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어딘가 모르게 반응이 느리고, 빠릿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주인공 미숙.

친구들은 그녀를 '미숙아'라고 부른다. 이름에 호격조사 '아'를 붙인 상태가 아니라 어딘가 미숙해보이는 아이라는 조롱조로.

 이 만화는 미숙의 십대 시절부터 스무살이 되어 독립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성숙의 상태'라는 도달점을 상정하는 성장소설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싶지 않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어딘가는 미숙하지 않은가.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미숙의 상태에서 성숙의 상태로 나아간다는 신화에도 나는 늘 의문을 가진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상처가 쌓여가며 점차 더 움츠러들고, 남에게 방어적으로 변해가지 않던가.




그럼에도 <올해의 미숙>은 보다 더 씩씩해지고 당당해져가는 미숙의 과정을 담았다.

좋은 시를 쓰겠다는 자신의 꿈 때문에 생계를 위한 노동을 따로 하지 않는 아버지,

이 때문에 끊임없이 부업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미숙과 정숙 자매는 가난하게 자란다.

언니 정숙은 시를 쓰겠다는 꿈을 어릴 때 잠시 가지지만,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미숙은 언니를 보며 "무너지고 있었"다라고, 느끼고 "희망이 절망하고 있었"다며 안타까워한다.

아버지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안의 분노를 꾹꾹 눌러두던 정숙은 미숙을 때리기 시작한다.

만화 안에서 때리는 장면은 자세히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언니인 정숙이 미숙을 때렸다는 것은 한 컷도 없이 설명만으로 제시된다. 밤마다 다정하게 누워 언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던 미숙에게는 그만큼 떠올리기 힘든 경험이었을지도.



  

**

미숙은 먼저, 재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일종의 돌파구를 잠시 찾는다.

자신을 '미숙아'라고 부르며 무시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재이는 미숙을 대신해 그녀를 놀리는 아이에게 화를 대신 내고, 서로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으며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재이는 미숙의 가족 이야기를 팔아서 소설에 당선되며, 그것에 대해 미숙에게 아무런 말도 미리 해주지 않는다.

왜 자기 이야기를 허락도 없이 쓰냐는 말에 재이는 그저 '소설'일 뿐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자신의 깊은 컴플렉스를 허락없이 훔쳐간 친구에게 화를 내자 재이는 "뭐래 쪼다년이"라는 폭력적인 말로 되돌려주며 둘의 관계는 끝이 난다.



재이가 의도적으로 이야깃거리를 위해 미숙에게 접근한 것 같지는 않다.

재이 역시 부모님이 이혼한 상태였고, 미숙에게 적극적인 것은 그녀 쪽이었다.

소설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져다 쓸 때, 그것에 대한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재이 말대로 그저 소설일 뿐 현실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온 마음을 열어 내보인 가장 가까운 친구의 상처를 이야기 소재로 가져다 쓸 때에 재이도 분명히 떳떳하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에 상을 타기 전까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을 것. 재이는 이후로 만화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어른이 된 뒤에도 성공한 소설가가 되어 책을

출간하고 여전히 미숙을 궁금해한다는 근황이 다른 친구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이후에도 책을 냈던 것을 보면, 재이는 어쨌거나 문학적 재능이 있었을 것이고 친구의 이야기를 가져다 쓴다고 한 들 소설적으로 잘 구성해냈겠지만, 미숙은 그녀로부터 큰 상처를 입는다.


 


***

미숙이 마음을 쏟는 또다른 대상은 아버지가 데려온 강아지 '절미'이다.

아버지는 강아지가 진돗개인 줄 알고 없는 살림에 백숙을 고아 먹이고, 돼지 뼈도 던져주지만

강아지는 알고 보니 혼혈이었다. 아버지 마음대로 '진도'라고 불린 강아지는 똥을 먹고 몸집도 커지지 않자 더 이상 미숙의 아버지는 강아지를 돌보지 않는다. 그렇게 버려진 강아지를 미숙은 '절미'라고 부르며 정성껏 돌본다.


"아껴 줄 거면, 끝까지 아껴 주지. 씨이발"


미숙이 내뱉는 이 욕설에는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게 압축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상대를 향해 시작한 애정과 관심을 쉽사리 철회하지 않는 것.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계산하지 않고 진심을 다하는 것.


 

재이에게 큰 상처를 입은 미숙은 고등학교도 그만두고 동네 도서관을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거기서 우연히 알게 된 겸재와의 만남에서 적극적인 것은 미숙이다.

미숙은 이제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 먼저 궁금한 것을 묻고 -"왜 같은 시간에 커피를 드세요"

소박한 친절을 보이는 그에게 먼저 마음을 표현한다. -"그럼 우리 사귈까요?"

 

아버지와 언니가 병으로 죽고, 취직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해 절미와 함께 집을 나오는 마지막 장면보다는 겸재를 당당하게 대하는 미숙의 모습이 사실 더 인상적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철저한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제 단단해졌고,

누군가의 물음이 자신에게 던져진 후에야 우물쭈물 겨우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이었을텐데도 미숙은 더 적극적으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미숙의 진정한 성장은 이미 그 때 이루어졌다.

아니, 그녀는 상처로 움츠러들지 않는 사람이기에 '미숙아'가 아니라 원래 성숙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

만화에서 제시되는 깨알같은 장면들을 보며 나와 같은 세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 참 많이도 보였던 '영화마을'이라는 비디오 가게, 권여선 작가의 등단작 <푸르른 틈새>도 나온다.

1999년에 고등학교를 입학한 미숙은 나와 동갑이다.

동갑내기 여자아이의 어설픔과 아픔, 그리고 당당함을 나란히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십대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일까.


그동안의 일들이 "먼 과거"가 아니라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미숙.

그리고 책의 제목인 "올해의 미숙"

시간을 뒤집어놓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