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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ㅣ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평점 :

줄거리 소개
어느 말 많은 변호사의 입을 빌려 카뮈의 인간의 모순과 이중성에 대해 즐겁게 수다를 떨 수 있는 고전 문학
Review
[페스트]. [이방인]을 쓴 카뮈의 여러 책들 중 어렵다고 소문난 [전락]이지만, 책을 읽기 전과 읽는 동안, 그 사실을 몰랐던 나로써는 '이게 그정돈가?'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따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나서 '남들은 어렵다던데 나는 읽을만 했다'며 으스대기 좋은 책인 것이다.
물론, 이는 책을 읽는 내가 받아들이는 감상만으로 즐길 경우의 이야기고 여러 평론가, 전문가, 문학계의 분석을 이해하려면 이 역시 어려울 필요가 있다...만. 그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마음에 들면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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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감,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오는 기쁨은 인간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전진하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것을 빼앗아버린다면 인간은 침이나 질질 흘리는 개나 다름없이 되고 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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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변호사와 이야기를 하며 전개된다. 술을 물처럼 마신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말이 많은 이 사람. 하지만 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에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이 심겨져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로 자신의 일에 아주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는 자신의 자부심이 단순히 '정의'로운 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자비를, 적선을 베푸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뭇 '사람'이란 누군가에게 섬김을 받거나 타인을 지배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며, 이는 공기로 숨을 쉬듯 당연한 것이라 읊는다. 이 대목에서, 책을 읽는 나는 현대의 수많은 노동자들을 이끄는(지배) 사업가, 사람들의 관심(섬김)을 받는 인플루언서와 정치인 등이 자연스레 연상되며, 이 변호사가 지배받고 타인을 섬기는 이들은 노예이지만 노예라 불리지 않는 사람들이라 칭하는 모습에 뇌리에 전류가 흐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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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이란 건, 가급적 미소 지으면서 해주는 복종이란 건 그러므로 불가피한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걸 노골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되죠. 하는 수 없이 노예를 부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경우라면 노예를 자유인이라고 지칭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우선은 원칙상 그러는 편이 좋고 그 다음은 노예가 절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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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아주 많은 변호사는 이런 안목을 통해 엿볼 수 있듯 '인간'에 대한 아주 깊은 이해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그가 지치지 않고 떠벌거리는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세상의 이면을 비추고 있으며, 그의 모든 것을 까발리는 안목은 자부심이 충만하고, 줄곧 삶이 행복하다 느끼던 그 자신조차 분쇄하여 파헤친다.
모든 현대인이 심판하는 자이며, 심판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과 그들의 위선, 죄의식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은 읽는 이의 속을 뻥 뚫어줄 뿐 아니라 당장 사회의 가장 큰, 핵심 문제점들을 자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듯한 기분마저 드는 이 변호사이자, 자칭 재판관이며 참회자인 그의 이야기는 인간의 이중성과 모순에 대해, 이기성과 부조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즐거운 대화의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