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계절 - 김지훈 이야기 산문집
김지훈 지음 / 니들북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1.

사실, 이런 식의 사랑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데, 지인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앞페이지를 조금 읽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80년대를 풍미했던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90년대에 히트했던 원태연의 <넌 가끔 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가다 딴생각을 해>였다. 작가는 90년대 생으로 20대 후반이니까 위의 시인들이 해당 시집으로 인기를 끌었을 나이와 얼추 비슷할 것 같다.

 

나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십대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원태연의 시집과 그가 작곡한 노래들이 얼마나 당대 대중들의 감성을

파고들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나 또한 그의 시집에 있던 구절들을 다이어리에 열심히 옮겨 적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보내며 함께

그 말랑말랑한 연애시들을 공유했다. 물론 그의 산문집도 좋았다. 딱히 연애란 걸 해보지도 못한 나이였지만, 이렇게 쉽게 잘 읽히면서도

절절하게 와닿는 문장들이라니.


 

2.

물론 20대 이후로 나는 더이상 이런 것들을 읽지 않는다. 순수문학을 전공하면서 이런 것들이 우습게 보이게 된 것도 사실이다.

'저런 게 무슨 시이고 에세이야?'라는 생각들. 너무 쉽고 뻔한 언어들로 뻔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들을 쓰는 게 그냥 지루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굳어버린 판단들을 조금 제쳐놓고 읽어보자고 다짐했다.

정말 특별한 나이대에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감성들이 아니던가. 아직 사랑이 미숙하고 서툴고, 엄청나게 예쁘고 거대한 환상 속에서

사랑만을 바라보던 시기.물론,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3.

책을 읽을 때 오는 '공감(共感)'이라는 정서에 대해 생각한다.

비슷한 것을 경험했을 때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지만 정말 기묘한 인식의 깨달음이 전달되었을 때 오는 희열감일 수도 있다. 아마 이 책은 철저히 전자에 충실한 것일테지.


저자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이 책의 내용을 조금 요약해보자.

그는 건널목 앞에서 운명의 그녀를 만났다. 무턱대고 다가가 전화번호를 묻고 '데스티니'라고 저장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정말 운명이라고 느껴졌고 처음으로 연락처를 물어봤다고. 그리고 그녀가 화가일거라고, (사실은 화가이기를)기대했다.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페이스북에서 찾은 그녀 사진의 옆에는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

어쨌든 기적적으로(?) 그녀와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고, 그녀와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고, 승무원이었다.

둘은 사랑을 나눴고, 싸우기도 했고, 질투도 했고, 결국은 사랑에 대한 기대와 온도차로 헤어졌다.

저자는 그 사랑과 이별의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

 

 

4.

사실은 정말 '보통의 사랑' 이야기다. 첫눈에 누군가에게 반해서 운명처럼 느끼고 그와 연애를 하고 헤어지는 서사는 영화와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저자의 이야기도, 문체도 사실은 굉장히 평범하다. '사랑'과 '예쁨'이라는 단어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 있어 그녀는 정말 예뻤나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건 그만큼 평범하고 흔하기 때문에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겠지.



5.

 

지금은 페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하지 않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어서 공유되는 정서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는 SNS에서 주로 글쓰기를 해오고 소통을 하고 있는 듯하다. 2000년대에 유행했던 싸이월드의 글들을 생각해보면 될 듯하다.

잘 읽히고, 쉬운 단어들과 적당히 반복과 대칭구조를 이루는 문장들. 사랑은 이런 것, 이별은 이런 것, 나는 이러했고, 너는 이러했고

이런 식의 이분법과 격언식의 문장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호응을 얻는다.

위에 쓴 원태연의 시집 제목도 그 예이다. 너는 가끔 내 생각을 한다면 나는 (온종일 네 생각만 하다가) 가끔 딴 생각을 한다는 식.

아마 이 책도 그런 글쓰기의 연장 선에서 나온 책같다. 일기와 독백조에 가까운 읊조림과 편안한 구어체.


어쨌거나, 저자가 섬세하고 꼼꼼한 캐릭터라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연애를 했던 사람과 나눴던 대화나 상황들을 이만큼 꼼꼼하고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적어도 그는 이렇게나 꼼꼼하고 세세하게 기록했으니, 그 사랑과 이별의 기록만큼은 절대 증발하지 않겠구나, 싶다.


이별을 온전히 견디겠다고, 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부단히 다짐하는 듯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이렇게 책으로 세세히 기록해도 바람 결에 날아가는 모래처럼 결국엔 사라져가는 것이 기억이거늘.

운명이라고 느낄만큼 강력하고 인상적인 사랑이었다면, 가슴 한 켠에 오래오래 잘 남겨둬도 되지 않을까.

이별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는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철칙이 있다고는 했지만,

그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이별한 지 오래되어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고, 이별한지 얼마 안 되도 깡그리 잊혀지는 사람이 있는 것이니.

현재의 사람과만 사랑을 나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겠다. 지난 사랑도 사랑이고, 그것 또한 따뜻하게 간직되어야 한다.

계속해서 두 가지 사랑이 나름의 다른 색깔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슴에 묻어둔 과거의 사랑도 진행중이고, 현재 만나는 사람도

생생하게 진행 중인 어떤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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