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모리 에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전쟁의 아픔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초등학교에서 조무사로 근무하던 오시마 고로는 우연히 학교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정식 교사는 아니었지만 학교가 끝난 뒤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 하나를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얼떨결에 아이들을 가르치던 고로는 자신이 이 일을 할 때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한 학부모가 고로를 방문한다. 그가 가르치는 방식을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그날 그 만남이, 평범하고 잔잔했던 고로의 일상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고로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말- 오사마 씨, 공립학교는 무서운 곳이란 생각 안 드시나요?


학교는 무섭다, 교육은 믿을 수 없다. 전 그걸 뼈져리게 실감했어요. 전쟁 당시 군국주의 교육을 받아 공교육과 학교에 큰 불신을 가지고 있는 여자 아카사카 지아키. 강압적인 분위기 아래 충성심을 강요하고 교사들의 폭력이 만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군국주의 교육의 희생자 중 하나였다. 악마 같은 영미를 타도하자고 부르짖던 선생님이 바로 그 입으로 평화를 외치기 시작하더군요. 정의의 잣대를 너무나도 쉽사리 바꿔친 겁니다. 기회주의적인 교사들의 태도에 또다시 상처를 받은 지아키는 그대로 공교육에 대해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는다. 하지만 교육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나름대로 교육에 참여하는 일을 찾던 중, 지아키는 학원을 통해 새 지평을 열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고로를 찾아온다.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전 학교 교육이 태양이라면 학원은 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의 빛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는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고요히 비추는 달. 지금은 아직 여릿한 초승달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둥글게 차오를 거예요. 학원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 오히려 학원에 다니는 것이 유별난 일이라고 생각됐던 시절부터 고로와 지아키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반대도 거셌고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지만 지아키의 선견지명은 옳았다. 사람들은 점점 학원을 찾기 시작했고, 고로와 지아키가 함께 운영하는 학원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하지만 달빛이 환하면 그림자도 더 커지고 짙어지는 법. 학원의 발전 그 이면에는 폐해 역시 존재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달빛을 비추는 것은, 학원에 다닐 수 없는 사정을 가진 아이들에게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나. 태양빛을 흡수할 수 없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달빛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으나, 끝내 학원은 그 초심을 잃고 변해버렸다. 원래의 학원 설립 목적과는 달리 사회의 수요에 맞춘다며 살아남기 위해 타협과 적응을 선택한 학원의 현실. 처음에 당신이 말했잖아. 태양이 완전히 비춰줄 수 없는 아이들을 비추는 달, 그게 학원이라고. 지아키와 고로는 결국 이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교육을 위해서라면 광기와 종이 한 장 차이인 정열을 불태웠던 지아키지만, 이제는 총성 없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초심과 타협을 봤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교육하고 싶었는데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맞추어주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세상과 타협한 그 순간부터 지아키의 심장은 멈춘 것이다. 교육을 위해 불타올랐던 그 뜨거운 심장이.


고로와도 연락이 끊기고, 세 딸과의 관계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지아키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시행착오도 겪었고 가족들과의 관계 회복이 가능할까 의구심일 들 무렵,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진짜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다시금 뭉친 것이다. 배울 곳을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 곁을 지키면서 함께 배운다. 정해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비록 공립학교에 더 이상 미래는 없다 해도, 진정한 교육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고 해도, 아이들이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달빛으로 손을 뻗을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오시마 가 사람들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기로 결심한다. 학원의 발전이 아닌,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단순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아니라 미래의 양식이 될 진짜 학력을 위한 공부, 자주성을 길러주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을 위해 말이다.


<초승달>은 530여 쪽 되는 두꺼운 책이라 쉽게 손을 뻗을 수 없었다. 뭔가 압도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전 세계에서 그래도 한국의 교육방식과 가장 비슷한 일본이라 일본의 교육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교육, 교육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여전히 말 많은 사교육이 막 시작되던 시기부터 각광을 받는 전성기를 지나 치열한 싸움 끝에 찾아온 학원 안정기, 그리고 그 이후의 봉사활동까지. 어디까지나 픽션이지만 오시마 가 사람들이 교육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컸다. 교육에 대한 초심을 잃고 세상과 타협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되새기며 마음가짐을 새로이 한 오시마 가. 그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이 희망적인 결말로 <초승달>의 끝에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교육은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힘, 쉽사리 통제되지 않기 위한 힘을 주기 위해 있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교육은 무엇인가? 매번 바뀌는 교육과정에 불안해하는 우리들에게 모리 에토는 진정한 교육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묻는다. 눈앞의 성적이나 제도라는 나무에 집중하기보다는 교육이라는 큰 숲을 바라보는 건 어떻겠냐고. 결국 교육이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겠냐고.


교육에 완성은 없습니다. 보름달이 될 수 없는 도중의 달을 걱정스레 우러러보며 분투를 거듭하는 동지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합니다. 또 앞으로도 시시각각 변화해 나갈 일본 사회에서, 교육의 결락에 맞서 싸우는 용사들의 분투가 영원히 계승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감사의 말을 대신하겠습니다.


늘 어딘가가 이지러져 있는 초승달. 교육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이지러져 있다는 자각이 있기에 사람은 차자, 차오르자 하고 연마를 거듭하는지도 모른다. 말 많은 교육 방식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승달>이 밝게 마무리되며 빛났듯이 우리에겐 여전히 희망이 있다. 그래도 우린 답을 찾게 되지 않을까. 늘 그랬듯이. 넘어질 때도 있을 것이고, 앞이 캄캄해 망연자실하는 순간도 찾아오겠지만 발걸음만 멈추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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