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수업 - 느끼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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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무례, 짜증, 분노 등에 대해 나는 그것과 비슷한 감정의 결을 지닌 커다란 방패를 들고 저항한다. 당신의 그것이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실패한다. 언제나 실패했다. 그것은 마치 바이러스와 같아서 눈에 보이는 형태의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몸속을 비집고 좀먹는 형태로 나를 괴롭혔다.

내 안에는 더 강렬하게 타인의 사랑을 갈급하는 자아가 있었다. 사랑 자급력이 낮아 불특정 다수의 호감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그래서 상대의 공격적인 반응에도 방패를 드는 것만이 나의 최선이었다. 그러나 최선이라 생각한 그것은, 적어도 내 마음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다.

“우리가 과거의 자신을 애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그것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언젠가는 활짝 피어나는 봄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호감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삶을 살아낸 나를 부드러운 손길로 애도하는 책을 만났다.

진정한 내가 되는 개성화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내면의 질박한 아름다움을 되찾고, 내가 읽고 배우고 경험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었다.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을, 비록 틀리고 망가지더라도, 우선 내 언어로 이야기하려는 용기가 필요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상처는 우리가 지닌 최고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입구가 된다.” 나는 이 말을 여러 번 되뇌며 ‘언젠가는 활짝 피어나는 봄’을 살아낼 나를 위해 사랑을 건네는 실천적인 내가 되리라 다짐한다.

✔@gimmyoung 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획득_

동그라미를 친 중요한 부분마저 일부 덜어내고야 마는 그런 가성비 큐레이션이야말로 모든 것을 의미 있게 바라보려는, 우리 안의 ‘빛나는 순수’를 퇴색할 수 있다는 점에 사유를 가닿게 했다.

 

✔문장_

(사랑) 가까운 사람에게 진심으로 친절하기는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데면데면, 티격태격, 겉은 무뚝뚝하고 속만 따듯한 ‘츤데레’ 같은 그런 사랑 말고, 겉과 속이 비슷하게 다정하고 예의 바른 사랑을 할 수는 없는 걸까. 완벽한 사랑은 아닐지라도 아주 조심스러운 사랑은 가능하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서로의 가장 아픈 부분,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존중해주는 사려 깊은 사랑은 필요하다.

(사회적 죽음)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사람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준다. 그것이 2차 트라우마를 부른다. 그 사람 착한 사람인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 그 말은 피해자의 가슴속에 얼마나 커다란 상처로 남았을까.

(그리니치 천문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이 오히려 타인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개념은 내게 커다란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내가 입은 모든 상처보다 더 강력한 존재라는 것.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모든 사람의 악행과 폭언을 합친 파괴적 에너지보다도 더 강력한 치유의 에너지와 창조의 에너지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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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 문명을 가로지른 방랑자들, 유목민이 만든 절반의 역사
앤서니 새틴 지음, 이순호 옮김 / 까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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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역사의 열차 안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에는 정착민들의 역사만이 울고 있었다. 방랑하는 이들(노마드)의 역사적 광경이란 열차 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어쩌면 볼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천편일률의 인상이 드리워졌다. 정착민의 입장에서 정착하지 못한에 일방적으로 시선을 고정한, 우월의식으로 점철된 형태인 것이었다.

 

노마드가 일군 역사적 풍경은 시간의 경과와 전무한 기록에 의해 희미한 윤곽선만이 떠올랐다. 그러나 인류 역사는 수렵 채집이라는 방랑의 형태로 시작되었고, 인류 역사의 절반 이상을 노마드가 차지했으며 문명 형성과 발달에 그들이 상당히 이바지했음을 책과 씨름하며 알게 되었다.

 

일례로, 비옥한 땅에서 안정적으로 왕조 지배를 이어온 이집트인(정착민)들의 삶은, 북부 지역에서 길고 느리게 이주해온 힉소스인(노마드)들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무단 점령이라는 곱지 못한 정착민들의 시선에서 힉소스는 외국에서 온 침략자로 비쳤다. 그러나 안정의 이면에서 타성이 되어 자리한 보수주의와 타 문화 배제, 개인적 태만 등이 당시 이집트에 뿌리내렸음을 고려할 때, 힉소스의 이집트 북부 점령은 오히려 이집트의 문화를 융성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들에게서 무기 사용법과 전차를 받아들인 이집트인들은 향후 국경이 확장된 제국을 건설하는 등 노마드에 의해 긍정적인 이변을 맞이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땅에서 사는 정착민은 부드러운 인간이 되었고”, 높고 튼튼한 벽이 없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신체적으로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던 유목민들은, 지도자의 영단과, 공통의 생각과 종교로 결속된 연대의식으로 세계를 편력했다.

