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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ㅣ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시대를 살아왔다.
요네하라 마리는 시대를 살아왔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종요로 인해, 노선의 차이로 인해, 또는 권력이라는 환각제에 취해 살육을 벌이는 시대를 살아왔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 시대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시대는 그들의 부모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시대이거나 그들의 부모가 그렇게 생겨먹은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발버둥치며 살았던 것이다.
감정의 잔혼.
그렇지만 10대의 소녀인 요네하라 마리와 그녀의 친구들은 그 감정의 잔혼을 고스란히 갈무리하고 있다. 자신의 부모를 통해서 물려받은 감정의 잔해는 어느 순간 자신의 한이 되고, 조국의 운명에 자신의 운명을 겹쳐놓게 된다.
확대해석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도 그러한 감정의 잔혼이 남아있다. 제주 4.3 양민학살사건,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등의 수많은 지역에서의 이데올로기와는 동떨어진 양민들에게 가해진 무차별적인 학살 사건으로 인한 감정의 잔해만 봐도 그렇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 사건들을 역사책 귀퉁이나 신문의 특집란에서 눈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하다못해 피해지역에 연고조차 없는 내게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 아니 그저 어떤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그 감정의 잔해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나에게도 전해진다.
사적인 일이지만, 98년도의 난 노량진의 한 재수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이 글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 살풍경을 자세히 늘어놓을 마음도, 기억도 없지만,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다. 학원의 수업이라는 것이-이건 교육전반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입시가 목표기에 역사적인 사건의 중요성은-그 중요성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수능의 출제 경향에 달려있다. 때문에 참고서 귀퉁이에 참고하라, 또는 쉬어가라는 식으로 수록된 제주 4.3 양민학살사건에 시선을 두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수업을 진행하던 강사 역시 결혼을 종용하는 친척들의 질문공세를 넘기는 혼기 찬 총각처럼 성의 없는 설명으로 그 페이지를 재빨리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귀퉁이에서 떨리는 시선을 멈추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갑작스럽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고, 빽빽한 교실에 놓인 의자 하나가 내는 마찰음에 학생들과 그 강사의 시선이 고정됐다. 무표정했지만 흔들리는 시선으로 뚜벅뚜벅 강단에 오른 그 친구는 주체 못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나즈막이 제주 4.3 양민학살사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뚝 끊어놓는 일이었지만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친구의 고향은 제주였다.
그 친구 역시 1940년대 말의 그 사건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또한 구체적으로 그 사건의 유족이 족보에 올라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나가 작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크게는 한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 뿌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게는 잔혼이 남아있었다. 90명에 달하는 인원이 가득 찬 교실에서 어느 누구 하나 그 사건에 눈길을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에 그는 분노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기가 아니면 1948년 4월 3일의 그 사건을 대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과 같이 경험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한은 자신을 속이는 일시적인 감정이자 거짓말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에게는 새빨간 진실이었을 것이다. 1979년생의 그가 1948년의 제주 하늘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잔혼을 가지고 말이다.
마리와 그녀가 찾아 나선 친구들은 각기 다른 조국의 운명과 부모님의 한 속에서 자라왔다. 아버지의 길에 한없는 존경심을 품고 있는 마리,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리스의 푸른 하늘과 바다를 눈 넣고 자라나 조국을 향한 위성안테나에 망향의 한을 실어 보내는 리차, 종이처럼 얄팍해진 시선으로 조국을 가엽게 바라보는 아냐, 동지와 핏줄의 괴리 사이에서 공기가 되고싶어하는 야스나에 이르기 까지 그녀들에게는 조국의 피가 흐르고 있고, 그 이상의 우정이 있다.
마리가 40년이 지난 뒤에 그 친구들을 찾아가는 먼 여정에 오르는 것이나, 동유럽 국가들에 던지는 따뜻하지만 안타까운 시선은 그녀들과의 우정 때문일 것이다.
지금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이 눈이 얼마나 쌓일지 모르지만 곧 그 눈이 녹고나면 살풍경한 도시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이 소녀들의 우정은 이데올로기라는 거무튀튀한 풍경을 하얗게 덮어준다. 모든 곳을 한결같이 하얗기 만한 풍경으로 말이다.
다만 도시의 눈이 삽시간에 녹아버리는데 반해, 그녀들의 우정은 녹아 없어지지 않는 만년설이다.
텍스트를 독해하는 몫은 다분히 독자 개인의 몫이기에 지금까지 쓴 서평이 혹여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선입견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분명하게 밝히고 싶은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다른 책을 읽을 때도 한번도 보지 못한 프라하의 풍경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부여잡지 않고 솔직히 표현하지만 적당한 선을 넘지 않는다. 그 적당한 선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표현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을 주는 재능이 이 작가에게 있거나 그 정확한 기준을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책이 요네하라 마리의 마지막 책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이전의 책들이 번역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리더스가이드 서평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