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절대 모르는 남자의 언어
수잔네 프뢰리히 외 지음, 김영미 옮김 / 이레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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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는 정도는 고슴도치가 자전거를 필요로 하는 정도와 같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말이라던데, 그렇게 속 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참 좋겠죠. 문제 생길 일도 없겠고요.

어느 스님 왈. 여자는 같은 걸 여러 번 물어봐도 줄줄 대답해 주는데, 남자는 같은 질문 두 번만 해도 ‘너 바보냐?’고 한다고요. 제가 어느 보살님한테 그런 식으로 반응했었는데, 꼭 그 광경을 보시고 하신 말씀 같아서 뜨끔했습니다. [바보라는 말은 물론 안 했고요. 좀 귀찮은 티를 냈죠.]

남자 / 여자를 씹는 게 목적이 아니라, 외계인말 비슷한 상대방의 언어를, 결국은 남자 / 여자라는 별종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자는 취지이죠. 문체는 익살 가득이지만 진지하고 성실한 기획 의도가 읽힙니다.

남녀 관계를 논하는데 섹스를 빼면 말도 안 되죠. 당연히 섹스 챕터 먼저 읽었는데요. 의외로 별 특이한 말은 나오지 않더군요. 두 책의 내용을 합쳐 보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든 잠자코 들어 주든지, 감당키 힘들겠다 싶으면 얼른 튀어라’ 이 정도 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여자편은 남자가 집필했고 남자편은 여자가 썼습니다. 남자편은 두 여자가 공동 집필한 걸로 보아 고충이 더 컸을 걸로 보이는군요. 남자라는 족속이 말 자체를 별로 하지 않으니, 기본 자료부터 부족해서 애를 먹었을 테지요. ‘들판의 야생초처럼’ 말이 없는 남자에 대한 답답함을 여러 차례 토로하지요. 

여자편은 당연하게도 남자편과 문체부터 확 다릅니다. 여자편은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을 시도하는데요. [그러나 끝내는 ‘여자, 잘 모르겠어요’라는 절망에 가까운 마무리로 끝나지요] 여자편에서 '여자는 같은 말도 열 여섯 구비 돌려서 한다'는 남자 작가의 주장이 무색하게, 책 구성은 남자편이 더 단촐합니다. 이건 아무래도 앞서도 말했던 자료의 절대 부족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남자한테 뭐라고 하고는 싶은데 막상 글로 정리하려니 뽑을 내용이 별로 없는 거죠. 그래도 남자편 읽으면서 더 많이 웃었습니다. 제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볼 때 황당함과 쑥스러움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남녀탐구생활에 남녀의 언어 차이를 다루면 재미있을 듯한데, 여자의 천 마디를 남자가 한 마디로 정리하는 법이라든지요. 거기는 성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니 프로그램 틀부터 갈아엎고 정형돈 정가은한테 대사 연습도 시켜야 할 테죠. 

우리나라에 이와 비슷한 책 있었나요? 한국 남녀의 언어를 한국어 버전으로 읽고 싶네요. 지하철이나 버스간에서 읽기 딱 좋은 책입니다. 지하철에서 읽다 낄낄거리니 옆 사람이 책 표지를 고개 돌리고 보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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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
그레고리 하틀리.메리엔 커린치, 이순영 / 도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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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틀리 크루의 히트곡 Home Sweet Home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My heart's like an open book for the whole world to read [내 마음은 펼친 책 같아 온 세상이 읽을 수 있지]

‘마음을 책처럼 읽을 수 있다, 물건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생각을 담은 영어 표현은 꽤 많이 있습니다. open / close my heart는 마치 책을 펼치고 덮듯이 마음을 펼치고 덮는다는 말이죠. open up (마음을 활짝 열다, 속내를 털어놓다), open-minded(개방적인)도 마찬가지구요. written all over your face[얼굴에 다 써 있어] 남의 마음을 꿰뚫어본다는 말도 아예 ‘읽는다’read라는 동사를 써서 read your mind/thoughts라 하고요. I read you 하면 ‘네 말 이해했다’는 말이죠. 스타크래프트의 SCV나 벌처를 클릭하면 들을 수 있는 말이죠. [무선통신에서 ‘알았다’라는 말로 흔히 쓰죠.]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노래 Eye in the Sky에 "I am the eye in the sky / Looking at you / I can read your mind"라는 가사도 나오구요. mind reader는 남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이죠. ‘독심술사’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만 너무 딱딱하고 좀 무서운 느낌이죠. 이밖에 penetrating[속을 꿰뚫어보는]이라는 형용사도 있구요.