 

정부와 제도의 성격도 국가 내에서 존재하는 그 연대의식의 성격에 좌우된다

 

나는 그 말에 찬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에서 도리어 만연한 이기주의가 개인과 집단, 국가 간의 연대를 집어삼키는 이 시대에 연대의식으로 무장한 노마드의 역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까치글방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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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 - 시인이 관찰한 대자연의 경이로운 일상
니나 버튼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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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미와 함께 길을 가는 나이 든 개미가 중간중간 걸음을 멈춘 채 경험이 부족한 동료가 작은 소나무 싹이나 덤불 아래의 그림자 같은 이정표를 기억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발견했다.”

 

인간 중심의 자연 지배가 당연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아닌 것에 던지는 나의 시선이란 결국엔 어떤 인간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한 변명에서 비롯된 나의 편협한 시선은, 예민한 감각으로 자연과 언어를 더듬는 시인의 세계가 덧씌워지자 새로이 가지를 뻗어 사고의 방향을 더할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닌 주체들이 건설한 문명은 뒤떨어진다고 판단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인간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요소로 언어를 가졌다는 사실은 자연계에 속한 인간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비인간 주체들은 인간만큼 복잡한 언어(, 음조 등)를 구사했고, 인류 문명과 대비되는 자신만의 문명(예로 작디작은 개미가 건설한 문명은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을 구축했다. 인간은 그들을 명징하게 볼 수 있는 지표가 없었던 것 같다.


*출판사 측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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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만든 세계 -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
마틴 푸크너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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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일찍 사용된 문자는 축축한 점토를 눌러 만든 납작한 서판에 뾰족한 갈대로 새겨진 쐐기문자였다. 비문에 새겨진 그 문자에서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 대부분이 유래하였다. 입으로 말해지던 언어가 갈대를 통해 점토에 고정되면서 문자는 언어의 단절을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문자가 존재하는 세계, 그것은 인간 본질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문 환경을 조성했다. 지속적인 사용으로 생존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문자들의 조합은 이후 근본 텍스트라는 형태 등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불후작이 되기도 했다.

 

대단한 여정을 자랑하는 문자의 역사에서 최초가 주는 영향력을 차치하면, 비록 그 기나긴 역사에서 작은 한 마디를 차지한 것에 불과함에도, 구텐베르크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원거리 무역이 성행하던 마인츠 태생인 그는, 동양의 종이 및 인쇄술을 발전시켜 문자를 책의 형태로써 대량생산한다. 두꺼웠던 유럽 종이를 포도즙 압착기로 꾹꾹 누른 다음, 여기에 사업적으로 성공을 예감했던 라틴어 문법책 도나투스를 찍어내면서 구텐베르크는 성공 가도를 달린다. 이후 교회의 수요를 고려하여 그는 성서를 폴리오판(이절판)으로 인쇄하는데, 독자를 배려하는 판형을 택한 그의 모습은 마치 출판 편집자의 시초를 긁어다 모은 듯했다.

 

책이 자기 주변 세계를 달리 바라보게 하는 렌즈라는 걸 안 이상 이를 멀리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책 없이 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책에는 판형, 제본, 디자인 도큐멘테이션 등 물성을 지닌 실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많은 작업이 녹아들어 있다. 문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일정한 크기의 판면과 여백을 지닌 활자 인쇄물의 묶음이라는 형태를 취하기까지 텍스트가 거쳐가는 장대한 여정을 엿봄으로써 책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오만스레 소리치는 자그마한 마음 한구석의 문을 살며시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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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과학 - 우리가 세상을 읽을 때 필요한 21가지
마커스 초운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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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초운은 과학계의 발견을 단순명료하게 전달하는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과학에 대한 높은 견식과 안목을 동원해 우리가 평상시에 쉽게 지나치지만, 일상에 완벽하게 스며든 여러 과학적 질서를 그리는 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은 현대 과학에서도 최신 발견에 속하는 개념(힉스장, 표준모형 등)과 비교적 낯익은 개념을 동시에 풀어내며, 과학에서 중요한 질문인 그 현상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와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쉽고 짧은 답을 제시한다. 과학은 인풋과 동시에 지식이 증발하는 기현상을 보일 만큼 생경하고 멀리하는 분야이나 이렇게 읽기 쉽게 풀어놓은 책을 만날 때면 과학에 대한 재미가 붙어 뉴런 사이의 연결이 조금은 강화되는 것만 같다. 신경 가소성이라는 개념도 결국은 무언가를 이해하고 몸에 익어야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던가. 다윈과 멘델, 그리고 모건으로 이어지는 유전학의 진보가 머릿속에서 몇 개의 쌍으로 연결되고, 사방으로 퍼져 주워 담기를 포기했던 개념들이 한데 모이는 느낌이란 잘 쓰인 책이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게 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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