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강경석 외 지음, 이기훈 기획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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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일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꽤나 떠들썩하게 행사가 준비되었다. 학계에서도, 정부에서도.

이 책은 제목부터가 무척 흥미로웠다. 100년이라는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과연 3.1운동의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데, 구체적으로 '촛불'을 소환함으로써 보다 절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2016년 겨울부터 2017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광장을 찾았고 촛불을 들어 탄핵을 외첬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외침이 그렇게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네 마음대로 국가를 좌지우지하지 말라는 말이다"라는 악이 받친 분노가 한 국가의 대통령을 향해 터져나왔고,결국 그는 탄핵당했으며, 촛불시위는 '촛불혁명'이 되었다.



책의 앞부분에 실린 좌담이 가장 흥미롭다.

주목해야 할 몇 가지 문제의식은 이렇다.


1) 3.1 운동 100주년이 떠들썩하지만, 일시적이고 관제적인 '의례'이자 '캘린더 행사'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2)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에 왜 여성은 없는가? 동시에 3.1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여성들 가운데 왜 어린 소녀로 일찍 죽은

 유관순이 그 대표로 표상되어야 하는가?

3) 3.1 운동을 3.1혁명으로 부르자는 논의와 관련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정부로 현정부가 그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4)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은 3.1운동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3.1운동의 정신은 이후 어떻게 기억되고 이어져왔을까?



이와 관련하여 한국사학, 역사학, 사회학, 문학, 신학 전공자들의 글이 실렸다. 다양한 전공만큼 다양한 관점들을 엿볼 수 있는 지점도 흥미롭지만, 앞부분 세 편의 글을 제외하면 책의 기획의도와는 조금 거리가 멀게, 에두르다가 끝난 느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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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종의 장례행사를 재현하는 것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이기훈에 의하면, 3.1절은 3월 3일 고종의 장례식을 앞두고 거행되었는데 말하자면 황제의 장례식에 '만세'라는 일종의 축하 행사를 한 것이다. 이미 그 시기쯤에는 "군주에 대한 절대적 충성의 관념"이 많이 희석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새로운 국가 구성원리로서의 공화주의가 싹트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히려 1인의 국가통치를 상징하는 고종의 장례행사를 재현하는 것은 3.1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정신을 역행하는 행사라는 비판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2) 장영은은 최은희라는 인물을 통해 "혁명 과정에서 여성들의 참여와 희생은 환영받지만, 혁명 이후 여성들의 사회적 입지는 다소 협소해지는 과정이 역사에서 순환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3.1운동에는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참여했으나 유관순이 대표적인 표상이 된 것에는 이화 출신들의 오랜 노력의 영향이 크다. 유관순의 공적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에 참여했지만 역사 속에서 이름은 지워진 많은 여성들의 이름을 복원해보자는 것이 그녀의 의도이다. 그 역할을 열심히 해낸 것이 최은희이다. 그녀는 3.1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의 역사를 쓰는 것에 생애를 건다. 그녀들의 역사적, 정치적 지분을 찾기 위한 전략적 의도로서 3.1운동에 참여한 경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올해에도 고아성 주연으로 유관순을 조명하는 영화가 개봉되었지만, 분명히 복원되어야 할 여성들의 이름은 많을 것이다.



 3) 3.1운동이 독립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결과물로서 임시정부가 만들어지는 성과가 있었다. 임시정부 수립에는 세계사적인 정세도 영향을 미쳤는데, 금방 종료되었고 임시정부도 분열과 약화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임시정부로부터 현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나가는 '전유'의 전략은 이승만 정부 때부터 있었다. 지난 정권 때의 건국절 논란과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형성된 대항적인 논리이겠지만,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현 정부의 주장 또한 정치적인 지점이 있다. 학계에서 가장 염려하는 것은 이렇게 임시정부로부터 단선적으로 정통성을 강조하는 역사인식의 경우, 함께 고려해야 할 수많은 다른 요인들이 너무 쉽게 간과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4) 지난 2016년과 2017년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나는 3.1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다"라는 생각으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1919년의 역사적 기억은 너무나 먼 것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에서'3.1운동은 박제가 되어버린 것'이라는 식의 결론을 내린 오제연의 주장은 너무 회의적인 것 같다. 3.1운동의 기억이 만들어지고 전유되어 온 양상에 대한 연구가 48년에만 집중되어 온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4.19혁명에서부터 6월 항쟁까지 그 기나긴 '기억의 경합과 투쟁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후에 나온 결론이 너무 김이 빠지긴 했다.

시대적 간극이 있어 직접적인 기억은 아닐지라도, '내가 대표다'라는 인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동학농민운동-3.1운동-4.19혁명-5.18 광주혁명-6월 민주항쟁-촛불혁명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 혁명의 정동(요즘 유행하는 말로)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촛불혁명에 와서는 하나의 깃발 아래 사람들이 일괄적으로 모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입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여러 깃발을 들고 모인 축제에 가까웠다는 점을 기억해보면 계속해서 '다양한 개인들의 존중'이라는 민주의식은 성장해나가는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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