이 책의 원제목도 찾아보진 않았지만, I can read you like a book 정도겠죠.

저자의 요지는 남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싶으면 자신의 선입견을 버리고 어린아이의 눈으로 찬찬히 관찰부터 하라는 겁니다. 물론 실천보다 말이 훨씬 쉬운 일이죠. 나이가 들수록 제 눈에 낀 색안경은 점점 짙어지고, 벗기도 점점 힘들어지니까요. 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사니, 그 가면 뒤에 숨은 맨얼굴을 색안경 끼고 꿰뚫어보기는 더욱 어렵지요. [속마음을 완전히 숨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특히 기습적으로 쿡 찌르면 대부분 속내를 드러낸다고 저자는 말합니다만]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이 책 제목의 호언장담이나 저 많은 영어 표현들도, ‘네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싶어’라는 욕망을 비추는 것 아닐까요

 

내 사전에서 ‘연애하다’란 누군가와 감정적인 접촉을 하며 주위를 에너지로 채우는 것이다. 이는 이성뿐 아니라 동성간에도 가능하다.

[p. 264]


지하철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싸우는 광경을 봤습니다. 갖가지 짐승 이름과 육두문자가 오가는 와중에 제가 파악했던 요지는 ‘넌 왜 내 마음을 안 알아주냐. 섭섭하다’였습니다. 눈물을 철철 흘리는 여자나 ‘가! 가 버려! 너 땜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라는 대사를 읊는 남자도 없었지만, 그 서운한 마음은 지나가던 저한테도 절절히 느껴지더군요. 이와 비슷한 남자들끼리 사랑싸움을 가끔 가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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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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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 영화를 보면 종종 나오는 인간들 있죠. 지금 상황에 맞는 성서나 셰익스피어의 한 구절을 줄줄 읊은 다음 ‘마태복음 5장 12절’ ‘맥베스 5막 7장 27행’처럼 출처까지 꿰지요. 볼 때마다 ‘대체 몇 번을 읽어야 저 경지에 오를까?’ 싶었지요.

입으로 하는 말은 완전자동 본능은 아니지만 본능에 가깝지요. [스티븐 핑커의 Language Instinct도 있다시피] 아기한테 꼭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더라도, 영화 <세 남자와 아기>처럼 경마 정보를 읊어줘도 아이가 입을 떼는 데는 충분한 자극이라고 하는군요. 늑대 젖을 먹고 자란 소년은 늑대울음 흉내밖에 못 내지만요.

그런데, 글을 읽는 행위는 본능이 아니라는 겁니다. 글읽기가 본능이라면 난독증 환자가 그 정도로 많지는 않겠지요. '환자'라고 하기엔 아인슈타인, 로댕, 다빈치, 피카소 등 다른 분야에 특화된 사람들도 꽤 있지만, 모든 난독증이 그렇게 창조적인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지는 못하지요.

영어 같은 표음문자를 읽는 뇌의 회로와 한자 같은 표의문자를 읽는 회로의 구조가 다르다는군요. 히라가나, 카타카나, 칸지[일본 한자]를 비벼 쓰는 일본어나, 지금은 한자가 맥을 못 추지만 아직 멸종하지는 않은 한국어 텍스트를 읽는 뇌는 영어를 읽는 뇌보다 더 바쁠 수밖에 없지요. 영어는 한글보다 불규칙성이 강해서 영어라고 무조건 한글 읽기보다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하물며 글을 제대로 쓰려면 훨씬 더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마땅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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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사전 비판
이재호 지음 / 궁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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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사전이 일본서 만든 영일사전의 번역 수준에서 못 벗어났다는 건 이 책 말고 다른 데서도 숱하게 꼬집은 사실이죠. 서양 문물을 처음부터 일본에서 수입해 왔으니 이건 그럴 수도 있다 쳐도, 국어사전마저도 일본의 국어사전을 번역한 작업물이 태반이라는 사실은 제가 알기로는 고종석씨 말고는 들고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국어國語라는 말 자체도 일제 한자어죠.]

