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카멜레온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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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터……. 코스터…….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기리하타는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각색해 방송하는 라디오 디제이다. 목소리와는 반대로 별로인 외모를 가졌다는 게 그의 콤플렉스인데, 오직 단골 바인 if에서만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사람들을 만난다. 평소처럼 단골 바에서 단골손님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그때. 온몸이 흠뻑 젖은 여자가 들어오더니 뜬금없이 컵 받침대를 찾기 시작한다.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었던 그때, 여자는 바를 조용히 나간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가 웅얼거렸던 ‘코스터’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걔…… 죽였다고 한 거 아닐까요?


책임질 거지? 자신의 라디오에서 일상을 각색하다 보니 원래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마치 아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을 지어낸 기리하타. 또다시 바를 방문한 여자는 마침 기리하타의 라디오 애청자였고, 그녀에게 자신의 본모습과 다른 모습을 들킨 기리하타는 약점을 잡혀 모든 애청자들을 기만한 행위에 대해, 특히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말을 듣게 된다. 토를 달지 않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무언가가 수상하다고 느낀 기리하타. 복수하기로 결심했어요. 그 남자를 죽여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거예요. 복수에 불타올라 있었던 그녀. 과연 기리하타와 if의 단골손님들은 그녀를 계속 도울 수 있을까?


모모카 씨. 이시노자키 씨. 시게마쓰 씨. 마담. 레이카 씨. <투명 카멜레온>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자신의 사소한 행동 혹은 말로 인해, 그렇게 의미 부여하지 않았던 그 순간들 때문에 누군가를 잃은 과거가 있다. 과거에서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 수 없었던, 계속 그 순간에 발목을 붙잡혀 있었던 그들에게 나타난 사람은 바로 기리하타였다. 그는 자신의 라디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냈고, 다른 과정과 결과를 이야기했다. 그것을 세상과 나눴다. 청취자들과 기리하타는 그렇게 if 바 단골들에게,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했다. 설령 엉터리로 거짓말을 하더라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참말이 된다. 사실보다 더 사실이 된다. 날개를 잃고 움직이지 못하는 잠자리에게 다시 한 번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투명 카멜레온>을 통해 또 느낀 것은 말의 힘이었다. 누군가를 살리기도,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는 말. 양날의 검과 같은 말은, 참 다행스럽게도 <투명 카멜레온>에서는 긍정적으로 사용됐다. 라디오 디제이인 기리하타는 그의 말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고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고 세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때론 주저앉고 두려워서 포기해도 묵묵히 그들을 응원했던 기리하타. 그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에, 나중에 기리하타가 커다란 장벽을 마주했을 때도 if 바의 사람들은 그와 함께했다.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금을 만들면 된다. 설령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세계라도 진심으로 바라면 사람은 만질 수 있다. 나오키상 수상 작가인 미치오 슈스케가 <투명 카멜레온>이라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름 아닌 ‘꿈을 꾸어라’는 것 아니었을까. 말에는 힘이 있다. 계속 그렇다고 말을 하면 그렇게 느끼게 되어 있다. 카멜레온처럼, 진짜의 모습을 숨긴 채 살아왔던 if 바와 기리하타였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카멜레온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라디오 전파도, 카멜레온도 존재한다. 분명히 거기에 있다. 언제든지 거기에 있다.


새처럼 하늘을 날아보라고 해도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 인간은 하늘을 나는 걸 꿈꿀 수 있다. 소망할 수 있다. 그러한 꿈과 소망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거짓말이, 카멜레온과도 같은 삶을 살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결말이 나올 수 있을까? <투명 카멜레온>의 장르는 장마다 바뀐다. 스릴러였다가, 미스터리였다가, 드라마에서 로맨스까지 옮겨간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기리하타처럼. 아직까지도 <투명 카멜레온>을 한 장르로 말하라고 하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투명 카멜레온>을 키워드로 나타내자면, 거기엔 분명히 ‘하얀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참, ‘카멜레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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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요가 - 낮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시간
산토시마 가오리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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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트레스 받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무작정 걷거나 지하철 타고 서점 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날이 추워지고 공기도 안 좋다 보니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손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한계가 있고

몸을 움직이는 게 가장 좋은 해소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집 안에만 있기엔 정말 별로인 순간들이 연속으로 다가왔을 때

다행히 책 한 권을 만났다. <밤의 요가>.

소질은 있는 것 같은데 운동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운동 효과를 기대하는,

운동 앞에서는 한없이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는 나.

그렇지만 <밤의 요가>는 제목부터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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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잠들기 전 휴식 요가

스트레칭처럼 몸을 가볍게 움직이면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시간을 <밤의 요가>를 통해 선물받았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따라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밤이 주는 선물.

