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 SF영화로 보는 철학의 모든 것
마크 롤랜즈 지음, 신상규.석기용 옮김 / 책세상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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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인생을 살겠노라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문제다. 저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 굳이 이런 종류의 사람이 되려고 하는 데에는 어떤 궁극적인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그렇게 살 뿐이다. 자아를 규정하는 게임의 근원에 있는 것은 우리의 이유가 아니라 행위다. 도덕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실천이 있다. (263쪽)

 

많은 SF영화의 주제는 타고나길 낯선 생물 형태, 즉 우리에게 타자가 되는 존재들과의 조우를 다룬다. 리플리의 삶을(아니, 삶들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그 원조 악당들보다 더 우리에게 낯선 타자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타자와의 조우는 언제나 동시에 우리 자신을 좀 더 면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이 된다. 타자성과의 조우는 우리 자신의 정서적이고 심리적이고 도덕적인 윤곽선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어주는 거울로 작용한다. (306쪽)

 

예술 작품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승화하며, 그럼으로써 그것들을 더 고차원적인 것들로 탈바꿈시키는 일과 결부되어 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일은 균형 잡힌 방식으로 수행할 필요

성이 있다. 허가가 아니라 금지가 미학적으로 즐거운 인생을 사는 열쇠다. (339쪽)

 

우리는 개인적인 책임, 성적인 책임, 부모의 책임에 관해 거리낌없이 말한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한 책임인 인식적 책임(epistemic responsibility)에 관해서도 말을 꺼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에 대해서만큼이나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우리의 가치가 멍청한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당신은 파시스트인가? 식민주의자인가? 엘리트주의자? 거만한 놈? 단지 재수없는 놈인가? 물론 내 변명을 좀 하자면 내가 이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젊었을 때 멍청한 믿음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도 확실하게 그렇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완벽한 인식 기계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상태가 안 좋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 인식적으로 최선을 다하려는 이런 시도가 지금 이 시대에는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눈에 띄게 결여되어 있다. 대체 어떤 믿음이 멍청한 믿음인지를 내가 아직 말하지 않았음에 주목하자.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건 꽤나 오만한 일일 것이고, 어떻든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책이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다면, 당신이 스스로 이런 일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멍청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라. 그러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다.​ (381쪽)

 

 

중학교 때 유난히 SF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나는 그 아이의 손에 이끌려 SF영화를 보러 갔다. 그 때 함께 봤던 영화가 <인디팬던스 데이>와 <스타쉽 트루퍼스>였는데, 나는 외계인이 침략하고 이를 지구인들이 구하는 내용의 SF영화가 왜 흥미를 끌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심지어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외계인들이 뎅강뎅강 잘려나가는 화면은 끔찍하다못해 토할 것 같았다. 나는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그 잔혹하고 징그러운 영상들을 눈으로는 보고 머리로는 인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이가 들면서, SF영화는 참 이야깃거리가 많은 소재라는 것을 알았다. 과학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내용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긴 한건지, 요밀조밀하게 풀어내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도 재미있게 읽었었지만 역시나 SF영화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거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안 것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를 읽은 후였던 것 같다.

 

저자 마크 롤랜즈는 대놓고 자신이 B급 영화일 수도 있는 SF영화의 열혈 팬이라고 말한다. 외계인이나 로봇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에게 위협을 가해오고 인간은 그에 맞서는 이런 가장 장르적이고 마니아적인 영화가 꽤나 심오하고 철학적인 논의들을 풍부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토탈리콜을 통해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거나, 매트릭스를 통해 나를 둘러싼 세계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론적인 고민을 하는 부분은 이미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본 것 같아 패스하고, 6장부터가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 만약에 내가 투명인간이 되어 아무도 나를 볼 수도 없고 그러므로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할 필요가 있는가?

* 무척이나 지적으로 뛰어난 외계인이 있다고 할 때, 그들이 보기엔 너무 저능하고 미개한 생물체 중 하나로 보이는 지구인을 대상으로 자기네 종족들의 번성을 위해 실험을 한다고 하면 분명히 인간은 분노를 느낀다. 이 예를 동물에게 적용해서 인간이 동물을 대상으로 '종(種) 우월성'이라는 명목하에 자기네의 번성을 위해 실험을 자행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 문화가 상이하다는 이유로 각 문화들마다 옳고 그름을 보류하는 상대주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윤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화해시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믿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죽음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여러가지 예륻 영화에서 가져와 흥미롭게 던져놓고, 대체로 3가지 정도의 관점을 보여주면서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그 관점의 한계들을 지적한 후 나름의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는 편이다.

저자 마크 롤랜스는 적재적소에 유머를 배치할만큼 센스도 있지만, 철학을 통해 '도덕적인 의무'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올바른 사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철학적 질문들을 고민하지만, '윤리론적인 질문'에 대해 좀 더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부분들이 가장 흥미롭기도 했다.

 

잘못된 믿음들에 대해 상대적인 관점으로 존중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멍청하다'라고 과감하게 지적하는 저자는, 누구라도 그런 믿음들에 기초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으니 끊임없이 반성하고 멍청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고 말한다.

꽤 윤리적인 철학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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