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전화. 그 전화조차도 우리를 더는 연결해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노폴리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갔을 때, 그 관계를 지탱해준 것이 이 모노폴리의 룰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채고 말았다. 우리 사이에는 이미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건 끝나 있었다. 단지 정해진 룰 안에서 그 게임을 지속했을 뿐이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낸 그 며칠 간이 그 룰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순식간에 깨닫게 해버린 것이다.

다만, 내 안에는 작은 아픔이 남아있다.

그때.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그 비행기 안에서 우리에게 전화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74쪽)

 

 

 "죽음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게 있지. 그건 바로 삶이야." (86쪽)

 

 

내 인생이 영화라면. 나는 엔딩롤이 끝난 후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이고 싶다. 작고 밋밋한 영화일지라도 그 영화에서 위안과 격려를 받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엔딩롤 후에도 인생은 계속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내 인생이 계속 이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111쪽)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고, 미래에서 현재로 흘러온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분명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무한한 미래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미래가 유한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내 안에서는 미래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진즉에 확정된 미래를 내가 걸어간다. 그런 감각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생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선고받은 데다 시간이 없는 세상에 내던져진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난생처음 내 의지로 미래를 바라보려 하는 것이다. (138쪽)

 

 

 가족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은 '행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단지 피로 이어져 있을 뿐, 두 사람의 개인이었다. (...) 급기야 마지막 순간, 나는 어머니 곁에 있는 것에 연연했고, 아버지는 시계를 고치는 데 연연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죽음을 사이에 두고도 끝끝내 하나가 될 수 없었다. (176쪽)

 

 

 내가 존재한 세상과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 거기에 있을 미세한 차이.

거기에서 생겨난 작디작은 '차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증거인 것이다. (204쪽)

 

블로그 이웃님 한마루님을 통해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작고 예쁜 책을 받았다. 속표지도 무척 이쁜데(아마도 악마 '알로하'가 첫날에 입은 옷차림이 이 모양이었으리라^^)  블로그에 리뷰를 올리려는 지금 사진기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알았고,  

핸드폰 카메라는 요새 USB에 뭐가 문제가 생겼는지 사진 전송이 잘 되지 않는다...ㅠㅠ 

 

 

 

2014년 한 해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아는 후배가 죽었고, 같이 스터디를 하던 멤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밖에도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사건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매일 생각을 했다. 내가 오늘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면,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몸이 썩고 자연의 일부가 된다면 1980년대에 태어나 2010년대까지 살다 죽은 나의 보잘 것 없는, 서른 남짓한 인생은 그냥 그걸로 동시에 사라지고 마는걸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느 날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그런데 기적같이 악마가 나타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하나씩 없애면 대신 삶이 하루씩 연장될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내어놓는다. 그렇게 주인공을 삶의 종료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의미와 그것이 사라지게 된 후에 나타나게 될 상황, 그리고 그를 둘러싼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점검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에는 전화가, 그 다음 날에는 영화가, 그리고 시계가 사라진다.

전화는 그의 첫사랑이, 영화는 소중한 친구가, 시계는 그의 아버지와 연결이 되는 매개체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양이를 없애라고 악마가 종용하는 순간, 그는 주저하기 시작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토록 아꼈던 고양이,

힘든 순간에 그의 곁을 지켜준 고양이 양배추... 이것을 없앨 수 있을까.

그런데 정작 고양이를 통해 그가 떠올린 것은 관계가 단절된 '아버지'였다.

 

 

 

 

주인공은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에야, 그 후회가 느껴지는 삶이기에 그것이 '나의 삶'이었다고 인정하고 결국 인간은 100%의 치사율로 언젠가는 죽는다, 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며칠 전에 보았던 영화 <자학의 시>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원래는 만화가 원작이나 만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이제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것이든 의미가 있다.'

 

적어도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알았기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그의 여자친구와 친구,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고양이 양배추와의 만남과 기억의 순간 등을 점검하며 그 의미를 찾아나갈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마지막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그리고 죽은 뒤 고양이 양배추를 맡길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고 고양이 양배추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주인공...

검은색 터치로 길게 그려진 그 마지막 순간의 그림은 여운이 꽤 길게 남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계속 걸려 있지만 이 소설은 무겁지는 않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위트있고 경쾌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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