사진과 글로 동작이 설명되어 있고 복잡한 동작이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밤의 요가>.

부디 많은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밤의 짧은 요가를 통해 사라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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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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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낭만을 찾는답시고 간직하고 있는 낭만이나마 하나하나 조각 내려 드는 것일까?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평범한 마흔여덟 편의 삶의 조각들. 주위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경험했을 것 같은 일들이라 낯설지 않고 무척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글로만 만났었던,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1970년대의 일상이었지만, 그냥 그렇게. 그러면서 박완서 작가의 힘을 느꼈다. 1970년대의 평범한 삶의 조각들을 사진과 이야기로만 접했던 이방인에게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이 낭만이 귀한 시대에. 박완서 작가는 1970년대를 ‘낭만이 귀한 시대’로 표현했다.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50여 년보다는 훨씬 더 ‘낭만이 귀한 시대’가 되었음을 온몸으로, 하루하루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낭만이 더욱더 희귀해지고 바스러져 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박완서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 것이 아니었을까. 나의 아름다운 이웃들이 완전히 내 곁에서 사라지기 전에.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통해 마흔여덟 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만나면서, 197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낭만이 귀한 시대’였던 그 당시보다 훨씬 더 낭만이 귀해진 요즘을 살아가며 느낀 것은, 추억은 추억으로만 간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거였다. 기억 속에서 미화돼 언제든지 우리를 실망시킬 수 있는, 추억. 우리의 기억 역시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느꼈다.


굳이 1970년대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이냐, 새로운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요즘 시대에 굳이 개정판으로 나온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하고 누군가는 질문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개정판으로 나오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와 이야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1970년대보다 더 낭만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나의 아름다운 이웃>들의 아름다운 이웃들을 만나면서 쓸쓸하고 외로웠던 삶에, 잊고 있었던 낭만이 다시금 찾아오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읽으라고. 어찌 되었든 사람 사는 집은 다 비슷하단 사실 하나는 기억하고 있으라고, 우리 곁에 아름다운 이웃이 있다는 걸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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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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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착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끔찍한 짓을 저지를 때도 있다. 그해 초에 벌어진 ‘그 일’이 그러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쇠락한 작은 마을 베어타운에게 있어서 삶의 유일한 낙이자 희망은 아이스하키 팀이었다. 그런데 그해 초에 ‘그 일’이 일어났을 때, 하키에 죽고 하키에 사는 베어타운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대로 일이 흘러가도록 몰아붙였다. 자신들이 사랑하고 애정 하는 베어타운이라는 마을과 하키를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 아래, 또 다른 폭력을 가했다. 하키 팀의 에이스 선수가 코치의 딸을 성폭행한 ‘그 일’의 진상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말이다.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선택하게 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끔찍한 잘못은 대부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이후, 가해자인 하키 선수가 성폭행을 했다는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는 아무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고 베어타운을 떠났다. 베어타운의 괜찮은 하키 선수들은 거의 다 이웃 마을이자 라이벌인 헤드로 팀을 옮겼다. 후원사는 더 이상 베어타운 하키팀을 후원하지 않게 됐고, 베어타운 하키팀의 오랜 역사는 그렇게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하키에 죽고 하키에 사는 ‘하죽하사’ 베어타운 사람들의 분노는 피해자인 마야에게 향했다. 사과하는 대신 말이다. 부인하는 쪽이, ‘별개의 사건’이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쪽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입만 다물고 있었어도 그들의 유일한 삶의 낙이자 보람이었던 베어타운 하키팀은 건재했을 테니까. 


그렇게 없어지려고 하는 베어타운 하키팀에 정치인이 개입한다. 베어타운 하키팀을 지키기 위해서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정치’와 의탁, 혹은 배척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페테르. 돈이나 정치로 매수할 수 없는 아이스하키 팀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페테르였지만, 베어타운 하키팀이 연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탁뿐. 이미 사형선고가 내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선수도 실력도 없는 팀으로 전략해버린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팀을 지키기 위해 페테르는 희생을 감수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이상을 위해 어느 정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어떤 적들을 상대해야 할까? 권력을 차지하려면. 승리를 차지하려면.


베어타운 하키팀은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에이스 벤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다시 혼란과 혼돈에 빠진다. 다수에 속해 있었다가 소수자가 되어버린 벤이. 자신의 삶의 일부라고 여겨졌던 하키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도 고민할 만큼 베어타운은 벤이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은 어느새 ‘감사해하며’ 받아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벤이는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시선은 벤이에게 주홍 글씨로 새겨져 어딜 가든지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다 벤이는 ‘그 일’ 이후로 베어타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마야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나는 피해자가 아니에요. 나는 생존자예요.


