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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평점 :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라우루스"
글을 쓰고 지우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아르세니가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그리고 라우루스로 불려가며 지난한 참회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개개인이 어디에 의지를 쏟아내는지 정해진 방향은 없다. 어쩌면 인생에서 의지를 모을 대상조차 쥐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는 이도 있으리라.
아르세니는, 정열을 불태워 사랑의 의지를 쏟아낸 대상이 있었다. 우스티니, 그녀를 향한 애착이 너무도 충일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그녀를 소개하지 않을 정도였다. 허나 정열의 분방을 제어하지 못해 한순간에 그녀와 아이를 잃자 그는 격류 속에서 침잠하는 선택을 내린다. 고독과 죽음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얻은 그의 유일한 안식이라 생각했을 무렵, 한 노인이 그에게 말을 건넨다.
“자네는 이제 자네 인생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여길 테고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바로 지금 자네 인생에 전에 없던 가장 큰 삶의 의미가 생겼다네.”
혐오스러운 자신을 구원하는 길은, 그의 육체에 그녀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데서 시작된다. 그가 발현할 의지는 그녀를 위한 속죄의 길을 걷는 것이었고, 그는 종교에 귀의함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신이 자신의 죄를 사하여주기를 바라며 기꺼이 고통의 길목을 넘어서는 아르세니. 그의 행동은 일순 자신이 지은 죄의 크기가 거대해서 일부러 고초를 좇는 듯보였다.
“우리 인생이 이별의 연속이죠.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면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기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이별의 순간. 그것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예외도 아닐지니 그것이 비켜감을 바랄수록 이별은 더더욱 예외가 되는 법이리라. 예외는 언제나 그렇듯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는 자신을 거쳐간 수많은 이들과의 이별을, 슬픔과 함께 권봉하지만 아내의 죽음에는 그러지 못했다.
아나스타시아가 그가 기거하는 동굴에 찾아왔다. 그는 마지막 이별을 고할 순간을, 자신의 무거운 죄를 사할 기회를 얻었다.
본 게시물은 @ehbook_ @gyoyu_books 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