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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여자, 돈, 행복의 삼각관계
리즈 펄 지음, 부희령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남녀 간의 경제적인 입장에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물론 불과 50여 년 전과 비교해도 경제인구로서의 여성의 입장은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차별이든 차별이든 차이라는 의미에서는 매한가지인 것처럼 여성의 경제관념에는 부자연스러운, 그리고 상반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의 독립을 위한 경제관념과, 행복에 대한 인식에 따른 의존적인 성향이 그것이다. 또한 여성의 경제인구로서의 입지가 눈에 띄게 상승한 것과 더불어 소비의 주체로서의 입지도 그렇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가정에서의 안주인 노릇이 전통적인 여성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쇼핑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것은 과거와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그 규모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의 주체 운운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여성에게 특화된 소비문화가 있을 정도니 감히 여성을 소비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이루자는 구태의연한 경제관념도 소비의 행복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재테크 전략도 아닌 여성의 경제관념, 그 자체이자 본질이다. 때문에 텍스트를 독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도 있었다. 현상과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그 본질을 나열하는 관념론적인 글의 흐름 때문에 자칫 긴장을 늦추면 어느새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주머니 경제에 대한 수많은 책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정작 그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마당에 큰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싶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독자를 여성으로 규정짓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작가가 인터뷰한 이들도 모두 여성이다.(일부 학자와 작가들은 제외하고) 하지만 경제관념이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성의 차이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의 통념이나 구조상 여성과 남성의 경제에 대한 의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작가가 지적한데로 여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로부터 여성으로서의 경제관을 교육받고, 그것을 답습하여 삶의 기준에서 돈을 멀리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네의 돈에 대한 사고방식의 뿌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렇다. 우리네의 조상들은 대대로 상인을 천시했다. 학문을 등지고 물질적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경계해왔다. 문호가 개방되고(대부분 침략에 의해서) 격동의 세월을 지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이른 지금까지도 그러한 사고방식은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기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인물이 사회적인 존경을 받는 일은 대단히 드물다. 물론 그들의 성공담이 언론에서 화제가 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잦다. 하지만 그것이 존경심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때문에 그런 기업가들이 추락할 경우에는 ‘그럼 그렇지’라는 차가운 시선던지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 보다 부유한 사람을 보게 되면 먼저 의심부터 하기 때문이고, 질투에 대한 뚜렷한 자기합리화가 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쥐고 있는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마녀사냥을 위한 꼬챙이를 항상 갈아두고 가슴께에 품고 있는 것이다.

 분명 그 원인은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거기에는 사회적인 부조리가 크게 똬리를 틀고 있고 역사적인 피해의식도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그것을 뚜렷하게 규정짓고 원인을 분석하며 결론을 짓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리즈 펄’이 꼬집은 돈에 대한 나약함이 그 원인 중에 하나라는 것은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우리는 돈 앞에서 나약해진다. 물질만능주의를 꼬집자는 것이 아니고, 돈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인생에 필요한 돈의 액수를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돈이 많기를 소망하거나 팔짱을 낀 채 돈의 노예가 된 주변을 비웃으며 자신의 청렴함을 위안 삼는 것이다.

 나, 역시 돈이라는 것이 인생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큰돈에 욕심 없이 책을 통해 지적욕구를 채우며 산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혹시 돈에 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자기위안의 발로가 아닐까. 그렇게 팔짱을 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돈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는 돈의 흐름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들을 비웃기도 하고 부정축재를 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속으로 가멸찬 돌팔매질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결국 돈의 노예란 돈을 벌기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이 아닌 돈에 대한 자격지심에 휩싸여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

 돈이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분명 그렇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돈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는 일은 드물다. 어떤 물건을 어떤 곳에서 살까하는 고민은 수도 없이 많이 하는데 반해서 말이다.
 결국 언젠가는 갚아야 할 외상값처럼 자신에게 있어서의 돈의 의미와 대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언제나 불안감에 휩싸인 채 자신을 속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외상값은 빨리 갚는 것이 좋겠다. 이자가 계속 쌓일 것이 아닌가.

[리더스가이드 서평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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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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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살아왔다.
 요네하라 마리는 시대를 살아왔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종요로 인해, 노선의 차이로 인해, 또는 권력이라는 환각제에 취해 살육을 벌이는 시대를 살아왔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 시대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시대는 그들의 부모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시대이거나 그들의 부모가 그렇게 생겨먹은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발버둥치며 살았던 것이다.
 
