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 교유서가 소설
박이강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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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강,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마음에 취업이 사는 나는, 노동하는 자의 이야기를 연거푸 주워담아 나만의 은밀한 공간에 집어넣었다. 톱밥처럼 들어찬 회사일에 권태로움을 느끼는 타인의 일상에도 부러움의 시선을 흘기던 어느 날, 계약직으로 일할 기회가 찾아와 기쁨을 감추지 못한 때가 있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흥분과, 타인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긴장감 때문에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을 했던가.


단편 '도시의 밤'은 나를 그 순간에 가닿도록 했다. 계약직 마지막 날, 몸도 마음도 그곳을 떠나지 못해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했던 슬픔과 아쉬움은 달을 거듭할수록 그 모습이, 형체라는 것이 있다면, 점점 희미해져갔다. 나에겐 무엇이 남았는지, 그 때 당시가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지금도 여전히 곱씹는 중이다.


마치 좋은 한 문장을 쓰기 위해 낱말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 보듯 '나'가 계약직으로 일하며 맞이한 상황들을, 그래서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반년 남짓한 시간은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엔 애매해서 좋다"라는 그녀의 마음 속 기저에는 이 순간 내가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어서겠다.


끝이 있는 자리에서 쓸데없는 말은, 물론 관계 역시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그녀이지만, 또다른 그녀가 그 쓸데없는 말에 연연해한다. 그리고 연연하는 자신을 두려워한다. 타국에서 하룻밤을 보낸 남자가 다음날 자살을 하자 마치 그 일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던 그녀가, 쓸데없는 관계라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또다른 그녀를 짓누르고 있어서가 아닐까 지레 짐작만 해볼 뿐이다.


모호했던 감정은, 읽고 나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킬 때가 있다. 모든 일 끝에 사람만큼은 남았다는 생각은, 도대체 그 사람이 내게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무엇이 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인가.


두고두고 떠올릴 어느 단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언급하지 않은 다른 단편들. 그 모든 이야기 속에 이해 안 되는 사람을 이해하는 단초가 숨어 있었다.


본 게시물은 @ehbook_ @gyoyu_books 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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