흥미있게 볼 수 있으니 도전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