진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마을과 함께 무너졌다. 우리가 모든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말을 하기는 쉽겠지만 당신이라고 다르게 대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겁에 질리다 보면, 한쪽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를 받다 보면, 뭘 희생해야 하는지 알다 보면 그렇게 된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우리와 당신들>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소설 속 세상에서나마 선이 이기고 악이 벌을 받는 구도를 원했지만,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정말 매정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베어타운은 무너졌고, 하키팀도 패배했다. 벤이와 마야는 따돌림과 무시를 당했고, 그들을 향한 욕설은 끔찍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의 반만큼이라도 가해자가 겪었다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더라면, 벤이와 마야의 이야기는 이토록 눈물 나게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베어타운 사람들을 정죄했다. 이들의 편에 서지 못하고, 사과는 못할망정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베어타운 사람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읽은 걸까. 그렇게 베어타운 사람들을 욕하고 정죄하고 그들도 한패라고 소리치는 나도, 베어타운 사람들 입장에선 ‘당신들’에 속하는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사람들의 말이 옳았다. 만약 내 주위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의 주위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베어타운 사람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베어타운>에서부터 계속 등장하는 겨울 스포츠인 하키는 정말 단순한 스포츠다. 하키 스틱을 들고 퍽을 드리블해 상대방의 골대에 퍽을 많이 넣으면 이긴다. 이렇게 단순한 스포츠와 대조돼 베어타운과 베어타운 사람들은 더욱더 복잡하고 조잡해 보였다. 아니, 그들은 복잡과 엉망 그 자체였다. 정치인이 사람들을 이간질해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고 하는 것도, 그런 정치인들에게 번번이 속는 사람들의 모습도, 스포츠 이외의 것까지 경기장에 가지고 들어가 아이스하키를 망가뜨리고 성인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의 삶을 짓밟으려 하는 모습도. 무모할 정도로 서로를 위하고, 또 바보 같을 정도로 이기적인, 종잡을 수 없는, 그런데 묘하게 현실 세계가 반영된 듯한 <우리와 당신들>. 그렇기 때문에 더 놓을 수 없었던 이 책.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쓰레기를 벗겨내고 애초에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들만 남기면 단순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다들 스틱 하나씩 들고, 골문 두 개를 두고. 두 팀으로 나눠서.


궁극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우리와 당신들>에 등장하지 않는다. 100% 선하고 100% 악한 사람이 없다. 누구 하나 미워하거나 누구 하나를 싫어할 수 없다. 누구 하나를 정죄하고 누구 하나를 원망할 수 없다. 아마 프레드릭 배크만이 만들어 낸 인물들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어타운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 이기적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하는 것이 있었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베어타운. 희생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베어타운은 곧 쓰러질 것 같이 유약하지만 쓰러지지는 않는다. 조그마한 불씨가 살아 있으니까. 우리와 당신들, 모두가 함께일 때 그 불씨는 타오를 테니까. 내일도 우리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눈이 부시도록.


억지로 해피엔딩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지 않아서 좋다. 현실적이라 좋다. 이런 작가를 알고 있어서 좋다. 명작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베어타운이라는 가상의 마을을 통해 대통합을 이끌어내서 좋다. <우리와 당신들>이 좋은 이유는 한도 끝도 없다. 마을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비춰보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무모하고 고집도 세지만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성실함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베어타운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무언가를 지켜보자. 혼자라면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우리’의 곁에는 언제나 ‘당신들’이 존재하고, ‘당신’ 곁에는 언제나 ‘우리’가 함께한다는 걸 기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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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모리 에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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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의 아픔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초등학교에서 조무사로 근무하던 오시마 고로는 우연히 학교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정식 교사는 아니었지만 학교가 끝난 뒤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 하나를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얼떨결에 아이들을 가르치던 고로는 자신이 이 일을 할 때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한 학부모가 고로를 방문한다. 그가 가르치는 방식을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그날 그 만남이, 평범하고 잔잔했던 고로의 일상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고로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말- 오사마 씨, 공립학교는 무서운 곳이란 생각 안 드시나요?


