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카멜레온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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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터……. 코스터…….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기리하타는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각색해 방송하는 라디오 디제이다. 목소리와는 반대로 별로인 외모를 가졌다는 게 그의 콤플렉스인데, 오직 단골 바인 if에서만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사람들을 만난다. 평소처럼 단골 바에서 단골손님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그때. 온몸이 흠뻑 젖은 여자가 들어오더니 뜬금없이 컵 받침대를 찾기 시작한다.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었던 그때, 여자는 바를 조용히 나간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가 웅얼거렸던 ‘코스터’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걔…… 죽였다고 한 거 아닐까요?


책임질 거지? 자신의 라디오에서 일상을 각색하다 보니 원래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마치 아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을 지어낸 기리하타. 또다시 바를 방문한 여자는 마침 기리하타의 라디오 애청자였고, 그녀에게 자신의 본모습과 다른 모습을 들킨 기리하타는 약점을 잡혀 모든 애청자들을 기만한 행위에 대해, 특히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말을 듣게 된다. 토를 달지 않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무언가가 수상하다고 느낀 기리하타. 복수하기로 결심했어요. 그 남자를 죽여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거예요. 복수에 불타올라 있었던 그녀. 과연 기리하타와 if의 단골손님들은 그녀를 계속 도울 수 있을까?


모모카 씨. 이시노자키 씨. 시게마쓰 씨. 마담. 레이카 씨. <투명 카멜레온>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자신의 사소한 행동 혹은 말로 인해, 그렇게 의미 부여하지 않았던 그 순간들 때문에 누군가를 잃은 과거가 있다. 과거에서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 수 없었던, 계속 그 순간에 발목을 붙잡혀 있었던 그들에게 나타난 사람은 바로 기리하타였다. 그는 자신의 라디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냈고, 다른 과정과 결과를 이야기했다. 그것을 세상과 나눴다. 청취자들과 기리하타는 그렇게 if 바 단골들에게,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했다. 설령 엉터리로 거짓말을 하더라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참말이 된다. 사실보다 더 사실이 된다. 날개를 잃고 움직이지 못하는 잠자리에게 다시 한 번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투명 카멜레온>을 통해 또 느낀 것은 말의 힘이었다. 누군가를 살리기도,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는 말. 양날의 검과 같은 말은, 참 다행스럽게도 <투명 카멜레온>에서는 긍정적으로 사용됐다. 라디오 디제이인 기리하타는 그의 말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고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고 세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때론 주저앉고 두려워서 포기해도 묵묵히 그들을 응원했던 기리하타. 그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에, 나중에 기리하타가 커다란 장벽을 마주했을 때도 if 바의 사람들은 그와 함께했다.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금을 만들면 된다. 설령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세계라도 진심으로 바라면 사람은 만질 수 있다. 나오키상 수상 작가인 미치오 슈스케가 <투명 카멜레온>이라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름 아닌 ‘꿈을 꾸어라’는 것 아니었을까. 말에는 힘이 있다. 계속 그렇다고 말을 하면 그렇게 느끼게 되어 있다. 카멜레온처럼, 진짜의 모습을 숨긴 채 살아왔던 if 바와 기리하타였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카멜레온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라디오 전파도, 카멜레온도 존재한다. 분명히 거기에 있다. 언제든지 거기에 있다.


새처럼 하늘을 날아보라고 해도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 인간은 하늘을 나는 걸 꿈꿀 수 있다. 소망할 수 있다. 그러한 꿈과 소망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거짓말이, 카멜레온과도 같은 삶을 살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결말이 나올 수 있을까? <투명 카멜레온>의 장르는 장마다 바뀐다. 스릴러였다가, 미스터리였다가, 드라마에서 로맨스까지 옮겨간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기리하타처럼. 아직까지도 <투명 카멜레온>을 한 장르로 말하라고 하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투명 카멜레온>을 키워드로 나타내자면, 거기엔 분명히 ‘하얀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참, ‘카멜레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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