 

 


사전에 실려 있는 현대 한국어와 현대 일본어의 한자어가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데에는, 다른 여러 언어적, 언어외적 상황 말고도, 국어사전 편찬자들이 우리말 한자어의 뜻을 일어사전에 조회하는 관습을 타성적으로 지켜왔다는 부차적 이유가 있다. 일단 차용된 어휘가 새 언어의 어휘장에 흡수되면서 본래 의미의 굴절을 겪는 것은 언어사에서 드문 일이 아닌데, 개화기 이래 일본어에서 차용된 한자어들은 그런 의미의 굴절을 별로 겪지 않았다. 오히려 동일한 형태와 다른 의미로 한국에 이미 존재하던 한자어들이 본래의 뜻을 잃고, 일본어에서 담긴 의미를 새로 담게 되었다.

지금도 한국어 사전과 일본어 사전에서 표제어로 내세운 한자어들은 거의 일치하고, 그 한자어 표제어들이 부여받은 풀이 역시 상당부분 일치한다. 그것의 일차적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일본(어)이 한국(어)에 끼친 막대한 언어적, 정치적 영향이지만, 한 낱말이 자국어의 의미장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세밀히 추적하기보다는 그 낱말의 원산지에서 나온 사전을 손쉽게 베끼기로 결정한 우리 국어사전 편찬자들의 편의주의도 이 언어적 내선일체를 거들었다. 초창기의 사전은 일본어 사전을 베끼고, 뒤이어 나온 사전들은 초창기의 사전을 베꼈다. [ <감염된 언어> 99쪽]

 

 


Hercules는 헤라클레스의 라틴어 표기이며 영어는 이 표기를 이어받았다. [헤라클레스Herakles는 그리스어 발음이죠.] 라틴어로는 ‘헤르클레스’ 영어 발음은 ‘허클리즈’이다. [영어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는 건 단 하나의 정답만을 내세우기 힘든 문제입니다만, ‘표준 영어 발음’으로는 ‘허큘리즈’에 가깝지요. ] <프라임> <현대> 영한사전만이 올바르게 표기했다. <본문 198쪽>


이처럼 일관성 없는 그리스어, 라틴어 표기를 지적하면서도 정작 ‘그리스’(Greece) 자체도 영어식이라는 건 빼먹으셨네요. 고대 그리스어로는 ‘헬라스’, 현대 그리스어로는 ‘엘라스’나 ‘엘라다’라고 하지요. 하긴 ‘멕시코’도 본토에선 ‘메히코’라 한다죠. 그렇지만 ‘엘라스’ ‘메히코’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사람이 거의 없을 테니 현실상 힘든 문제이긴 합니다. 헤라클레스 하면 몇 년 전에 조영남이 티브이에서 서양 사람한테 자기가 ‘헤라클레스’처럼 힘이 장사라고 농담을 던지는데 그 서양인은 헤라클레스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더라고 하던 기억이 나네요. 대학 때 한국계 미국인 교수에게 영작문 강의를 들었는데, ‘잔다르크’라고 하는 동기한테 Joan of Arc(‘조우너박’으로 들립디다)라고 알려주시더군요. 안정효씨가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이 순엉터리라고 혈압을 올리시곤 하는데, 이건 그렇게 짜증내고 다그친다고 해결된 문제는 아닙니다. (거의 모든 세상 문제가 그렇지만요.) 한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도 어마어마하게 복잡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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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탄생 -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른 유일한 나인가
주디스 리치 해리스 지음, 곽미경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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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님께 그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상에 똑같은 인간 둘은 없어.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거야.” ‘똑같은 인간 둘은 없다’ 이 책의 원제 No Two Alike가 이 뜻이죠.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보통 형제 못지 않게 성격 등이 다른 이유가 뭘까? 이 책의 핵심 주제이면서, 이 책에서 내놓은 잠정적 해답은 ‘인간은 원래 인간들을 분별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한 명씩 따로따로 마음 속의 사전에 저장해 두고, 자기 자신도 남들과 다른 유일한 존재이며, 달라야만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요지입니다. 남들을 분별하는 습성은 거의 태어나자마자 발동된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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