학교는 무섭다, 교육은 믿을 수 없다. 전 그걸 뼈져리게 실감했어요. 전쟁 당시 군국주의 교육을 받아 공교육과 학교에 큰 불신을 가지고 있는 여자 아카사카 지아키. 강압적인 분위기 아래 충성심을 강요하고 교사들의 폭력이 만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군국주의 교육의 희생자 중 하나였다. 악마 같은 영미를 타도하자고 부르짖던 선생님이 바로 그 입으로 평화를 외치기 시작하더군요. 정의의 잣대를 너무나도 쉽사리 바꿔친 겁니다. 기회주의적인 교사들의 태도에 또다시 상처를 받은 지아키는 그대로 공교육에 대해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는다. 하지만 교육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나름대로 교육에 참여하는 일을 찾던 중, 지아키는 학원을 통해 새 지평을 열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고로를 찾아온다.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전 학교 교육이 태양이라면 학원은 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의 빛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는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고요히 비추는 달. 지금은 아직 여릿한 초승달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둥글게 차오를 거예요. 학원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 오히려 학원에 다니는 것이 유별난 일이라고 생각됐던 시절부터 고로와 지아키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반대도 거셌고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지만 지아키의 선견지명은 옳았다. 사람들은 점점 학원을 찾기 시작했고, 고로와 지아키가 함께 운영하는 학원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하지만 달빛이 환하면 그림자도 더 커지고 짙어지는 법. 학원의 발전 그 이면에는 폐해 역시 존재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달빛을 비추는 것은, 학원에 다닐 수 없는 사정을 가진 아이들에게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나. 태양빛을 흡수할 수 없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달빛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으나, 끝내 학원은 그 초심을 잃고 변해버렸다. 원래의 학원 설립 목적과는 달리 사회의 수요에 맞춘다며 살아남기 위해 타협과 적응을 선택한 학원의 현실. 처음에 당신이 말했잖아. 태양이 완전히 비춰줄 수 없는 아이들을 비추는 달, 그게 학원이라고. 지아키와 고로는 결국 이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교육을 위해서라면 광기와 종이 한 장 차이인 정열을 불태웠던 지아키지만, 이제는 총성 없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초심과 타협을 봤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교육하고 싶었는데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맞추어주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세상과 타협한 그 순간부터 지아키의 심장은 멈춘 것이다. 교육을 위해 불타올랐던 그 뜨거운 심장이.


고로와도 연락이 끊기고, 세 딸과의 관계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지아키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시행착오도 겪었고 가족들과의 관계 회복이 가능할까 의구심일 들 무렵,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진짜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다시금 뭉친 것이다. 배울 곳을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 곁을 지키면서 함께 배운다. 정해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비록 공립학교에 더 이상 미래는 없다 해도, 진정한 교육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고 해도, 아이들이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달빛으로 손을 뻗을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오시마 가 사람들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기로 결심한다. 학원의 발전이 아닌,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단순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아니라 미래의 양식이 될 진짜 학력을 위한 공부, 자주성을 길러주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을 위해 말이다.


<초승달>은 530여 쪽 되는 두꺼운 책이라 쉽게 손을 뻗을 수 없었다. 뭔가 압도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전 세계에서 그래도 한국의 교육방식과 가장 비슷한 일본이라 일본의 교육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교육, 교육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여전히 말 많은 사교육이 막 시작되던 시기부터 각광을 받는 전성기를 지나 치열한 싸움 끝에 찾아온 학원 안정기, 그리고 그 이후의 봉사활동까지. 어디까지나 픽션이지만 오시마 가 사람들이 교육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컸다. 교육에 대한 초심을 잃고 세상과 타협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되새기며 마음가짐을 새로이 한 오시마 가. 그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이 희망적인 결말로 <초승달>의 끝에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교육은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힘, 쉽사리 통제되지 않기 위한 힘을 주기 위해 있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교육은 무엇인가? 매번 바뀌는 교육과정에 불안해하는 우리들에게 모리 에토는 진정한 교육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묻는다. 눈앞의 성적이나 제도라는 나무에 집중하기보다는 교육이라는 큰 숲을 바라보는 건 어떻겠냐고. 결국 교육이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겠냐고.


교육에 완성은 없습니다. 보름달이 될 수 없는 도중의 달을 걱정스레 우러러보며 분투를 거듭하는 동지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합니다. 또 앞으로도 시시각각 변화해 나갈 일본 사회에서, 교육의 결락에 맞서 싸우는 용사들의 분투가 영원히 계승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감사의 말을 대신하겠습니다.


늘 어딘가가 이지러져 있는 초승달. 교육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이지러져 있다는 자각이 있기에 사람은 차자, 차오르자 하고 연마를 거듭하는지도 모른다. 말 많은 교육 방식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승달>이 밝게 마무리되며 빛났듯이 우리에겐 여전히 희망이 있다. 그래도 우린 답을 찾게 되지 않을까. 늘 그랬듯이. 넘어질 때도 있을 것이고, 앞이 캄캄해 망연자실하는 순간도 찾아오겠지만 발걸음만 멈추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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