 감정의 잔혼.
 그렇지만 10대의 소녀인 요네하라 마리와 그녀의 친구들은 그 감정의 잔혼을 고스란히 갈무리하고 있다. 자신의 부모를 통해서 물려받은 감정의 잔해는 어느 순간 자신의 한이 되고, 조국의 운명에 자신의 운명을 겹쳐놓게 된다.

 확대해석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도 그러한 감정의 잔혼이 남아있다. 제주 4.3 양민학살사건,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등의 수많은 지역에서의 이데올로기와는 동떨어진 양민들에게 가해진 무차별적인 학살 사건으로 인한 감정의 잔해만 봐도 그렇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 사건들을 역사책 귀퉁이나 신문의 특집란에서 눈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하다못해 피해지역에 연고조차 없는 내게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 아니 그저 어떤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그 감정의 잔해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나에게도 전해진다.

 사적인 일이지만, 98년도의 난 노량진의 한 재수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이 글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 살풍경을 자세히 늘어놓을 마음도, 기억도 없지만,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다. 학원의 수업이라는 것이-이건 교육전반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입시가 목표기에 역사적인 사건의 중요성은-그 중요성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수능의 출제 경향에 달려있다. 때문에 참고서 귀퉁이에 참고하라, 또는 쉬어가라는 식으로 수록된 제주 4.3 양민학살사건에 시선을 두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수업을 진행하던 강사 역시 결혼을 종용하는 친척들의 질문공세를 넘기는 혼기 찬 총각처럼 성의 없는 설명으로 그 페이지를 재빨리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귀퉁이에서 떨리는 시선을 멈추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갑작스럽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고, 빽빽한 교실에 놓인 의자 하나가 내는 마찰음에 학생들과 그 강사의 시선이 고정됐다. 무표정했지만 흔들리는 시선으로 뚜벅뚜벅 강단에 오른 그 친구는 주체 못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나즈막이 제주 4.3 양민학살사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뚝 끊어놓는 일이었지만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친구의 고향은 제주였다.

 그 친구 역시 1940년대 말의 그 사건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또한 구체적으로 그 사건의 유족이 족보에 올라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나가 작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크게는 한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 뿌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게는 잔혼이 남아있었다. 90명에 달하는 인원이 가득 찬 교실에서 어느 누구 하나 그 사건에 눈길을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에 그는 분노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기가 아니면 1948년 4월 3일의 그 사건을 대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과 같이 경험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한은 자신을 속이는 일시적인 감정이자 거짓말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에게는 새빨간 진실이었을 것이다. 1979년생의 그가 1948년의 제주 하늘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잔혼을 가지고 말이다.

 마리와 그녀가 찾아 나선 친구들은 각기 다른 조국의 운명과 부모님의 한 속에서 자라왔다. 아버지의 길에 한없는 존경심을 품고 있는 마리,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리스의 푸른 하늘과 바다를 눈 넣고 자라나 조국을 향한 위성안테나에 망향의 한을 실어 보내는 리차, 종이처럼 얄팍해진 시선으로 조국을 가엽게 바라보는 아냐, 동지와 핏줄의 괴리 사이에서 공기가 되고싶어하는 야스나에 이르기 까지 그녀들에게는 조국의 피가 흐르고 있고, 그 이상의 우정이 있다.
 마리가 40년이 지난 뒤에 그 친구들을 찾아가는 먼 여정에 오르는 것이나, 동유럽 국가들에 던지는 따뜻하지만 안타까운 시선은 그녀들과의 우정 때문일 것이다.

 지금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이 눈이 얼마나 쌓일지 모르지만 곧 그 눈이 녹고나면 살풍경한 도시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이 소녀들의 우정은 이데올로기라는 거무튀튀한 풍경을 하얗게 덮어준다. 모든 곳을 한결같이 하얗기 만한 풍경으로 말이다.
 다만 도시의 눈이 삽시간에 녹아버리는데 반해, 그녀들의 우정은 녹아 없어지지 않는 만년설이다.

 텍스트를 독해하는 몫은 다분히 독자 개인의 몫이기에 지금까지 쓴 서평이 혹여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선입견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분명하게 밝히고 싶은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다른 책을 읽을 때도 한번도 보지 못한 프라하의 풍경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부여잡지 않고 솔직히 표현하지만 적당한 선을 넘지 않는다. 그 적당한 선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표현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을 주는 재능이 이 작가에게 있거나 그 정확한 기준을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책이 요네하라 마리의 마지막 책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이전의 책들이 번역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리더스가이드 서평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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